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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운동에 주목한다
책을 넘어선 책, <녹색평론>
최이윤정   |   2004-12-19
요즘 같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6,000원으로 한 권의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마운 일이다. 내용보다는 겉모습이나 홍보에 치중해서 책값을 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출판 풍토에서 이러한 전략은 출판시장의 상업주의 메커니즘을 아예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욕망보다는 다른 가치를 지향해야 가능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지향,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한다는 이념에 맞게 <녹색평론>은 지난 13년간 우리 주변에서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조용한 혁명을 일궈내고 있는 중요한 매체 중 하나다. 특별히 광고, 홍보를 하지 않아도 그저 사람들 사이의 입 소문으로만 주위에 널리 알려지고 있고 13년 동안 79호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매체가 갖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소외된 생태 영역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

‘녹색’이 하나의 유행 상품이 되고 있는 지금, <녹색평론>은 그 동안 ‘녹색’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매우 고집스럽게 말해왔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1990년대 초반에 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밥상과 공동체, 농업의 중요성을 말하기 시작했으며(1991년 창간호),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서 소외된 문제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해왔다.

수돗물 불소화 문제, 레츠(LETS) 등 지역화폐 운동 등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최초로 이 책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되어 파급력을 갖게 됐다. 글로벌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문화다양성과 사회경제적 위기를 우리 농업의 중요성(2004년 9-10월, 11-12월, 78-79호 등)과 언어 제국주의(2004년 1-2월, 74호) 등을 짚어주기도 했다.

녹색평론사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는 책들도 <녹색평론>에서 소개된 내용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고자 번역, 집필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쌀과 민주주의>, <전쟁인가 평화인가>, <환경학과 평화학>, <오래된 미래> 등은 생태적인 관점과 농업, 전쟁, 삶의 방식 등 다양한 문제들이 실제로 많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는 스테디셀러가 될 정도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다년간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먼저 소개해 읽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며, 생태적 관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장에서 실천돼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유도했다.

책을 통한 다양한 실천들

책의 내용뿐 아니라 <녹색평론>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우선 ‘서울’이 아닌 ‘대구’라는 지역에 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같이 모든 정보와 자원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시대에 지역에 거점을 두고 오랜 동안 출판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그리고 필자 층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 교수, 학자에서부터 활동가, 주부, 농민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의 필자들이 글을 쓰고 있고, 그런 점에서 계몽적이거나 이론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글쓰기에 가깝다.

이들이 실천하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하얀 바탕 위 표지 사진과 큼지막한 진한 글씨로 각 호의 중요한 이슈를 써내는 것 외에는 군더더기 없는 표지, 갱지로 된 내지에 깔끔히 쓰여진 내용들은 편집 스타일 자체에서도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급종이, 과도한 포장의 인쇄물에 드는 비용도 사회적 낭비와 공해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녹색평론>이라는 책의 스타일도 군더더기 없이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생태적인 편집, 인쇄 방식이다.

책 소개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거부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공중파 프로그램을 타면 책 판매부수가 엄청 올라가는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와중에, 녹색평론사가 오히려 출연 거부를 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재정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에 의해 획일화되는 문화 속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 역시 독자들의 다양한 도서 욕구들을 획일화시킬 수 있으며 그것은 일종의 문화 다양성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출연거부의 이유는 이들이 실천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용히 뻗어가는 자발적인 독자모임

녹색평론사 홈페이지(greenreview.co.kr)를 들어가 보면 활발한 ‘독자모임’이 눈에 뜨인다.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 경북, 심지어는 캐나다 밴쿠버까지 지역을 넘어 여러 독자모임이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다양한 활동들이 <녹색평론>을 통해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 주부 등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 되면서,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지역화폐를 실험하기도 하는 등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각자 자기가 활동하고 있는 공간에서부터 뭔가를 바꿔가려는 노력을 하고 그것이 가지를 뻗는다는 점은, 책을 읽고 그 지식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 독자모임들은 책이 담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것을 나누는 활동이 이어지는, 일종의 생태 운동의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주의, 소수자 문제에 대한 고민 아쉬워

<녹색평론>에 바라는 점은 ‘생태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고 그것에 관한 논의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나 소수자 문제 등이 생태적인 문제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장을 할애하여 논의되길 바란다.

일부 ‘생태주의자’, 환경운동가들을 만날 때 불편한 점은 이들이 생각하는 대안적인 생태 공동체의 모습이 마치 과거사회로의 회귀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이 말하는 대안적 농촌 공동체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삶의 가치의 복원이거나 그 속에서 전통적인 어머니 상에 대한 찬미, 보살핌 노동에 대한 미화가 무의식적으로 덧붙여져 있다.

예컨대, “보살핌 노동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남성 생태주의자들은 여전히 말만 할 뿐 실제로 그렇게 가치 있는 보살핌 노동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치 있으니 계속해서 여성이 하면 된다”라는 식이다. 환경운동 내에서도 성별분업이 존재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서 크게 논의되거나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생태적 관점은 하나의 단일한 관점이 아니며, 하나의 정답을 갖는 것도 아니다. 여성들이 생태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가부장제 문화와 생태 문제가 무관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그러한 고민들이 나눠지는 것이야말로 생태주의, 생태적 관점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편함을 극복하고 편견을 깨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를 만드는 <녹색평론>이 사람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에도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기사입력 : 20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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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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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04/12/20 [06:04]
녹색평론은 기사 내 그런 이유들도 저에게 무척이나 의미있는 책입니다.
격월로 받아보는 그 책이 집에 올 때 즈음이면 기다려지면서 가슴이 설레기까지 하지요. 이 기사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녹색평론을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에 지적하신 것들까지, 참으로 녹색평론을 사랑하시는 기자분이시군요.
이런 분을 만나서 일다가 더욱 좋네요.
파우더 04/12/20 [11:56]
기사에 공감합니다.
언제나 받아볼때마다 재생지의 느낌이 오히려 다른 책보다 더 좋아요.
고집이 있는 책이고 많은 걸 배우게 되는 책입니다.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공감하게 되는데 녹색평론 앞으로 더 발전하길 바래요.
아닌거 같은데.. 04/12/21 [20:29]
아직도 환경운동진영에서 마치 낭만적으로 사고로 현대사회의 환경문제를 과거로의 회귀로 해결하려고 주장한다고 글을 쓰신 기자분이 오해가 있으신 거 같아요. 
그런 질문은 생태문제에 관심없는 사람들이나 환경문제에 딴지 걸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전통적인 여성상의 복원이나 자연물을 여성성으로 비유하는 것은 
문화는 아직도 환경운동진영에서 남아있긴 하지만요.  
독자2 04/12/22 [21:27]
기사에는 공감하지만 녹색평론 독자로서 조금 아쉽네요.
내가 보기에는 대중적인 글이라기에는 찜찜하고, 내용도 그게 과연 그런가 싶은 점도 있거든요. 
그래서 녹색평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좀 약하지 않나 싶어요.
이동근 04/12/22 [22:21]
기자분이 제기한 여성문제와 소수자 문제는 이미 녹색평론에서 직간접적으로 일관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태문제의 해결이 인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임을 인식한다면, 생태라는 것과 여성, 소수자를 연결하는 별다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좀 이상하다고 느껴집니다. 알고보면, 녹색평론처럼 사람사이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에 대해 줄기차고 과격하게 주장하는 잡지도 없거든요.  지금 여기에서 여성, 소수자에 대한 반자본주의적 시각이야말로 생태적 시각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겁니다. 억지로 생태와 여성, 소수자를 연결하기 위해 이론이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소위 연구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동어반복적 논문에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토토 04/12/23 [00:09]
녹색사유를 권하는 책.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책.

에코페미니즘적인 내용도 볼 수 있길 바래요.
환성 04/12/27 [00:33]
아직도 소수만이 보고, 알고 있다는 게 아쉽습니다.
독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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