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치료 지원이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중략) 불임은 다른 질병과 달리 치료 확률이 50% 이상이다. 따라서 전체 가임 연령의 10∼15%를 차지하는 불임 부부 중 반 수만 성공한다고 해도 2만 명씩 신생아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우먼타임스 2005년 4월 1일 보도 “불임 사회공론화 시급”)
여성주간신문인 우먼타임스가 보도한 위 기사는 불임시술을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불임의 ‘치료’확률이 50%이상”이라는 보도도 별로 근거가 없지만, 신생아 수를 늘리기 위해 불임을 ‘사회공론화’해야 한다는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
이미 언론은 “아이 안낳는 한국에 미래 없다”(조선일보 2005년 시리즈 기획 제목)는 식의 ‘저출산 위기설’을 공공연히 퍼뜨린 바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요즘 사람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언론이, 이내 우리 사회에서 모성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투영해 줄 좋은 적임자들을 찾아냈다. 바로 불임시술을 원하는 ‘부부’, 그 중에서도 ‘여성’이다.
아들 못 낳는 죄?동아일보가 2006년 6월 13일자로 보도한 기사 “아이 못낳는 죄? 불임의 눈물…치료위해 수천만원 빚”의 제목을 보면 ‘아이 못 낳는 것이 죄냐?’라며 되묻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보도 내용은 아이 못 낳는 것, 그것도 아들 못 낳는 것이 ‘죄’임을 암시하고 있다.
<김현숙(가명.27.여) 씨는 10일 배란유도주사를 맞기 위해 울산시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배란유도주사만 벌써 100여 번이나 맞았다. 그는 지난해 2차례 인공수정에 실패한 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달 초 시험관아기 시술을 신청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배란유도주사를 10번이나 더 맞아야 한다. 2001년 남편(36)과 결혼한 김 씨는 4대 독자인 시아버지를 볼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동아일보 2006년 6월 13일 보도 “아이 못낳는 죄? 불임의 눈물…치료위해 수천만원 빚”)
위 기사는 5대 독자와 결혼한 여성이 남편 집안의 대를 이어줄 아들을 낳는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성차별 문화에 균열을 내지 않는다. 단지 5대 독자와 결혼한 여성이 아이(아들)를 낳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실을 애처롭게 그리며,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러한 여성들을 위해 불임시술 비용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아들을 낳기 위해 “배란유도주사만 벌써 100여 번이나” 맞고도 앞으로 더 많은 주사를 맞아야 하는 여성의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가부장제가 원하는 ‘인간시대’ 쓰기<박씨 부부의 불임 원인은 남편의 ‘무정자증’. 정자가 배출되는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불임 부부의 40%가량은 남성 측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처럼 박씨의 남편도 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박씨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 사실에 남편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입은 듯했습니다.
박씨는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딸 가진 죄인”이라며 노심초사하시는 친정어머니, 같이 사시는 칠순의 시어머니에게조차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요”하며 넘기곤 했답니다. 지난해 비로소 박씨의 남편이 “다시 불임클리닉에 가보자”며 먼저 그의 손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았습니다. (중략) 두 번째 시술 결과, 마침내 박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임신부가 됐습니다.> (중앙일보 2006년 5월 25일 보도 “1.08 인구 재앙 막자… 아십니까! 작년 출산 43만8000명, 낙태 35만건”)
중앙일보가 보도한 위 기사에는 무정자증인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딸이 아이를 갖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남편의 결정만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여성이 등장한다. 또한 이 기사 역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임신부”라는 표현을 써가며 불임시술을 ‘여성의 희망’으로 그리고 있다.
여성의 알 권리와 건강권 ‘무시’한편, SBS 교양정보 프로그램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은 연중 기획으로 불임부부 지원 프로젝트 “엄마가 되고 싶어요”를 방영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불임 “치료” 신청자를 모집하고, 불임클리닉의 협조를 받아 경제적인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임부부를 선정하여 시술을 돕고, 불임부부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눈물과 체념 그리고 원망. 하지만 그 어떤 말 보다 듣고 싶었던 말. 엄마”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 <엄마가 되고 싶어요 다섯번째 이야기>는 먼저 결혼 10년 차로 인공수정을 한 부부를 보여준다. “아기집” 둘에 태아가 셋이 있어 태아는 물론 산모도 위험한 ‘다태임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 쌍동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산모는 자궁근종을 가지고 있고 그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귀중한 생명인 세 쌍동이를 다 낳겠다고 한다. 담당의사를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은 산모의 결정에 대해 “잘 결정하셨다”며 격려한다.
다음에 비춰지는 불임 “치료” 장면은 난자를 채취하는 모습이다. 이 장면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나래이션이 흐른다. “모두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난자가 많을수록 시술의 성공률도 높아지는데….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 엄마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한쪽 나팔관이 유착된 여성이 난자채취 시술대 위에 오른다. 난자가 많이 나올수록 시술의 성공률이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난자채취를 위해 쓰이는 과배란제의 위험성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은 결코 시청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저출산을 ‘위기’라고 진단하더니, 틀에 박힌 혈연가족 안에서의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급기야 불임시술을 ‘해결사’로 등장시킨 언론들. 이들은 가부장적 인간시대 스토리를 써가며 불임시술 감동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지만, 정작 불임시술을 받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성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여성들을 가족 내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과 ‘국익’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을 은연중에 더욱 확산시키고 있어 더욱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