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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말라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제시
강선미   |   2006-11-01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언론이 선정적으로 눈길을 끌기 위해 사건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마치 피해자가 ‘빈틈’을 보여 성폭력을 당하게 된 것처럼 묘사하거나, 심지어 ‘여성들은 이렇게 저렇게 조심하라’ 식의 대처 방법을 보도하고 있어,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10월 31일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라는 제목으로, 성폭력사건 보도를 모니터링 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올해 1월~6월까지 주요 6개 일간지 성폭력 사건 보도들이 대상이 됐다.

권박미숙 활동가는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며, 언론보도가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성적인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박 활동가는 “단지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고 알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성폭력이 현재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가령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인면수심’, ‘짐승’과 같은 이름표를 붙이거나, 정신병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결국 독자들에게 성폭력 가해자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존재’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검문검색 강화만으로 늘어나는 성폭행범죄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 범행대상인 여성들의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경향신문 2월 2일자, 설쳐대는 ‘발바리’ 꼬리 무는 불안)

“원룸에 살 경우 빨래 건조대에 남자 양말이나 옷을 걸어두는 것도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또 인적이 드문 골목길 보다는 가급적 큰 길로 다니고, 만약을 대비해 호신용품을 항상 지니고 있는 것이 좋다.” (중앙일보 4월 28일자, 문 열린 다세대 원룸 노렸다)

이 같은 보도는 “잠재적 피해자로서 여성 개인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 조심하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성폭력 범죄를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욕을 유발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허점을 노출시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통념을 강화한다고 지적됐다.

가해자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 낸 말들을 언론이 “사건의 본질인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 역시 “가해자에 동조하거나 옹호하는 시선으로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강력계 여형사를 차량에 감금하고 구애공세를 펼치던 ‘간 큰’ 연하남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향신문 3월 31일자. ‘사랑합니다’ 여형사 감금: 20대 추격전 끝 붙잡혀)

끔찍한 스토킹 납치사건을 다룬 위 보도는 가해자 입장에서 ‘구애’ 행위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상담소 측은 “가해자의 말로 표제를 쓰고 내용이 채워진 기사는 눈길을 끄는, 흥미 있는 기사가 되었지만 정작 보도되어야 할 스토킹의 심각성을 삭제했고 피해자의 고통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성폭력 사건이 이용되는 문제도 지적됐는데, 상담소는 “피해자 인권과 사건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이 중심에 놓여 있다면, 성폭력 사건이 드러남으로 인해 어떤 집단에 유리하거나 불리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겨레신문 이유진 기자는 ‘기사 문법’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성중심적으로 고정화된 기사문법을 타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음은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요약한 것이다.

1. 성폭력을 가해자의 변명을 인용해 희화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2.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하는 보도를 해선 안 된다.
3. 대책 보도에 있어 실질적 공공성을 갖추어야 하며, 실효성 없는 대책을 부풀려 보도해선 안 된다.
4. 성폭력을 피해자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다른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비하시켜서는 안 된다.

기사입력 : 20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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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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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1/09 [19:05]
성폭력피해 보도는 피해자를 두번죽이는 일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현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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