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다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오진성의 ‘내 삶’ 찾기 (끝)

오진성 2012-09-16

[‘일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10대, 20대의 획일화된 인생의 궤도를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개척해가는 청년들의 시간과 고민을 들어봅니다. 특별기획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연재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어떻게 살아야 하지?
 
때는 2008년, 내가 19살 때,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사태로 온 나라에서 촛불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문경 골짜기에 살고 있던 나까지도 전국의 뜨거운 열기에 함께 도취되어 평소엔 보지도 않던 신문이나 뉴스를 챙겨보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MBC 100분 토론을 보게 되었는데, 토론을 보고 난 뒤 알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사실 나는 신문이나 뉴스가 말하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었고, 정말 문제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패널로 나온 사람들은 논리 정연한 말로 상대방의 빈틈을 찌르고,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게 아닌가! 100분이 흐른 뒤 나는 너무도 황당무계한 정부 밑에서,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이 아닌 정말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 친구들이 막바지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철학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그러다 희한하게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인문학’이었다. 나는 그 해답을 인문학 공부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 때 인문학을 떠올렸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하지만 분명 우연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몇 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강의를 들을 때는 그렇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은연중에 기억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 해 겨울, 친구들이 막바지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철학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내용은 어려웠고 지금은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딱 하나 있다면, ‘철학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란 깨달음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많은 철학자들은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막 고민하기 시작한 그 때, 공부는 나한테 피할 수 없게 다가왔다.
 
하지만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바람에 공부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부터, 외국생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생활은 재밌었다. 물론 타지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달리 느긋하고 여유로운 그곳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에는 꽤나 진지하게,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한국에서 땄던 제빵 자격증을 가지고 어떻게 취직할 수 없을까 이력서를 돌려보면서 말이다. 결국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뉴질랜드 생활이 끝날 때쯤, 왠지 모를 헛헛함을 느끼고 나는 그 헛헛함이 공부에 대한 열망(세상과 삶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혹시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이 좋았다면 그건 그 시간이 일회성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온갖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지 싶었다. 결국 다시 ‘공부’로 돌아오게 되었다. 뉴질랜드에 남아있든, 한국으로 돌아가든 내 삶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그 헛헛함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주일이 겨우 지나자마자 10대 시절 청소년 강의를 들으러 갔던 인문학 공동체를 다시 찾게 되었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다
 
▲  "기말보고서를 쓰던 날"  - 인문학 공부는 쉽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려니 걸리는 게 있었다. 시골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없으니 상경을 해야 하는데 나에겐 학비도, 집을 구할 돈도 없었다.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알바를 해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나는 또 도움을 받았다. 20대가 되면 독립하라고 그렇게 외치시던 부모님은 학비를 대줄 테니 맘껏 공부하라고 하셨다.(물론 ‘무이자’로 빌려줄 테니 나중에 꼭 갚으라고 하시지만.) 그리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20대, 30대가 모여 사는 공동 주택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골에서 공부하겠다고 온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받아준 것이다. 나의 첫 상경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곧 알바를 구해 생활비를 벌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인문학 공부는 물론 쉽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어려운 책들을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쪽글이나 발제문, 에세이 같은 글을 쓰는 것도 어찌나 어려운지. 책 내용이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인문학 공부는 전에 내가 해왔던 모든 공부방식과 사고방식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면으로 저자와 부딪히고, 스스로 문제의식을 만들고, 고민을 해결해가는 과정으로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버거운 게 당연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어가지 못하거나, 발췌문이나 요약문 이상의 글을 쓰지 못한 적도 많고, 내 고민을 끝까지 못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문학 공부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위한 공부였기에, 공부가 느느냐 아니냐의 문제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정작 제도권 공부를 거부하고서도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를 공부하고 나서야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공부하면서는, 모든 관계를 교환이나 계산으로 사고했던 나를 보았고, 독립이 무조건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도 교환이 아닌 선물경제로 돌아가는 관계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맑스가 얘기했듯이 나의 노동과 생산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 얼마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내 생각’이라 여겨왔던 것들이 대부분 외부로부터 왔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왜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공부는 곧 인간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통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막연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배우고 깨달은 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공부는 끝이 없다
 
▲ 인문학 공동체에서, 좋은 음식과 함께하는 토론회
서울에 와서, 평일 낮에는 알바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공부하며 생활한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올 초부터는 동갑내기 친구와 원룸을 얻어서 둘이 살고 있는데, 집값이 만만찮아 거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꼴이다. 사실 나는 공부하러 왔다 갔다 하는 것 말고는 별로 돈 쓸 일이 없어 적은 돈으로도 나름 풍족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계속 공부를 한다면 언제까지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나 고민이 된다. 부모님이야 내가 뭘 하든 전적으로 지원해주시겠지만 언제까지고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돈을 갚는 건 아니더라도 부모님께 받은 것을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하면서 살아가야 할 텐데 말이다.
 
이번 여름은 최악이었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도 모르지만 공부는 잘 되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이 많다. 내가 정말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왜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남들처럼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 갈 길을 찾아가겠다고는 하지만, 실은 독립을 유보시키는 방편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는 건 아닌지 등등.
 
하지만 공부를 시작한 뒤로 변하지 않는 생각은 ‘공부는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잘 살기’ 위해서는, 특히나 국가와 제도, 그리고 관습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방황은 당분간 계속(혹은 평생?) 이어질 텐데, 그 방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적어도 같은 방황을 되풀이하지 않고, 계속 진화하면서 방황하고 또 헤쳐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공부를 하고 나서 새롭게 하게 된 생각은, 결국 삶이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란 깨달음이다. 공부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그 어디서 만난 사람들보다도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이도, 하는 일도, 고민의 지점이나 강도도 다 다르지만, 모두들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그 고민을 넘기 위해 공부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대학을 가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데, 학교가 아니어도 길은 많다. 언젠가 지금 있는 이 인문학 공동체를 떠나 다른 무언가를 한다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기사입력 : 201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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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돌 12/09/17 [09:29]
..잘읽었습니다. 그나이에 삶에 대해 고민하고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사랑스럽습니다.
아들만 둘 둔 엄마입니다. 큰아이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군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는 고1..
제도권 밖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나름의 고민과 행동이 ..부럽습니다...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아파하는 청춘들이 자유롭게 사랑하며 삶을 보듬었으면 합니다. 부모님의 생각이 아닌.. 그누구의 생각이 아닌 바로 자신의 생각으로~~
lady 12/09/19 [12:24]
대단하네요 어린나이에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삶을 이끌어가는 모습. 저는 왜 그러지 못했나 생각해봅니다. 심지어 지금도 그래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게 없는 상황에서 왜 늘 불안에 떨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인문학 공부 저도 한번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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