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은 ‘이성애’ 매체만 볼 수 있다?

<법 앞에 선 성소수자> 청소년 동성애자 (2)

정명화 2012-10-11

<일다>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공동 기획으로, 우리 법이 성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는 <법 앞에 선 LGBT> 기사를 연재합니다. LGBT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용어입니다. 필자 정명화님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와 <공감>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송과 판례 분석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현황을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청소년보호법이 보호하려는 대상은 누구일까
 
대한민국은 사회가 청소년에게 어떠한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지 그 기준을 법으로 제정해놓았다. 그것은 1997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으로,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이 법에서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해야 할 유해한 환경이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유해한 업소, 폭력.학대 등 청소년 유해행위를 포함한다. 물론 이 법이 유흥업소나 약물산업 종사자가 청소년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거나 혹은 청소년을 고용해 과도한 노동을 부과하는 행위를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이 법이 보호하고 있는 대상은 청소년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법이 가장 주력해서 보호하려는 대상은 ‘기존 성인들의 사회’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이 법에서 정의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는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규정이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면, 실제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대상을 살피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1926년 영국 총파업”이나 “멕시코의 현실과 농민문제”와 같은 사회과학자료들이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우리 청소년들의 손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 책자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에 대항하는 대안적 사회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 허구에 기초한 자료도 아니며, 오히려 다양한 사회에 대한 식견을 넓혀줄 수 있는 자료에 가깝다.
 
그러나 정부는 청소년을 ‘판단의 능력이 충분치 않은 자’로 규정하면서, 기존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과 배치되는 매체는 접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렸다. 애초에 청소년보호법의 규정이 무척 추상적이기 때문에, 권력을 쥔 집단이 얼마든지 자의적 판단을 근거로 청소년에게서 특정 매체를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청소년이 필요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을 앗아간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기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독자적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실은 세상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스스로의 계획에 따라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두루 쌓아갈 수 있는 넓은 들판과 같아야 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10개 넘는 교과목을 동시에 가르치며, 대부분 부모들이 입을 모아 청소년기에는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라고, 그 속에 담긴 다종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보라고 독려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이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세계를 혹독하게 한정한다. 이 속에서 청소년은 사회에서 안전하다고 권장되는 특정한 가치, 특정한 관계의 방식만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청소년보호법이 허락하는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에 부합하는 정보는, 실상 사회의 기득권을 보위하는 정보에 가깝다. 이는 편중된 정보이자 의도하는 결과가 분명한 정보들이다.
 
왜 동성애 문화물을 규제하는가?
 
이 법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성(性)에 관한 항목이다. 2004년까지만 해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는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피학성 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규정해왔다. (성소수자 운동진영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이후 “동성애” 조항은 삭제되었다.)
 
국가는 이러한 매체가 청소년들에게 특정한 성관계를 “조장”할 것에 대한 우려한다. 이는 곧 국가 차원에서 ‘특정한 성적 지향을 재생산하지 않으리라’는 의지를 표명하는 항목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국가가 상정하고 있는 성숙한 시민이 갖춰야 하는 자질에는 ‘성적인 부분’이 명백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알게 된다.
 
이 항목은 간단히 말해, 대한민국 시민은 각종 ‘변태적’ 성행위를 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는 참으로 과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개인의 생활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부분인 성과 사랑에 대한 영역까지 국가에 의해 통제될 수 있음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법에 이러한 조항이 존재하고, 이에 의해 규제를 받거나 처벌받는 사례들이 늘어날수록, 앞으로도 국가는 “사회통념”을 들먹이며 국민생활의 전 영역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을 확보해 갈 것이다.
 
이중에서도 “동성애”에 관한 항목은 논란이 많았던 만큼 그에 대한 국가의 관점이 가장 선명하게 노출된 부분이다.
 
▲ 일부 인터넷 포털사이트들도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동성애’ 관련 키워드를 청소년 유해매체 및 금칙어로 설정했다. 이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시정 요구가 받아들여져, 금칙어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2002년 10월, 동성애 전문지 <버디>는 청소년보호법이 왜 동성애를 담은 문화물을 규제하는지를 물었다. 이에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동성애 자체를 규제하거나 차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성적 취향을 결정하기에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이성애적인 것과 동성애적인 것에 대해 교과 과정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여 청소년 대상 유통을 제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버디>는 무엇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매체물”인지를 되물었다. 그러자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아직 자신의 성적 지향을 결정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과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동성애가 상대적으로 멋있고, 우월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매체물”이라 답했다.
 
그간 정부는 이러한 기준으로 동성애 관련 매체물의 확산을 저지해왔으며, 빼어난 영상미와 예술성으로 세계적인 호응을 얻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1997) 역시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의 청소년들과 만나지 못했다.
 
이성애중심 사회가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국가
 
<버디>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이 코믹한 문답은 청소년에게 이성애를 조장하려는 대한민국의 의지와, 동성애의 확산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을 암시한다. 실상 청소년에게 “이성애적인 것과 동성애적인 것에 대해 교과 과정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보 수준”에 부합하는 매체만을 허락하겠다는 것은, 결국 청소년에게 이성애중심적인 매체만을 허락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교과서에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하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부는 “동성애가 상대적으로 멋있고, 우월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매체물”로 인해 청소년이 동성애적 취향을 갖게 될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기존의 이성애중심 사회가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기반에 기대고 있음을, 정부 역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일절 통제해야만 청소년들이 동성애 취향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은, 결국 지금의 이성애주의 사회가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통제함으로써만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취약하다는 전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애중심사회가 어떤 본질적인 정상성이나 자생적인 생명력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그것을 끊임없이 정상화하고 비-이성애를 병리화하는 권력 작용에 의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인위적 현상임을 정부 역시 무의식적으로(혹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동성애 매체물에 적용되었던 청소년보호법의 존재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그들을 특정한 성적 주체로 사육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물증이었다. 

기사입력 :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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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uun 12/10/30 [18:32]
잘 보고 있어요^ㅇ^ 
제가 흘려듣기로 청소년보호법의 제정에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후에 그 법을 대체할 만한 감시,분류,훈육 등을 수행할 법적 체계의 필요라는 게 작용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생각나요. 
청소년보호법이란게 그 제정부터 청소년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고, 기존의 권력망에 포섭되지 않았던 모든 몸/행동/문화/담론을 권력망 속으로 포섭하고 뭐 그러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느낌?
근데 국가보안법보다 청소년보호법이 그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은 더 모호해지면서(국보법은 국가보안이라는 이름으로 감시와 훈육을 수행했지만, 청소년보호법은 그런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더 모호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권력이 포섭하는 범위는 더 넓어진 거 같애요. 신체나 섹슈얼리티까지 국가적인 차원의 권력에 의한 포섭이 이루어진 느낌? 몇 세기 전에 유럽에서 성과학/성의학 등을 기반으로 섹슈얼리티를 제도적 정치적 담론의 영역으로 포섭해서 명명/분류하고 억압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청소년보호법이 한국의 근대화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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