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해매체 논란…역사적 ‘X존 사건’

<법 앞에 선 성소수자> 청소년 동성애자 (3)

정명화 2012-10-25

<일다>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공동 기획으로, 우리 법이 성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는 <법 앞에 선 LGBT> 기사를 연재합니다. LGBT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용어입니다. 필자 정명화님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와 <공감>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송과 판례 분석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현황을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된 ‘X존 사건’의 파장
 
2000년 8월, 정부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청소년보호법을 근거로 ‘X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하고,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X존은 국내 최초의 게이 온라인 커뮤니티였고, 수많은 회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해일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정부 고시가 발표된 8월 이후, 이에 공분하는 성소수자 인권모임들이 모여 ‘동성애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발족한 것이다. 퀴어영화제 조직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연예인 홍석천씨를 비롯한 19개 단체와 개인이 함께했다.
 
이들이 주도하는 움직임은 점점 거세어졌고 인터넷국가검열을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 힘은 가라앉지 않아 1년 뒤인 2001년 7월에는 성소수자 인터넷 사이트들이 공동파업을 감행하며 정부에 항의했고, 8월에는 관련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법원에 청소년보호법 관련 조항의 합헌 여부를 묻는 300명의 탄원서를 제출했고, 1천200명의 시민들이 이들의 주장에 지지서명을 냈다.
 
특히 내가 굉장한 존경을 느낀 것은 성소수자들이 명동 한복판에서 행진을 하며 청소년보호법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그 순간 왈칵 정전기가 척추를 역주행하는 듯한 감동을 느꼈는데, 하물며 12년 전 명동에 있던 사람들은 벼락이 몸을 훑고 지나는 찌릿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는 성소수자 이슈가 제도권 내부로 직격해 들어간 최초의 사건이자, 다양한 사람들이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고 수많은 시민 앞에 자신의 몸을 드러내면서 성소수자 요구를 발화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귀중한 영토, 인터넷 커뮤니티
 
▲ 2003년 8월 30일 열린 동성애 차별철폐 행동의 날.     ©진보네트워크센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소수자들은 왜 유독 ‘X존 사건’에 그토록 강력하게 분노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처벌의 대상인 X존이 인터넷 “커뮤니티”였다는 점이다.
 
성소수자에게 “커뮤니티”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그리고 본인)이 이성애자임을 전제하고 관계를 맺는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 전제와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경우, 그는 이전까지 형성한 관계 전체를 잃을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곳의 웬만한 시공간에서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가린 채, 익숙하지 않은 거짓말을 거듭해야 한다. 이때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많은 성소수자가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는 공간이 된다.
 
어떤 사람도 혼자서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존재는 타인에게 스스로를 노출하고, 그에 기반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그 실질적 내용과 근거를 가지게 된다. 이곳에서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두려움 없이 발화하고, 그를 공인 받는 일련의 경험을 형성할 수 있으며, 성정체성에 대해서 혹은 그에 의거해서 타인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이성애주의로 인해 계속해서 “부재중”이었던 이반(異般. 이성애자를 ‘일반’인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역설적인 의미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으로서의 자신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가능성의 조건. 많은 성소수자에게 커뮤니티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영토이다.
 
그 중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중요하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인터넷(70%)이나 친구(23.1%)를 통해 동성애 커뮤니티에 접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지만, 그들이 이러한 정체성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반들이 모여드는 거점이 클럽이나 포장마차와 같이 성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거나, 신촌공원과 같이 공개적인 장소라서 ‘아우팅’(동성애자나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폭로되는 일)의 위협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곧 그 공간에서의 배제나 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가정이나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합법적인 거주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2012년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Rateen’, ‘청소년 동인련’, ‘티지넷’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 규모가 큰 Reteen의 회원수는 5천700여명(2012년 9월 현재)에 달한다. 이곳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고민을 상담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오프라인 만남을 기획하거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처음 접한다.
 
어떤 상담 선생님도 성소수자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한 학교,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자식을 집 밖으로 몰아내거나 교화시키려 드는 가족들 사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이반으로 존립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X존’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하는 정부의 결정은, 결국 그들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를 부인하라는 요구이며, 성소수자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오로지 혼자 버텨내라는 강요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반 중 하나를 앗아가는 잔혹하고 부당한 처사였다.
 
두 개의 소송이 남긴 것
 
그러므로 X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성소수자들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지켜내기 위한 시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운동진영은 두 차례의 소송을 진행했다. 하나는 정보통신부가 X존에 대해 행했듯, 어떤 인터넷 매체가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판단했을 경우 이를 표시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표시방법’이 헌법에 부합하는가를 다투는 위헌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2001년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어 2004년 1월 29일에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X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하고 고시한 정부의 ‘행정처분이 무효인지 아닌지’를 다투는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각각 2002년, 2003년, 2007년 세 번의 판결을 받아낸 긴 싸움이었다. 각각의 판결문에는 당시 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가 대한민국 법체계에 어떠한 존재로 등재되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2004년 판결의 경우, 판결의 대상은 X존 사건과 관련된 법률 중에서도 청소년유해매체를 고시하는 ‘전자적 표시방법’의 정당성이었다. 그러니까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사이트 화면에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는 표지를 새기는 방식이 합헌인가 위헌인가를 따져 묻는 판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막상 헌법재판소가 전자 표시방법의 정당성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많은 언론들이 “동성애사이트를 차단하는 행위는 합헌”이라는 식의 오보를 쏟아냈다. 이 황당한 오보는 동성애 매체를 불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기존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해당 위헌소송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X존 측에서는 이 재판을 청구하면서 자신의 사이트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 할 수 있는가를 물었기 때문에, 당시 언론과 운동진영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이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답할 것인가 초미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판결문에서는 그러한 질문을 “이 사건 심판대상과 무관”한 것으로 일축해버렸다.
 
또,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것이 사이트 운영자의 양심의 자유나 청소년들의 알 권리를 침해했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설사 그러한 권리들이 침해되었다 할지라도 “이미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결정 제도 및 구체적인 고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에 대해서는 더 논할 것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는 X존 측이 제기했던 문제 중 하나인 ‘동성애 매체물에 대한 차별’, 즉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한 애초의 고시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조차 하지 않고 단지 그 후속조치인 ‘전자적 표시양식’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려준 셈이 되었다.
 
이는 헌법의 이름으로 청소년의 다양한 성적 지향을 긍정하고 동성애를 차별하는 행정 처분을 문제시하는 판결을 기대했던 인권운동진영 측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 뒤로 이어진 행정처분 무효화 소송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X존 측은 자신의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X존에 대한 네티즌의 접근을 차단한 행정처분의 정당성을 물으며 3번의 재판을 거쳤다. 그렇게 5년 동안 이어진 소송에서 모든 법원은 X존이 제기한 소송이 형식적으로 결함이 있음에만 주목하였으며, 동성애나 동성애 차별에 대해 적극적인 가치 판단을 회피했다.
 
물론 법원의 말대로 행정처분을 취소하기 위한 소송은 처분의 효력을 취소해달라는 것으로, 해당 처분이 고시된 지 1년 내에 제기하도록 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X존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고시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정보통신윤리위원회나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이에 관한 통보를 직접 받지 못했다. 때문에 해당 기한 안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및 고시처분' 취소를 청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X존은 재판 이후에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남게 되었다. 동성애 매체물을 지정하는 청소년보호법 조항 역시 존속됨으로써 이후에도 동성애 사이트들이 검열을 당할 여지를 없애지 못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개정, 승리의 역사
 
그러나 결과에 반영된 주요한 사항은 아닐지라도, 이 사건의 판결문에는 소극적으로나마 동성애 매체물에 대한 법원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X존의 게시물이 음란한지의 여부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구구할 소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엑스존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인정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등법원 재판부에서는 “동성애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에 열거된 혼음, 근친상간 등의 변태성행위와 같은 정도로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성관계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법원은 동성애 매체물을 포함하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대해 "대법원이 그 무효를 선언한 바 없으며, 그 시행령의 하자가 중대하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 없어" 그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론을 짓고 있기는 하다. 이 사건이 동성애자 차별과 관련해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문제 삼은 첫 소송이었던 까닭에 해당 시행령을 무효로 선언하는 대법원 판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전의 헌법재판소 판결은 청소년이 동성애 관련 매체물에 접근하고 이용할 권리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에 비해 이 사건에 대한 고등법원의 판결은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 관련 항목이 위헌 소지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무수한 변화가 일어났다. 2003년 4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명시한 조항이 행복추구권, 평등권, 표현의 자유 등을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라고 선언하며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이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그 뒤 4월 29일 성소수자 운동진영 측에서는「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토론회를 열어 동성애자의 법적 지위와 청소년 동성애자의 지지방안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 결국 다음 해인 2004년 2월 2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동성애 조항 삭제'를 주요 골자로 하는 시행령 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청소년보호법이 관리하는 매체물에 동성애 관련 항목이 포함된 것이 1997년이니, 동성애 차별 항목은 7년 남짓한 나이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1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동성애 매체는 통제의 대상에서 청소년 인권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의 상당 부분이 수많은 활동가, 성소수자, 법조인의 노력에서 비롯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사회가 오로지 실패와 굴복으로만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싸워서 조금씩 이겨나갔다. 이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승리의 역사이다.

기사입력 : 20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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