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학생의 권리찾기 물꼬 트이다

<법 앞에 선 성소수자> 청소년 동성애자 (5)

정명화 2012-11-21

<일다>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공동 기획으로, 우리 법이 성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는 <법 앞에 선 LGBT> 기사를 연재합니다. LGBT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용어입니다. 필자 정명화님은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와 <공감>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송과 판례 분석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현황을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성적 지향’을 둘러싼 논란
 
▲서울학생인권조례안 관련해 서울시의회 앞에 내걸린 현수막. ©장서연
영화 <친구사이?> 상영 등급을 둘러싼 소송 이후, 법과 청소년 성소수자의 두 번째 만남은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2012년 지금까지도, 청소년 성소수자가 던지는 법적 쟁점은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움직임에 집약되어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하는 것이다. 2011년 겨울 서울시교육청은 경기, 광주에 이어 세 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이러한 조례가 있다는 사실과, 이 조례에서 ‘성적 지향’ 항목이 급작스럽게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나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마포구에 사는 ‘이반’(異般. 이성애자를 ‘일반’인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역설적인 의미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들과 오징어덮밥을 먹는 중이었다. 그 자리에 온 활동가 한채윤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최근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이 만들어졌는데, 주민발의안 원안에 포함되어있던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조항을 쏙 빼놓았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자 방금 먹은 오징어의 비린내가 역하게 끼쳐왔고, 주위에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 역시 온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후 성소수자 운동진영은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에 관한 항목을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학생인권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실제 있었던 차별사례를 담은 사례집을 제작하고, 정당과 교섭하고, 결국 추운 겨울 서울시의회 별관 바닥에서 점거농성을 펼치기까지 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어버이”들의 두려움
 
불행히도 ‘성적 지향’과 관련한 문제의식으로 학생인권조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우리뿐만 아니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위시한 학생인권조례폐기 범국민연대, 전국바른교육교사연대, 밝은인터넷, 나라사랑학부모회,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동성애입법반대국민연합 등 무려 231개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원안을 폐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들은 학생인권조례 원안이 ‘초중고생을 동성애자로 만들고’, ‘초중고생의 임신·출산과 성생활을 조장’한다며, 상당 수의 현수막을 동원한 홍보전과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을 펼쳤다.
 
학생들을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조례안의 내용을, 학생들을 동성애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번역하는 “어버이”들의 머릿속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러한 사고의 메커니즘은 비단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성소수자 운동가들의 점거농성이 한창이던 겨울날, 나는 서울시교육위원회관 앞에서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 항목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가 등산복 차림의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성적소수자가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와 같이 차별 받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런 사람들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므로 마땅히 차별해야 한다며 반색했다.
 
그 얘기에 화가 난 나머지, ‘저도 동성애자인데 그럼 지금 눈앞에 있는 저도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하고 따졌다. 순간 아주머니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는데, 입고 있던 점퍼의 형광 빛이 턱밑으로 반사되어 눈코입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그 아주머니는 그런 사람들은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나서, 썩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친구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 뒤로 서울시교육회관 입구에는 아침에는 어버이연합이, 오후에는 성소수자 운동진영이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해서, 그런 날이면 교육회관 직원들은 밤이냐 낮이냐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훈육의 명목으로 훼손할 수 없는 학생의 권리
 
그리고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승리한 쪽은 성소수자 진영이었다. 2012년 1월 26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지향’ 항목이 포함된 모습으로 발효되었다. 이제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 되었다.
 
이 감동적인 결과는 물론 성소수자 운동진영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탁월한 교섭능력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투쟁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이를 통과하면서 청소년 성소수자가 비로소 대한민국의 법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첫째, 투쟁으로 일궈낸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육현장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사회적 문제로 인증했다는 점, 그리고 차별을 교정하려는 법적 노력을 발동시키기 위한 근거가 생겼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발현하고 이에 기반한 관계를 맺어가는 일은, 지도나 훈육의 명목으로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청소년의 권리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에 이어, 이를 학교장이 제정ㆍ개정할 수 있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올해 3월 21일부터 시행되었다. 상위 법률인 초중등교육법의 의해 학생인권조례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각 지역 교육청이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와, 학교장이 학생들의 두발 복장 제한, 체벌 등을 통한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학칙이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감동적인 두 번째 부분은 과정상의 문제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수혜의 대상으로 남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농성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경험을 성인들과 공유하고, 친구들이 겪었던 차별을 모아내 사례집을 제작하면서, 청소년의 관점에서 본 이 세계의 부당함에 대해 스스로의 입으로 이야기했다. 이는 ‘X존 사건’ 이후 보다 단단해진 십대 성소수자 커뮤니티, 그리고 청소년과 인권단체와 연계에 기반한 성과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은 성장한다
 
▲ 서울학생인권조례안 본회의 통과를 앞둔 2011년 12월 19일, 서울시의회 앞을 가득 메운 무지개 시위대.     ©장서연
게다가 이건 시작일 뿐이다. 지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굉장한 학교를 건설하고 있다. 그 학교의 명칭은 <이반스쿨>이다. 이곳은 성소수자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무지개행동’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는데, 학생인권조례에 생명을 불어넣는 철공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법이 글자로만 남아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서울에 사는 성소수자 학생이 겪는 차별실태를 조사하고, 학생참여단을 모아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며,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이 땅에 소환하려 한다.
 
어쩌면 이들은 ‘X존사건’, <친구사이?> 소송의 경험을 통해서 법에 담긴 가치를 실제 사회를 구성하는 힘으로 변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반 스쿨>에서 청소년들은 법을 구체적 현실에 매개해 해석하고, 그에 적용하고, 그래서 법조문에 살아있는 존재의 피와 땀을 덧발라가는 과정을 제 몸으로 이행하고 있다.
 
제 힘으로 만들어낸 권리는 자신의 것이 된다. 처음 ‘X존 사건’이 벌어진 2001년만 해도 청소년은 동성애 사이트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존재, 그에 접근하면 일정한 처벌을 받는 존재로만 법에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용납하지 않고 청소년의 알 권리, 볼 권리를 주장한 <친구사이?> 소송에서 마침내 청소년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탐구하고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쥐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타의 이성애 문화물과 유사한 수위를 가졌다면 이를 “같게” 대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에, 동성애 문화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소극적 평등에 더 가까웠다.
 
이윽고 학생인권조례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이성애주의 교육에서 부당하게 벌어진 침해를 시정하기 위해 더욱 강력하게 긍정해야 할 법익으로 등재된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받아온 피해를 감안하여,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보해나갈 방식을 "다르게" 고민해나가라는 적극적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면서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은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너른 들판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더 이상 청소년을 위한 법에만 만족하지 않으며,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의 법을 태동시켜나갈 것에 틀림없다.

기사입력 :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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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12/11/24 [05:30]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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