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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외부세력” 논쟁…진실은 무엇인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그 후②
희정   |   2013-11-07
밀양 송전탑 84번 공사 현장이 있는 평리마을의 주민 농성장은 오르막길 중간에 자리한다. 산에 오르는 길을 경찰이 막고 있으니, 주민들이 그 아래 자리를 잡은 게다. 나무판과 장판 두어 개를 깔아두고 앉았다. 가만있어도 몸이 아래로 기우는 길에 앉아 지킨다. 그래도 나무판 다리 길이를 조절해 한 평짜리 나무판 위에서는 평지처럼 지낼 수 있다.
▲ 밀양 주민들은, 사람 수가 적거나 노인들만 있으면 경찰의 태도가 더 무례해진다고 했다.    ©촬영- 유미희

농성장 위에는 경찰 대오가, 아래에는 경찰버스가 줄지어 있다. 평리에 당도했을 때, 마침 울산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떠날 차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들은 떠나는 발길이 무거워 이것저것 당부를 했다.
 
“지금은 경찰차가 시동을 껐는데요, 좀 있으면 다시 켤 거예요. 그럼 한마디 하세요.”
 
경찰버스가 시동을 켜면 소음도 소음이지만, 시커먼 매연이 나온다. 차만 타도 멀미한다는 노인들이 종일 매연 맡으며 지내는 일은 곤혹이다. 정차된 차 시동을 굳이 켜둔다. 경찰버스의 매연은 밀양만 아니라 농성장 어디서나 농성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소리를 크게 내질 않으면 경찰들이 들은 척을 안 해요. 젊은 사람 별로 없으면 할머니들 만만히 보고 듣질 않으니까, 이따 다시 시동 켜면 한마디 세게 하세요.”
 
큰소리가 나야, 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사람이 적거나 노인들만 있으면 경찰의 태도가 더 무례해진다고 했다. 노인들이 서러워하는 지점이다. 기자나 외부 사람들이 있을 때와 주민들만 있을 때 경찰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노인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되어 온 바다.
 
‘저 노인들이 뭘 안다고’
 
밀양에 주둔하는 경찰들은 “불법이다” “연행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불법이라는 말에 법을 모르는 노인들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효과적이다.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했을 때 “이치우 어르신을 열사라 부르면, 한번 부를 때마다 벌금이 100만원이다”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순진한 곳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일 당해본 적 없으니까, 경험이 없으니까 아는 게 없잖아요. 주민들만 있을 때는 여러 가지 마음에 부담이 되는 소리를 참 많이 하지요. 당신들은 불법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항의하면 자기들끼리 막 웃고 그래요. 우리는 이게 너무 힘든 상황 아닙니까?” -밀양 용회마을 구00씨(64)의 말.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감시단이 채록한 주민 증언록 모음.
 
그래서일까, 경찰은 밀양 외 지역에서 농성장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 사람들은 연행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무슨 근거로 체포를 하냐?’ 따진다. 채증을 할라 치면 ‘법에 적합한 건지’ 덤빈다. 그러니 경찰 입장에서 피곤하다. 밀양 주민들만 있을 때보다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 <인권침해 감시단>이 마을을 돌며 경찰의 불법 연행과 채증에 대응하는 방법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 희정

반감도 커진다. 경찰은 외부 지역에서 연대를 온 사람들에게 대놓고 “당신네들이 뭔데 여기 와서 이러느냐” 한다. 밀양 노인들에게 “저 사람들 여기 오면 돈 얼마 받는대요?”라고 비아냥거린다.
 
경찰만이 아니다. 한전 직원들도 그렇고, 송전탑 일을 수주 받은 인부들도 적대감을 드러낸다. 지금은 공사 현장 근처에도 못 가지만, 지난 5월만 해도 만날 수 있었던 포크레인 기사는 연대 오는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취미로 이런데 오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
 
그는 ‘취미’(?)가 아닌 생계를 위해 왔다고 했다. 포크레인이 작동해야 돈을 번다. 그것이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갉아먹으며 버는 돈일지라도 말이다. 한전 직원들과 경찰이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가지는 거부감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송전탑이 지어져야 돈이 만들어지는데, 공사가 진행되질 않는다. 노인들만 있으면 한번 밀어붙여 해결될 것을 타지 사람들이 모여드니 두 번을 밀고 또 밀어야 한다.
 
저 노인들이 뭘 안다고, 젊은 사람들이 선동해 일이 이렇게 된 거겠지. 저들이 가진 무지렁이 농민이라는 인식과 타지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외부 세력 논리’이다.
 
언론에 등장한 “외부 세력”
 
작년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부 세력’은 송전탑 문제에 관해 입도 열지 못했다. 송전탑 갈등을 겪은 대다수 지역들이 그러하듯이, 밀양 또한 외부에서 마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했다. 밀양은 씨족마을이라 할 정도로 폐쇄성이 짙은 지역이다. 한 마을에서 10년 20년을 같이 살아도 귀농인은 여전히 외지인으로 여겨지는 사회다.
 
이런 의미의 외지인들이 농성장이라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치우 어르신의 장례 문제를 두고 농성이 길어지면서부터다. 목숨 하나가 사라지자 경찰은 시신을 뺏으려 하고, 한전은 뒤에서 유가족과 돈 거래를 하려 들었다. 몇몇 이장들이 한전에 동조한 것이 드러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누가 우리 편인지가 마을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밀양 송전탑 반대에 뜻을 같이 하는 외지 사람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알 리 없는, 아니 알고자 하지 않는, 때론 모른 척하는 한전과 경찰은 ‘외부 세력 선동’을 믿었다.
 
진실은 중요치 않다. 마을 주민이건 외부 사람이건, 반대 세력으로 인해 돈이 굴러가질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골은 10월 공사 재개 즈음 언론을 통해 하나의 이슈가 되어 갔다.
 
첫 시작은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의 호소문 발표였다.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외부 세력은 지금 당장 추방돼야 한다.”
 
급기야 언론 <뉴시스>를 통해 ‘갈등을 몰기 위한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거는 통진당 당원들’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며 ‘외부 세력’ 논리는 자극적인 이슈가 되었다. 경찰은 음료수 하나 주민에게 건네놓고 무슨 기자회견인 듯 무수히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이 다음날 언론에 노출된다. 노인들의 부상 사진이 SNS에 오르면 “이건 다 수법인 거 아시죠?” 같은 댓글을 경찰청이 직접 달았다.
 
송전탑 싸움을 둘러싼 언론 플레이가 난무하다. <경남도민일보>가 10월 11일자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지금의 “밀양 송전탑 사태의 전개 상황은 여론전이다.” 밀양 사태의 원인과 본질은 묻히고, “‘프레임 선점’과 ‘명분 쌓기’, ‘언론 플레이’에 몰두해 있”는 것이 밀양 송전탑을 대하는 정부와 한전, 일부 언론의 태도이다. 그러면서도 진짜 언론 플레이인 밀양 주민들이 요구하는 ‘국민대토론 방송’은 거부한다.
 
밀양 사람들도 신문을 본다. 한전과 정부가 하는 언론 플레이라는 것이 ‘때리고 나서 착한 척’ 하는 것인데, 그러면 맞은 사람은 더 아프다. 상처다. 게다가 “노인들이 외부 세력에 의해 세뇌 당했다”는 시선은 그네들에게 모욕이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데, 그 싸움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다. 세뇌 당했다고 한다.
 
힘이 없어 사지가 들려 나오고, 법을 몰라 거짓 위협에 당한다. 내가 싸우는 이유마저 부정 당한다. “시골이니까 이런 일을 당하는 거다.” “저것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노인들은 언론사 기자들만 보면, 붙잡고 하는 말이다. 분하다. 동시에 자신의 못남, 무지함, 무력함을 되씹게 된다.
 
‘송전탑 위험하다’ 역설해주는 경찰과 한전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웬만해서 반기를 들지 않았다. 나랏일은 아무도 못 막는다. 그것이 국가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을 거쳐 온 이들의 지혜였다. 국가 녹을 먹는 이들은 그런 노인들을 보며, 무지렁이라 여겼을까. 못 배운 사람들이라 납작 엎드려 사는 거라 여겼을까. 한평생 땅만 파고 살아온 사람들이 격변하는 세상사에서 자신을 지켜온 방식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
 
평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담배를 피운 지만 40년이라고 했다. 막내를 낳고 배가 아팠는데, 담배를 태우니 그 순간은 괜찮았다고 했다. 아플 때마다 태운 것이 한 대 두 대 늘어나, 담배를 입에 달고 살게 됐다. 몇 년 전 풍을 맞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서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받아야 할 치료를 담배가 주는 알싸함에 의존해 버틴 것이다. 그렇게 뭘 모르고 살았다. 제 몸이라는 것을 챙길 줄 모르고 살았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 없이 걷지도 못한다. 어디서 오셨냐 하니, 가리키는 집이 저 멀리다. 할머니 걸음으로 한 시간도 걸리겠다. 이 몸으로 왜 나오셨어요, 했다.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노인들이 있다. 노인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막아야 하니까 나왔지.” 한다. 막아야 한다. 이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세뇌된 말을 읊는 것처럼 들릴까. 내게는 ‘막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토록 막아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히 아는 소리로 들린다.
▲ 밀양주민들에게 송전탑 건설을 막아야 함을 역설해주는 것은 오히려 경찰과 한전의 태도이다.    © 촬영-최수미

송전탑이 그네들의 삶에 실제 위협을 가하는지,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운지, 농작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전문가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마을 노인들은 짐작할 뿐이다. 자신들을 대하는 공무원, 경찰, 한전, 정부의 태도를 보며 의심할 뿐이다.
 
숨기는 것이 없다면 왜 입을 다물까. 왜 거짓말을 할까. 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일까. 왜 국회에 남의 문서를 베껴 내는 것일까. 왜 뒤로 언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일까. 왜 국민대토론을 거부하는 것일까. 왜 고립시키고, 왜 밀양 소식이 전파를 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일까. 진실로 당당하다면 왜 그러는 것일까.
 
눈도 침침한 그네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765kv 송전탑이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세울 생각조차 않는다는 초고전압 송전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숱한 공부보다 노인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한전과 정부의 태도이다. 이들의 떳떳치 못한 행동 때문에 밀양 주민들은 자신들이 옳음을 확신하게 된다.
 
밀양 주민들에게 송전탑을 막아야 함을 역설해주는 이는 경찰이다. 송전탑이 위험하다 반증하고 있는 이는 한전이다. 그러니까 굳이 ‘선량한 노인들을 세뇌시키는 외부 세력’을 말하자면, 그것은 정부와 한전이다.

기사입력 :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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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13/11/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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