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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개발의 수단이 된 올림픽?
나가노 동계올림픽 사례가 주는 교훈
이시자카 유지   |   2014-09-01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개최 시비가 일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전하는 <페민>의 7월 5일자 기사 “도쿄올림픽은 누구를 위한 것?”을 싣는다. 필자 이시자카 유지 씨는 나라여자대학 교수로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하였으며 <‘올림픽 유산’의 사회학>이라는 저서를 집필하였다. [편집자 주]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남긴 부채

 

2020년 올림픽을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솔직히 말해 한숨이 나왔다. 지금 일본은 마음 편히 세계인의 축제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기뻐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그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을 문제를 생각해보는 데에는 통상적인 올림픽대회 개최에 대한 논쟁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의 상황에 대한 고려, 이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올림픽이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돌아보자.

 

▲ 1998 나가노 대회는 엄청난 부채를 남겼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경기장 신설 문제가 첨예하다.  © 페민


개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나가노 대회는 시 차원에 엄청난 액수의 부채를 남겼다. 경기장을 유지하는 것도 큰 과제로 남았다.

 

시의 빚을 나타내는 시 채권잔액은 대회 전인 1998년에 약 500억엔(약 4천9백억원)이었고, 이후 10년간 약 1천900억엔(약 1조8천500억원)에 이르렀다가, 2012년 시점에 약 1천300억엔(약 1조2천억원)에 멈춰있는 상황이다. 또 6개의 주요 경기장에 소요되는 행정 경비를 환산하면 시민 한 사람당 약 1만5천엔에 이른다.

 

이러한 실태는 동계올림픽 이후에 시설을 얼만큼, 어떻게 활용할 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경기장을 짓고 운영해온 결과이자, 가능한 한 장엄한 시설을 건설해 보여주고자 하는 ‘올림픽의 마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올림픽대회 개최로 고속철도와 조신에츠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생활의 편리함이 향상된 측면이 있다. 올림픽 개최의 경험과 기억, 자원활동가 조직이 활성화된 점 등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효과도 발생하였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면을 모두 검토하여 큰 액수의 투자와 앞으로 발생하게 될 부담이 과연 시민들에게 허용될 만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신국립경기장 신설 문제가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환경과 역사적 공간을 파괴하는 건축 문제뿐 아니라, 최종 얼마의 금액을 들여야 끝날지조차 예측되지 않는 건설안은 근본적으로 나가노 대회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경기장 건설도 마찬가지다.

 

상업화 된 올림픽과 ‘스포츠의 힘’

 

국경을 초월한 단합과 평화를 내세우고 있는 올림픽은 실상 상업화된 지 오래다. 올림픽대회가 상업주의에 길을 터주면서 많은 도시가 개최 희망지에 이름을 올리는 메가-이벤트로 성장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올림픽 개최국이 된다는 것은 경제발전을 이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통과의례로서 기능했다면, 지금은 대도시가 재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 되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컴팩트(compact, 소형) 대회’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예산보다 두 배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은 동계올림픽으로서 4조엔(약 39조원)을 투여한 사상 최대 규모가 되었다. 앞으로 도쿄를 포함한 새로운 올림픽의 동향을 읽어볼 수 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스포츠의 힘’을 강조하는 언설이 넘쳐나고 있다. 올림픽의 상징적인 힘을 강조하며, 대회 개최 반대론을 중화시키려 한다. 올림픽으로 인해 평화주의가 확산된다든지, 올림픽 레거시(유산)를 창조한다든지, 선수들의 활약을 통해 희망 스토리를 사회에 제시한다는 등의 효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쿄올림픽을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이 있고 나서 스포츠도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부흥 올림픽’을 내걸었던 도쿄올림픽은 도시 재개발의 욕망에 의해 그 이념이 이미 지워져서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올림픽대회 그 자체에 대한 찬반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성숙한 도시에 걸맞고 키 높이에 맞는 대회 운영과 그 이후의 부흥을 가속시킬 다양한 장치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이 대회가 정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핵발전소 문제를 방치하고 대회 이후에 남게 될 상황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축제를 즐길 여유가 남아 있는가?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페민 제공, 고주영 번역]

기사입력 :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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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14/09/01 [16:12]
어렸을때 동계올림픽을 좋아했지만 접하기어려웠고 이웃집 안테나에 얹혀서 NHK를 시청할수있던때라 나가노 시의 올림픽 개최를 마냥 기대했던 저는, 당시 일본 환경단체들의 올림픽 유치 반대운동이 서구 환경운동단체들만큼이나 극렬해서 한국인으로서 낯설면서도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회구조임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던 기억이 나네요. (정경유착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물론) 그나마 지역예산과 도시계획에 신경썼다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봐도 유치 이후 무엇이 남느냐는 회의적인게 사실입니다. 스포츠의 순기능만으로 올림픽 유치를 정당화하기엔 올림픽은 이제 페어플레이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장이 되어 관전포인트가 뭔지 헷갈리기까지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IOC의 불투명하면서도 속 빤히 보이는 꿍꿍이는 신뢰를 회복하기엔 이미 구조적으로 어려워보입니다. 원전마피아 근절이 요원해보이는 한국과 일본. 한국의 미래는 MB정권때부터 일본의 향방과 운명적 공동체가 된듯하여 더더욱 씁쓸하네요. 
rovetree 14/09/11 [16:44]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시의적절한 기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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