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브랜딩 현상을 보며

<블럭의 팝 페미니즘> 여성음악가들이 던진 메시지

블럭 2017-10-03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 퍼렐(Pharrell)이 2014년에 발표한 앨범 [G I R L] 자켓

팝 음악 역사에 있어 2014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특히 팝 페미니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비욘세의 [Beyonce], 마일리 사이러스의 [Bangerz], 퍼렐의 [G I R L], 릴리 알렌의 [Sheezus] 등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이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테일러 스위프트, 로드(Lorde)와 케이티 페리(Katy Perry),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까지 팝 페미니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해에 아델(Adele),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팝 페미니즘의 본격적인 기반을 다졌다.

 

2014년은 팝 페미니즘의 해

 

비욘세의 [Beyonce]는 그의 긴 음악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앨범이다. 비욘세는 사전 홍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앨범을 발표했고,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비욘세는 자신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했고, 그 어떤 외부의 기준이나 시선보다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담았다. 또한 여성들로 하여금 솔직한 욕망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준을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담았다. (관련 기사: 비욘세가 보여주는 블랙 페미니즘 파워)

 

비욘세가 어떤 기준의 해체를 이야기했다면,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그 기준을 거꾸로 이용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세간이 만든 기준에서 벗어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오히려 이용하며 사회를 비꼬았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좀 더 차분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일리 사이러스는 공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으며 페미니즘 논의에 큰 불씨를 지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or)와 성 상품화에 관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후에 두 사람은 화해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여성들에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내 생각에 나는 가장 큰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마일리 읽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

 

▶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Wrecking Ball”  뮤직비디오 중에서

 

퍼렐(Pharrell)은 [G I R L] 앨범에서 일관되게 ‘여성에 대한 애정과 존중, 예찬’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꼭 피부가 하얘야 하고 말라야 한다는 미쳐버린 기준을 없애고, 또 바꾸고 싶었다”고 한 그의 발언은 피부색이 어떠하든 체형이 어떠하든 성적 취향이 어떠하든지 간에 당신을 여성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의 첫 곡 “Marilyn Monroe”의 가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I want every woman to make a pledge with me)

(모든 여성들이 나와 함께 맹세했으면 좋겠어)

Say your name, I pledge, to live life, on the edge

이름을 밝히고 ‘나는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Want you to know, I see, the power is in me

알았으면 해, 힘은 나 자신 안에 있다는 걸

No more, acquiesce, standin' up, with no stress

이제 더는 그만, 순종하지 말고 일어서. 스트레스 없이

Will do, what I need, 'til every woman on the Earth is free

난 내게 요구되는 일을 할 거야, 세상 모든 여성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퍼렐(Pharrell) “Know Who You Are”

 

릴리 알렌(Lily Allen)은 후에 ‘절반의 성공에 그친 미러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팝 음악 시장 내에 만연한 남성중심적 사고와 태도, 기준 등의 이슈를 꺼냈다. 특히 "Hard Out Here"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음악시장이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남성중심성을 드러냈다. 남성 스타들이 차와 돈과 같은 물질적인 성과를 과시하며, 여성의 성을 상품화시키고 그러한 문화를 강요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릴리 알렌은 인종 문제에는 둔감한 모습을 보였고, 지적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섬세한 표현에는 실패했다는 평을 얻었다. (관련 기사: 몸을 둘러싸고 ‘성별’과 ‘인종’ 문제가 만날 때)

 

▶ 릴리 알렌(Lily Allen) “Hard Out Here”  뮤직비디오 중에서

 

이처럼 2014년은 팝 페미니즘의 해였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의 자체가 활성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팝을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자체도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추행 ‘1달러 소송’

 

2014년 이후, 팝 음악시장 내에서 페미니즘 논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돈되는 한편 더 깊이 있는 담론으로 확장되어갔다.

 

비욘세는 블랙 페미니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던졌다. 흑인여성으로서 미국 사회를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는지, 여러 조건과 문제들이 교차할 때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인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들이 어떤 시선을 받고 있으며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앨범 [Lemonade]의 전곡 뮤직비디오를 통해 잘 보여줬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경우 ‘1달러 소송’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줬다. 콜로라도주 덴버라는 도시에서 팬 미팅 행사를 가졌을 때, 지역 라디오 디제이였던 데이비드 뮬러(David Mueller)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측은 이 사실을 라디오에 알렸고, 그는 즉각 해고됐다. 이후 데이비드 뮬러는 자신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거짓말로 인해 해고를 당했다며 3백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성추행 혐의로 그를 맞고소했는데, 당시 민사소송의 배상금을 1달러로 책정했다. 경제적 배상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알리기 위한 소송이라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 뮬러의 소송은 기각되었고, 그의 성추행 혐의는 인정되었다. 이 사건은 성추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 올해 9월, 싱글 ‘...Ready For It?’을 공개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스파이스 걸스 이후 지속되는 ‘걸 파워’

 

팝스타들이 던진 페미니즘 메시지가 모두 훈훈하게 수용된 것은 아니다. 2013년에 발표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Work Bitch”라든지 리아나(Rihanna)의 “Bitch Better Have My Money”는 이러한 수사가 유의미한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일었다. 하나는 bitch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다. 전복적으로 점령하여 사용하자는 쪽과,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니 더 사용하지 말자는 쪽이 나뉘어 논쟁을 했다.

 

Work it hard like it's your profession

열심히 일하는 거야, 네가 전문인 것처럼

Watch out now cause here it comes

자, 봐봐. 지금 오고 있으니까

-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Work Bitch”

 

그러나 사실 이 곡들은 강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더 큰 화두로 떠올랐다. 강한 여성, 욕하는 여성, 센 여성은 대중문화에서 전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쾌감을 준다.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걸 파워)를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러한 여성 이미지는 결국 비즈니스 아이템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Louis XIII and it's all on me, nigga you just bought a shot

루이 13세(프랑스의 고급 술)는 내가 통째로 살게, 너희 자식들은 그저 잔으로 사지

Shit, your wife in the backseat of my brand new foreign car

젠장, 네 아내도 새로 산 내 외제차 뒷자석에 있어

Don't act like you forgot, I call the shots, shots, shots

잊어버린 척 하지 마, 명령은 내가 한다고

-리아나(Rihanna) “Bitch Better Have My Money”

 

 ▶ 리아나(Rihanna) “Bitch Better Have My Money”  뮤직비디오 중에서

 

한국에서도 ‘걸 크러쉬’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붙이는 경향이 있다. 센 여성 이미지가 여성수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엔터테인먼트업계 다수가 중성적 이미지, 강한 여성이라는 외피만 취하는 경우가 많다.

 

세일즈를 위한 ‘걸 파워’는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이후 꾸준히 존재해 왔다. 최근에는 저가와 고가를 불문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문구를 상품에 쓰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을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선언으로 볼 것인가, 혹은 마케팅 전략으로 문화적 흐름에 편승하는 시도일 뿐인가는 누가 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수용자들이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사는 경우도,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뮤지션은 예쁘고 섹시’…아이러니한 숙제

 

이제 페미니즘이 기업들이나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성공 전략으로, 브랜딩 과정에서 쓰이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내 생각에 여전히 남은 가장 아이러니한 숙제는, 페미니즘을 외치는 팝 음악가들이 여전히 남성중심의 시각에서도 예쁘고 섹시하다는 점이다.

 

물론 섹시함이나 섹스어필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본다면 하나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접하는 수용자들은 직접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여성 음악가들과 페미니즘의 외피를 소비하게 되기 쉽다. 결국 팝 페미니즘이 성숙하려면 음악시장에서 종사하는 다수, 또 이를 수용하는 다수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방법 외엔 명쾌한 답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는 건, 페미니즘이 브랜딩 전략으로 쓰일 만큼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제 1의 물결과 제 2의 물결, 제 3의 물결과 현재의 영 페미니스트들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해오고 있지만, 지금만큼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든지 간에 페미니즘은 소중하고 필요하며, 이러한 상황을 동력 삼아서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페미니즘 열풍은 이제 시작이다.

 

※ 마일리 사이러스 “Wrecking Ball” M/V http://bit.ly/18z8ZKy

※ 퍼렐 “Know Who You Are” M/V http://bit.ly/2fLIktS

※ 릴리 알렌 “Hard Out Here” M/V http://bit.ly/1mnW3zt

※ 리아나 “Bitch Better Have My Money”(Live) http://bit.ly/1NCKjVo

※ 브리트니 스피어스 “Work Bitch”(Live) http://bit.ly/2xXax7N

기사입력 :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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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 17/10/11 [23:08]
좋은 내용이네요
독자 17/10/04 [14:04]
즐감했어요
ㅇㅇ 17/10/03 [19:40]
리아나 가사가 장난 아니구나. ㅎㅎ 나쁘지 않은데요 걸크러쉬는 약해서 문제죠~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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