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내기 시작한 독일의 ‘여성 난민’들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말하기>

하리타 2018-01-25

<일다>의 지면을 빌어 독일에 살고 있는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 베를린에 있는 정치 그룹 국제여성공간(IWSPACE, International Women Space)에서 2015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11월 25일)에 발행한 책자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11편의 이야기를 번역해 소개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이주 여성과 난민 여성들로 구성된 팀이 다른 난민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의 에세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인공 여성들 다수가 망명신청자(asylum-seeker) 신분이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마케도니아 등 분쟁 지역에서 자유와 안전을 찾아 국경을 넘은 이들이다.

 

임시 숙소에서 성폭력을 겪는 난민 여성들

 

독일 연방정부가 시리아 내전(2011~) 중 봇물처럼 유럽으로 쏟아져 온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뒤, 현재까지 독일 전역은 상당히 분주했다. 보육시설과 학교, 주택 등의 사회시스템을 설계하고, 외국인청 담당자와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의 인력을 충원하고, 민-관-시민사회 거버넌스를 구축해오고 있다.

 

난민들의 처지는 언제 입국했는가, 망명 신청 심사 과정 중 어디에 있는가, 어떤 임시 주거지에 살고 있는가, 독일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통합(integration) 교육 프로그램을 얼마나 이수했는가 등에 따라서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이냐 남성이냐, 퀴어 젠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겪는 현실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급한 불 끄기’에 급급했던 정부는 난민 수용 정책 디자인에서 젠더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젠더 메인스트리밍(gender mainstreaming; 성 주류화)에 실패한 것이다.

 

※2015년에는 1백만 명 이상의 난민이 독일로 들어왔고, 47만 6천명이 그 해에 망명 신청을 했다. 신청자 중 여성은 31%였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 난민들이 임시 숙소에서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겪었다. 피해 여성들은 경찰이나 관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가는 ‘물의를 일으켜’ 강제 송환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입을 잘 열 수 없다. 주류 언론이나 독일 정부, EU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와중에 그나마 독일이 난민에게 문을 연 상황에서 구태여 ‘잡음’을 내려 하지 않았다. 난민 숙소의 성폭력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제대로 문제제기 되지 못했다. 국제 인도주의 뉴스에이전시 IRIN이 2017년 5월에 자체 탐사보도 결과를 발표한 게 공론화 계기가 됐다.

 

※뉴스 에이전시인 IRIN(formerly Integrated Regional Information Networks)은 2015년까지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OCHA(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산하 프로젝트였다가 현재는 독립된 기관이다. 세계 각 지역의 반인도주의 사건이나 이슈를 보도한다.

 

▶ 2015년 베를린의 템펠호프(Tempelhof)공항에 마련됐던 난민 임시 숙소. 5백명의 아동을 포함해 총 2천명을 수용했다. (출처: 유엔난민기구)

 

난민 여성에겐 안전한 시간과 장소가 없다

 

IRIN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는 대개 난민 남성이거나 임시 숙소에서 교대근무를 서는 경비원, 혹은 숙소 운영자다. 성폭력 유형은 1)칸막이로만 방을 구분한 임시 숙소에서 밤중에 무단침입 혹은 캣콜링(catcalling, 언어 성희롱) 2)인적이 드문 밤에 화장실을 가러 나온 여성들에게 추근댐. 3)여자아이들에 대한 은밀한 추행 4)다가구 아파트식 숙소의 여성들 방에 불심검문을 가장한 경비원의 침입 5)특정 남성에 의한 지속적인 스토킹과 성추행 6)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요구하고 ‘결혼’ 등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성관계를 강요하는 경비원 등이다.

 

피해 여성들은 경제적, 행정적 이유로 지정 받은 숙소에 살아야만 하고 여기선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숙소 내외부의 사고나 공격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할 명목으로 와 있는 남성 경비원들을 신뢰할 수도 없다. 이렇듯 일상 생활 전반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폭력은 더 집요하고, 벗어나기 어렵다.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전혀 없는 것이다.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남녀 분리된 숙소를 만들면 되잖아’, ‘성폭력 가해 경비원은 처벌 안 받나?’ ‘아무리 난민이어도 기본적인 인권 보호가 그렇게 안되다니’, ‘성폭력 예방 교육은 안 하나?’ ‘피해 여성들의 심리치료는 지원이 안 되나?’ 맞다. 분명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정부에서도 많은 사안이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성폭력, 젠더 관련 원칙들이 법적 구속력 없는 권고 사항에 머무르고,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꼭 필요한 시스템조차 실행이 안됐다. 그나마 여러 비정부기구와 시민활동가들이 빈틈을 메우고 사태를 수습해왔다.

 

너와 내가 말하는 ‘난민’이 같은 난민일까

 

나: “네가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고 환영하는 입장인 거 알아. 그런데 그 난민들 중에는 거리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들도 있어. 내가 실제로 종종 겪는 일이야. 이런 건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난민을 무조건 환영한다는 사람들 보면 뭐랄까, 너무 나이브한 것 같고… 솔직히 나는 박탈감도 들어.”

 

로사: “그건 문제긴 한데… 그 사람들이 그동안 너무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을 거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문제도 많겠지.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되지 않아?

 

나: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폭력이 정당화 돼? 자기 삶이 힘들다고 남을 해친다? 네가 안 당해봐서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로사, 나도 그 사람들처럼 여기서 인종적 소수자야. 이건 한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를 밟고 올라서는 구도라고 봐. 외국인 신분의 남성들이 자신들이 권력 구조의 제일 밑바닥은 아니라는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거라고. 다른 외국인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로사: “음,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네가 그런 일 겪는 것도 유감이고.”

 

나: “물론 난민들 처지가 전반적으로 볼 때 나보다 훨씬 어려운 건 잘 알지. 나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자발적으로 이주해올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아마 나을 거야. 그래도 체류권 문제나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야. 그리고 난민에도 다양한 그룹이 있어. 자국에서 중산층 이상이었던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로사: “하리타, 그만하자. 난민 이슈에는 내가 특히 민감해. 네가 이건 안 건드렸으면 좋겠어.”

[2016년 4월 어느 날 독일인 여자 친구와의 대화 중]

 

독일에 살면서 나에게 ‘난민’이라는 화두는 인권과 사회적 과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상적 차원의 것이다. 독일 전역에서 주.시.군 행정단위 별로 인구 수에 비례해 난민을 수용했기 때문에 난민 출신, 혹인 망명신청자라는 사회적 법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의 생활공간 어디에나 있다. 따로 ‘난민 친구’를 사귀지 않아도 거리와 학교, 직장, 슈퍼 등 공공 장소에서 섞이게 되는 이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독일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념과 이미지를 갖고 난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위 대화에 그게 드러나 있다.

 

로사와 내가 말하는 ‘난민’은 같은 ‘난민’일까? 아니 같을 수가 있을까? 로사와 나, 둘 다 일부 남성 난민이 성폭력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에 ‘팩트’로서 동의했다. 그럼에도 로사에게는 난민들이 절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도움과 관용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우세하다. 내가 나(난민 남성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외국인 여성) 스스로를 때로 난민보다 더한 소수자로 주장하거나, 난민이라고 다 극단적 곤경에 처한 것은 아니라며 로사의 기존 인식을 흔들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한편 나는 성폭력과 젠더 이슈에 집중하는 사람으로서, 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로사와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 나는 평소 로사의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시혜적 대상화 시선’으로 느껴져 불편했고 언젠가 이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이런 뚜렷한 의도를 갖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로사 뿐 아니라 다른 (유럽 백인 토착민 정체성에 주로 좌파 성향인) 지인들이 난민 문제에 유독 열성을 보일 때, 그 내적 동기에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들과 같은 온도로 달아오르지 않는 나의 마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종적, 문화적 소수자로 여러 해 살고 있는 나에게는 이곳의 난민들이 ‘집을 빼앗긴 사람들’일 뿐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 소수자로 먼저 보였지만, 동일시하고 공감하기에는 이 사회에서 나와 그들이 받아들여지는, 놓이게 되는 맥락이 참 달랐다. 다수의 의견과 정서에 동조하는 것을 나는 한국에서도 늘 어려워했지만 여기서는 더 어렵고 외롭게 느꼈다.

 

한 타자(他者)가 다른 타자를 곧장 만나는 일

 

평소 신뢰가 두텁고 속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던 사이임에도, 로사와 나는 그 날 서로에게서 벽을 느꼈고 대화는 거기서 단절되었다. 이후에도 앞서 얘기한 성향(유럽 백인 토착민 정체성에 주로 좌파) 사람들이 평소 해외 분쟁 지역이나 국내 인종 문제 어느 것에도 별다른 관심을 안보이다가 앞다투어 ‘난민 환영’(Refugee Welcome) 깃발을 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껄끄러운 질문들을 내내 붙잡고 있었다. 이들 마음 속 ‘난민’은 누구인지, 난민 문제가 왜 좌파의 자격 시험처럼 되었는지, 이들의 환대는 과연 무조건적인지, 난민들이 가져온 문화에 대한 관심과 수용은 왜 다른 외국인 소수자 문제와는 별개인지….

 

▶ 난민을 환영하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캠페인 로고. 아빠-엄마-자녀라는 ‘정상가족’ 모델이 들어가있는 것에서 난민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드러난다. 실제로 성폭력을 가장 많이 당하는 것은 배우자나 남성 파트너가 없는 여성들이기도 하다. (출처: chronicle.lu)

 

나는 나 자신의 ‘다른 정체성’ 때문에, 내가 이 문제에 있어 토착민 주류와는 다른 고유한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고유한 관점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행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의 시각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독일에 오기 전에도 나의 사고는 이미 매우 서구중심적(내가 속해온 환경, 현대 한국 사회, 아니 비서구권 자본주의 사회 대부분의 특성)이었기 때문에, 이 작업은 정말 어렵다.

 

난민 문제 역시 당사자가 아닌 한, 서구 백인 토착민이 아닌 나 같은 사람도 자기 눈이 아닌 그 서구 주류의 눈으로 보고 있다. 난민들에겐 무수히 많은 개별적 서사와 서로 다른 층위가 있지만 우리는 서구 미디어가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제한된 장면과 이야기만 접하고서 안다고 생각한다. 이곳 독일에서 타자(他者)인 내가 또 다른 타자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 서구 주류의 눈과 귀와 입을 매개하지 않고 서로에게 곧바로 닿는 것. 어렵게 이 과제를 풀어보는 중에, 이 책 <우리 자신의 언어로>를 만난 것이다.

 

난민을 ‘위한’이 아닌 난민에 ‘의한’

 

서구사회로 간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한국사회에서 겪은 ‘젠더 불평등과 폭력’에 또 하나의 레이어 ‘인종.문화 소수자로서의 고통’이 더해짐을 즉각 실감하게 된다. 기대에 부풀어 떠난 첫 유럽여행에서 여성들은 무례한 캣콜링과 인종 스테레오 타입에 기반한 조롱을 당한다. 이주민으로서 현지 문화를 체득하고, 언어에 숙달되고,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어렵게 직업생활을 시작해도, 마침내는 영주권을 취득해도, 부당하고 불쾌한 만남은 계속된다. ‘겉으로 보이는 나’ 너머를 아는 커뮤니티 밖에선(혹은 그 안에서도) 여전히 ‘나’를 ‘낯선 얼굴의 외부인’으로 인식하고 오해와 편견, 적대와 공격을 일삼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의 감각에 굳은살이 좀 붙고 자잘한 대처 기술이 늘지만 그 뿐, 완전한 극복이나 해결은 없다. 단지 나의 타고난 외모와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건 늘 얼마간 아프고 불편하며 자존이 흔들리는 경험이다. 요컨대, “헬조선의 여성혐오를 견디며 사느니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게 차라리 낫겠다”와 같은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젠더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진 곳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둘(여성혐오 X 인종차별)은 으레 묶음으로 찾아온다.

 

여기서 상정한 ‘나’는 실제 글쓴이, 나이기도 하다. 독일에 장기 거주를 목표로 하고 2014년 한국을 떠날 때, 이 문제에 아주 무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맑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서늘하고 비관적인 전망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정 성별 ‘여성’이라는 낮은 계급에도 불구하고 뭐든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 하던 ‘파이팅 넘치는’ 페미니스트였기에.

 

비백인/비유럽/북미 출신 이주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말하자면 원의 중심에 서야 이기는 경기에서 중심 가까운 곳이 아닌 주변부, 혹은 경계 부근에서 시작하고 끝날 때도 거기서 머지 않은 곳에 있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겠다. 백인 혈통이 토착민으로서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유럽 사회에서 이들 여성은 물리적으로 여기 분명 존재하고 사회적 역할 또한 수행하지만, 좀처럼 ‘중요한 사람’(집단의 대표자나 의사결정자, 미디어가 관심 갖는 유명인 등)이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제도나 정책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아서? 고의적으로 이주 여성의 발전과 성공을 방해하는 혐오세력이 있어서? 그보다는, 우리의 이야기와 주장을 궁금해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대중’이라는 생명체와 주류 정체성을 가진 ‘오프리언 리더’들은 주류 집단의 의견,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는 것), 막 유명세에 올라탄 사람, 자주 봐서 익숙한 모습(가령 헐리웃 영화의 백인 중산층 주인공)을 중요하다고 여기고 미디어를 통해 이를 무한 복제 배포한다. 사람들은 ‘그 중요한 것’을 잘 숙지하고 거기 스스로를 동일시하려는 심리 기제에 따라 움직이며, 따라서 ‘중요치 않다’고 분류된 사건과 현상, 목소리는 걸러내 버린다. 가령, 미국 대통령의 막말이 아무리 넌센스여도 사람들은 좀처럼 무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애써 의미 부여한다. 그는 말은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우리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우리도 스스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어쩌다 나온 목소리는 우리들 안에서만 맴돌다 사그라진다. 다른 ‘중요한 것’에 대해 듣고 말하는 일로 우리도 쉽게 되돌아간다.

 

난민 담론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난민 급증 현상’에서 몇몇 사안은 분명 중요해졌지만, 담론 생산과 소통이 일어나는 주류 공론의 장에서 ‘난민에 대한’이나 ‘난민을 위한’만 있고 ‘난민에 의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중요한 사람들’끼리 말하고 있다. 여성 난민들에 대한, 여성 난민들을 위한 이야기는 이중에서도 또 주변부로 밀려나있다. 나는 이러한 까닭에 많은 자료 중에 <우리 자신의 언어로>라는 이 책, 1인칭 시점으로 여성 난민들이 쓴 이야기에 이끌렸고, 깊이 읽고 배포할 중심 텍스트로 삼았다.

 

※이 책은 다국어(독일어, 영어, 아랍어)로 쓰였다. 기사 연재를 통해 한국어 번역본이 만들어지면, 연재가 끝나고 나서 이를 베를린의 IWSPACE에 기증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여기, 내 삶의 조건에 대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질문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니 내 안의 목소리들이 답해준다. ‘너를 더 알아가고, 너의 눈에 비친 나를 더 알아가자. 그렇게 우리가 같이 우리에 대해 더 많이 말하며 목소리를 모아보자.’ 나는 이렇게 여러 목소리들과 함께 본 번역 프로젝트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 2015년 ‘국제여성공간’이 발간한 <우리 자신의 언어로 – 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In Our Own Words – Refugee Women in Germany tell their stories) 표지

 

<우리 자신의 언어로 – 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 서문

 

2013년 어느 시기에, 우리는 독일의 난민 여성들에 대한 기록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 정치단체, 국제여성공간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이 왜 모국을 떠나 유럽이라는 요새의 심장, 독일에서 난민이 되는지 그 이유를 더 잘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이주를 하고자 해도 비자를 받지 못한 여성들,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떠나기도 전에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이미 난민이 되어버린 여성들. 전쟁과 빈곤, 자본의 탐욕에 의한 자연재해에서 피신한 여성들. 출생 시 부여 받은 젠더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라오는 처벌에서 도망친 여성들. 가부장의 폭력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가족을 떠나는 여성들. 그런 여성들을 말입니다.

 

※여기서 이주(migration)는 국적과 여권을 갖고 있으며 양국의 합의된 이민법에 따라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행위를 뜻한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본래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인 난민(refugee)들은 이주를 택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이주민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온 난민으로서, 우리는 중동과 아프리카, 발칸 국가들에서 온 여성들에게 귀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다른 이주, 난민 여성들을 더 만나고 싶었던 것은 “우린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공통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또, 서구 국가들이 우리가 나고 자란 지역을 전쟁과 신식민주의로 뒤흔들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나라들 중 하나로 와서 안전을 꾀하는 우리 자신의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이 역설적인 선택은 이렇게까지 미친 세상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겠지요.

 

어찌되었던 우리는 함께해야만 다가오는 공동의 싸움 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우리는 이미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있었고, ‘개인적인 것은 또한 정치적인 것’에 따라 경험을 더 공유할수록 더 많이 기록하고 싶어졌어요. 우리는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며, 그것이 이 기록의 핵심입니다.

 

▶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난민 여성들이 함께 행진하고 있다. (출처: Fluechtlingsrat)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공간인 베를린에서 시작했습니다. 맨 첫 번째 인터뷰를 위해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두 난민 여성에게 연락했어요. 어느 흐린 겨울날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거기 가는데, 도중에 한 여성이 마음을 바꿨는지 우리 전화를 더 이상 안 받았어요. 인터뷰하기로 한 여성이 취소하거나 그냥 사라져버리는 일이 그걸로 마지막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우린 그 여성이 이해가 갔습니다. 비참한 과거로 돌아가거나, 참을 수 없는 현재를 분석한다는 게 쉽지 않지요. 때로 차라리 힘든 기억은 잊길 원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그래도 여전히 우리와 얘기할 마음이 있었어요. 그녀는 난민 숙소에 있는 자기 방으로 우리를 들였습니다. 망명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이년 동안 거기 살았지만 그녀가 결코 집이라 부르지 않는 그곳으로요. 우리를 만났을 당시 그녀는 망명 신청이 거부되었다는 당국의 편지를 막 받은 참이었어요. 그녀는 겁은 먹었지만 이성을 잃진 않았고, 벌써 추방 명령에 이의제기를 했다고 했어요. 우리는 오후를 내내 같이 보냈습니다. 떠날 때 알았죠. 우리가 이렇게 용감하고 감동을 주는 여성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누렸다는 것을.

 

다른 많은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인터뷰 시작 전에 항상 이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언제 왜 독일로 왔는지,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편견과 인종차별을 겪는지, 독일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언젠가 돌아갈 계획이 있는지, 그리고 모국에서의 삶은 어떠했는지. 이 이야기들을 할 때 우리 만남의 가장 깊고 진한 면모가 드러났어요. 개개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서로 다른 배경과 맥락, 정치적 투쟁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여성이 어떻게 어려움을 견디고 살아남았는지도 보여줍니다.

 

밤낮으로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이들 모두가 우리를 ‘그때 그곳으로’ 바로 데려갈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어서요. ‘그곳’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들이 일어난 구체적인 장소이기도 했고, 남성중심의 세상에 살아온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극도로 외로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쩔 때는 이들이 묘사하는 그 날의 공기까지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이들을 둘러싼, 이들의 고통에 눈과 귀가 먼 사람들의 얼굴도 볼 수가 있었고요. 우리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이 사람이 자기 자유와 존엄에 지속적인 공격을 당하고도 살아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네, 이 여성들은 살아남았고 피와 살과 힘을 지닌 존재로 바로 우리 앞에 서 있었습니다. 존경하고 경외할 만한 ‘언니’ 그리고 어떤 ‘힘’ 그 자체로서.

 

자, 여기 많은 여성들이 함께한 기록 작업의 결과물을 내 놓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익명으로, 혹은 이름을 걸고 들려준 여성들, 감사합니다. 녹취록을 작성하고, 번역하고 검수한 여성들, 책 레이아웃을 만들고 인쇄하고 비용을 마련한 이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막 펴든 여러분에게도 감사합니다.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우리의 싸움에 함께해주길 바랍니다. 혁명적인 날들을 향해 우리와 같이 걷길 바랍니다. (국제여성공간)

 

[필자 소개] 하리타- 독일살이 4년차. 온갖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 여전히 곤두서있다. 일다에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칼럼을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더 자유로운 페미니즘을 위하여>(2017, 동녁)를 썼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사회학을 공부했고, 이제 베를린에서 여러 창작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 하리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초록’이다. facebook.com/haritamoonrider

기사입력 :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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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18/02/15 [10:47]
너무너무 기대돼요! 주류에 의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굉장히 소중한 이야기들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18/02/04 [10:27]
무엇이 어떻게 읽히느냐는 내가 어느 자리에 서있느냐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이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실감했어요. 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그나마 영어나 독일어로 의사소통가능한 이들이고 이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난민들은 또 어떻게 독일에서 난민으로 생존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만큼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만큼 미처 내가 보지 못한 듣지 못한 이들의 모습과 말에 눈과 귀를 열어야 할텐데, 그건 마음처럼 잘 되지 않고 후순위로 밀려 품이 내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사'는 '해일' '해변' '조개'...? 18/01/30 [06:00]
글 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자신의 언어로' 고대하겠습니다! 

전에 하리타님 연재 중에 어느남성이 십대때 주유소에서 일하며 남자사장에게 상습적인(구조적 갑질) 삽입성폭력(페니스파시즘)을 겪으면서도 신고도 못하고 일을 계속해야했던(자본주의) 경험으로 여성현실을 이해하게되고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죠.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생명주체/본체) 남성(좋게 말하면 성적도우미?)은 '엄연히 다르다'고하고(생물학자들 왈 포유류수컷은 잉여라고), 그 성차를 여성/동성애자전체에게 불리하도록 악용하는 가부장제의 열폭공포심보는 참 징한 패륜과 도착입니다만, 
(그로인해 공교육 공권력 밖에서 외따로 진행해야하는 한국인권운동현실은 이미 괴담에 세뇌된 사람들의 공포를 달래는데에만 대부분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배보다 배꼽'인 형국이네요..)

사람의 자아 공감 성찰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성/남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자국인/이방인으로 이분화되기보단 가치관 정치성향 실천방식 등으로 달라지듯이, '로사'(같은 사람들)는 "해일이 오는데 해변에서 조개줍는다"는 한국의 자칭 진보남들이 떠오르네요. 
'로사'(같은 사람들)에게 필요이상은 상처받지 마시길, '우리 자신의 언어로'의 지평의 물꼬가 트이는 새해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 18/01/27 [11:20]
그래도 난민 환영을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다른 외국인 소수자 인권에 우호적이긴 하겠죠. 자기 일상과 관련되어 있을 때 쉽지 않겠지만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독자 18/01/26 [12:49]
서문 읽으면서 좀 울었어요. ㅠㅠ 아프지만 힘이 느껴집니다.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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