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부족한 사회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다이어트 vs 건강(중)

최하란 2018-02-03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영유아부터 성인까지…수면 부족 사회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프랑스는 8시간 50분, 미국은 8시간 38분, OECD 평균은 8시간 22분이다.(OECD, 2016) 아시아 태평양 지역 15개국 중에서도 우리가 최하위다.(AIA생명, 2016)

 

한국 성인들은 평균 6시간 24분을 잔다.(한국갤럽, 2016)

 

청소년들도 잠이 부족하다. 청소년기 적정 수면 시간은 8~10시간이다. 그러나 2015년 서울시 조사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청소년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6분이었다.

 

교육부가 전국 765개 표본학교 8만2천883명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도 학생건강검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3퍼센트, 중학생 12퍼센트, 고등학생 43.9퍼센트가 하루에 6시간도 못 잔다. 여고생의 경우 53퍼센트다.

 

심지어 영유아(신생아~36개월)도 덜 잔다. 평균 11시간 53분으로, 서구 영유아들보다 1시간 8분을 덜 잔다. 영유아들의 평균 취침 시간도 더 늦다. 밤 10시 8분으로 1시간 43분이나 더 늦다.(대한의학회지, 2017년 2월호)

 

▶ 잠 부족 사회 ⓒFlickr. nigelpepper (CC BY 2.0)

 

생체시계의 리셋 요소, 잠

 

지구에 사는 생물인 우리 몸에는 지구 자전주기와 비슷한 생체주기가 있다. 24시간 생체주기는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천연시계와 같다.

 

생체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리셋 요소는 잠이다. 자연적인 개인차도 있고 인공조명의 발달로 전보다 늦게 자긴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잔다.

 

생체시계에서 호르몬 작용은 중요하다. 특히 잠을 불러오는 멜라토닌, 잠을 깨우는 코르티솔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는 아침 6시부터 증가한다. 낮 시간의 활동을 준비하는 것이다. 반대로 멜라토닌 분비는 이 시간대 가장 낮다. 코르티솔은 오전 동안 최고조에 이르고 오후에도 신체와 정신 활동을 최적의 상태로 이끈다. 반대로 밤이 되면 코르티솔 대신 멜라토닌 분비가 늘면서 졸음이 오고 잠들게 된다.

 

가장 중요한 자극은 (햇)빛이다. 그래서 아침에 햇빛을 보는 게 각성하는데 좋고, 낮 동안 햇빛을 충분히 봐야 밤에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돼 잘 자게 된다. 반대로 밤까지 인공조명과 컴퓨터, 스마트폰의 화면 빛에 많이 노출되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된다.

 

물론, 생체시계는 햇빛이나 빛에 상관없이 저장된 대로 수면-각성 리듬을 반복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할 때 시차 적응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체시계에 대한 교란이 장기간 계속되면, 수면-각성 리듬을 해치고 건강에도 이상이 생긴다.

 

▶ 인체에 여러 영향을 주는 생체시계 (출처: English Wikipedia)

 

잠은 왜 중요한가

 

-잠을 자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느려지면서 심장이 휴식하게 된다. 뇌파도 느려지고 뇌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잠을 자는 동안 기억이 편집되고 저장되고 관리된다. 그래서 충분히 잘 자야 기억을 잘 꺼내 쓸 수 있고 새로 잘 입력할 수 있다. 잠이 부족하면 뇌 기능이 저하되고, 간단한 기억력조차 떨어진다.

 

-잠을 자는 동안 회복과 재생이 이뤄진다. 가장 깊은 잠을 자는 논렘 수면(NREM sleep) 3단계의 서파 수면(slow wave sleep) 상태에서 성장호르몬의 80퍼센트가 분비된다. 성장호르몬은 성장기 뿐 아니라 일생에 걸쳐 필요하다. 세포와 조직의 재생은 살아있는 내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 여러 호르몬들이 분비된다. 잠을 자지 않거나 잠을 자는 시간이 불규칙하다면, 호르몬들이 서로 어긋나게 돼 최적의 상호작용을 내지 못한다. 특히 여성의 건강은 호르몬 이상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잠을 자는 동안 면역력이 강화된다. 감기처럼 가벼운 병증에 대한 가장 좋은 예방과 치료는 충분한 수면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오기 쉽다. 소화기계, 심혈관계, 내분비계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킨다.

 

-잠을 자는 동안 감염에 대한 저항력 뿐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강화된다. 불안감, 초조함, 우울함,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은 수면 부족과 관계 깊다.

 

다이어트 → 수면 → 건강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로버트 스틱골드 교수는 수면 부족이 고밀도 탄수화물과 당분 섭취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피험자들에게 밤에 4시간만 자게 한 뒤 당부하 검사를 했더니 당뇨병 전 단계 증상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음식물 섭취량이 증가했다.”(존 레이티 <맨발로 뛰는 뇌>, 녹색지팡이) 인슐린 반응이 교란되는 것이다.

 

잠이 부족하면, 몸은 먹어서 해결하려고 한다. 섭취한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식욕증가 호르몬(ghrelin) 분비는 늘지만, 식욕억제 호르몬(leptin) 분비는 감소한다.

 

여성은 월경 주기가 수면-각성 리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면 부족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상이나 해외여행 등 일시적인 수면 부족과 수면-각성 리듬 변화에는 뇌가 잠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유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장기간 계속되면 여러 가지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낳는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교대근무와 관련 있다. 심지어 세 가지가 다 결합되면, 건강과 안전에 가장 위험하다.

 

▶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 8시간 수면” 8시간 노동제 요구 배너. 1856년, 호주 멜버른. (출처: English Wikipedia)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포함하는) 교대제 노동이 발암물질 그룹 2A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그룹 2A는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이 확인됐고, 인체에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 추정된다는 뜻이다.

 

학습시간 세계 1위, 노동시간 OECD 2위인 나라에서 수면 부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생활습관 변화로는 부족하다. 수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안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우선 대상은 우리 몸이 아니라 우리에게 강요되는 학습과 노동이다.

기사입력 : 20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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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크라 18/02/05 [16:09]
잠 좀 실컷 자는 게 소원인데, 현실은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직장 다닐 때는 적게는 서너 시간, 많아야 다섯 시간 잔 것 같아요. 전업 주부인 지금도 많이 자야 여섯 시간이네요. 죽으면 영원히 잘 텐데 하면서 잠을 미루고 있어요. 해야 할 일, 하고싶은 일이 왜 이리 많은지...
18/02/04 [00:35]
평소 잠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7-8시간 자야 좀 잔 것 같아서) 큰 위로가 되는 기사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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