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낙인 속의 사람들, HIV감염인

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20-30대 당사자들의 인식

박주연 2018-06-08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OOO이라는 걸 알면 함께 있는 걸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OOO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연애하는데 방해가 된다’, ‘내가 OOO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OOO이라는 사실보다 주변에서 듣는 OOO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감히 누군가를 좋아해도 괜찮을까 자책하고, 나의 행동을 탓하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경험은 사회의 소수자/약자들이 비슷하게 겪는 경험이기도 하다. 누가 더 사회적 소수자인지 나누는 건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현재 사회에서 ‘눈에 덜 보이는/드러나지 않는 부류가 있다면 그건 누구이고 왜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중요하다.

 

러브포원에서 연구한 ‘HIV/AIDS에 대한 20~30대 HIV감염인의 인식 조사’ 결과가 발표된 자리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던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에 대한 몇 가지 주요한 이슈가 제기됐다.

 

이 조사는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약 56일간의 설문조사를 거쳐 얻어낸 응답을 분석한 것이다. 응답자 198명 중 20대가 51.5%, 30대가 48.5%, 남성이 96%, 여성이 4%였고 확진 경과기간은 1년 미만이 18.7%, 1~3년 미만이 30.8%, 3년~10년 미만이 40.9%, 10년 이상이 9.6%였다. 

 

▶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는 HIV/AIDS 감염인들이 겪고 있는 낙인과 배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치료약 복용을 강조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출처: CDC 홈페이지)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나를 탓하기’

 

처음 언급했던 OOO의 말들은 ‘HIV 감염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이다.(복수응답)

 

-HIV 감염 사실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연애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 (97%)
-대부분의 사람들은 HIV에 감염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91.4%)
-나는 감염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89.4%)
-HIV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주위에서 듣는 AIDS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87.9%)

 

HIV 감염인이 겪는 낙인에 대해 발표한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는 “HIV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로 느끼는 감정은 ‘나를 탓하기’(74.7%)와 ‘죄책감’(66.7%)’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낮은 자존감(60.6%)과 수치심(55.1%)가 뒤를 이었다. 이는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내재적 낙인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혐오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 걸려 죽는다’, ‘HIV 감염인은 세금도둑’이라는 말에 대한 인식을 물은 항목에서는 “화가 나고 속상한 감정이 든다”가 각각 74.6%, 76%으로 가장 높았다. 한채윤 상임이사는 “가능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50.8%, 51.5%)와 그런 표현을 하는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35.5%, 41.3%)고 응답한 비율도 적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감염인들이 양가 감정에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이 든다(17.3%, 24%)와,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16.8%, 27%)라고 응답한 비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 하면 에이즈 걸려 죽는다’보다 ‘HIV 감염인은 세금도둑’이라는 말에 더 상처와 자괴감을 느끼는 건, 타인에게 폐가 된다는 ‘죄책감과 나를 탓하기’가 HIV 감염인에게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이라는 것과 그걸 자극하는 것이 HIV 감염인을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밝혔다.

 

HIV 감염인 ‘마음건강’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

 

자신을 탓하면서 한편으론 혐오와 싸워야 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HIV 감염인들의 마음건강은 어느 정도일까? HIV 감염인들의 정신건강 상태와 관련된 설문 결과를 분석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발표 모습. (러브포원 제공 사진)

 

“한국복지패널 매뉴얼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울증상 여부를 확인한 결과, 남성 HIV감염인 중의 52.4%, 여성 HIV 감염인은 62.5%가 우울증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일반 인구집단(2017년 한국복지패널조사의 20~39세 기준)보다 약 3.5배와 약 4.8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다만 김승섭 교수는 “여성 HIV 감염인의 경우 참여자가 8명이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결과 분석에는 큰 제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59.4%, 여성 HIV 감염인은 50%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일반 인구집단이 2.5%와 5.9%로 나오는 것에 비해 약 23배와 약8.4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 2013년 OCED에서 발표한 국가별 자살율 그래프 중에서. 한국은 단연 1위다. (출처: OECD Data 홈페이지)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을 계획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35.8%, 여성 HIV 감염인의 25%가 ‘있다’고 답했고 이는 일반 인구집단(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의 20~39세 기준)의 0.8%와 1.6%에 비해 매우 높은 결과로 남성의 경우 약 44배 높다는 것”이라며 마음이 무거운 듯 말을 줄였다.

 

김승섭 교수는 또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11.8%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건 일반 인구집단의 0.3%보다 약 39배 높다”고 밝혔다. 그리고 “특히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 결과는 정말 문제적인 수치”라고 분석했다.

 

낙인과 배제는 이제 그만! 인권의 관점 필요한 때

 

김 교수는 “HIV 감염인 1만명 중 10%가 넘는 약 1천명이 자살 시도를 한다는 것이고, 하루에 약 2~3명이 자살 시도를 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증가하면 지속적으로 먹던 치료약도 챙겨 먹지 않게 되기도 한다”며 “이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며 물음을 던졌다.

 

또 “6차 세계가치조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중 HIV/AIDS 감염인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말한 비율이 88.5%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배제와 차별을 꼬집었다. 

 

▶ 6차 세계가치조사, 한국 결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항목’ (WV6 Results South Korea 2010 참조)

 

많은 사람들에게 HIV나 AIDS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질환이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원 이용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76.5%), ‘진료 기록이 남을 것 같아서’(65.1%)라고 답한 결과나, ‘치료제 복용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나쁘거나 늦잠을 자는 등 복용 시간을 깜박 잊어서’(68.7%), ‘약 먹을 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서 감염 사실을 타인이 알게 될까봐’(49.6%), ‘약을 분실하거나 외출 시 약을 챙기지 않아서’(45%)라고 답한 걸 보면, 개인적인 경험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부인과 질병으로 산부인과에 가거나 피임약을 꼬박 챙겨 먹는 등의 ‘쉬쉬하며 숨겨야 하는 일’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경험들과도 닮아 있다.

 

무엇이 감염인들을 그렇게 특별한 존재, ‘배제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고 있을까? 지난 달 15일, EBS에서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까칠남녀>를 폐지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차별 진정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곳에선 “항문성교는 동물이나 하는 거다”라고 외치며 행사를 훼방 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혐오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구호다.

 

김승섭 교수는 HIV 감염과 공중보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돈 오페라리오 브라운대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 나눴던 경험을 전했다. “돈 오페라리오 교수는 HIV에 감염된 개개인을 비난하는 간편한 해결책을 경계해야 한다며, 공중보건 예방 관점에서 보면 그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고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개인을 비난하는 간편한 해결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더 가깝게 와 닿는 건,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배제, 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낙인과 배제, 차별에도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대한 더 많은 분석과 함께 ‘왜 이러한 혐오가 어떤 집단을 향해 행해지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자리였다.

 

인식조사 결과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과 참가자들 간의 논의 자리에서 나왔던 “이 조사에 포함되지 못한,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못한 감염인들이 아직 많을 것”이라는 말이 다음 과제를 남겼다. 성 산업과 관련되었거나 더 음지에 있는 감염인들의 실태 및 인식 조사도 앞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기사입력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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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vetree 18/06/23 [04:49]
사람들이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유형들을 꼽는 게 우스워요.(설문조사 질문이 애초에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지 몰라도). 실제로 살면서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는 사람은, 집안이나 집밖에서 담배 피는 사람,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사람,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 여성 파트너를 때리는 남성 등이 아닌가요? 이런 실제적인 불편함보다 소수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위험을 상상하고, 그들을 혐오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ㅇㅇ 18/06/09 [22:11]
오토바이타다 사고나서 크게 다친 친구가 있다. 자책을 하더라 '그러지 말걸.' 결국 오른손 중지부터 약지까지 못 쓰게 되었다만 그래도 그냥저냥 산다. 에이즈환자도 그럴지 모르지. 대개는 조심하고 피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자신의 무지나 실수로 인해 난치병을 얻었으니까.


HIV 전파 기전상 알면 그닥 두려울 게 없지만 동성애자든 에이즈환자든 잘 모르면 두려운 법이다. 
때로는 알려고 하는 노력도 하기 싫은 법이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강경책으로 갈지 유화책으로 갈지 그런 건 활동가 자신이 정해야 하겠지만, 무엇이 효율적인지, 나는 내가 틀렸다고 느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려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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