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재현’ 권고를 ‘외모 검열’이라며 반발하는 당신

여가부 <방송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 논란을 보며

박주연 2019-02-23

지난 12일 여성가족부에서 만든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업데이트되어 나온 이후, 무서울 정도로 사회적 반발이 거세다.

 

▶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 중 논란이 된 부분. 여성가족부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은 삭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여성가족부

 

문제가 된 부분은 이 안내서의 부록인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 중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라는 내용과, 그 사례로 든 “음악방송 출연가수들은 모두 쌍둥이?” 표현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섬세하지 않고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면도 있지만,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이 심각한 수준이며 다양한 몸, 다양한 복장,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회 현실을 반영할 수 있게 다양성을 보여달라는 메시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이다.

 

그럼에도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여론은 여가부가 방송 출연자들에게 “외모 제재”를 가한다거나 “걸그룹 미모 할당제”를 한다는 등의 비방을 쏟아냈고, “미디어 검열”이라거나 “표현의 자유 제약”이라고 진단하는 언론 보도도 상당 수 잇따랐다.

 

▶ 여성가족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활용해줄 것을 권고”하는 안내서일 뿐 어떤 처벌이나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군사독재 시대 두발단속과 미니스커트 단속에 비유하며 진선미 장관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 견주는(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어불성설 막말까지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성평등 가이드라인 낸 여가부가 전두환이 된 사연 팩트체크”(ccdm.or.kr/xe/watch/276142)라는 모니터링까지 냈을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고 어느새 ‘외모 규제’ 프레임이 여론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말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 가이드라인이 ‘다양성 재현’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의 재현을 ‘외모 규제’라고 몰아간다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사실 다양성 재현을 위한 제도적 노력과 더불어 ‘어떻게 미디어에서 다양성을 더 드러낼 것이냐’에 관한 논의는 이미 세계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는 일이다.

 

‘마른 몸’ 금지한 패션계는 왜 그랬나?

 

지난 2017년 루이 비통, 구찌, 크리스찬 디올 등이 포함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케링과 LVMH은 제로 사이즈 모델(국제 기준 XXS 사이즈)을 캣워크나 상업광고에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너무 마른 몸을 반복하여 전시함으로써 모델들과 대중들에게 ‘마른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심어준다는 오래된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이런 결정은 굉장히 늦은 것이기도 하다. 2006년에 제로 사이즈였던 브라질 모델과 우루과이 모델이 거식증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모델들의 ‘건강권’은 패션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2007년에 이미 영국패션협회는 패션업계와 모델들에게 전하는 ‘권고 사항’이 담긴 모델 건강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패션쇼,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도 제로 사이즈 모델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영국패션협회에서 발표한 ‘모델 건강에 대한 보고서’(2007) ⓒ출처: 영국패션협회 britishfashioncouncil.co.uk

 

그런데 과연 이런 세계적인 움직임들이 제로 사이즈 모델들을 배제하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제로 사이즈가 아닌, 어떤 특별한 사이즈로 모델들의 몸을 획일화하기 위함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획일적으로 제시되었던 몸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건 또한 ‘마른 몸이 나쁘다거나, 마른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도 아니다. 모델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모델 일을 얻어내기 위해서 건강을 해치며 마른 몸을 유지하거나, 마른 몸이 되려고 무리한 다이어트 및 약물을 사용하는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노동현장에 건강을 해칠 위험 요소가 있다면, 안전을 위한 규제가 당연히 마련되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뿐 아니다. 모델의 신체 사이즈는 그 모델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작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30일 이내 체중 감소를 위해 노력을 한 일이 있냐는 물음에 여학생 중 43%, 남학생 중 24.9%가 그렇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자신이 살이 찐 편이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여학생 중 30.4%, 남학생 중 17.9%가 그렇다고 답했다.

 

마르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 방송에 나오는 걸 얼마나 자주 볼 수 있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에서 몸의 이미지가 획일화되어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작년 어느 방송에서 개그우먼 이영자 씨가 멋있게 수영복 입은 모습을 드러낸 게 화제가 되었을 만큼, ‘마르지 않은 몸’을 방송에서 보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비만’에 대한 낙인도 크다. 얼마 전에도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오리새끼’에 출연 중인 가수 홍진영의 언니 홍선영 씨가 자신의 몸에 대한 악플에 시달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뚱뚱하다’고 분류되는 몸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방송에서 ‘뚱뚱한’ 몸을 가진 사람을 그리는 방식도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중남미에선 ‘하얀 피부’ 중심의 방송이 왜 논란일까?

 

라틴 대중문화 중 하나인 ‘텔레노벨라’(Telenovela, 일일연속극 형태로 방영되는 드라마 시리즈로 사랑, 배신, 출생의 비밀, 음모 등 다소 통속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변화무쌍한 스토리로 인기를 얻음)는 전 세계에서 방영되며 라틴 문화와 그들이 사는 방식을 알리는 콘텐츠다. 한국에도 텔레노벨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케이블 TV에서 텔레노벨라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 천만 명 넘게 시청한다고 알려져 있는 유니비전 채널 홈페이지 중 ⓒ출처: univision.com/shows/novelas

 

그런데 텔레노벨라를 둘러싸고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가 있다. 바로 텔레노벨라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피부색’이다. 라틴 문화권에 속하는 중남미 국가들은 유럽의 식민지였던 점을 비롯하여 여러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하얀 피부부터 검은 피부까지 정말 다양한 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백인에 가까운 하얀 피부’를 가졌다. 어두운 색의 피부를 가진 배우들이 등장할 때 그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조연이거나, 조연 중에서도 갱단, 범죄자, 성판매자 등에 한정되어 있다.

 

‘하얀 피부’(Whiteness)가 항상 중심에 서고 사회적 성공을 대변하는 상황, 출연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하얀 피부’가 좋다, 옳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하얀 피부’에 집착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특히 현실에는 훨씬 더 다양한 피부색이 존재한다는 걸 고려하면 말이다.

 

한국의 대중매체는 적어도 한국인에 대해서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부러 많은 조명을 사용하는 국내 방송들 출연자들의 피부도 ‘하얀’ 편에 가깝다. ‘뽀얗고 하얀’ 피부는 칭송의 대상이고 어두운 피부엔 ‘이국적’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갖다 붙이거나, ‘동남아에 가면 먹히는 얼굴’이라는 식의 인종차별 발언도 한다. 어두운 피부가 걱정거리라거나, 화장을 통해 ‘더 하얗게’ 보이고 싶어 하는 건 많은 이들의 바람이 되었다.

 

특정한 피부색이 미의 기준이 된 부분도 문제지만, 다양한 피부색이 드러나지 않는 점, 피부색에 따라 누군가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지금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하나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태어난 아이들 중 5.2%가 다문화 가정 출생이다. 고로 20명 중 1명은 피부색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우리 미디어도 구성원들의 다양한 피부색을 반영해야 할 때가 된 거다.

 

다양성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던 기간 중 배우 테사 톰슨(Tessa Thompson)은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진 상업영화 중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은 단 4%뿐”이라며 “이 현실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테사 톰슨은 “지금부터 18개월 내에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선언했다.

 

▶ 타임즈업(Time’s Up)의 ‘4% 챌린지’ ⓒ출처: 타임즈업 홈페이지 timesupnow.com/4percentchallenge

 

여성감독 작품을 두 배로 늘리자며 시작한 타임즈업(Time’s Up)의 ‘4% 챌린지’ 프로젝트엔 테사 톰슨, 에바 롱고리아, 지나 로드리게스, 제니퍼 로페즈, 나탈리 포트만 등 배우들과 J.J. 에이브람스, 폴 페이그, 라이언 머피 등의 감독이 참여했다. 아마존, 파라마운트, 워너 브라더스 등의 제작 스튜디오도 참여했다. 디즈니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물론이고 올해 공개하는 콘텐츠의 40%를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의 BFI영화기금은 다양한 제작자를 지원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 아래 작년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지원받는 영화 제작자가 50대 50의 성별 균형을 이뤄야 하며, 그 중 20%가 인종적 소수자이도록, 9%가 LGBTQ이도록, 7%가 장애인이도록 해야 한다.’(참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발표한 ‘영화산업 성평들을 위한 정책과 전략들’)

 

일부러 여성감독을 찾아 18개월 이내에 같이 작업을 하겠다는 이런 선언을 하고 파이를 나누는 이런 제도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저절로 균형이 맞춰지는 게 아니듯, 성평등과 다양성이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여럿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와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나오게 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규제하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열려있지 않았던 자유와 기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동안 고민해보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은 귀찮거나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지금 바뀌어가는 흐름을 ‘외모 규제’로 보느냐 ‘다양성 재현’으로 보느냐에 따라, 구태의연한 세상에 남겨질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기사입력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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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19/02/25 [18:17]
백번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엔수 19/03/05 [14:05]
여성 얘기만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 드는 거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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