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유령’들을 위한 응원

유은정 감독의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박주연 2019-08-19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여성 청년’의 삶은 꽤 가혹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의 중요성을 외친 게 100여 년 전인데 여전히 ‘자기만의 방’인 원룸 하나 얻는 일도, 매달 일정한 수익을 버는 일도 쉽지 않다.

 

거기다 이 사회가 ‘여성 청년’에게 원하는 건 또 왜 이리 많은지. 행동을 어떻게 해라, 무슨 옷을 입어라/입지 마라, 머리카락 길이마저 간섭과 제재의 대상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많은 ‘여성 청년’들이 모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면서 아예 주변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거나, 죽도록 열심히 일해 성공을 쟁취함으로써 그 누구도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하거나.

 

▲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 한해인 전소니 주연) 포스터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감독 유은정) 속의 혜정(한해인 역)과 효연(전소니 역)도 그런 사람이다. 혜정은 연애도 결혼도 아무것도 필요 없고 조용히 내 삶만 살아가고 싶어하고, 효연은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싶어하며 그 누구보다 돈 잘 벌어서 잘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둘의 욕망 모두 부정하고 그들을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 속에서 유령으로 나오는 건 혜정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혜정은 그 전부터 유령 같은 존재였고, 실패를 겪고 언니 방에 갇힐 수밖에 없는 숨겨진 존재인 효연도 유령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고민과 너무나도 맞닿아있었다.

 

[ 기사에 영화 내용의 일부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령’이 되어 버린 사람

 

영화의 시작은 불안했다. 영화가 불안했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나의 마음이 불안했다. 영화를 보러 갈 때 시놉시스나 트레일러도 거의 확인을 안 하고 감독이나 배우를 따라 영화를 선택하는 편이라, 초반부에 혜정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이 들자 ‘또 여성이 주거안전에 위협을 받는 내용을 다룬 영화인가?’라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영화를 통해 그런 공포를 또 겪고 싶지 않을 뿐더러 영화가 이를 결국 장르적 공포로 재현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던 있었던 터라, 나의 염려도는 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혜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령이 된 순간 나의 불안이 사라졌다. 유령이 된 혜정이 과거를 거슬러 가면 갈수록 그의 이야기가 안쓰럽긴 했지만, 한편으론 그의 이야기를 알아간다는 생각에 흥분되기도 했다.

 

▲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 한해인 전소니 주연) 스틸컷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한 명의 여성 청년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데, 그가 유령이 되어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이 겪은 사고/죽음에 대해 알아가려는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다니…. 나의 도덕성은 어디 간 거지? 순간, 나 자신에게 뜨끔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사고/죽음의 진실이나 그때의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혜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였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사람에게 “저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라고 답하며 거절했던 혜정의 말처럼, 내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혜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너무 알고 싶었다.

 

또 다른 ‘유령’들을 발견하다

 

흔히 서술하는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당시, 난 이제 내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몰두해 있었다. 이 성차별적인 가부장제 세상에서 ‘여성’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삶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그와 동시에 난 쉽게 사람들에게 벽을 치기 시작했다. “저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왜 간섭해요? 저리 가세요.” 하는 차단의 방식은 꽤 유용했다. 적어도 ‘대응하려고 하던 노력’으로 인한 피로도를 덜어줬다.

 

여전히 차단의 방식이 최선으로 먹히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도 종종 그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때때로 외로움과 고립을 느끼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그들에게 내가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분명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론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자의든 타의든 내 손에 남은 건 결국 페미니즘이었고, 페미니즘에 대해 더 배우고 나서야 주변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여성’의 기준이었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러자 드디어 유령으로 취급받는 다른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성’들 간의 차이도.

 

▲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 한해인 전소니 주연) 스틸컷 

 

혜정이 유령이 된 후에야 효연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 그래서 더 와닿았는지 모른다. 더 안타깝기도 했고. “저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라고 했던 혜정은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몰랐다. 자길 사랑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원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20살이 되기만을 기다렸지만 이제 어른이 된 자신은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혜정이 남 같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흘러가는 물흐름에 따라 조용히 부유하는 존재였던 혜정이 진짜 유령이 되어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을 거슬러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 자기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추적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지 않았다. 응원하고 싶을 뿐이었다.

 

효연은 또 어떠한가. 그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던 효연은 언니의 작은 방조차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개인의 ‘노오력’은 요구되는 것에 비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 실패는 또다시 개인의 ‘노오력’으로만 구제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노오력’이라는 건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그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되니까.

 

나에게도 효연이 가진 욕망과 같은 욕망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성공’이 내 삶을 완전히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다. 함께 성공을 위해 달릴 사람을 찾은 것도 아니고 다른 성공의 길을 찾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삶이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같지만 또 너무나도 다른 삶들을 바라보는 것이 힘이 되는 기분이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확히 몰랐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환청일 거라 믿으며) 외면하고 더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던 혜정이 “사람이 500만 원 때문에 사채를 쓰기도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립된 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나의 감각을 다시금 깨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유령’들을 위한 응원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청년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고민과 불안을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그 불안이나 공포를 그냥 전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들에게 유령과도 같은 고립 상태에서 우리 함께 빠져나오자고 응원한다. 서로 손을 내밀자고.

 

▲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 한해인 전소니 주연) 스틸컷    

 

리베카 솔닛은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혜정 그리고 효연에게 동일시했던 나는 ‘지금 나는 누구와 연대하고 있는가? 나는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가?’ 물으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도 계속 고민을 이어갔다. 이 영화를 본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리라는 생각에 왠지 힘이 났다.

 

마지막으로 배우에 대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부유하는 존재인 혜정과 폭발하기 직전의 존재인 효연을 연기한 한해인, 전소니 배우는 각각의 캐릭터를 정말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혜정과 효연에게 무리 없이 동일시할 수 있었던 건 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소니 배우는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배우지만, 한해인 배우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정말 흥미로운 영화로 만들어낸 유은정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기대된다.

 

한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산뜻한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 새로운 아침을 위해 열리는 밤의 문을 맞이하기 딱 좋지 않을까?

기사입력 :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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