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주, 자유부인, 위안부…한국의 ‘여성혐오’史

[페미니즘으로 보는 식민/분단/이주] 전후 냉전 질서와 남성연대

허윤 2019-09-22

※ 일다는 식민-전쟁-분단의 역사와 구조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식민지배와 내전, 휴전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가 낳은 ‘여성의 이동’, 군 성폭력과 여성동원, 군사주의와 여성의 지위 등의 젠더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구조와 여성 주체들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전쟁/분단/이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편집자 주

 

여성 상위와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시대

 

2015년 이후 한국사회의 키워드는 여성혐오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로 떠난 김군이나 ‘무뇌아적 페미니즘’을 염려하는 방송인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 여성혐오 발언은 계속되었다. 일상화된 언어폭력과 성희롱 등 한국사회의 여성혐오는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을 통해 폭발했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여성을 일반화, 집단화하여 표상하는 것은 신여성과 구여성, 자유부인과 현모양처 식의 이분법을 통해 계몽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던 기존의 여성혐오와 차이를 보인다. 여성은 더이상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취약성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역차별’론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해도 설득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선언에서부터 ‘#00_내_성폭력’을 거쳐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리부트’되었다.

 

▲ 1950년대 나오는 종합지, 대중지들은 대부분 표지가 여성이었다. 『아리랑』 1955년 4월호 표지.   

 

1959년 잡지에도 ‘여존남비의 시대’ 언급

 

물론 여성혐오가 비단 2010년대의 현상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쓰기도 했던 작가 박종화는 1959년 여성잡지 『여원』에서 여성들이 남자 이상으로 활약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한국여자 중에는 지나간 역사적 인물 속에도 남자의 볼을 쥐어지를 만큼 훌륭한 여성이 많았지만 오늘날 우리 여성처럼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모두 남자 이상으로 활약을 하기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박종화, 「해방 후의 한국여성」, 『여원』, 1959.8.)

 

박종화는 여학생 수의 증가와 여성 가장의 경제활동 등을 통해 여성들이 “남자 이상으로 활약하는” ‘여존남비’의 시대가 왔다고 진단한다. 그의 지적처럼 해방 이후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해방기 여성들은 정당 활동, 정치 활동을 위해 거리에 나섰고, 1공화국에서는 여성 장관이 임명되기도 했다.

 

노동시장은 전쟁미망인들로 가득했다. 이와 같은 활약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여성‘상위’를 외치는 것은 사실상 여성이 상위에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제나 호명당하는 자는 호명하는 자보다 ‘하위’에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여성은 축첩자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1960년 7월 전국 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이 거리로 나와 축첩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거래되는 여성과 강화되는 남성연대, ‘양공주’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은 부녀국을 설립하고 ‘매소부의 취체와 그 제도의 폐지, 불량부녀와 행려부녀자 보호’ 등 공창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공창제 폐지와 사창 단속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과 달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미군의 주둔이 영속화되면서 기지촌은 도리어 확장된다. 1954년 보건사회부 통계에 따르면, 접대부는 40여만 명으로 성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UN군을 상대로 하는 여성들이었다.

 

UN군과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부’ 여성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정조’와의 대비를 통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공론장은 양공주의 존재를 비난했지만, 기지촌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최정희의 『끝없는 낭만』(1956~1957)은 여학생과 미군 장교의 사랑을 통해 ‘양공주’ 문제에 접근하는 소설이다. 엘리트 여성인 이차래는 미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로 인해 ‘양공주’라고 손가락질을 당한다. 독립투사의 아들이자 차래의 정혼자였던 국군 장교 배곤은 건강한 남성청년으로, 차래에게 미군과 헤어지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버리라고 조언한다. “백색 피부 밑을 흐르는 그 아이의 피는 저 멀리 바다 건너 미국 민족들의 피”이고, “한국에 태여난 불행한 여성”인 차래는 다시 한국여성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양공주’에 대한 당시 한국사회의 혐오가 그대로 노출된다.

 

1) 소위 양부인이라는 건 해방의 부산물이라고 하고 나서 우리 사회가 아직 정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업여성 통계란에 팔십 파센트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상매는 어른처럼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여성들이 왜 이다지도 맥을 못추고 흘러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습니다.

 

2) “그래. 차래 너 용케 아는구나. 오빠가 미워한 것이 ‘캐리’가 아니야. 네 말과 같이 전쟁하러 온, 그래서 몇 만명의 한국 여성을 양갈볼 만들어 놓은 그 사람들이야. 그 외군들이란 말이다. 그러면서도 오빤 또 그 사람들을 나쁘다고만 생각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을 한다. 오빠가 어제저녁 여기서 화를 낸건 네가 곤의 약혼자라는 것, 그리구 내 친구라는 것, 좀 더 큰 의미에서 네가 한국의 ‘인데리’ 여성이라는 데서 일꺼다.”

 

차래의 친구인 상매와 그 오빠는 여성 직업 통계란의 80%가 미군 상대의 ‘양공주’라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를 한국여성들과 외국군인들의 탓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양공주’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이나 제도, 미군의 존재를 통해 질서 안정을 도모하는 국가의 구조나 세계사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군의 주둔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국군의 약혼자이자 인텔리 여성인 차래는 미군과 결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가 사이의 거래를 숨기고 정치경제적 구조를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환원한다.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고, 집단 내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민족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적대적 외부를 설정해야만 한다. 이들 주체 혹은 집단이 순결하기 위해서는 순결하지 못한 나머지를 적극적으로 배제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결의 책임은 여성들에게 주어진다. 여성이 재생산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명예의 전달자라는 상징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집단 상상력을 통해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에 따라 가족의 미래뿐만 아니라 민족의 미래와도 연관된다.(니라 유발-데이비스, 『젠더와 민족』, 박혜란 옮김, 그린비, 2012) 이에 따르면 혼혈아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재현의 짐을 훼손한 여성은 민족의 미래를 더럽힌 것이 된다. 따라서 다시 민족 안으로 포함되기 위해서는 비-순결의 표지인 혼혈아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이차래는 아들 토니를 보육원에 버리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하얀 눈과 오버랩된다. 양공주는 죽고, 민족국가는 눈처럼 순결한 새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인 남성들에 의해 도마 위에 오른 ‘자유부인’

 

195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주인공 오선영을 통해 ‘자유부인’이라는 유형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가게의 공금을 횡령하고, 대학생인 애인과 땐스홀에 출입한다. 파리양행으로 출근하는 것을 8.15해방보다 “참다운 민주해방”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오선영을 통해 연애와 섹슈얼리티는 민주와 자유의 본뜻을 훼손시키는 시대풍조의 표상으로 젠더화된다. 이에 내포 작가는 “자유와 방종이 혼동되어, 사회 질서가 그로 인하여 파괴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잠시 무시해도 좋으니, 여성 각자에게 지각이 생길 때까지는 아낙네들을 엄중히 단속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여성 ‘일반’에 대해 강한 혐오를 드러낸다. 즉 잘못된 자유, 민주는 오롯이 여성의 책임인 것이다.

 

▲ 영화 <자유부인>(1956년, 한형모 감독) 포스터 

 

『자유부인』의 엄청난 성공은 서울신문을 통해 정비석의 소설을 읽었을 ‘지식인 남성’들의 열렬한 호응에 기대고 있다. 즉 1950년대 여성혐오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텍스트였던 것이다.

 

잡지 『여성계』 1955년 1월호는 ‘최신형 여성’을 기생충형, 모사형, 지식여성형, 귀부인형, 문화인형, 쁘르죠아형의 6종류로 나눈다. 이 글은 1950년대 여성의 허영이나 과시를 문제 삼으며 강한 혐오를 드러낸다. 특히 쁘르죠아형은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로서, 가사는 식모에게 맡겨두고, “민주주의와 남녀평등은 입버릇처럼 외우고 다니나 그실 민주주의가 뭔지 그 초보조차 깨닫지 못”한다며 이들을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최신형 여성’의 특성은 정비석이 지적한 ‘자유부인’과도 맞아떨어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문화적 취향을 갖추고 있으며,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여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때로 이 ‘자유부인’이 공산주의자로 치환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반공 검사로 유명한 오제도는 공산주의를 유혹하는 여성으로 재현한다.

 

근대적인 유행형을 허다히 생산하는 찬란한 20세기에 또 하나 사교계의 툭 티어난 명화 하나가 있으니 그가 바로 화제의 S양인 것입니다. (중략) 애교에 흘러넘치는 웃음과 제스취어, 이 근사한 전체에 어느 듯 옛 모습은 사라지고 많은 남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중략) 늘 자신의 태도를 명백히 하지 않는 운큼한 여성입니다. (중략) 될 수만 있다면은 온 세계의 뭇 남성들을 상대하고 싶은 것이 S양의 얄

기사입력 : 2019-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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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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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19/09/22 [13:35]
자유부인 시절이 이상할 정도로 여자들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하느라 그런 거군요. 남성연대 여성혐오 하더니 결국 헬조선이 됐죠.
브레이브 19/09/23 [17:18]
재밌게 읽었습니다!!
독자 19/09/26 [16:00]
정독 정독 했습니다. 진짜 멋진 분석에 감탄했어요..
ann 19/09/28 [14:20]
윤정옥 선생님의 그 글은 정말 울컥했어요. 여성의 눈으로 해방기와 건국시기를 살펴보고 해석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19/10/05 [15:08]
새로운 사실과 생각들을 많이 알게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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