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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와이어 하네스(Wire Harness) 노동자
<기록되어야 할 노동> 정년퇴직한 ‘정여사’의 17년 시간
리온소연   |   2019-10-27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편집자 주

 

어머니의 노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녀들은 얼마나 될까? 엄마가 어떠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집에서 ‘정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엄마는 아침이면 바쁘게 출근하고, 잔업 후 집에 돌아오면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은 눈에 실핏줄이 터져 벌건 토끼 눈이 되어 내 속을 태웠다. 그만두라고 해도, 엄마는 파스를 붙여 달라며 등을 보이고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런 정여사가 정년퇴직을 하였다. 나와 동생들을 위해 삶을 내어준 엄마의 시간, 그 17년의 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 손녀를 안고 포즈를 취한 ‘정여사’     ©촬영: 리온소연

 

단자, 하우징, 포선 작업, 핀 삽입, 회로 검사…

 

오전 일곱 시, 알람 소리가 울리면 정여사는 하던 집안일, 부엌일을 멈추고 가방을 챙겨 달려나갔다. 통근차 오는 시간에 맞추어 뛰어다니느라 바쁘게 살았다.

 

그 해는 큰 딸인 내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아래로는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동생들이 있었다. 세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돈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일을 찾던 중, 친구의 소개로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하였다. 2002년 2월 14일. 정 여사는 첫 출근하던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건이 나오면, 기계에 찍혀 나오는 단자의 불량을 검사해서 정품만 출하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했어. 여러 가지 부품을 합쳐서 전자제품을 만드는데, 와이어를 탈피해서 모양대로 하우징에 핀을 삽입하고 단자를 찍어. 하우징은 부품이 들어 있는 상자 모양을 말해. 단자가 똑바로 찍혀 나오지 않고 와이어나 심선이 이탈되는 것을 찾는 일이야. 와이어가 미삽입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는 하우징했을 때 그 부분이 분리되어 제품 전체를 쓸 수 없게 돼. 수동으로 와이어를 탈피하거나 단자를 찍을 때는 불량이 생기거든. 그걸 발견하는 일이야.”

 

외주로 나가는 출하량이 있기 때문에 매일 확인하는 단자의 양은 달랐다. 하루에 몇천 개 찍거나 몇만 개 찍을 때도 있었다. 정 여사가 일한 회사는 삼성의 협력업체여서 삼성의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를 주로 생산하였다. 제품의 종류, 모델에 따라 하는 작업이 달라졌다.

 

초보 기술자가 단자를 찍을 때는 불량이 더 나오기도 했다. 기계에 데이터값을 입력해 주어도 전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동이라 해도 와이어를 변경하는 일은 사람이 해주어야 했다. 와이어는 롤마다 길이가 달라 1미터에서 더 긴 것도 있다.

 

불량 검사일이 손에 익자 다른 업무로 배치되었다.

 

“일의 분류가 많아. 처음에는 불량 검사를 했고, 단자 찍는 것과 포선 하는 것을 배우고 핀 삽입하는 것도 해봤어. 하우징에 핀 삽입을 하는데,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가. 삽입에는 규칙이 있어서 어느 색 핀은 어느 곳에 정확하게 넣어야 해. 잘못 넣으면 불량이 돼.”

 

“제품이 잘 만들어 졌는지 최종적으로 검사하는 회로 검사도 해봤어. 회로의 어느 부분에 불량이 있다고 알려주는 신통방통한 녀석이지. 하나의 제품을 만들려면 포선으로 완전체를 만드는데 공정이 무척 엄격해. 기계를 사용해 전선을 벗기는 자동 탈피, 열 탈피도 있어.”

 

▲ 2002년부터 엄마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와이어 하네스를 다루는 기술자로 일했다. 각 제품마다 내부에 부품과 전선이 정확히 삽입되고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동이 배어있다. (출처: pixabay)


하루를 버티게 해준 건, 마음 맞는 동료들과 커피 타임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면 오전 10시 30분에 간식 타임이 10분 있다. 이때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온다. 동료와 마시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가 그날의 힘이 된다. 12시 30분에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지고, 오후 5시 반까지 일한다.

 

거의 한두 시간 잔업이 있어, 집에 오면 저녁 8시가 넘는다. 잔업을 할 때와 기본 시간만 근무했을 시 급여의 차이가 상당해서 대부분 잔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한 시간 잔업을 할 때는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이어 일했다. 두 시간 잔업을 할 때는 회사에서 김밥을 주고 세네 시간 잔업이 추가될 때는 저녁 식사를 주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면 밥값이 나왔어. 사무실 직원은 밥값으로 3천5백 원을 주고 (공장)노동자들은 2천 원을 주었지. 우리도 금액을 올려달라고 하니, 모두 지정 구내식당에서 먹는 것으로 결정되었어. 식당에서 따뜻한 밥 먹게 된 거지. 도시락 싸서 다닐 때는 엄마 김치가 맛있다고 인기가 많아서 반 포기씩 가져갔었어. 서로 싸 온 반찬 먹는 재미가 있었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팀워크가 좋아서 일을 잘했다고 한다. 세탁기는 큰 판에 세네 명이 같이 작업을 해야 해서 팀워크가 중요하다. 포선으로 고정하기 좋게 만들어 세탁기에 조립하게 된다. 포선은 와이어로 핀 삽입을 할 때 하얀 줄로 묶는 일을 말한다. 부품 한 개 들어가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세탁기 버튼 하나에도 부품과 전선이 정확하게 삽입되고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도록 애쓰는 정여사와 같은 노동자들의 공이 들어가 있다.

 

“3층까지 있는 회사에서 엄마는 주로 1층의 단자 찍는 쪽에 있었어. 회로 검사 일을 할 때는 다른 층으로 가서 일하기도 했지. 그날의 제품에 따라 각자 혼자 일할 때도 있고 같이 일하기도 해.”

 

“마음 잘 맞는 동료 여섯 명이 있었어. 회사 다니면서 행복한 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도우면서 일한 기억이야. 우리에게 맡겨진 일, 그날의 숫자를 다 채웠을 때의 재미가 있었지. 마음 맞아서 일을 빨리 끝내면 성취감이 크고 말이야. 같이 일해 보면 주어진 내 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것을 빨리 끝내고 옆에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 우리는 의협심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도우며 하는 분위기였어.”

 

하얀 장갑이 까맣게 될 때까지, 그동안 쓴 파스 양은?

 

퇴근 후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한두 시간 눈을 붙인 후, 일어나 저녁 식사를 했다. 작은 부품들을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보아야 하는 일의 특성상 눈의 충혈이 잦았다. 안과에서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을 쉴 수는 없었다. 눈의 실핏줄이 터질 때면 안과에서 인공눈물을 처방받아 넣었다. 아직도 서랍장에는 미처 사용하지 못한 안약들이 쌓여 있다.

 

발 페달을 밟고 하루종일 작업을 하는 날에는 잠을 자다 다리에 쥐가 올 때도 종종 있었다. 저녁마다 통증을 줄이려 등과 어깨, 다리에 파스를 붙였다. 어느 날 파스를 붙인 자리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파스 알레르기라고 했다. 그렇게 17년을 다녔다.

 

▲ “깡다구”로 일한 17년을 뒤로 하고 올해 2월 정년퇴직을 한 엄마. 나와 딸, 우리 세 모녀는 운동도 같이하고 여행도 같이 다닌다.     © 촬영: 리온소연

“깡다구로 다닌 것 같아. 같이 입사한 사람들 다 몇 년을 못 하고 그만두었는데 나는 계속 다녔지. 적성에 맞았어. 악착같은 것이 있어서. 배우는 것은 더디게 배워도 꾀를 내지 않고 꾸준히 했지. 회사에서도 꼼꼼하게 잘한다고 소문났어. 내가 정직하게 일을 한다는 것이 중요해. 남이 보거나 안 보거나,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하나 하면 나도 하나는 일해야지.”

 

하얀 작업용 손 장갑이 까맣게 되면 바꾸고 또 바꾸어 가며 정여사는 그렇게 악착같이 17년 동안 일하고, 올해 2월 28일 정년퇴직을 하였다.

 

퇴직 후 정여사는 디스크 한 개가 터져 한 달간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병원에서는 같은 자세로 오래 일하다 보니 생긴 것이라고 했다. 디스크가 조금만 밀려 나와도 아프다는데, 터질 때까지 참고 또 참고 일했던 미련함, 밤마다 파스를 붙이며 견디고 버티는 것이 일상이었던 삶이 아우성을 친 것이다.

 

“회사 다닐 때가 좋지. 일할 때가 좋아. 인생은 도전하고 움직여야 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지. 수입이 있어서 필요할 때 쓰고 신랑한테 의지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이제, 당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

 

“앞으로 재봉이나 수공예품, 태극권을 배워보고 싶어. 등산도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어. 이제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 감사해.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이제는 나를 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매주 목요일이면 엄마, 딸 아이와 나란히 앉아 몸 살림 운동을 한다. 정여사는 환갑이 될 때까지 관심받지 못했던 자신의 몸에 집중하여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고 몸을 바로 펴주고 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세 달 후에는 삼대 모녀가 함께 베트남 ‘한 달 살이’를 하러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문화센터 한번 다니지 못했던 엄마가 일상의 도전과 새로운 경험 속에 나처럼 좋아하는 것의 목록과 장소가 많아지면 좋겠다.

 

1958년 개띠 정여사가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기획 연재를 위해 자문해주신 분들입니다. 고주영(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 박준우(프리랜서 작가), 이민영(비전화공방서울), 이충열(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최하란(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

기사입력 : 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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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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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19/10/30 [15:10]
엄마의 노동 나도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무직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밥값을 차별하지.. 그래도 요구해서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거 멋져요. 역시 말을 해야돼 또다시 확인했어요.
주명 19/11/01 [17:08]
환경만 괜찮다면 공장 일도 할만 하던데 너무 얘기 안되고 그래서 반가웁네요. 어머니의 말씀에서 힘이 느껴졌어요. 정년까지 일하셨더니 존경스럽고 앞으로 자녀 손녀와 더 행복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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