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디펜스와 ‘알아차림’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안정감 찾기

최하란 2019-10-31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나의 명상 이야기

 

스물여섯,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오래 앉아 지내던 삶이 몸을 망쳤다. 경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이 사라지면서 일자목이 됐고 경추가 신경을 눌러서 통증이 목과 어깨뿐 아니라 가슴까지 내려왔다.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제대로 누워있기도 힘들었고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있어도 아팠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일 년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완쾌될 거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삶이 처참하게 느껴졌다. 2주 정도 지나니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쉴 수 있게 됐다. 좋지 않은 자세가 몸을 망쳤다고 하니, 내가 망친 몸 내가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요가원을 찾았다. ‘웰빙’이라는 단어가 뜨면서 막 요가 열풍이 불고 있던 때였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명상을 해보았다. 처음이었지만 꽤 진지했다. 명상이 주는 고요함과 깊은 느낌이 좋아서 절에 들어가 철야명상을 하기도 했다. 높은 단계의 정신 상태에 놓여있다는 희열에 많은 밤을 새웠다.

 

처음 내게 명상의 길을 인도해주신 선생님을 따라 화두선(話頭禪)을 수련했다. 그러나 나는 선방에 앉아 참선을 하며 “내 존재가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기에는 세상사에 너무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명상을 하려고 앉아서 ‘이 뭐꼬’를 하는 순간 답답하고 온갖 생각들이 떠돌았다.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은 내면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더는 화두를 들지 않았다.

 

▲ 미얀마 마하시 명상 센터     © 최하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2011년 ‘알아차림 명상(mindfulness)’ 수련을 하기 위해 미얀마에 갔다. 명상을 지도해주시는 큰 스님이 내게 물었고 나는 답했다.

 

“명상을 통해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영롱한 빛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요?”

“행복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 행복, 행복이라 알아차리세요. 그뿐입니다.”

 

나는 분명 이런 대화를 이미 책에서 여러 번 읽었고, 명상 선배들에게도 여러 차례 들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숨이 막혔다. 많은 것이 그렇듯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한 가지 말을 새겨듣게 됐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 살아야지, 수행도 잘해야지 하고요. 그런데 명상은 잘하려고 하면 더 안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바로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2015년에는 틱낫한 스님이 계신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에 갔다. 그곳에서는 앉아서 명상하는 시간이 많은 날에는 공식적으로 하루 두 번, 삼십 분이었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걷고, 움직이며, 손을 씻으며, 식사를 하며, 빨래를 하며, 차를 마시며, 일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또는 그렇게 깨어있고자 하지 않으면서, 단지 몇 시간 동안 혹은 하루종일 혹은 밤새도록 앉아 명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었다.

 

▲ 프랑스 플럼 빌리지의 하루 일과표     © 최하란

 

나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 잘 느끼고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앉아서 명상을 하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심지어 말다툼을 하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음식의 맛과 질감을 즐길 수 있었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었고, 몸의 감각을 느끼며 실력을 높일 수 있었고,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고마워할 수도 있었다.

 

위험, 폭력 상황에서 셀프 디펜스와 ‘알아차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 갈등과 대립, 충돌을 겪고 감정적 격랑이나 소모를 경험한다. 물리적 위험 상황, 폭력이나 범죄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을 정당한 방법으로 지키는 기술인 셀프 디펜스(self-defense)는 크게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정신적 요소, 육체적 요소, 기술적 요소, 전술적 요소다.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큰 버팀목은 정신적 요소다. 마치 다섯 손가락 모두 소중하지만 가장 큰 힘을 내는 손가락은 엄지손가락인 것처럼 말이다.

 

위기에 처한 순간, 우리는 공격자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맞닥뜨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의 반응도 처리해야 한다.

 

위험과 폭력 상황은 보통 정신적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자주 두려움, 불안, 증오, 분노 등의 강렬하고 파괴적인 감정과 정서를 촉발한다. 자율신경계는 혈액으로 많은 양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얼어붙거나 도망가거나 저항할 것이다.

 

도망가거나 저항하는 것으로 반응했다면, 이러한 선택은 자극과 정보를 흡수해 잘 통제된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얼어붙었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얼어붙은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폭력적인 대결에서의 혼란,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데 마음과 몸은 하나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욕을 하고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면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낄 것이다. 마음에서 감정이 일어난다.

 

▲ 폭력적인 대결에서 방어와 반격     © 스쿨오브무브먼트

 

마음은 몸을 자극해서 심박 수가 올라가며 얼굴이 붉어지고 동공이 팽창된다. 이러한 육체적 반응은 우리 정신에서 특정한 생각 패턴을 만들어 낸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왜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등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감정은 몸을 자극하고, 몸은 정신을 자극하고, 정신은 감정을 자극한다. 이 악순환으로 격렬한 분노나 극심한 두려움, 혼란까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우리는 대부분 강렬한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안전해지는 방법에 집중한다. 손을 얼굴 높이로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한다. 흥분하거나 위협적인 상대에게 진정하라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한다. 멀리 떨어지거나 안전한 위치로 이동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인 충돌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방어하고 반격한다. 그다음 안전한 경로와 장소를 확인해서 피신한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고할 수 있다.

 

상대가 욕을 하거나 구슬리거나 협박할 수 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왜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무조건 말을 들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휩싸이지 말고 셀프 디펜스의 절차대로 일을 처리한다. 두려우면 이러다 나는 죽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말고 두렵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방어와 반격의 태세를 취한다.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얼어붙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다음 얼어붙은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손을 사용해 방어할 준비를 하고, 상대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 정신적 안정감을 위한 방어와 중재의 자세     © 스쿨오브무브먼트

 

정신적 안정감 찾기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은 정신적 안정감을 높인다. 정신적 안정감은 위험 상황에서 자제심을 향상시키고, 감정을 통제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더 신속하고 더 정확하게 하도록 만들 것이다.

 

다행히 문제 상황이 큰 탈 없이 지나갔을 수 있다. 이럴 때 왜 스스로 아무것도 못 했는지, 제대로 항의 못 했는지 자신을 탓하지 말자. 자책하고 있는 마음을 알게 되면, 내가 자책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자.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지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당신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왜 그랬는지 무엇을 해야 했는지 성급히 말하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말을 알아차리며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알아차린다’는 말이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데만 집중한다. 내가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알아차림이다. 이제 글을 읽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코로 숨을 쉬는 것을 느낀다. 서너 번의 호흡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고요해지고 오롯이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알아차림이다.

기사입력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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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뜰 19/11/01 [16:10]
니도 쉼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떻게든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11/03 [12:45]
마지막 문단 웃음이 절로 나네요 ㅎㅎ 알아차렸어요 
덜어내기 19/11/07 [14:34]
이고득락의 욕구가 너무 강하면 그게 곧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은 단지 욕심을 덜어내면 끄~으읕이 된다고 생각함니당.  그러면 명상도 참선도 그 어떤 도 닦는 일도 다 필요 엄씀다
쿠키 19/11/12 [12:35]
호신은 체력보다 정신력이라고 배웠어요. 그때 수업 생각이 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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