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은 ‘장애인 동료상담사’입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일’의 소중함

공존 2019-11-14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편집자 주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나는 중증의 뇌병변 장애를 가진 40대 여성이며, 장애인 동료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동료상담사라는 직업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겠다. 장애인 동료상담사는 장애인이 스스로 자립 생활을 하고자 할 때 필요한 물리적 혹은 정서적 요건을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 도움을 주는,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직업이다.

 

처음에 이 직업은 1970년대 미국에서 장애인 자립생활 패러다임이 형성되면서,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대안 직업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초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실제로 자립생활을 지원한다기보다 장애인 운동 차원에서 새로운 장애인 운동의 패러다임을 알리고 고취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장애인이 홀로 스스로의 인생과 생활을 확립하기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다.

 

내가 이 직업에 종사하고자 마음먹게 된 시기는 2000년 후반에 장애인 자립생활센터(IL센터)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처음 시작하거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청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장애인 동료상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그 필요성에 절실히 공감했다. 그래서 장애인 문제를 당사자 중심주의로 풀어 보자는 생각에 2년에 가까운 교육과정(초급, 중급, 고급, 리더 양성 과정, 강사 자격 과정)을 수료하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장애인동료상담사 양성 과정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동료상담은 일반적인 상담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나’와 같은 장애인과 소통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삶의 기술, 요령 또는 정보를 공유해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수직관계가 아닌 상대적으로 수평관계, 즉 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연대감이 형성되어 공감과 신뢰를 얻기가 유리한 만큼, 상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자주 들은 말이 “상담은 무조건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였다. 장애인 동료상담은 그런 정도에만 머물러서는 절대 제대로 된 상담이라 할 수 없다. 경우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상담자가 내담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방법을 제시하고 때로 리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내담자를 ‘나’와 같은 장애인으로 대하며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담자에게 어디까지 공감해 주고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그 선을 찾는 것이 나에겐 언제나 제일 큰 숙제이자 고민이다.

 

고민이 되는 지점이 많지만, 상담을 통해 내담자가 혼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자존감을 회복해 자립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상황에 처한 내담자를 만나게 된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던 한 내담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중증 뇌병변 장애여성이었다. 30년 가까이 집안에서만 지내온 재가 장애인이었던 그녀.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죽음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시설에 보내졌는데, 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립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3달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며 수급권을 얻어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받고, 임대아파트를 신청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 어엿한 지역사회의 이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내기 동료상담사치고는 잘 해냈다는 안도감과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 장애인동료상담사 양성 과정에 참여했을 당시 필자가 그린 그림     ©공존

 

한번은 전혀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내담자가 찾아오기도 했다. 중증 장애여성으로는 드물게 비장애 남성과 결혼해 아들도 낳고 안정된 직업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는 장애인의 몸으로 육아와 가사와 직장 일을 모두 감당해야 했다. 남편은 그녀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정신장애까지 얻어 중복 장애인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걸 이유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친권까지 빼앗겼다. 게다가 20여 년을 힘들게 버텨온 직장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퇴사했다. 가부장적 인식이 여전히 뿌리 깊은 사회에서 장애여성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해 온 그녀의 아픔, 분노, 안타까움, 절망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고통스럽고, 때로 위험했던 동료상담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희귀병으로 최중증 장애를 갖게 된 내담자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장애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몇 번이고 휩싸였다. 그런 그녀와 2~3달 정도 동료상담을 진행하면서 나 또한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자살 기도를 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그녀를 보면서, 아무런 힘도 되어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한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결국, 나는 그녀의 자립을 지원할 수 없었고 병원 등 전문기관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라포르(rapport, 두 사람 사이 상호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라포르를 형성하는 데는 길게는 몇 달이 소요되기도 한다. 특히 장애를 이유로 소외와 차별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여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상담자가 자신의 내담자를 포기해야 했던 이 경험은 나에게 너무 뼈아픈 일이었다.

 

▲ 장애인동료상담사 양성 교육을 받으며 필자가 작성한 메모     ©공존

한번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30대 중반의 재가 장애인을 상담한 적도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했는데, 다른 가족들은 오히려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임신중지와 침묵을 강요했다. 거기다 강제로 장애인 시설에 입소시키려고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녀와 함께 임신중지를 할 방법을 찾고, 자립할 수 있는 집을 구하고, 부모로부터 얼마간의 경제권도 얻어 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를 도왔다는 이유로 그 가족과 주변인에게 무서운 협박과 신변의 위협을 받아 얼마간 외출조차 제대로 못 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지금도 두려워지고 이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자립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가는 그녀를 보면 힘이 나기도 한다.

 

이 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는 왜 이리도 약자에게 무관심하고 가혹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장애라는 굴레, 거기에 여성이라는 이중 삼중의 차별과 소외, 그 때문에 생겨나는 경제적 힘겨움 등. 여전히 여성장애인이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설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너무도 미비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살아내야 하고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수많은 장애여성이 나와 같은 조력자를 만나 소통하고 서로 공감하며 자신이 지지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위로받고 자신감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직업으로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나의 일

 

대부분의 장애인 동료상담사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상담사는 그 위치가 불분명해서 센터 내의 잡무와 허드렛일까지 하는 실정이다. 이 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공을 쌓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장애인 동료상담사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초급 과정의 짧은 교육만 이수하고도 동료상담사로 일할 수 있는 제도, 장애인끼리 서로의 억울한 처지나 부당한 차별 등을 하소연하고 단순히 들어주는 일이라고 과소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우후죽순으로 동료상담사를 배출하는 경향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나는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장애인 동료상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이 없으면 상담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실은 상담에 대한 보수를 받기도 어렵다. 왜냐면 내담자인 장애인 대부분이 경제력이 아예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 동료상담사가 좀 더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다양한 양성 과정을 거쳐,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독자적인 직업으로서 보수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 서울 지역 장애인동료상담사 파견 사업 안내문 중 일부     ©출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

 

나는 10년 가까이 거의 혼자서 장애인 동료상담을 해왔다. 대부분 상담자는 자신의 활동량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선배 상담사, 즉 슈퍼바우저와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나 상담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상담하며 조언과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치유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적 시스템에 합류하지 못한 나는 상담 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표현하거나 치료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오롯이 혼자 그 모든 상황을 조절해 나가야 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장애인 동료상담은 같은 장애를 가졌다는 단순한 동료애로 접근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내담자의 삶에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 지치고 후회할 때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잘 이겨낼 방법은 솔직히 따로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버텨내는 수밖에.

 

그리고 가능한 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장애인 동료상담을 하다 보면 법, 폭력, 차별, 인권, 가정, 사랑, 직업, 시사, 종교, 행정, 사회복지, 장애학, 의료, 교육, 직업, 육아 등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에게 필요한 것을 차근차근 찾아갈 수도 있지만, 상담자가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추고 시작한 상담과 그렇지 못한 상담의 결과는 차이가 크다. 이런 점을 꼭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중증 장애여성으로서 10년 넘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조력하는 장애인 동료상담사로 일하며 느낀 고충과 보람, 그리고 이 직업의 필요성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장애인, 그중에서도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이 직업이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앞으로도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장애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기획 연재를 위해 자문해주신 분들입니다. 고주영(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 박준우(프리랜서 작가), 이민영(비전화공방서울), 이충열(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최하란(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

기사입력 : 2019-11-1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밴드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ildar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