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예방책…페미니즘교육, 포괄적 성교육 제도화하라

21대 국회 성평등 정책 가이드라인①

박주연 2020-04-11

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깜깜이 선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책과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남성중심 정치판도 바뀌지 않을 모양새인 탓에 총선을 향한 관심이 줄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유례없이, 출사표를 던진 ‘여성 청년’ 후보들이 가감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게 된 선거이기도 하다.


정보가 중요하다. 중구난방 정치판이지만, 많은 시민단체가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주요 이슈를 강조하고 있으며 꼼꼼하게 정리한 정책 제안도 발표했다. 선거 전 후보 검증에 유용할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선거 이후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이슈들을 짚어본다.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마”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해야


먼저 ‘성평등 교육’과 ‘포괄적 성교육’이다. 디지털에서 성 착취물을 거래하는 ‘n번방 사건’의 주요 공모자 중에 10대 남성들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미성년자 남성들의 성범죄는 과연 ‘일부’의 ‘일탈’일까?


가해자 처벌은 정의를 구현하는 데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 바로 ‘교육’이다.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요구는,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다. 2018년 1월 국민청원에 올라왔던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교육 의무화’는 동의 21만 명을 넘겨 청원답변 9호로 진행되었을 정도였다.

 

▲ ‘포괄적 성교육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2018년 2월 27일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대한 입장발표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열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외쳤다.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하지만 교육부는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유난히 조건이 좋은 알바는 하지 말고, 이성 친구와는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등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묻는 2015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지하기는커녕, 개편하는 작업도 2019년 2월 이후 중단된 상황이다.


이런 ‘성교육에 관한 의지 없음’이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강간문화 바꾸려면 ‘포괄적 성교육’ 미루지 말라


많은 시민단체가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를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신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통해 청소년에게 강간문화를 교육해 온 스스로의 과오부터 인정해야 한다.


‘n번방’ 가해에 가담한 10~20대 남자 청소년을 끔찍한 악마나 특별한 예외상태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괴물이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남성중심 문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강간문화와 성착취 구조가 그들을 키워낸 토양이자 양분이다. 이러한 토양을 제공한 교육부는 표준안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각 정당에 질의한 내용 중, 현행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에 대한 응답.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페이스북


둘째, 여성가족부와 교육부는 ‘성폭력 예방교육’의 양적 확대가 아닌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성폭력 예방교육은 폭력의 잔혹함을 강조하기보다 ‘성적 동의’를 주요하게 다뤄야 한다.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성적 동의’를 얘기해야 한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이 아닌, 안전한 성관계와 평등과 존중의 관계 맺기를 다룸으로써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능력을 향상하는 성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셋째, 교육부는 여성가족부와 협업하여 양육자 대상 ‘디지털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고 배포해야 한다.


양육자들은 현 상황에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공교육에서 다루는 ‘성’이 성범죄를 예장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개별적으로’ 찾는다. 거대한 사회적 폭력을 개인이 짊어지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여성가족부와 협업하여 양육자를 위한 디지털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여, 여러 공동체와 협력을 통해 학교 성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남자 청소년의 성평등 감수성 향상을 위해 ‘적극적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n번방’이 교육계에 남긴 과제는 명확하다. 바로 남자 청소년의 인권과 성평등 감수성을 향상시켜 성평등의 주체로 성장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에게 인권과 성평등, 반폭력, 민주시민성에 기반하는 ‘포괄적 성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성적 대상화, 강간문화, 성착취 구조의 토양을 거부할 교육적 기회를 갖는 것 또한 그들의 권리이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섹슈얼리티 교육을 뜻한다. 국제인권법 사회권 규약은 포괄적 성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 페미니즘교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가 펴낸 『학교에 페미니즘을』 표지 (마티, 2018)


다섯째, 평등하고 안전한 학교를 위해 학교와 시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는 성평등한 교육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


2018년 스쿨미투 운동이 점화되었지만, 피해 청소년의 절박한 요청에 아직 제대로 된 응답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학교와 시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는 ‘성평등 교육 추진 법률 제정’, 성평등 교육 진행, 스쿨미투 관련 학생 해결 창구 조성, 교원양성과정에서 성평등 교육 의무화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여섯째, 청소년이 평등하고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정부는 추진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교육부의 보건 중심의 ‘성교육’ 정책은 이제 성평등 가치를 확장하는 ‘민주시민 교육’ 정책과 통합되어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성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된 성교육 전문기관은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가는 청소년 주체를 키우는 정책 전달체계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교육 추진 전담과’를 만들어 아동청소년의 성교육권 확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 환경을 보장하라


초.중.고 과정에서 ‘성평등 교육’과 ‘포괄적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대학에서도 성평등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대학 문화는 그렇지 않다.

 

▲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2020 총선/국회 대학가 공동대응’과 ‘민주노총 운수노조 대학원생지부’에서 각 정당에 보내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 성평등한 대학을 위한 대학가 공동입법 요구안>을 만들고, 정당들이 회신한 내용을 공개했다.  ©출처: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 페이스북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모여 “반복되는 대학 내 교수 성폭력과 인권침해,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교원징계위원회 제도 개선, 학내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와 내실화, 성평등한 대학 정책 등”을 요구하며 <성폭력 해결과 성평등한 대학을 위한 대학가 공동입법요구안>을 발표했다.


또한 11개 정당에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의 원인 진단과 해결 방안에 대한 입장”을 묻고, “대학 내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법제도 개선 방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공동입법요구안’에 대한 입장과 함께 “총선 이후 위 공동입법요구안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고 입법안을 발의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facebook.com/univemetoo)


대학 내 성차별과 사이버불링(온라인 공간에서 이메일이나 휴대폰, SNS 등을 이용해 특정인을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행위)이 디지털 성범죄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도 정치권이 주목해야 하는 이슈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를 비롯해 80여 개 대학 모임들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에브리타임은 n번방 2차가해·여성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윤리규정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n번방 성착취’ 사태가 알려진 이후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여성혐오성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지만, 플랫폼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

 

▲ 4월 7일 오전, 에브리타임 사업장 주소인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케이스퀘어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출처: 유니브페미 페이스북


전국 400개 대학교 커뮤니티 및 시간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은 일찌감치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이 공동체 내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공간으로 꼽혀왔다.


몇 년간이나 여성·소수자 혐오에 관해 문제 제기가 지속되어 왔음에도 “여기에 대해 ‘입장 없음’, ‘제재 없음’으로 일관해온 플랫폼의 태도는 N번방 사건에 대한 2차가해·여성혐오성 게시물이 유통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분명하게 연루되어 있다”고, <유니브페미> 측은 주장했다. 페미니스트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비단 플랫폼뿐 아니라 정치권의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기사입력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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