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Fat)풀이(Free) ‘프로듀스 최하은’을 만들며

<청년 페미니스트 예술인의 서사> 연극 연출가 최하은

최하은 2020-04-14

※ 2020년 많은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다양한 페미니즘 주제를 예술로 표현하고 있고, 나아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과 차별, 위계 등에 문제 제기하며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로 또 함께’ 창작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의 새로운 서사를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 연극 <프로듀스 최하은> 중에서. 2020년 1월 2일~5일 신촌극장. 극작/연출/출연 최하은 


2020년 1월 신촌극장. 분홍색 웨이브 가발을 쓰고 분홍색 교복을 입은 ‘최하은’이 무대에 있다. <프로듀스 최하은>의 타이틀곡 “Call Me Love”가 흘러나온다.

 

“엄마 아빠는 내게 말했죠/ 사랑해서 날 낳은 거라고/ 언젠가 내게도 그런 사랑이 올 거라고 (…) 하얀 드레스에 장미꽃 부케/ 영원을 약속하는 diamond ring/ 그리고 kiss kiss kiss/ 난 이제 his his his/ 말해줘 나를 사랑한다고”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의 희망적인 가사에 맞춰 최하은은 아이돌 댄스를 춘다. 그러나 최하은은 사실 90kg에 육박하는 몸을 가진 30대의 비만 여성이다. 아무리 봐도 아이돌로서 사랑받을 수는 없는 처지다.

 

“어디에 있는 거야 왜 나타나질 않아/ 나 이제 서른이야 누구도 상관없어/ 세상에 단 한 사람 날 사랑해줄 사람”

 

최하은은 차츰 절박해진다.

“묻지 마 내 이름을/ 내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았건/ 사랑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걸”

 

여전히 곡조는 활기차고 최하은은 생글생글 웃으며 춤을 추고 있다.

“Call me love!”

자신을 ‘사랑’이라고 불러 달라고 외치며.

 

최하은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무튼지 간에 어릴 때부터 예쁜 건 어지간히 좋아했다. 어머니의 패물함 속 보석들을 한참 만지며 놀았고, 소풍날이면 하얀 원피스에 베레모를 쓰고 나갔다. 레이스, 프릴, 리본, 꽃무늬 따위에 환장을 했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 시절 찍힌 사진을 보면 전부 예쁘장하게 한쪽 발끝을 세워 무릎을 굽히고 서 있더라.

 

언니와 함께 양념 통닭을 뜯으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보았다. 어느 후보는 얼굴은 예쁜데 가슴이 너무 작고 어느 후보는 드레스는 어울리는데 수영복은 안 어울린다며 품평을 했다. 어린 나는 내가 예쁠 수 있을 줄 알았다. 예뻐서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데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

 

▲ 연극 <프로듀스 최하은> 중에서. 2020년 1월 2일~5일 신촌극장. 극작/연출/출연 최하은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성장기에 접어들며 나는 급속도로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모르겠다. 많이 먹고 운동하지 않아서 그랬겠지. 게을러서 그랬겠지. 자기관리가 안 되어서 그랬겠지.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니까. 좋아했던 예쁜 원피스는 더이상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수군거림과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무척 많이 슬퍼지고 기가 죽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는데, 남들이 보는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어느덧 그냥 ‘뚱돼지’였다.

 

뚱돼지는 뭘 해도 뚱돼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공부를 잘하면 잘난 척하는 뚱돼지, 씩씩하고 활달하면 나대는 뚱돼지,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재수 없는 뚱돼지, 친구들과 잘 지내면 눈치 없는 뚱돼지, 꾸미면 웃기는 뚱돼지, 꾸미지 않으면 그냥 못생긴 뚱돼지였다. 뚱돼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뚱돼지가 아니게 되는 것뿐이었다. 살을 빼야만 했다.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서. 더 나아가서 여자로 보이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나는 아름답지 않은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못생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명제였다. 살을 빼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으면 나는 가치가 없었고, 가치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살을 빼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매일 닭가슴살과 샐러드, 고구마만을 먹는 식단. 매일 강도 높은 근력운동 한 시간에 유산소운동 두 시간. 이와 같은 자학적인 다이어트로 인한 단기간의 감량과 그에 뒤따른 끔찍한 요요 현상의 반복. 결국 나는 거의 20년에 달하는 세월의 대부분을 고도비만인 상태로 보냈다.

 

그러니까 나는 삶의 대부분을 스스로에게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왜 뚱뚱하고 못생겼지, 나는 왜 살을 못 빼지, 게으른 건가, 자기관리가 안 되는 건가,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줄까, 그래 난 사랑받을 자격 같은 거 없어, 사랑받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 끝없이 자신을 책망하면서. 욕하면서. 무시하면서. 짓밟으면서. 혐오하면서. 증오하면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탈코하고 싶다는 욕망

 

<프로듀스 최하은>은 그런 20년을 보낸 후인 서른 살의 겨울에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대국민 인기투표로 데뷔를 결정하는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패러디 형식을 띠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다. 응원하는 연습생, 소위 ‘픽’도 있었다. 투표도 열심히 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여전히 듣고 무대 영상을 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민스러웠다. 왜 나는 이런 걸 좋아하지.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외모와 상품성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평가해서 줄 세워 운명을 결정짓는 가학적이고 비인간적인 프로그램을 왜 이렇게 열심히 보지. 나 페미니스트 아닌가. 메갈리아와 강남역 살인사건, 탈코르셋 운동과 미투 운동을 겪으면서 나는 명실상부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던가. 페미니스트씩이나 되면서 왜.

 

▲ 연극 <프로듀스 최하은> 중에서. 2020년 1월 2일~5일 신촌극장. 극작/연출/출연 최하은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의 안티-페미니스트적 사고는 단순히 <프로듀스 101>을 좋아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고백하면 “너 정말 빻았구나”라는 말을 들어도 쌀 생각들을 나는 나 자신에게서 도저히 떨쳐내 버릴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저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남자를 경멸하지만, 동시에 남자가 저에게 발기하는지 아닌지로 저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저는 성추행이나 불법 촬영과 같은 범죄에 치를 떨지만, 실제로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 분노하는 대신 기뻐서 자랑을 했습니다. 저는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존중하지만, 성적으로 개방적인 예쁜 여자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걸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연히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랑 잘 남자가 없으니 나는 낙태할 일도 없겠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일처럼 그렇게 한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고 있습니다.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네가 나를 흥분시킨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따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모두가 끔찍해하는 성적 대상화조차 해당 사항이 없는 내가 치욕스러워서.”

 

이건 <프로듀스 최하은>에서 실제로 말한 대사들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이러한 모순을 견딜 수가 없다. 페미니즘은 나를 일정 부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한 새로운 종류의 자기검열과 회의를 안겨주었다.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탈코’하고 싶다는 욕망. 어느 쪽도 나 자신이다. 분명히 어느 쪽도 나 자신인데 그 둘은 양립하기 어려운 창과 방패와 같아서 나의 창은 끊임없이 부서지고 방패는 수도 없이 꿰뚫린다. 매일매일 새롭게 맞이하는 익숙한 파괴와 죽음들. 어느덧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데에, 죽이는 데에 너무 능숙해져 있었다.

 

살(Fat)풀이(Free)

 

<프로듀스 최하은>의 엔딩은 살풀이춤을 추는 것이다. 이 살풀이는 ‘살(Fat)풀이(Free)’라는 말장난이기도 하고, 삶을 영위하는 동안 무한히 죽어 나가야만 하는 최하은의 넋을 씻기고 위로하는 제의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무용을 사랑하는, 언제나 춤을 배우고 싶었던, 그러나 ‘이 몸으로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어’라고 혼자 좌절해왔던 최하은의 작은 소망을 이루는 무대이다.

 

해보니까 결론적으로, ‘춤을 춘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오랜 세월 깎이고 다져져 온 프로 무용수들의 춤처럼 노련하지는 못하다. 뒤뚱거리고 비틀거린다. 숨이 차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은은 춤을 추고 있다.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고 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춤을 춘다는 것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무대에 서 있다. 90kg인 채로. 어떠한 자격도 조건도 없이. 그냥 오늘이 공연일이기 때문에. 극장을 빌리고 관객을 모았기 때문에. 무대에 선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90kg만큼의 질량이 이곳에, 별 뜻 없이 존재하고 있다. 계량될 수 없는 정신과 함께. 종잡을 수 없는 마음과 함께.”

 

이 대사는 <프로듀스 최하은>을 만들며 나의 모순과 모순이 치열하게 충돌해 빚어낸 찰나의, 한 줄기의 빛과 같다. 모순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빠르게 척결되어 어느 한쪽의 스탠스를 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화하는 개인이며, 자신의 내면에서도 이러한 욕망과 저러한 욕망 사이의 격렬한 다툼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좁고 구불구불해 따라가기 힘든 한 줄기의 길이 보이는 것이다.

 

▲ 연극 <프로듀스 최하은> 중에서. 2020년 1월 2일~5일 신촌극장. 극작/연출/출연 최하은


최하은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프로듀스 최하은>의 관객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비록 20석 남짓 규모의 신촌극장에서 소소하게 공연했지만, 이전에 만들었던 그 어떤 공연들보다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관객들로부터 다이렉트로 꽂혀 들어오는 날것의 감상, 살아있는 그 말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니 결국 사람을 살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삶이다. 완전히 개별의 것이었던 삶과 삶이 만나고 부딪혔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그 사람을,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을 조금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프로듀스 최하은>은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제3회 페미니즘연극제에 선정되어 <프로듀스 최하은 S2: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라는 제목으로 올해 7월, 또 한 번의 1인극에 도전한다.

 

<프로듀스 최하은>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연습생들처럼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프로듀싱해서 무대에 서야겠다라는 미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시작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거친 최하은은 이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건강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이다. 건강하고 강인해져야겠다. 사회가 세운 미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나의 몸을 미워하는 대신, 나의 몸과 마주해서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눠보아야겠다고. 왜냐하면 나는 이 몸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최하은은 자신의 몸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나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보고, 보다 건강하고 강인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공부한다.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최하은은 ‘미용’이 아닌 ‘건강’을 위해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할 것이다.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정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무작정 굶는 식단 대신 저탄수화물 고단백 고지방 식단으로 교체하고, 살이 빠지는 운동 대신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운동을 한다.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반에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자학이 아닌 자기애이다.

 

자기애. 자기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최하은이 가장 못 하는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프로듀스 최하은>을 마친 지금은 어쩐지 그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다. 몸도 마음도 강해지고 싶다. 더 세게, 더 낫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내가 얼마나 강인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싶다. 나의 한계를 밀어 붙여보고 싶다. 그 끝에 원하던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공연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측정 수치 및 사진, 기록 자료를 활용할 예정이다. 매달 1일에 인바디 및 신체 치수를 측정하여 그 변화를 살펴본다. 지방간, 고지혈증, 고혈압, 생리불순 등 최하은이 건강하지 못해서 갖고 있는 질병 수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실험한다. 매일 먹은 것과 운동한 내용을 기록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간다.

 

최하은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여성들의 심신이 가부장제의 억압에 병들어 있다. 페미니스트이면서도 그러한 병증으로 인한 모순 때문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없다.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자기모순을 증명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프로듀스 최하은>이 그 병증과 모순에 대해 말하는 극이었다면, <프로듀스 최하은 S2: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는 그 병증의 치유, 모순의 해소에 대해 말하는 극이다. 진정한 셀프 프로듀싱이란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긍정하는 데에서 온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 있게 외쳐보고 싶다.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그래서 강인하고, 따라서 지금 행복하다고.

 

▲ 연극 <프로듀스 최하은> 중에서. 2020년 1월 2일~5일 신촌극장. 극작/연출/출연 최하은


이 땅의 무수한 최하은들에게

 

공연을 보고 난 여성 관객들이 나를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 공연이 2020년 1월 첫 주였기 때문에 ‘2020년 기준으로 가장 여자를 많이 울린 여자가 되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나를 붙잡고 운 여성 관객들 가운데에서는 내가 봤을 때 ‘예쁜’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 예쁘다 소리를 듣고 컸을 것 같았고, 지금도 이성에게(또는 동성에게) 사랑받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최하은에게 그다지 감정 이입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내가 목에서 손이 튀어나오도록 갖고 싶어 했던, 부러워했던 외형의 미를 갖춘 사람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이 나를 붙잡고, 괜찮냐고, 내가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공연 보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마음 깊이 공감했다고, 나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곳에서 무수한 최하은들을 만났던 것이다. 예쁘든 예쁘지 않든, ‘탈코’를 했든 안 했든, 연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 사회의 무언가가 우리를 모두 최하은으로 만들었다.

 

나는 정작 <프로듀스 최하은>을 제작하는 동안에는 그다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내가 삼십 년 살면서 겪었던 온갖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의존적으로 만들어 통제하는 행위)과 혐오 발언들, 내 인생을 크게 좌우했던 성폭력 경험까지 모두 말하면서도 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감정에 사로잡혀서 넋두리, 한탄이 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극장에서 무수한 최하은들을 만나면서 그제야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 입고 자그마하게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린 최하은들이 있다.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없고 어디로도 발을 내디딜 수 없는 무력하고 슬픈 존재.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해야만 했던 찌꺼기 같은 나. 그것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던 것이다. 말을 걸었던 것이다. 당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외로운 찌꺼기에게.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갈구해 온 ‘사랑’이라고.

 

모쪼록 상처받지 말기를

 

사실 자신이 쓰고 만든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긴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만들어온 작품에 대해서, ‘본 대로 느끼고 느낀 대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연극의 가장 멋진 지점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하나에 수많은 불화하는 개인들이 관여한다. 작가가 있고, 연출이 있고, 배우가 있고(물론 1인극 <프로듀스 최하은>은 작가와 연출과 배우가 전부 나 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 관객이 있다. 그러므로 무대에 올라간 작품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창출해내는지는 오롯이 관객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내 작품을 이렇게 해석해 달라고 작품 바깥에서 말하는 것은 약간 권한의 침해 같기도 하고, 모자랐던 부분을 말로 메우려는 변명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리고 <프로듀스 최하은>을 보았거나 보지 못한 독자들과 이 글을 통해 만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대에 서는 일과 마찬가지로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프로듀스 최하은>의 프로그램북에 실린 문장이다. 이 글을 쓴 이유, 이 땅의 무수한 최하은들에게 보내는 말이다.

 

“아,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생각났다. 모쪼록 상처받지 말기를. 만일 상처받았다면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믿기를. 상처 준 사람보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덜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엔 다 행복하자고 하는 짓 아닌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필자 소개: 최하은. 1인 극단 ‘사거리가 되어라’의 대표이자 연극평론가의 모임인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고정 필진. <판소리극 두다> <43kg만큼의 상아> <뱀파이어와의 하룻밤> <DRAGx여성국극> 등 다양한 갈래의 여성 서사와 페미니즘 연극을 만들어왔다. 연출과 작가와 배우라는 경계, 창작과 비평이라는 경계, 연극과 연극 아닌 것의 경계, 그 모든 경계 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기사입력 :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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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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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han 20/04/15 [23:59]
당신 참 멋지네요. 심장이 쫄깃해졌어요.
multiflora 20/04/16 [12:36]
이 공연 본 사람들이 부럽네요. 글만으로도 한 편의 연극을 본 느낌이 들었어요. 또 읽어보게 될 것 같아요.
이리오 20/04/16 [13:50]
사랑해요 연극인 최하은!
랄라 20/04/17 [16:11]
멋진 기록이네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세모인어 20/05/10 [01:03]
정말 감사해요.
시은 20/05/19 [21:0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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