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생존자의 ‘살아남은 힘’에 박수를!

일본에서 #remetoo 프로젝트를 시작한 야하타 마유미

가시와라 도키코 2020-06-04

작년 세계여성의날(3월 8일)에 도쿄에서 열린 여성행진(Women's March)을 계기로 데이트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야하타 마유미(八幡真弓) 씨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집회나 구호는 저에게 잘 안 맞아요”라고 말하며, 9일 뒤에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성폭력, 가정폭력/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살아남은 힘’을 격려하는 <대단했어, 졸업식> 행사였다. 개방적인 공간에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카페가 있고, 토크가 있고 요가가 있고 예술이 있고 비눗방울이 있는, 눈 부신 빛이 가득한 행사처럼 보였다.

 

“축제를 지향해요. 우리의 라이벌은 휴일의 쇼핑과 즐거운 이벤트들이거든요.”

 

▲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 피해 당사자이며 ‘Praise the brave’(용기를 칭찬하다) 대표인 야하타 마유미 씨(1977년생)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당일 행사에는 피해 당사자 등 60명 정도가 참가했다고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이 행사를 열고 싶었어요. 그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보고 누군가 ‘아아, 내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세계가 정말로 있구나’ 하고 생각했으면 해서요”.

 

데이트폭력, 성폭력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야하타 마유미 씨의 어머니는 여성운동가이자 싱글맘이었다. 그 영향으로 철이 들 무렵부터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 눈을 떴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자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들은 자신에 대한 어머니와 주위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사실 마유미 씨는 열두 살까지는 어머니와 따로 살았다. 함께 살 때도 외부 활동에 열중하는 어머니 곁에서 고독을 느낀 적도 있었다. 사춘기 때는 페미니스트인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색깔이 있는 립스틱을 사는 일도 망설였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데요. 어머니는 제 활동을 전면적으로 응원해주시고, 저도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마침내 야하타 씨도 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동거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을 때, 모두 아는 사람들뿐인 폭력피해자 지원 현장에서는 자신이 겪은 데이트 폭력에 관해 상의할 수 없었다.

 

스물네 살 때 도쿄에 온 야하타 씨는 30대에는 프리랜서 웹영상 제작자로 일을 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팅 요청을 받고 나간 곳에서, 같은 업종의 중년 남성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 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피해는 이어졌다.

 

커리어나 일에서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혼자서 피해를 떠안고 있던 야하타 씨는 결국 성폭력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도, 고용보험도, 상병수당도 없었다. 또한 성폭력 피해 과정에서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까지 있어서, 보복성으로 해당 이미지가 유포될 위험도 있었다.

 

폭력피해자 상담 지원 현장에서 일하며 자신도 심리치료를 받고, 변호사를 통해 가해자와의 교섭도 진행했지만, 야하타 마유미 씨는 건강이 악화되었다. 휴직을 했고, 복합성 외상후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 작년 3월 17일 가정폭력/데이트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는 ‘Praise the brave’에서 개최한 <대단했어, 졸업식> 행사 홍보 이미지.  (출처: praisethebrave.com)


그때, 독일인 친구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자 친구는 바로 “마유미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이르기까지 성폭력의 피해는 장기간 이어졌다. 피해를 ‘원만하게’ 처리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 친구의 주저함 없는 말 한마디에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페미니즘을 통해 “당신은 나쁘지 않다”, “목소리를 내도 된다” 같은 메시지는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어 보니, 목소리를 높이거나 아니면 조용히 회복에 힘쓰는 ‘피해자 상(象)’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은 저 건너편에 있었고 나와의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건너편은 안전한 곳일까.

 

생존자, 지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위대하다

 

일본에도 전해진 미투 운동(#MeToo)에 야하타 씨도 동참했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폭력을 이야기했어도 주위에서 반응이 없어서 고독했다. 해외에서 온 친구가 유일하게 “I’m proud of you”라고 답해줬다.

 

“감동했어요. #MeToo를 하든 말든, 경찰에 피해를 호소하든 하지 않든, 지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엄청나게 위대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어요.”

 

2018년, 야하타 씨는 가정폭력/데이트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Praise the brave’(용기를 칭찬하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SNS에 넘쳐나는 #MeToo에 ‘#remetoo’라고 답함으로써 성폭력 피해를 용감하게 밝힌 사람들을 고립시키지 않고자 떠올린 프로젝트다.

 

▲ ‘Praise the brave’에서는 #MeToo에 응답하는 #remetoo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성폭력 경험을 발화한 이에게 왜냐고 묻지 말고, 평가하거나 제안하지도 말고, 단지 “들었다” “읽었다”라고 긍정의 회신을 보내는 SNS 액션이다.  (출처: praisethebrave.com)


폭력 생존자가 비눗방울을 통해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Bubble off’라는 세레모니도 제안하여 실행하고 있다.

 

“비눗방울을 불 때 심호흡을 하게 되고,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기분도 영원히 남는 것은 아니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죠. 문턱이 높은 페미니즘 관련 행사나 집회가 아니라, 생존자가 강한 결의와 용기를 쥐어짜기 전에 가볍고 따듯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해요. 제 컨셉은 시대(여성운동)와 우리(피해자)의 거리를 제로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년 9월, 프리랜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갑질’ 경험 실태조사 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60%가 위계 갑질, 40%가 성적 갑질을 경험했다고 밝힘) 자리에서 야하타 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생존자에게 목소리를 내거나 혹은 내지 않는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눈앞의 강을 건넜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해두면, 다음 사람이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요. 페미니스트인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제가 알게 된 감각을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도키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기사입력 :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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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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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20/06/05 [16:49]
폭력피해자를 도우면서 정작 자신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니 너무 안타깝다 ㅠㅠ 이런 분이 있어야 회색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에게도 손길이 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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