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정, 탈조선은 해도 탈원룸은 어려워

<주거의 재구성> ‘20대’ ‘비건’ ‘여성’의 홀로서기(1)

유비 2020-07-17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집 나간 딸은 세계로 사라졌다

 

24살의 추웠던 2월 어느 밤, 집을 나섰다. 지난 수개월 간 계획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올 생각은 없었다. 

 

▲ 현재 사는 원룸. 이사 직후 내 취향대로 꾸며놓은 후의 모습. 레일이 떨어져서 천장이 구멍 숭숭 흉한 모습이 됐다. ©유비


청소년이 된 후부터 줄곧 가족을 떠나고 싶었다. 종종 죽어버리고 싶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능력이라, 다른 이를 저주하지 못해 내가 죽어버리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대학생이 되고 나선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괜찮았다. 거의 매일, 아침 9시에 집을 나와 밤 12시에 들어가곤 했다.

 

23살엔 늙어 치매가 온 강아지를 돌봐야 해서 휴학했다. 집에 정이 없었던 나는 15살 때 다짜고짜 데려온 강아지에게도 늘 무심했고, 가족들에게 돌봄을 떠넘겼다. 결국, 우리 가족은 모두가 모두를 갉으면서 살아왔다.

 

어쨌든 수십 년을 엉겨 살아온 와중 집을 나서겠다 결심한 건, 결국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을 접하게 된 후였다. 가족들은 ‘페미니즘 하는’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비건(vegan, 식물성 음식만 먹으며 동물을 희생시켜 얻은 의류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등도 사용하지 않음)이 되어 혼자 식재료를 사고 밥을 챙겨 먹고 자꾸만 그들의 식탁을 피하는 걸 이기적이라 비난했다. 우린 그렇게 마지막까지 멀어졌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 마지막 6개월간은 누구와도 5분 이상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5분 이상 대화 아닌 싸움을 한 시점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강릉에서 한 달, 제주에서 2주, 경기도의 친구네 집에서 2주를 지냈다.

 

여행을 좋아해 집을 나서면 꼭 세계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왕 집 밖에 나가는 거, 멍하니 서울에서 지내는 것보단 어디든 ‘탈조선’하고 싶었다. 그래서 태국 북부에서 시작해 남부를 지나 말레이시아까지 육로로 이동했다. 당시 애인이 있던 호주로 가서 동북부 해안로 3,000km를 캠핑하고 히치하이킹하며 일주했다. 유럽으로 갔고 그리스부터 프랑스까지 동유럽의 생전 처음 보고 듣는 나라들을 지났다. 그렇게 6개월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 해외를 떠돌아다닐 때의 일상 한 부분. 글 쓰고, 영어 과외를 하면서 근근이 먹고 살았다. 태국의 아주 작은 섬에서 매일 글 쓰던 해지는 바닷가 절벽 위.   ©유비


갈 곳 없는 내게 어떤 친구는 남는 방을 내어주며 ‘부의 재분배를 실천하는 것뿐이니 절대로 눈치 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집에서 한 달을 지내고 제주도에서 또 2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달 반, 대만에서 한 달 반. 돌아오니 해가 지나 계절이 돌아왔다. 또 추운 2월이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잠깐 다니고, 다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를 몇 달 여행하고, 또 잠깐 서울 곳곳을 여행하다가 베트남, 태국, 미얀마를 몇 달 여행하고 다시 2월.

 

떠돌면서도 왜 여행하는지, 왜 탈조선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여행이 선사하는 매일의 새로움과 돈 외엔 걱정 없는 일상이 좋았지만 또 매일의 변화가 혼란스러웠다. 목표 없는 여행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너무 가난해서 종종 괴로웠다. 그럴 땐 ‘내가 언젠가 살 곳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스렸다.

 

돌아온 한국에서 나의 자리

 

결국 지쳐 돌아온 이번 겨울은 여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긴 정착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땐 친구집을 전전하곤 했는데, 이번엔 6개월짜리 원룸 단기계약을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1, 2년의 미래를 장담하긴 어려워서 6개월 단기계약이 최선이었다.

 

여행하던 때는 비우는 데에 익숙했다. 20리터짜리 가방을 메고, 5kg 남짓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무게만 짊어지고 다녔다. 짐을 매일 풀고 매며 곧잘 물건을 잃어버리곤 하니 그 안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당장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을 낡은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생활용품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가방을 하얀 침대보가 덮인 2층 침대 한구석에 잠깐 올려놨다가 다시 어깨에 메는 날들을 지나왔다.

 

▲ 터질듯한 옷걸이와 온갖 입장권 등이 붙은 원룸 냉장고  ©유비


4~5평 남짓한 방에 들어섰다. 곧 지나칠 하룻밤의 에어비앤비 방 같았는데, 얼마 안 되는 짐을 세 시간만에 다 풀어놓고 나니 ‘내 방’이 생겼다는 실감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패턴의 천도 걸어놓고, 책장에는 전공인 영미문학과 페미니즘 책을 채우고, 옷걸이에 좋아하던 옷들을 빽빽이 걸었다.

 

방을 도배한 전 주인 취향의 힙합 브랜드 스티커는 도저히 안 떨어져서 페미니즘 스티커를 덧붙였다. 냉장고엔 여행하며 모은 입장권 같은 것들을 잔뜩 붙이고, 엽서나 사진, 지도는 벽에 붙였다. 눈길 닿는 모든 곳에 입김을 불어 넣기에 알맞은 크기의 방이었다. 향을 피우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은은한 주황색 스탠드를 켜놓으면 나를 감싸는 모든 것이 나만의 것이었다.

 

옆집 사람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원룸에서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이 집에 살며 내 공간이라는 점을 빼고 마음에 드는 건 몇 개 없다. 역이 멀지 않고, 다닐만한 복싱장이 바로 옆에 있으며, 친구들은 질색하고 나만 좋아하는 약간 분홍빛의 레일등이 있다는 거였다.

 

어느 날 밤 레일이 떨어졌고 집주인이 와서 아주 낡고 못생긴 다른 등으로 교체해줬다. 그나마 주인이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로 달린 등은 못생긴 건 둘째 치고 마치 희비극 세트장처럼 우울한 회색빛을 뿜는다. 게다가 교체 이후 전등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스탠드 하나만 켜놓는 걸 제일 좋아하니 전등은 안 켜고 살기로 했다. 그저 원한다면 얼마든지 혼자 있을 수 있는 내 취향의 공간, 남이 넣어놓은 냉장고 속의 죽음(동물 사체)에 나 혼자만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집에 돌아와 무의식적으로 전등을 켰을 때, 우울한 회색빛이 방 전체를 삼키고 날 삼킨다. 막힌 세면대를 뚫으려다 실패해 찌든 때가 역류한 화장실을 방치한 채 그냥 잠드는 날도, 10년 방치된 에어컨 내부의 곰팡이를 확인한 날도 그렇다. 자려고 누우면 귀를 관통하는 냉장고 소리와, 뒤척임마다 이불 속에서 풀려나오는 음식 냄새 같은 것들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벽을 뚫는 옆집 사람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집 나온 20대가 혼자 산단 건 원래 이런 거겠지.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기사입력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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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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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20/07/17 [17:03]
제목 왜이르케 공감인가요 ㅠㅠ 한몸누일 곳이 있다는 게 어디냐 하고 생각하면서도 냉장고 소리 윙윙~ 신경쓰이는 밤
ㅇㅇ 20/07/17 [21:57]
원룸보다는 조막만한 낡은 다세대주택 방하나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되는 데만도 독립후 5년은 더 걸린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에 빈집이 엄청 많은 걸 보면서, 저렇게 빈 공간이 많아도 나하나 등붙일 곳은 없단 말이지? 하면서 위화감을 느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방하나짜리 집에도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건지도 몰라, 하면서 한편으로 위로합니다....
July 20/07/18 [16:01]
떠돌다가 정착하고 싶어질 때 주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저와 다른듯 비슷한 얘기 재밌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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