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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여성들이 고발한 업계 내부의 성폭력
일본 여성 저널리스트들 『언론계 성희롱 백서』 펴내
마츠모토 치에   |   2020-08-06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는 언론계 내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성폭력 사건을 자신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로 생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2018년 5월 ‘언론에서 일하는 여성 네트워크 WiMN’을 창설했다. 출발할 당시 신문사, 통신사, 방송사, 출판 및 인터넷 언론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여성 86명이 가입했다.

 

▲ 2018년 5월 15일, 후생노동성 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계에서 일하는 여성 네트워크’ WiMN 발족 기자회견. 왼쪽이 필자 마츠모토 치에, 오른쪽이 함께 간사로 일하는 하야시 요시코.  ©필자 제공

 

이들은 올해 2월 『언론계 성희롱 백서』를 출간했다. 이 소식과 관련하여 WiMN 간사이자 프리랜서 언론인 마츠모토 치에(松元千枝) 씨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WeRise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뭉쳤다

 

‘나뿐만이 아니었어.’

아마도, 업계를 불문하고 이렇게 느낀 독자가 많지 않을까.

 

언론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터뷰와 에세이 형식으로 지금까지 가슴 깊이 묻어뒀던 성폭력과 성희롱 피해에 대해 이야기한 『언론계 성희롱 백서』가 2020년 2월,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기획·편집을 맡은 ‘언론에서 일하는 여성 네트워크 WiMN’는 2018년 4월에 알려진 재무성 차관에 의한 기자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조직과 지역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여든 여성 저널리스트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피해를 고발한 TV아사히 기자와 연대하고, 언론계 성희롱을 없애기 위해 더이상 참지 말자고 들고 일어났던 결의가 이 책의 띠지에 있는 #WeRise(우리는 일어선다)라는 글자에 나타난다.

 

▲ 올해 2월 출간된 『언론계 성희롱 백서』(WiMN 편저, 분게이 슌슈) 표지이미지.

 

언론사 내부부터 취재원, 경찰 검찰에게까지 성희롱 겪어

 

당시 사건이 언론계 내에 파장이 컸던 것은 비단 고위직 관료에 의한 성희롱에 경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몇십 년간 달라진 바 없는 업계의 실태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는’ 데 익숙해진 것이 자신뿐이 아니었다는 사실, 성희롱 피해를 입은 직원을 언론조직 전체가 지원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찾아볼 수 없었던 사실 때문이었다.

 

WiMN은 애초에 구성원 19명이 백서를 만들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론계 성희롱 백서』에는 더욱 폭넓게, 구성원들 간의 동료인터뷰와 차별과 성희롱의 상처를 극복한 개인 에세이 25편을 1부에 모았다. 2부는 시사평론 칼럼 9편, 그리고 3부는 언론사 설문조사로 구성되었다.

 

‘첫’ 여성 기자로서 배속된 지국에 여성 화장실이 없었던 이야기, 입사 환영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장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당한 사례, 경찰관이 남성 기자만 상대해주고 같은 기자로 그 자리에 있는 자신에게는 술 따르기와 음식 주문을 담당하게 만든 일, 취재를 하기 위해 질문을 하면 “남자친구랑은 어떤데?”라는 식으로 말하며 어물쩍 넘기는 취재원, 야간 취재를 하는데 경관이 밀쳐서 넘어진 에피소드 등…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서 참여한 WiMN 멤버들이 겪은 이런 식의 일들은 끝이 없다.

 

일대일이 되기 쉬운 취재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가해자들의 비겁한 말과 행동은 읽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이 책을 통해 개인이 아닌 ‘우리들의 일’로서 분명하게 고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본 매스컴문화정보노조회의(MIC)가 2018년 여름에 실시한 설문조사(유효 응답 수 428명)에서,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외근기자 중에서 38.9%는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피해를 겪었다고 대답했다. 지방·국가공무원이나 정치인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응답까지 합하면 88.9%에 달한다. 또한 그 피해도 한 번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러 차례 다른 종류의 성희롱을 겪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침묵을 깨뜨린 여성들, 새로 쓰는 저널리즘

 

성폭력과 성희롱, 성차별은 개인의 피해 경험으로 그치지 않는다. 『언론계 성희롱 백서』는 도쿄의대 입시에서의 노골적인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나가사키시 전 간부에 의한 기자 성폭력 사건 등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 책에 실린 언론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제도적 차별과 폭력이 성희롱의 배경이 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유명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이용해 많은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던 ‘히로가와 류이치’(중동 전쟁과 난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관련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로, 2018년 당시 포토저널리즘 매거진 편집장으로 일하며 17명의 여성에게 성폭력 및 갑질을 한 사실이 폭로됨) 사건과, 언론계 구직 과정에서의 성희롱 등에 대한 칼럼도 중요한 발언이다. 사회를 바꾸려는 결의가 넘친다.

 

▲ ‘언론계에서 일하는 여성 네트워크’ WiMN 간사이자 프리랜서 언론인 마츠모토 치에(松元千枝)   ©필자 제공

 

“나는”이라는 1인칭으로 글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저널리즘과 소위 ‘객관적 보도’의 기본을 주입 당해온 여성 언론인들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에 큰 갈등을 겪었다. 원고 집필 중에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건강을 해치거나 집필을 도중에 단념한 사람도 있다.

 

성희롱 피해를 고발하는 일은 해고나 갑작스런 인사이동, 2차 피해,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의한 휴직 등 다양한 불이익을 초래한다. 몇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상사나 동료들에게서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본인을 위한 일”이라는 말을 들으며 없던 일로 여겨온 성희롱 피해 실태. 언론인으로서 ‘제몫’을 하기 위해 성희롱도 웃어넘기고 다 그런 거라며 일상으로 여겨왔다.

 

그것이 성희롱과 성폭력, 성차별을 용인하고 여성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언론계와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야 말았다고, 피해자들은 맹렬히 반성하며 자책하고 있다.

 

계속해서 가해자와 나란히 앉아 일하고, 회사로부터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며 가명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멤버들도 많다. 한편,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실명을 공개하기로 한 멤버도 있다. 그 동기는 “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자각과 동료들과의 연대다. 성희롱을 용인하는 흐름에 종지부를 찍고 침묵을 깨트린 여성들에게 각 방면에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서평이 답지하고 있다.

 

목소리 내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잘 말해줬다”, “이 정도로 피해가 많은 줄은 몰랐다”, “내 경험이 떠올라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는 경험이 있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겨우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우리의 목소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기쁘고, 지금까지 성희롱 피해를 당한 WiMN 멤버와 언론계 동료들에게도 이 목소리가 전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신문노련)에서는 언론인 연수를 통해 언론계를 지망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이 책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따금 내게 개인 상담을 요청해오는 분들이 있다. 성희롱 피해자들 다수는 오랜 세월을 거쳐도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렇게 고립되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료 남성으로부터 소개받아 연락을 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성희롱 백서』 한 권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의 의식이 바뀔 정도로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WiMN 회원 수는 창설 모임 당시와 비교해 배로 늘었다. 동시에 일본 사회에도 성희롱 사건이 보다 넓게 보도되기 시작했고, 여성운동 진영과 시민운동도 연대하며 세상의 불합리한 성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희롱과 성차별을 용납하고 피해자로부터 목소리를 빼앗는 사회를 만들어온 것도, 그것을 바꾸는 것도 언론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힘을 길러야 한다. 차별과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마츠모토 치에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기사입력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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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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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다 20/08/07 [18:50]
일본과 한국 남자들은 여혐/성폭력/성차별 경주하는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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