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 누구냐고? ‘난민화되는 삶’을 살펴보길

경계와 구획을 넘는 저항의 언어 <난민, 난민화되는 삶>

나영 2020-09-01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난민협약 제1조 A항 2조에 있는 ‘난민’의 정의이다.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왔을 때 국내에서 난민 혐오 여론이 고조되며 ‘가짜 난민’이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이 정의에 따르면 거짓선동이었다는 게 바로 드러난다. 여타의 다른 조건에 상관없이, 난민의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난민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협약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선 난민들은 매번 그들의 자격을 심사받는다. 타협하거나 바꿀 수 없는 신념이나 삶의 조건, 또는 실질적인 생존의 위험으로 인해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격까지 포기하고 떠나왔음에도 애써 찾아간 곳에서 다시금 ‘보호받을만한 자격’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것이 난민이 처한 아이러니다.

 

▲ <난민, 난민화되는 삶>(김기남 외 12인 지음, 갈무리, 2020)

 

전쟁과 처참함을 강조하는 이미지들은 때로 난민을 또 다른 자격 심사대에 올리는 잣대가 된다. 각기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연이 담긴 삶의 맥락은 삭제되고, 자신을 떠나오게 했던 하나하나의 조건들이 최대한 두렵고 처참한 이미지와 함께 난민 자격 심사에 부합하는 이야기로 선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멘 난민들은 심지어 한국 국민 전체의 심사대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생존의 조건을 찾아 도착한 곳에서 이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명품 시계를 찼다는 이유로, 언제 여자와 아이들을 해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다시 쫓겨날 것을 요구받았다.

 

국가 밖으로 ‘쫓겨남’뿐 아니라 ‘거부함’도 난민화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김기남 외 지음, 갈무리)은 이렇게 ‘국민’의 이름으로 난민의 자격을 심사하던 당시 한국사회의 모습을 계기로 하여 시작된 작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누가/무엇이 난민이냐’고 묻는 대신 ‘어떻게 난민이 되는가’에 집중한다.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어서 떠나온 사람들,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의 모습으로 살 수 없어서 돌아가기를 포기한 사람들,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난민화’(난민화되는 삶)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여기에는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삶이 있고,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이 전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단지 ‘쫓겨남’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거부함’으로써 난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스스로 국가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고 저항의 자리에 선 주체로서의 난민의 위치를 보게 해준다.

 

이 책의 첫 글인 신지영의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달팽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난민과 난민화가 지닌 복잡한 정치성에 대한 그의 고민을 따라간다. 자격을 심사받고 동정과 시혜에 호소하는 난민 운동이 아니라, 난민화의 근간에 있는 폭력의 정치를 드러내는 난민 운동, 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정치화하는 난민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인터뷰이(달팽이)가 참여하고 있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의 활동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난민, 성소수자, HIV/AIDS감염인 등 소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끊임없이 고정된 틀 속에서 정의 내리고 규율하려는 정치 권력의 폭력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일, 그러한 활동과 연결된다면 ‘난민 인권’도 협소한 인정/증명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이 기획한 젊은 이주민들의 플랫폼 ‘영 마이그런츠 블로그’ 편집진 Maura Magni와 Hai-Hsin Lu 인터뷰 장면. Pigment Print, 50x33cm, 2019 (이다은X추영롱, “이주와 정주: 베를린 기록” <난민, 난민화되는 삶> 252p) ©이다은X추영롱

 

난민화되는 동물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송다금의 글이다. ‘난민화’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송다금은 난민화의 문제의식을 동물에게까지 확장한다. 저자는 “동물은 전쟁 발발이나 재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빼앗기고, 개체 수를 조절 당하며, 일상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난민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영토 안에 살지만 신변을 보호해 줄 국가도 없고, 필요에 따라 아무 데로나 이송되고 이용되는 동물들은 난민과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 전쟁이나 재난의 과정에서, 도살되기 위해 국외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재난민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물들의 재난민화는 난민 구호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아프리카 니제르에 빨간 염소를 보내는 국제 구호단체의 캠페인에서 염소를 1인칭 화자로 등장시켜 스스로 팔려가고, 분배되고, 먹이가 되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난민에 대한 타자화가 다시 동물에 대한 타자화로 이어지는 문제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난민의 전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이미지와 재현에 관한 성찰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만든 계기가 된,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 행사의 포스터에서부터 이에 대한 성찰을 깊이 있게 해나갔다. 가령, 인형을 들고 있는 난민 어린이의 뒷모습이 가운데에 배치된 첫 번째 행사 포스터의 경우, 원래는 활동가들이 든 현수막 앞에서 질문하고 있는 어린이의 사진인데 포스터에서는 배경을 흐린 채 어린이의 뒷모습만을 강조함으로써 쉽게 동정을 유발하는 이미지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성찰이 있었다.

 

▲ “이주민패션매거진-Botra No Heart” 2017년 시작된 박가인 작가의 이주민패션매거진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덧씌워진 견고한 이미지에 재치있게 틈을 내는 시도다. (전솔비,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 어떤 옷차림의 사람들” <난민, 난민화되는 삶> 222p)   ©박가인


난민 재현에 관한 주제들은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전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욕망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들을 살펴보는 전솔비의 글과, 일본군 ‘위안부’ 증언자이자 각기 오키나와, 태국, 베트남 난민 커뮤니티에서 살았던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에 대한 재현을 살피는 이지은의 글에서 보다 깊이 있게 이어진다.

 

남성화된 국민국가의 서사 속에서 배치되고 다시 선별되어 온 ‘위안부’ 재현의 과정은 국가의 폭력과 국가 간 폭력으로 인해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다시 국가의 틀 속에 검증하고 배치하는 난민 자격 심사와 이들을 타자화하는 재현의 과정 속에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제 ‘난민을 위한 연대’를 넘어서, ‘난민화’의 과정에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이 연결된 지점을 살펴보고 연대의 방식을 찾아 경계의 횡단을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 시작점을 열어주는, 풍부한 고민들을 오랜 시간 벼리고 정성스럽게 담아내 준 <난민, 난민화되는 삶>의 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필자 나영 님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입니다.

기사입력 :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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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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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람 20/09/01 [15:53]
꼭 읽어보고 싶은 주제가 있네요. 좋은책이 나와서 읽기만 하는 독자로서 고맙다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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