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성접대’가 아니라 합동강간 사건이다!

김학의, 윤중천 성폭력 사건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라운드테이블

박주연 2020-09-25

“뇌물거래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2018년 8월 6일, 서울지방변호사회 5층 정의실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673개 여성/시민단체들이 함께 외친 말이다.

 

2013년 당시 법무부 차관 후보였던 김학의가 등장하는 불법촬영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별장 성접대’라는 자극적인 스캔들로 떠오른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 등에 의한 성범죄를 ‘성폭력’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의도적이라고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검찰의 은폐, 축소 수사로 인해 애초에 이 사건은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고, 2017년에 검찰과거사위원회 조사 대상이 됐지만 이때의 조사 또한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여성/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재수사할 것과 철저하게 규명할 것,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 수사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 작동케 할 것”을 요구하며 사법정의를 실현하라고 촉구했다.

 

▲ 2019년 7월 26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3차 페미시국광장. ‘다시 쓰는 정의! 검찰·경찰개혁, 여자들이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그러나 2019년 1심 재판부는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면소 판결을 내렸고, 다가오는 10월 판결이 예정된 2심에선 뇌물죄에 대한 재판만 진행 중이다. 윤중천의 성범죄 또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심, 2심에서 면소, 공소 기각했고 사기와 공갈미수 혐의만 인정이 됐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4일,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을 다시 짚고 검찰 수사와 재판부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하는 라운드테이블을 주최했다.

 

‘합동강간’ 혐의 대신 ‘뇌물죄’로 기소?

 

“피해자는 2013년 경찰 조사 이래, 윤중천의 물리적, 공간적 지배하에서 2006년 7월경부터 2008년 2월경까지 지속적인 강간 등 성폭력 피해 사실을 진술해왔다.”

 

피해자 공동 대리인단의 이찬진 변호사는 “이 사건은 한마디로 1년 8개월간의 장기간의 지속적, 반복적인 성폭력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안이 이렇게 정의를 세우지 못한 건, 1차 수사과정에서의 검찰권 남용부터”라고 지적한 이 변호사는 “2013년 경찰 조사부터 피해자가 피해 내용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사에서는 담당 검사가 피해 진술을 다시 듣기보다는 사소한 세부 내용의 차이를 트집 잡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또한 심문 내용을 분석해 보면, 검찰이 피해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던 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또한 피의자가 등장하는 동영상에 대해서도 분명히 식별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처리한 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검찰의 수사행태는 일종의 수사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2017년에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졌지만 “위원회의 조사 또한 크게 미흡했다”고 이찬진 변호사는 평가했다.

 

“과거 검찰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경찰에서 조사된 성폭력 범죄 내용을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오염시키는 집요한 조사 과정을 통하여 탄핵하고, 범죄 혐의를 무마시키는 방향으로 조사하여 윤중천 및 김학의 전 차관의 성폭력 범죄를 은폐하였다는 의혹에 대해선 규명조차 하지 않은 채, 단지 ‘2013년 당시 검찰이 성인지 감수성 차원에서 여성들이 처한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만 지적했다”는 것.

 

그 결과, 1년 8개월여에 걸친 지속적인 성폭력 범죄 피해에 대해 행위자인 김 전 차관에 대해 윤중천과의 합동강간 혐의를 불기소하고, 이를 성접대로 평가해 뇌물수수 혐의로만 기소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2013년부터 일관되게 피해사실을 진술해왔음에도 “수사단이 김학의 전 차관을 합동강간치상이 아니라 뇌물죄로 기소한 것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그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 2019년 12월 18일, 한국여성의전화 외 36개 여성단체들이 김학의, 윤중천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재고소와 함께 검찰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또한 “피해자가 김 전 차관으로부터 겪은 성폭력 피해 횟수도 축소하였고, 윤중천의 특수강간치상 등 범행 횟수도 3회로 축소한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윤중천의 최소 10여회 이상의 직접적인 합동강간 및 강간 피해는 물론이고, 윤중천의 지배하에서 일어난 김 전 차관의 성폭력 범죄가 단지 분절적인 3회의 공소사실로 축소”됨으로써,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이번 사건에서 특히 중요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발생 시점’ 등의 쟁점에서 피해자에게 현저히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윤중천의 특수강간치상, 공소시효 남았다

 

1심, 2심 재판부가 윤중천의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지적이 잇따랐다. 이 사건이 특수강간치상 범죄이기 때문에 아직 공소시효가 남았다는 것.

 

특수강간의 경우, 2007년 12월21일부터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났다. 변호인단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최초 ‘진단’ 시점(2008년 3월)이 기산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포괄일죄의 경우 최종 범죄 종료 시점(2008년 2월)부터 기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별장에서의 폭행·협박·강간 사건 이후 1년 8개월 동안 피해자가 지속적인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와, 2013년에 피해자가 진단받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특수강간 등으로 인한 것인가가 쟁점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의 신뢰성과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특수강간 등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는 인과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두 건의 강간죄에 대해서는,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에 발생한 사건에서 피해자가 고소 시기를 놓쳤다며 공소 기각했다.

 

▲ 지난 5월 2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윤중천의 특수강간,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기각 결정을 하자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리인단 최현정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사건들을 별개로 보는 게 아니라 맥락을 봐야 한다”며 재판부 판단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2006년 7월 원주 별장에서의 첫 피해 이후 윤중천이 피해자에게 연락해 사과하고 싶다며 두 번째 사건으로 끌고 들어간 것, 약물로 의심되는 걸 먹었던 점,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그를 통한 협박, 폭행협박. 그리고 간헐적인 ‘보상’ 속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시에 끌려다니는 상황으로 점점 매몰되어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 2심 판결에서 그런 맥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가 촬영물로 협박을 당하며 느낀 심리적 압박 등 피해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에게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요구한 반면, 피고인 진술의 모순과 비합리성에 대해선 심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자가 피해 당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을 통해 폭행, 협박, 감시, 통제 외에도 간헐적 보상으로서 ‘길들이기’식 폭력을 행사하는 등 일반적인 가해자 행동 패턴과 이 사안이 유사성이 있음을 밝히고,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전문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피해 당시에 발생한 게 아니라 2013년 이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프라인 ‘n번방’ 사건, 비인도적 인신매매로 봐야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재판부가 ‘강간 트라우마 신드롬에 놓인 피해자는 결정 능력 없이 가해자의 말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피해자화 되는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피해 여성은 약 1년 반 동안 거의 사회적으로 격리된 상황이었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침해가 발생했다. 판사가 ‘(피해자가) 나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것’으로 추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친족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 ‘왜 신고를 못 했냐’고 묻는 것이나,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왜 이혼하지 않았냐, 도망가지 않았냐’고 묻는 것과 같은 관행적인 질문은 그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묻는다면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그 무엇도 밝힐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의 본질은 성착취”라고 강조한 이수정 교수는 “이건 오프라인 n번방 사건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성착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제대로 성착취 범죄로 봐야 한다”며 “윤중천 성범죄 무죄라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이건 상식에 반하는 일”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 24일 열린 <'김학의·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쟁점 및 해결 방안> 라운드테이블 현장. ©한국여성의전화

 

이 사건이 “국제법상 비인도적 범죄인 인신매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권김현영 연구위원은 “오랜 시간 성폭력, 성매매 문제와 싸워오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관련 전문가와 활동가들조차도 사건의 실체를 알수록 충격을 받은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이 범죄는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고 했다.

 

“대표적인 비인도적인 범죄인 고문의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하기를 주저한다. 자신이 고문 과정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인간성 자체에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피해 사진을 가족에게 보내겠다는 협박을 감내하다가 끝내 가족이 결코 알기를 바라지 않는 모습이 전송되었을 때 피해자가 겪은 고통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권김 연구원은 “이건 ‘자발성’ 자체가 쟁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의 행동을 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며, 이 사건 전체는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로서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공소시효 관련한 쟁점에 대해서도 ‘인신매매의 트라우마 유대감’의 의미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 2020 TIP 리포트에서는 특별 관심 주제에 ‘인신매매의 트라우마 유대감’(Trauma Bonding in Human Trafficking)을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가 스톡홀롬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증상을 통해 알고 있는 바와 유사하다는 것.

 

“즉, 가해자는 피해자와 강력한 정서적 연결을 촉진하기 위해 보상과 처벌을 번갈아 사용하며, 피해자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충성심을 일으키고, 연결과 애착을 개발하기 위해 보호자의 역할을 하거나 이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도록 한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향해 가진 정서적 경제적 의존 상태와 이에 대한 부탁과 감사의 표현, 지속적인 거절과 모욕감, 반복된 성적 착취 등은 피해자의 자발성의 결과가 아니라 인신매매된 피해자가 가해자와 트라우마 유대감을 가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중천 성폭력 무죄? 대법원은 “지연된 정의” 다시 세워야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최선혜 소장은 “2020년 9월 현재 김학의의 ‘뇌물죄’는 2심 재판 중이며, 윤중천의 ‘성범죄’는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또한, 경찰에서는 재고소 건과 고발 건을 수사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지금도 ‘단톡방’, ‘텔레그램 N번방’, ‘숙박시설’, ‘유흥업소’, ‘집’ 등 그 이름만 다른 공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로 여성들의 몸/성은 남성들의 향락/이익 등을 위해 착취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 사건이 성폭력으로 명명되고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최 소장이 제안한 건 세 가지다. “첫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성폭력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어떤 의혹도 남지 않도록 재수사할 것. 둘째,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부실, 위법 수사에 가담한 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이루어지고 정확한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 셋째, 이 사건을 성인지적 관점으로 검토하고, 당시 수사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여성폭력 사건 처리를 개선하는 한편 피해자 권리 구제 방안을 마련할 것.”

 

참가자들은 무엇보다도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오프라인 n번방’ 사건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성착취 범죄가 권력자의 언어로 무죄 판결을 받는 일이 없도록, “지연된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 '김학의·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사법 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10월 5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https://vo.la/CNq21

기사입력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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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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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20/09/25 [19:47]
이 사안이 아직도 2심 재판 중이었군요.
크러시 20/09/26 [13:49]
피해자를 의심하는 재판부. 가해자의 비상식적인 변명은 고개 끄덕이는 판사들. 속터진다
20/09/28 [12:26]
합동강간!!
그들 범죄에 대한 명징한 명칭!!!
그러나 세상은 눈을 뜨고도 불의가
이기는 꼴을 보고만 있어야하는
세상인가봅니다.
분노스럽다!!!
우마견 20/09/28 [18:25]
배 만들때 쓰는 두꺼운 철판  만큼 그 놈들 낯가죽이 두껍지 않고서야 동영상에 선명하게 찍혔다는 인간을 죄 없다고 무죄 처리 하다니... 그러니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길 바라는 일반 보통인들 사이에 감정이 메마르지 않은 이상 어찌 욕이 안 나올쏘냐?  이 씨팔자식들아.
버드 20/09/28 [20:51]
제2의 장자연 사건이잖아요. 정말 속상해. 권력자들, 검사들 눈에는 뇌물로 취급되는 여성의 인간성 훼손 문제 따위는.. 어쩌면 피권력자의 존재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건가 싶어 무섭고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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