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국가인데 18년 동안 올 수 없었던 한국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다문화 사회에서 ‘가려진’ 존재들

이채희 2020-10-19

*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 이채희 님은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센터장입니다. -편집자 주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를 듣고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과정이 시민들로부터 인식이 확산되거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진행된 경향이 있다. 미리 준비되지 못하고 개념 형성도 안 된 채 ‘다문화’ 정책이나 관련 법들이 시행되었다.

 

이후 다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았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 차별, 편견 문제는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니 본국으로 돌아간 귀환 이주여성들과 동반아동은 완전히 가려진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과의 결혼을 통해 이주를 했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있었는데도 결국 ‘귀환’을 선택하게 된 여성들과 그 자녀들의 사연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재정착을 해야 하는 귀환 이주여성과 동반아동을 위한 양국의 제도적인 지원책은 무엇일지 방향을 찾고 싶어서 현지로 그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직접 만나 보니 그들은 경제적 빈곤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 해결 방법을 원했다. 자녀를 동반한 대부분의 귀환 이주여성들은 한국에 합법적으로 다시 돌아가길 원했고, 무책임한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를 받고 싶어 했으며,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우리의 인터뷰 목적은 그들에게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한 상황에 놓인 귀환 이주여성들의 상황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결국, 조사팀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들의 호소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해결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성장한 소년의 이야기

 

필자가 간 곳은 필리핀이었다.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를 둔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에 아들과 함께 우리를 만나러 온 여성이 있었다.

 

어머니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밖에서 기다리는 청소년이 마음에 쓰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 우리는 그를 만나보았다.

 

한국에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를 필리핀으로 보냈다고 했다. 소년은 이후 외할머니 집에서 생활했다. (어머니는 이후 한국에서 미등록 신분이 되었고, 출입국 단속에 걸려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커가면서 소년은 자신이 태어난 코리아라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7년에 한국에 있는 어머니의 지인 도움으로 16년 만에 전화선을 통해 처음 아버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이후 서너 번의 통화를 했지만 이내 연락이 끊어졌다.

 

소년은 한국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필리핀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한국여권을 발급받으려면 큰 액수의 벌금을 부담해야 했다. 소년과 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16년의 시간보다, 짧은 연락이 있은 이후에 아버지와 코리아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어졌다. 왜 아버지가 계속 연락을 해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버지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18년만에 한국에 와서 주민증을 발급받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청소년이 잊혀지지 않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의 희망을 이뤄주고 싶었다.

 

우리가 받은 정보는 18년 전 당시 가지고 있던 집 전화번호가 유일한 단서였다.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대를 달리하면서 약 한 달간 전화 연락을 돌리다가 드디어, 그의 할머니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손자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의 쿵 하는 마음이 전화선 너머까지 전해졌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는 우리 기관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혹시나 전화번호가 잘못되었을까 두 번 세 번 확인을 하신 후에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당일, 소년의 고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이 채 되기 전에 필리핀으로 보내진 손자를 죽기 전에 만나고 싶어 하신다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소년과 어머니를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림돌이 있었지만,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힘겹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작년 8월, 드디어 모자는 한국에 입국했다. 우리가 필리핀에서 소년을 만나고 지원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 필리핀에서 성장하며 한국과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소년은 1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미소를 지으며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고모와 통화할 당시, 아이의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한국에서 태어났고 출생신고가 한국에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민증 발급 통지서가 나왔다),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주민증 발급 통지서의 주인공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몇 년 전까지 심심찮게 TV에서 이산가족들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매번 보는 비슷한 장면인데도 그때마다 눈물이 났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똑같은 눈물을 흘렸다.

 

18년 동안 한국과 아버지를 수없이 그리워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던 소년. 이렇게 누군가의 친절한 도움과 관심만으로도 그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그를 돕는 것이 크게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일은 아니었다. 조금의 관심만으로도 18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한국에서는 지원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함께 방문한 그의 어머니는 현재 필리핀으로 돌아간 상황이고, 현재 소년은 모자가 원하던 대로 아버지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지금 군대에 가기 위해 신청서를 내고 기다리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터뷰 이후, 10명의 귀환 이주여성 지원기

 

조사팀이 현지에 가서 인터뷰를 한 귀환 이주여성들은 몽골과 필리핀에서 각각 6명, 태국에서 9명으로 총 21명이다. 그런데 추후, 이 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여성들이 계속 생겼다. 몽골 6명, 필리핀 2명, 태국 4명. 결국, 현지 인터뷰와 추후 인터뷰까지 합쳐서 총 33명을 상담하게 되었다. 이중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와 지원 불가능한 사례를 제외하고 10명의 여성들을 지원하였다.

 

▲ 귀환이주여성 실태조사팀의 국가별 상담 현황.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중복체크), 이혼 및 혼인 관계 정리를 원하는 상담이 7건, 한국 입국을 희망하는 내용이 5건, 친자인지청구(양육비 청구 포함) 4건, 배우자 연락 두절 1건으로 나타났다.

 

혼인관계를 정리하길 원하는 사례는, 본국으로 돌아간 여성이 재혼을 하고 싶어도 한국에서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라서 혼인신고를 못한 채 사실혼으로 생활하고 있는 경우였다. 또 그 이후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행정상의 문제 등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였다. (관련 기사: “한국에서 이혼서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http://ildaro.com/8749)

 

한국입국을 희망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한국인과 혼인신고는 되어 있지만 배우자와 연락이 전혀 되지 않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으나 한국인 남성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다. 이 경우 역시 한국 남성과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인지청구의 사례는 단기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 남성을 사귀었거나, 본국에서 한국 남성을 만나 사귀다가 임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들은 현재 한국 남성과 연락이 되지 않아 출산과 양육 모두 혼자서 책임을 지고 있으며, 더이상 홀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어 도움을 요청했다. (관련 기사: 아버지 이름이 없는 태국 아기의 출생증명서 http://ildaro.com/8832)

 

현재 혼인관계 정리와 친자인지청구 사례는 무료 법률구조를 통해 이혼소송과 인지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 남성과 연락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례는 남성의 소재지를 찾고 있으나,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지역적인 한계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 사회가 왜 ‘귀환’ 이주여성과 자녀를 도와야 하냐고?

 

이주여성의 귀환 사례의 경우,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내담자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아 특정한 지역의 기관이 지원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번에 귀환 이주여성과 자녀들을 지원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NGO나 이주/외국인 관련한 기관이 가진 정보와 활동력을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실제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지원을 한 사례의 경우,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요청을 받고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측에서 직접 주소지로 찾아가 남편의 소재를 확인해주었다.

 

흔히 ‘복지 사각지대’라는 용어가 쓰이곤 한다.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제도나 활동에 있어, 귀환 이주여성들이 바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면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귀환 이주여성들은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본인의 상황을 호소할 곳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잦은 반발에 부딪히곤 한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주민과 선주민을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고, 좀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 약자인 사람들 편에 서는 것뿐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겪은 문제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 피해를 입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닌가? 특히 최근에는 한국인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홀로 본국에서 출산하고 양육하는 여성들이 아이 아빠를 찾아 양육비 등의 경제적 지원을 부탁하는 사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을 아버지로 둔 아이들이 아버지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귀환 이주여성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자마자 상담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하지만 다른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우리 활동가들이 기존에 하던 일들에 더 추가하여 귀환 이주여성들을 계속 상담하고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필리핀에서 온 청소년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실상 이들을 지원하는 데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될 필요가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방침을 정하여, 이미 기존에 있는 이주/다문화/외국인 관련한 기관들을 중심으로 귀환 이주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사각지대에 놓인 귀환 결혼이주여성과 동반자녀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다문화 사회’를 전망하는 한국 사회의 과제에서 누락되지 않길 바란다.

기사입력 :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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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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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20/10/20 [10:17]
벌금 물고 한국여권을 발급받을 돈도 없었다니 너무 가슴아프네요. 보통은 이중국적이면 자녀가 엄마의 나라, 아빠의 나라 양쪽 다 자유롭게 다니면서 언어능력도 갖추고, 생활권도, 직업선택권도 더 넓힐 수 있어서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사각지대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남의 일처럼 보지 않고 도움을 주신 분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네요.
도니 20/10/20 [12:51]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고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생길텐데, 현 관계기관들의 업무가 보수적으로 정의되고 있는건 아닌가 궁금해지네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는 대상이긴 하지만 기존 영역에서도 관계망을 통해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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