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장’을 요청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새로운 연결과 장소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①

신지영 2020-11-21

※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그저, 공백으로만 드러나는 말·글

 

만약 ‘우리’에게 ‘어떤 새로움’을 듣고 표현할 도구가 없다면, 그 공백을 그저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오래전 일이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글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2008년 무렵 오사카 작은 단체에서 재일조선인 서클지 진달래 집회 뒷풀이가 열렸다. 김시종 시인도 함께했던 이 자리에서, 재일조선인 여성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듣고 싶은 것은 여자들 이야기인데, 묻기가 겁난다.”

 

#김시종(1929~): 1948년 4.3 투쟁에 참여했다가 일본으로 밀항한다. 오사카 조선인 마을에 살면서 재일조선인 교육 및 정치 문화적 활동을 해 왔다. 1950년 <신오사카신문>에 첫 시가 게재되었으며, 일본문학이나 한국문학으로 회수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의 서정과 사상을 독자적인 시 세계에 담아낸 대표적 재일조선인 시인이다. 한국에 번역된 시집으로는 잃어버린 계절(창비, 2019), 아카아노시집 계기음상 화석의 여름(b, 2019) 등이 있다. 또 평론집 재일의 틈새에서(돌베개, 2017), 조선과 일본에 살다(돌베개, 2016) 등이 번역되어 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음을 배워야 하고, 글자를 배우기 전에 글쓰기에 대한 욕망부터 배워야 하는 존재들에게, ‘말·글’은 그것을 배운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일 수가 없다. 그 말·글은 외마디일지라도 그/녀들의 삶 전체를 통해 맺어온 관계들을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달고 나타난다. 그러니 그 말·글을 묻자니 (더럭) 겁부터 난다. 상상할 수 없는 무엇과 만날까 봐, ‘나’도 그/녀들의 삶과 무관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음을 깨닫게 될까 봐, 그/녀들의 말과 글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까 봐.

 

이처럼, 글을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녀들이 (감히) 배운 말·글을 접할 때 ‘우리’는 세 번 이상의 ‘불화(不和)’를 겪는다. 공동체의 경험과, 일인칭 ‘나’와, 익숙한 어법과 불화하는 그/녀들의 말·글. 익숙해 보이는 레퍼토리 한 토막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나는 해방 후 오늘까지 녀맹 구와노 분회에서 일을 거들어 왔었지요. 그러나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일 같은 일은 못 거들었습니다. 다만 회비나 거두고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중략- / 어느 날 우리 집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모르는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 때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깝던지요. 나는 굳게 결심을 하였답니다. 「글을 꼭 배워야지....」 이런 굳은 결심이 어쩐지 나의 가슴을 부풀게 했습니다./ 나는 분회 성인 학교에 나갔습니다. 여덟 달 동안 하루도 쉰 날 없이 꾸준히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신보』도 읽게 되고 세상사를 자기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제는 누구가 어떤 질문을 해 와도 까닥 없습니다. 그야말로 눈앞이 환히 밝아 오는 것 같습니다./ 심 봉사가 물에 빠져 죽은 딸을 만난 기쁨으로 눈이 뜨인 것과 같이 40여년 만에 나의 눈도 뜨이였습니다. 이것 역시 훌륭한 자기 조국을 갖고 현명하신 수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나는 과거의 나와 같이 글을 모르는 녀성들에게 오늘의 나의 기쁨과 행복을 마음껏 이야기하렵니다./ 정말 글을 배운 후의 나의 형편은 달라졌습니다. 생활이 한 없이 흥겹습니다.” (시모노세키시 녀맹 구와노 분회 김삼순(42세),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기쁨」, 『조선신보』, 1962년 11월 30일, 4면)

 

 

▲ 조선신보 1962년 11월 30일자 4면에 실린 시모노세키시 녀맹 구와노 분회 김삼순(42세),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기쁨」 (출처: 송혜원 편저 『재일조선여성작품집: 1945~84. 1』 10쪽)


2014년에 발간된 『재일조선여성작품집: 1945~84. 1』(송혜원 편저, 녹음서점)에 인용된 문맹에서 벗어난 기쁨을 표현하는 이 말·글은 총련계 여성조직인 녀맹 지방 분회 성인학교 소속 김삼순이 쓴 것이다. 재일조선인 여성의 경험이지만, 최근 활발하게 번역된 재일조선인 문학에도, 잘 알려진 재일조선인 여성작가의 ‘문학’에도 포함시킬 수가 없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인데, 이 글을 정착시킬 장르도, 공동체도, 언어도 불분명하다.

 

장르도, 공동체도, 어법도 불분명한 김삼순의 글

 

‘김삼순’이란 이름 석자 옆에는 그녀가 속한 조직의 자세한 명칭뿐 아니라 ‘42’라고 나이가 노출되어 있어서 『조선신보』의 기사나 독자투고 같기도 하다. 김삼순의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보면, 글을 몰라 “일 같은 일”은 하지 못했던 울분과 소외감, 아이에게 글을 알려 줄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 글을 배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부풀게”했다는 기대, 여덟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 문해능력을 획득하자 “눈앞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것 같”다는 변화, 문해가 가능한 생활의 기쁨 등이 느껴져 글쓰기를 배우고 쓴 첫 글처럼 보인다.

 

한편 김삼순이 속한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면, 이 글은 재일조선인 여성 1세의 구술로도 읽힌다. 이 구술에는 아시아의 뜨거운 냉전을 배경으로 재일조선인 사회를 양분한 총련과 민단의 갈등, 김삼순이 총련계 여성조직에서 처음 글을 배웠기 때문에 그곳의 사상과 글자를 함께 습득하게 된 흔적이 거대 역사와는 다른 말로 적혀 있다.

 

다시 여성에 방점을 찍고 읽으면, 대표적인 ‘딸 파는 아버지’ 스토리인 「심청전」을 전유하고 변형시킨 대항서사로도 읽힌다. 문해능력을 획득하자, 김삼순은 팔려가는 ‘딸’의 위치가 아니라 눈을 뜬 심봉사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글은 기사이며 문학이며 구술이며 대항서사인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니다.

 

재일조선인 여성의 노동이란 측면에서 읽어보면, 눈길을 끄는 것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일 같은 일은 못 거들었”다는 토로다. 일 같은 일은 못했다는 말은 가사와 육아, 온갖 잡다한 부업(막걸리 제조, 가축 키우기, 텃밭채소 장사, 막노동), 이에 더해 총련계 재일조선인 단체 부인회의 ‘공동체 일’(Community-work)을 평생 해온 경험을 드러낸다.(권숙인,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재일한인 1세 여성의 노동 경험과 그 의미」, 『재일 한인 1세들의 공간, 노동, 젠더: 일과 생활세계』, 김백영, 정진성, 권숙인 지음, 한울, 2020년, 190-191쪽)

 

임금은커녕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 노동은 재일조선인 여성의 것이면서, 식민지기 강제동원당한 남편을 찾아간 아내의 것이면서, 정신대(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원된 태평양전쟁 지원 조직으로, 일제점령기 주로 군수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을 칭함)의 것이면서, ‘위안부’의 것이며, 독립운동가 여성의 것이며, 엘리트 여성의 것이며, 그 모든 상태의 ‘여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넘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현재의 모든 존재들에게 연결된다. 본성화된 ‘여성’을 거부하되, ‘여성’이 놓여있는 상태를 통해 다른 보이지 않는 존재와 연결되는 공통장을, 그/녀들의 일 같지 않은 일에서 본다.

 

이처럼 김삼순의 말·글은 짧지만 여러 경계를 가로지르며 존재한다. 기사와 문학과 구술과 대항서사 그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자기서사이면서 공동체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서사만도 공동체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위안부’의 정신대의 전업주부의 전문직 엘리트 여성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어느 것만도 아니다. 둘 다이면서 동시에 둘 다 아닐 수 있는 자리, 이중긍정이면서 이중부정인 자리, 그 모든 여성의 것이며 그 어떤 여성의 것도 아닌 자리, 그곳에 김삼순의 말·글 혹은 공백으로 여겨지지만 현존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이 있다.

 

‘뒤늦게’ 도착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

 

최근 재일조선인 여성의 문해능력 획득 과정과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가 번역되거나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공백은 뒤늦게 도착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 말·글의 장소이다. ‘뒤늦게’ 도착하고 있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다.

 

먼저,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재일조선인 문학보다 ‘뒤늦게’ 소개되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계에서 재일조선인 문학, 오키나와 문학 등은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물론 유명한 재일조선인 여성 ‘작가’의 글은 번역되었지만, 무명인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들은 최근에야 번역되고 있다. 그런데 이 텍스트는 작문, 수기, 쪽글, 증언과 구술, 에세이 등 ‘문학’에도 ‘실증자료’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다.

 

눈에 뜨이는 것으로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민족차별을 ‘넋두리’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잡지 <봉선화>에 실린 글을 묶은 것으로, 국내에 2018년에 번역된 『봉선화, 재일한국인 여성들의 기억』(오문자·조영순 지음, 최순애 옮김, 선인)이 있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야간 중학교에서 문해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과 욕망을 인식하는 과정을 구술을 기반으로 다룬 연구서로서, 2019년에 번역된 『할머니들의 야간 중학교』(서아귀 지음, 유라주 옮김, 오월의 봄)도 있다.

 

가족사진 한 장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하고, 재일조선인과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베트남 등 이주여성이나 난민여성의 생애사를 연결시킨 것으로 2019년에 번역된 『보통이 아닌 날들』(미리내 지음, 양지연 옮김, 조경희 감수, 사계절)과 무명의 재일조선인 여성의 글쓰기를 포괄한 연구서로 2019년에 번역된 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소명출판)도 꼽을 수 있다. 

 

▲ 국내 번역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들.

 

또한,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뒤늦게’ 인식되거나 혹은 특수화되었다. 1990년대 탈식민주의 이론과 함께 제3세계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유입되면서 ‘서발턴’(하위주체,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난 계층)의 표현을 둘러싼 논의가 심화되었음에도, 이들 텍스트가 일본에서는 주로 2010년대 초중반에 묶이고, 한국에는 2018년 무렵부터 번역되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공백이다. 더 많은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듣고 싶지만, 이미 그/녀들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이 뒤늦음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녀들의 말·글이 드러나면, 그것은 늘 늦거나 특수한(부분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강제동원이 이야기된 뒤에야 강제동원된 여성이 보이고, 장애가 이야기된 뒤에야 장애여성이 보이며, 난민이 이야기된 뒤에야 난민여성이 보인다. 이처럼 자본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가 얘기될 때, 착취의 핵심에 있음에도 ‘여성’은 후경화된다. 혹은 ‘위안부’라는 특수형태를 부여해서만 전경화된다. 동시에… ‘위안부’인 상태로 했던 강제노동과 성적 착취의 복합성은 다시금 후경화된다. 그리고 각 상태의 여성들은 단절된다.

 

있었으나 늦게 출현하고, 늦게 인식되었으나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 말·글들이, 이 단절을 벗어나 모든 존재를 향해 증언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래디컬하게), 보다 내밀하게(그러므로 전체를 향해), 왜 그/녀들의 말·글에 이끌리는가?

 

쓰여지지 않았던 방대한 작품군,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에서 송혜원은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재일여성의 글쓰기를 핵심에 놓고 재구성한다. “글에 접근조차 못한 채 생애를 마친 여성들, 쓸 시간과 장소를 결국 못 찾았던 여성들에 의한 쓰여지지 않았던 방대한 작품군”이 있으며, “그러한 부재한 작품의 존재야말로 재일조선 ‘여성문학’, 그리고 재일조선인 문학의 연원”이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여성문학뿐 아니라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들의 이 말·글은 내밀하면서도 집합적이다. 그/녀들이 살기 위해서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동시에, 일 같지 않은 일들의 중력 속에서 지낸 겹겹의 일상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공통장’에 대한 욕망으로 넘친다.

 

그/녀들의 말·글이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일라이 클레어(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이자 젠더퀴어이고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 살면서 장애, 페미니즘, 환경, 퀴어, 계급이 맞닿는 현장에 관한 교차성의 정치를 연구한 작가)가 말한 ‘집’을 상기시킨다. “집으로서의 장소, 몸, 정체성, 공동체, 가족” 등 “우리를 품어주고 지탱해준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이자, “도망쳐 왔고” 동시에 “갈망해” 온 “다중쟁점정치”를 꿈꾼다.(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 제이 옮김,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2020년, 35쪽)

 

그렇다면 그/녀/들의 말·글에 대한 물음은, 비가시화되어 있던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를 가시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밀한 욕망을 풀어놓을 수 있는 ‘갈망하는 집’은 없고, 생존을 위해 속해야 했던 ‘떠나오고 싶은 집’에 의해 단절되고, 떠나오고 싶은 집 속에 꽁꽁 숨겨져 김치처럼 절여지고 있는 말·글이 있다. 이들 텍스트에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commons-place of self-epic)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자. 그/녀들을 속박한 공동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녀들의 ‘자기서사’를 ‘공통장’을 꿈꾸는 과정으로 읽기 위해서. 이렇게 할 때, 현재 소개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자본주의화된 출판시장에서 ‘소비’되는 것을 멈추고, 다른 비가시화된 존재들에게 스스로를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한정은 ‘자기서사’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현재의 시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전적 에세이, 구술채록, 자전적 성격을 띠는 (사)소설 등”을 포함시킨다.(이한정, 「재일조선인 여성의 자기서사」, 『한국학연구』 40집, 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 2016년, 138-139쪽)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부각시키지만, 그/녀들이 글을 쓸 수 있게 했고, 구술과 증언을 기록했고, 출판하고 번역하고 있는 공동체와의 관계성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기서사 공통장’이란 말은,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문해교육 및 글쓰기의 욕망/표현/출판/번역을 둘러싼 관계들을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 형성되는 장소로 보려는 것이다.(권범철, 「현대 도시의 공통재와 재생산의 문제」, 『공간과 사회』 60호, 2017년, 133-134쪽)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을 특정 장르, 문학사, 공동체, 심지어 ‘여성’이라는 특성에 정착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말·글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되는 ‘공통장’으로서 모색하기 위함이다.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 속에서는 정신대, 위안부, 재일조선인 아내, 여공, 함바집 아줌마, 채소장수…. 서로의 연결을 차단당한 그/녀들의 경험이 서로를 배제하며 나타난다. 그/녀들 사이의 이 분열은 서로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킨 권력에 의한 것임을 재일조선인 여성의 말·글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다음 회에서 계속)

 

※이 글은 「트랜스내셔널 여성문학의 공백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로서의 재일조선여성문학」(『여성문학연구』 48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년, 87-133쪽) 논문의 일부에서 언급한 소재와 주제를 가져와 전체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넣어 구성했다. ‘자기서사 공통장 텍스트’의 개념에 대한 보다 심화된 논의는 이 논문에 자세하다.

 

*필자 소개: 신지영. 한국근현대문학과 동아시아근현대문학·사상·역사 전공.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한국 근대의 연설·좌담회 연구」(2010)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비교에 반하여: 1945년 전후의 조선·대만·일본의 접촉사상과 대화적 텍스트」(2018)로 히토쓰바시대학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성 중인 코뮌 활동에 참여하면서, 1945년 전후 한국과 동아시아의 마이너리티 코뮌의 형성·변화를 이동·접촉의 사건 및 동아시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난민*현장> 프로젝트 및 <수요평화모임>을 통해 만난 연구활동가들과 함께, 현재의 난민운동과 소수자 운동을 접점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금 역사 속 동아시아의 난민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2012), 『마이너리티 코뮌』(2016), 『동아시아 속 전후일본』(일본어, 공저, 2018), 『난민, 난민화되는 삶』(2020), 『동아시아 혁명의 밤에 한국학의 현재를 묻다』(2020), Pandemic Solidarity(2020) 등이 있다.

기사입력 : 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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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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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 20/11/22 [12:16]
감동적인 글이다.. 책들도 읽어볼게요 
ㅇㅇ 20/11/22 [13:14]
기사 읽는데 할머니 생각이 자꾸 나서 뭉클했어요
메이플시럽 20/11/22 [15:56]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겨진 조선인들이 많았는데 한국은 경제성장에 매달려 그 존재를 너무 오래 지워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에서 동포들을 만난 경험이 있지 않았으면 저도 관심이 없었을 것 같아요. 제가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일제 시기부터 연결된 여성들의 일대기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cobalt 20/11/23 [11:05]
[보통이 아닌 날들]... 진짜 멋진 책이었어요. 할머니들의 야간중학교도 재밌을 것 같고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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