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영화관

[극장 앞에서 만나] 사라지는 공간들 <안녕, 용문객잔> <진주머리방>

신승은 2021-03-06

수능을 마치고 맞은 크리스마스, 나는 나에게 주는 선물로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항상 인터넷 즐겨찾기에 있었던 영화관에 홀로 영화를 보러 가는 그 길은 무척 설렜다. 인파를 헤치며 도착을 했는데, 매진이었다. 허무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빵집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케이크를 사갈 정도로 기분은 계속 좋았다.

 

지금은 사라진 예술영화관 스폰지하우스는 스폰지 중앙, 스폰지 광화문, 스폰지 압구정, 세 지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광폰지, 압폰지 등으로 줄여 말하기도 했다.

 

스폰지하우스를 생각하면, 구스 반 산트, 오기가미 나오코, 미셀 공드리, 아네스 자우이 감독들의 영화가 떠오른다. 스폰지하우스에서 이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고, 극장 곳곳에 저 감독들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던 것도 같은데,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저 감독들의 영화를 막 접하던 그때 내가 가졌던 영화에 대한 막연하지만 아주 뜨거운 열정은 스폰지하우스를 비롯한 예술영화관에 가서 표를 끊고 기다리는 그 순간 더 뭉게뭉게 부풀었다.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 광화문 시네큐브를 함께 운영하던 백두대간 영화사가 광화문 시네큐브를 건물주 격인 흥국생명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때쯤 압폰지가 먼저 사라졌고, 그 다음은 중앙 스폰지가 사라졌다. 화면이 스크린보다 살짝 작은 느낌이 특이하고 웃기기도 했던, 영화를 보고 나면 산책하기 좋았던 시네코드 선재도 몇 년 뒤 사라졌다.

 

그쯤이었나 낙원상가 맨 꼭대기에 있던 서울아트시네마가 <로슈포르의 연인들>(자끄 드미 감독, 1967)로 마지막 상영을 했고, 재개관을 위한 관객 모금 활동이 시작되었다. 나도 참여를 해, 채플린 영화를 틀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영화관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의 경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소름 돋는 말을 멘트로 했었다.

 

▲ 서울아트시네마 재개관을 위한 관객 모금활동 중에 노래하던 모습  ©신승은


관객 모금활동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극장에서 종종 마주쳤던 화가 분이 셀러로 그림을 판매하고 계셨다. <400번의 구타>(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1959) 마지막 장면을 그린 그림을 샀다. 앙뜨완 드와넬의 얼굴 가운데 크게 ‘FIN’이 새겨진 그 그림을 보면서 영화관들에 ‘FIN’이 뜨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광폰지가 사라졌다.

 

멀티플렉스에 밀리고,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에 밀렸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익이 확실하게 나지 않은 것을 처단하기 위한 변명은 쉽고도 많다. 지금은? 코로나가 그 이유가 되었다.

 

안녕, 복화극장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2003)은 곧 폐관하는 복화극장에서 <용문객잔>(호금전 감독, 1967)을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풍경을 담는다. 영사기사와 끝내 만나지 못하는 매표원, 영화를 보는 진상 관객들, 사랑할 남자를 찾는 남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관 구석구석의 모습들이 고정된 카메라의 롱테이크로 보인다.

 

영화는 다른 여타의 영화에서처럼 뚜렷한 서사로 관객을 끌고 가는 대신, 관객이 영화관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며, 영화 속 인물 중심으로 쇼트가 진행되지 않는다. 인물이 행동을 다 마치고 프레임 아웃 해도 카메라는 공간을, 영화관을 가만히 응시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영화관을 보게 되며, 그 정지된 쇼트의 힘은 역으로 마치 영화관이 관객을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지게 한다. 누군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지는데, 관객은 여기서 각자 즐겨 찾던 영화관과의 추억을 회상함으로써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Goodbye, Dragon Inn 2003) 포스터. 곧 폐관하는 복화극장에서 <용문객잔>(호금전 감독, 1967)을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풍경을 담았다.


코로나의 위기로 CGV마저 3년 내에 영화관을 3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만 90편 언저리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영화 관련 각종 강좌에서는 OTT(Over The Top 인터넷 영상서비스)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휴관 중인 KT&G 상상마당은 영화사업부를 해체하고 직원을 해고하더니 위탁 운영사를 모집한다고 공고했다. 상상마당 영화사업부와 배급계약을 맺은 감독들이 모여 모집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감독들은 ‘독립영화 등 비주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사업에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저비용 구조를 무리하게 도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트는 공간을 넘어서 갖는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에는 그 영화관이 영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바라보는지가 고스란히 담긴다.

 

오오극장에는 고양이가 있으며 디비디들이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독립영화 감독, 배우들의 사인이 있다. 영화의 전당은 크고 미로 같기도 하며 야외극장도 있다. 아리랑 시네센터는 사람이 아무도 오가지 않을 것 같은 숨은 공간들이 있고, 학창 시절 나는 거기에 숨어 문제집을 풀기도 했었다. 고려대학교 시네마 트랩은 올라가는 계단 밑이 훤히 보여 무섭고, 낙원상가에 있던 아트시네마는 가을부터 발이 시렸다. 지금 인디스페이스 옆으로 간 아트시네마는 논란이 있는 프로그래머를 1년 만에 재임용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영화관들은 큰 쇼핑몰과 식당가 속에 있다. 팝콘과 콜라, 나쵸, 핫도그 등등 음식과 음료의 콤보 할인이 있고, 생수 한 병이 엄청 비싸지만 밑에 편의점까지 내려가기엔 너무 높다.

 

영화관은 사라지고 영화‘산업’만 남은 자리

 

홍콩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의 극장을 꼭 가보고 싶었던 나는 홍콩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했다. 한국어 자막이 없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어 영화를 보며 살짝 졸기도 했다. 로비에는 예전 스폰지하우스처럼 영화 관련한 소품들을 파는 작은 샵이 있어 한참을 구경했다. 한국 독립영화관과 큰 차이점은 팝콘과 콜라를 팔며, 팝콘과 콜라를 갖고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홍콩 시네마테크 앞에서   ©신승은


영화관들은 영화를 저마다 다르게 대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비슷한 공간을 찾게 된다. 영화를 그저 산업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예술로 바라보는 곳에 가고 싶지만, 복화극장처럼 공간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안녕, 용문객잔>에서 끝내 만나지 못하는 인물들처럼 사랑의 경로를 잃은 우리는 ‘유령’이 될까? 독립영화를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나는 더없이 불안했다. 영화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계속 있을까? 내가 좋아하고 믿는 영화들이 사라지고 영화관들이 사라져도 나는 계속 영화를 좋아할 수 있을까?

 

투자 대비 이윤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영화가 아닐까?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영화일까? 영화관이 다 사라지고 OTT만 남아도 영화일까? 휴대폰으로 OTT 플랫폼을 들어가 아침 먹을 때마다 틀어 놓을 수 있다면 영화일까? 2시간짜리 영화를 집에서 10번 끊어 보면 영화일까? 휴대폰이나 지문 묻은 노트북으로 볼 텐데 왜 4k로 찍는 걸까?

 

영화란 무엇일까? 영화를 좋아하며 만들며 내내 하던 질문이 또 한 번 크게 다가왔다. 초창기 영화는 연극, 소설과는 다른 장르임을 외치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갔다. 지금은 새로운 질문 앞에 놓여있다. 영화관이 사라지고, 독립영화 산업이 무너지고, 그래도 거대 자본이 투자되는 영화 ‘산업’은 계속 있겠지만 ‘산업’만 남은 자리에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안녕! 진주머리방

 

강유가람 감독의 <진주머리방>(2015)은 <안녕, 용문객잔>처럼 곧 사라질 공간에 관한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적 시선이 드러난다. 인물보다 공간에 집중한다. <진주머리방>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권의 변화가 심한 서울 연남동 속 오래된 미용실, 아니 머리방이 등장한다. 엄옥란 배우가 시종일관 짓는 못마땅한 표정은,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동네의 ‘힙한 변화’를 지켜보는 우리의 표정이다.

 

▲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진주머리방>(2015) 중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연남동’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달라졌다. 강유가람 감독은 그 의미가 달라지는, 변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우리는 흔히 ‘ㅇㅇ는 이제 우리가 아는 그 ㅇㅇ라고 볼 수 없지’라고 말한다. 존재를 그 존재로 특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을 갖게 하는 문장이다.

 

강유가람 감독은 <이태원>(2016)에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관련 기사: 미국 달러가 지배한 이태원, 그곳을 살아낸 여성들 http://ildaro.com/8605) 당신이 아는 이태원은 무엇인가요. 이태원은 무엇으로 인해 이태원이 되나요. 단순한 지역의 선이 아니라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언젠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무념무상으로 걷다가 길을 잃었다. 여기가 어디지 싶으면서도 감으로 찾고 싶은 마음에 괜히 휴대폰 지도를 켜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같은 곳을 몇 번 도는 바람에 아까 마주쳤던 사람을 또 마주치기도 하다가 다른 길로 들어갔는데 아니, 거기에 진주머리방이 있었다. 영화 속 <진주머리방>의 모습 그대로, 크고 붉은 간판에 흰 글씨로 ‘진주머리방’이 적혀있고 나무가 머리방을 꽃집인 마냥 감싸고 있었다. 엄청난 안도감이 들었다. 영화에서처럼 사라지지 않았구나. 복화극장은 실제로 사라졌지만, 진주머리방은 연남동 구석에서 초록색을 피우고 있었다.

 

“극장 앞에서 만나”

 

거리를 두어야하는 시국에, 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고, 많은 사람이 모여 보는 영화가 계속 건재할까 의문이 가장 컸던 작년 초겨울, 서울독립영화제에 내가 스탭으로 참여한 작품을 보러 갔다. 한창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오를 시기였다. 2020년 한 해 간, 각종 영화제가 연기되고 축소되었으며 새로운 방식을 도모하게 되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오픈 채팅을 이용하여 GV(관객과의 대화)를 운영했고, 최소한의 질문과 최소한의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모더레이터 분은 양해를 구하셨고, 진행은 빨랐지만 매끄러웠다. 이전 타임에 지브이를 마친 동료와 굳이 연락해 짧게나마 인사를 나눴다. 그 날 받은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영화가 잘 있구나’ 하는 안부였다.

 

▲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Goodbye, Dragon Inn 2003) 중에서. 

 

<안녕, 용문객잔>은 ‘안녕, 복화극장’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극장 이름 하나 안 남기고 영화에게 자리를 준 채 사라졌다. 한국 독립영화관에도 많은 안녕(bye)이 있었지만, 새로운 안녕(hello)도 있다. 지난 1월 11일 전국 영화관 관객 수가 최저치를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뒤인 서울 연희동에 예술영화관 ‘라이카 시네마’가 생겼다. 단관, 39석의 영화관으로 하루에 다섯 번 정도 상영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영화에 관련한 글을 쓰기로 하며, 코너 이름을 ‘극장 앞에서 만나’로 정했다. 전에는 정말 자주 했던 말이었다. 주로 혼자 영화관에 가는 편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친구들과 <선라이즈>(F.W. 무르나우 감독, 1927)를 본 날이 있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각자 떨어진 좌석을 구매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한데, 그 당시 영화를 대하는 나의 강박적인 태도였다. “극장 앞에서 만나.” 이 말을 남기고 우리는 상영관에 들어갔다. 친구와‘압폰지’에서 <비카인드 리와인드>(미셸 공드리 감독, 2008)를 보았을 때도,  그렇게 약속을 하고 들어갔다. 극장 앞에서 만나자고.

 

극장에 가는 일이 줄었고, 극장이 줄었고, 그 앞에서 만날 일이 줄었다. 하지만 만나자는 약속을 우리가 한다면, 언젠가 영화가 끝나고 다시 세상의 빛을 맞으러 나올 때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길을 잃은 기분이지만 진주머리방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때까지 기업들이, 정책들이,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태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수익 창출의 용도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기사입력 :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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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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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 21/03/06 [15:36]
소격동의 씨네코드 선재는 영화보고 나와서 떡볶이 먹고 돌담길을 걸으며 친구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나누던 기억이 가득한데 몇년 전 폐관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관이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아니고, 영화관에 간다는 게 단지 영화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처럼 클릭 몇번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된 시대에 오히려 영화가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사라져간 영화관들과 그 시간들이 그립네요.
바리 21/03/06 [22:27]
나도 혼자서 영화관에 처음 갔던 날 기억합니다. 영화시간 기다리며 거닐던 거리도 생각이 나고 무슨 영화를 봤는지 가는 길에 마주쳤던 사람들까지도 기억에 남아요. 그게 다 영화와 영화관이 준 거였군요..
J 21/03/07 [13:09]
스폰지하우스에서 보았던 영화가 최근에 넷플릭스에 들어온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며칠밖에 개봉 안하는 예술영화관이지만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보았던 영화의 여운은 정말 깊이 남았다. 영화를 보면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영화를 같이본 사람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곱씹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영화의 장면들이 입체적으로 아른거렸다. 그런 영화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대중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게된 것은 잘된 일이지만, 아마 그때 내가 보았던 그 영화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리즘 21/03/20 [04:50]
영화관은 사라지고 영화산업만 남았다는 말이 마음에 잔잔히 남네요. 영화뿐일까요. 각각의 산업들이 그나마 나름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퇴색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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