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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성폭력 피해자의 현수막 “나는 지지 않았다”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대법원의 파기환송, 잊을 수 없는 순간
이은의   |   2023-02-06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 사건 원심을 파기한다.”

 

2021년 11월 26일 오전 대법원에서, 나는 꺄악 터져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뛰어나와 차마 법정에 오지 못한 의뢰인 김원경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가 직장내 성폭력 피해에 대해 문제 제기한 이후로 6년이 지나, 대법원이 그가 피해자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 직장내 성폭력 피해자 김원경 씨가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하면서, 드디어 법원에서 피해자임을 인정받았다. 김원경 씨는 법원 앞에서 “나는 지지 않았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김원경 제공 사진)

 

20대 직원이 60대 이사로부터 겪은 성폭력

 

서울대어린이병원후원회에서 근무하던 김원경 씨는 후원할 어린이 환자 선정과 지원범위, 후원행사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상사들이나 동료들로부터 일 잘하고, 딱부러진다고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2015년, 매주 협진 외래교수로 진료하러 오는 60대 치과의사로부터 괴롭힘과 성희롱을 겪었다. 당시 김원경의 나이는 29살이었다.

 

가해자는 후원회 이사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직원들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업무를 빙자한 폭언과 고성이 김원경 씨를 비롯해 직원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졌다. 그러다 업무 중에 김씨는 언어 성희롱과 신체적 성희롱을 겪었는데,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상부에 정식으로 신고하는 것은 엄두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해 10월 15일, 경기도에 있는 골프장에서 후원회 모금행사가 열렸다. 가해자는 그 자리에 김원경 씨만 대동하겠다고 우겼다. 모금행사는 2명 이상의 직원이 함께 업무하도록 되어있었지만, 가해자는 이를 무시했다. 후원회의 상급자나 동료들 모두 김원경 씨가 가해자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 녹음기를 가져가도록 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가해자는 골프장 VIP룸에서 김씨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 보며 “피부가 하얗다. 몸매가 빼빼 말랐었는데, 요즘은 살이 쪘다”, “다리가 가늘고 새하얗다. 화이트닝 크림을 바르냐? 몸에 잔털을 쉐이빙하냐?” 등의 성희롱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너 요즘 남자친구 생겼냐? 왜 이렇게 살이 쪘냐?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정신은 다른데 팔려있지.” 등의 말을 하면서, 회초리로 맞아야 한다며 나뭇가지를 구해오도록 지시했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가해자의 쏟아지는 말들과 요구에 김원경 씨는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이런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실시간으로 동료들에게 차마 그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가해자는 김원경 씨가 구해온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그걸로 김씨의 엉덩이를 접촉했고, 뒤에서 안는 등 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 일은 골프장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앱을 통해 택시를 쉽게 호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땐 업무 중이었다. 김원경 씨는 경황없는 중에 업무를 마무리했고, 골프장에 올 때 타고 온 그대로 가해자의 차에 동승했다. 가해자는 돌아오는 길에도 입으로는 김씨에게 업무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으면서, 손으로는 페트병을 쥐고 김씨의 가슴 부위를 밀었다고 한다. 김원경 씨는 차가 도심에 들어서서 횡단보도에 멈췄을 때, 황급히 내렸다. 그리고 직속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즉시 보고했다.

 

형사재판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

 

이렇게 김원경 씨가 겪은 직장내 성희롱 피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순리대로 사건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가해자는 병원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질의와 질타를 받게 되자, 잘못을 인정하고 서면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와 같은 후속 조치가 이어지지 않았다. 김원경 씨는 형사 고소를 결심했다. 그러나 1심 재판에 가서야, 가해자가 고위직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포함해 다수의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을 선임하며 혐의를 부인한 것을 알게 되었다. 가해자는 변호인과 출석하여 수사를 받으며 10월 15일에 김씨에게 했던 언어 성희롱과 회초리를 가져오게 한 사실 등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신체접촉에 대해서만 모두 부인했다. 즉 형사처벌이 되는 사실만 부인했다.

 

피해자는 당일 골프장과 귀가하던 차량에서 일어난 추행 이외에, 과거 업무 중 식사 자리에서 있었다는 추행에 대해서도 고소를 했었다. 당시 식사 자리가 식당과 까페로 이어졌는데, 추행의 내용은 가해자가 테이블 아래로 피해자의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증인이 추행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김원경 씨와 진술이 달라, 믿기 어렵다고 했다. 증인 신문은 그 일이 발생한 때로부터는 2년을 훌쩍 넘은 시점이었다. 허구한 날 폭언을 퍼붓던 연로한 업무지시권자가 테이블 아래로 여자 직원 허벅지를 만졌는데, 이를 본 동료가 2년이나 지나서 그 테이블 아래가 식당이었는지, 그 직후 커피를 마신다고 이동한 카페에서였는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건 테이블 아래에서 허벅지를 만진 손인데, 재판정에서는 ’식당이었냐, 카페였냐‘가 피해자의 진술을 못 믿겠다는 이유로 등판헀다.

 

김원정 씨가 녹음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순간을 녹음하지 못했다는 것도 피해자 탓이 되었다. 피해자가 녹음기를 가지고 있든, 휴대폰을 가지고 있든,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꺼내 녹음하거나 전화를 걸어 구조를 청하는 사건이 얼마나 되던가. 그러나 이런 공방 속에 1심 재판 결과, 가해자에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김원경 씨는 자신에게 변호사가 필요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걸릴 뿐, 순리대로 해결되고 가해자가 처벌받을 것이라 믿었다. 직장에서도 김씨가 입은 피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원경 씨는 1심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고 변호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나와 김원경 씨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형사재판 항소심에서, 나는 재판부에 김원경 씨에게 증언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다시 달라고 요청했다. 1심에서는 미처 내지 못했다고 하는 병원 후원회 간부와 가해자 사이의 통화녹음도 찾아 제출했다. 간부도 증인으로 신청했다. 수사기관에서 작성했던 가해자의 진술조서와 가해자 측 변론요지서 등을 분석해 의견서도 제출했다. 당시 항소심을 맡은 공판검사와 피해자의 변호사 모두 김원경 씨가 억울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렸지만, 항소심 결과는 참담했다. 피고인이 추행을 했다는 의심이 짙지만,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뒤집을 정도의 확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2심까지 무죄가 나오자,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그러자 가해자가 김원경 씨는 물론이고, 형사재판에 출석하여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들에 대해 무고와 위증 등을 이유로 형사고소에 나섰다. 항소심에서 피해자 법률대리를 맡은 나에 대해서까지 고소했다. 재판에 제출했던 녹취록에 속기사의 도장이 빠져있어서 증거를 변조했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녹취록에 대한 녹음파일도 제출되어 있었고, 이들은 모두 검사를 통해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보복성 고소였다.

 

김원경 씨는 분노했고, 슬퍼했다. 성폭력의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준 사회도, 그런 가해자가 의기양양해져 돌아와 활개 치게 된 직장도, 숨죽여 지켜본 후원회와 병원 사람들이 느낄 좌절감도 묵과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을 조력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고소당해 피의자가 되고 조사를 받으러 다니는 상황은 더욱 감내할 수 없었다.

 

김씨는 가해자에 대하여 그동안 겪었던 불법행위들을 청구원인으로 하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소송에서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이기 때문에 이기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서, 그 험난할 길을 혼자 가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 가혹했다. 무슨 이유인지 가해자가 김원경 씨와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을 고소한 사건은 김씨가 제기한 민사재판의 항소심이 종결될 때까지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소하지도 않은 채, 경찰을 거쳐 검찰 캐비넷에 박제되었다. 그 기간 내내 나와 김원경 씨는 공동 피의자였다. 피의자 신분으로 변호를 맡으면 피해자에게 행여라도 불리할까 봐 다른 동료변호사를 소개했다.

 

청구 금액은 5천만 원에 불과했지만, 김원경 씨에게는 더욱 간절한 민사법원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민사재판은 피해자에게 무심했다. 1심과 2심 모두 증인신청이나 당사자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증거가 없다며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이 나던 날, 나는 대법원에 상고하지 말자고 김씨를 설득했다. 법원의 높고 견고한 벽이 피해자에게 남길 상처가 걱정됐다. 패소한 측에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민사소송의 특성상, 향후 김원경 씨가 지게 될 부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호사님, 상고해 주세요. 수임료도 깎지 마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김원경 씨는 단호했다. 결국 우리는 대법원 상고심에 뛰어들었다.

 

▲ 김원경 씨가 자신을 지지하며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건넨 여행용 치약칫솔 세트. 김씨의 웃는 얼굴과 “관심과 응원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로고처럼 붙어있다. (김원경 제공 사진)

 

우리는 지지 않았다

 

2017년에 만났던 김원경 씨는 회사 다니랴, 가해자와 재판하랴, 또 서른하나의 청춘을 살아내랴 바쁘고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꿋꿋해 보였다. 그러나, 여러 일들을 겪으며 가해자로부터 입은 원 사건의 피해와 이후 입은 2차 피해들로 인하여 공황장애가 심해졌다. 결국 2021년 봄, 서울대어린이병원후원회를 사직했다. 그 해 겨울에 접어들던 11월 25일. 대법원에서 김원경 씨가 피해를 입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던 민사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그날 대법원 선고를 듣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다.

 

물론 끝이 아니었다.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아온 파기환송심 절차가 남아있었다. 다시 1년, 우리는 환송된 항소심에서 원고에 대한 당사자신문을 진행했다. 피고는 응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변호사들은 ‘7년이나 지난 사건’이라며 당사자신문을 거부했다. 김원경 씨는 이에 대해 ‘저는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피고는 안 나온 것이 아니라 못 나온 것’이라고 진술했다. 방청석에서 김씨의 어머니와 우리 인턴, 대법원 파기환송심 사건을 다뤘던 기자들, 그리고 이례적으로 여러 명의 재판연구관들이 참관했다. 김원경 씨에 대한 당사자신문이 이어지는 동안, 재판부 직원이 눈물을 훔쳤다.

 

재판이 끝나고, 김원경 씨가 사람들에게 기념품이라며 여행용 치약칫솔 세트를 건넸다. 거기 무슨 상표 같은 게 붙어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29살 김원경의 환히 웃는 사진 위에 “관심과 응원 고맙습니다” 문구가 적혀있었다. 김원경은 법원을 나서며 기념사진도 찍자고 했다. 딱 필요한 만큼의 크기에, 고운 바탕색을 깐 현수막을 준비해왔다. 거기에 “나는 지지 않았다”라고 적혀있었다. 재판정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질 뻔했다. 우리 중 누구도 2022년까지 이 송사를 하게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걸렸지만, 끝내 사필귀정 네 글자로 마무리할 극적 순간을 상상하지 못했다.

 

▲ 파기환송심에서 당사자신문을 마치고 나온 김원경 씨와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가 김원경 씨다. (김원경 제공)

 

파기환송심 판결은 올해 1월에야 나왔다. 이미 확정된 형사재판 판결과 충돌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끝내 부정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것들을 중심으로 김원경 씨가 입은 피해를 인정하고 1천만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 법원의 인정 폭이 아쉽지만, 끝내 김씨가 피해자임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그 판결의 가치를 단순히 금액으로 잴 수는 없다. 그래서 지난 7년의 싸움 동안, 공황장애를 앓으면서도 꿋꿋했던 김.원.경. 이름 석 자를 꼭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김원경 씨의 변호사여서, 그런 그와 공동 피의자여서, 힘들고 아팠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기사입력 :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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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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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보라 23/02/06 [21:39]
나무가지 꺾어오라고 한 부분부터 읽다가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아찔해서요. 아직도 이런 일들이 어딘가에선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것이 답답합니다. 요즘 같으면 갑질방지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까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몰랐겠지만,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분이 너무나 멋집니다. 고생한만큼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인생을 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길 바래요~
피해자분에게 응원을 23/02/08 [10:42]
ㅠㅠ 한국은 성희롱 피해보상금이 너무 적습니다.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공익을 위한 헌신 같아요. 
독자 23/02/11 [00:25]
피해자 분도 너무 대단하고.. 용기에 박수를 보내요.
너무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게 피해자 곁을 지켜준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재판 방청연대가 중요하구나 싶습니다.
철이 23/02/14 [19:41]
나뭇가지를 꺾어오라니, 그야말로 제대로 미친 영감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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