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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은 오늘 급식, 누가 만들어줬나요?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⑨
소소   |   2023-02-10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학생들은 급식을 해주시는 분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해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나의 국어 수업에 아예 흥미를 보이지 않고 1년 동안 억지로 앉아 있거나, 늘 졸기만 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도 눈을 반짝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급식 메뉴’. 그날의 급식 메뉴가 무엇인지에 따라 조회 때부터 아이들의 표정이 다르다. “선생님 오늘 급식 마라탕이 나온대요!” “오늘 급식 진짜 맛있는 거 나와요!”라고 말하며 기대에 찬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덩달아 설렌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급식소로 가서 따뜻하게 준비된 다양한 음식들을 받아서 먹고, 오늘 급식이 참 맛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 시간이 학교 일과 중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느끼는 이 따뜻한 즐거움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일까?

 

▲ ‘맛있게 먹은 오늘 급식, 누가 만들어줬나요?’ (필자 제공 사진)

 

학기 초, 우리 학교의 급식실 앞에 학생 동아리에서 붙여 놓은 설문 포스터가 있었다. 우리에게 점심 급식을 해주시는 분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였다. ①급식소 아줌마(아주머니) ②급식소 선생님 ③주무관 등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많은 수의 스티커가 ①급식소 아줌마(아주머니)에 붙어 있었다.

 

설문의 아래에는 급식소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존중하며 ‘급식 주무관’이라고 부르자고 권유하며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 설문을 보면서, 교사인 나 역시 매일 마주치는 ‘이분’들을, 나의 하루 세끼 중 가장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 주시는 분들을 어떻게 불러왔는지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구성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사와 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에는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나 학생만 있는 건 아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급식소에서 일하는 분, 청소를 하는 분, 시설을 관리하는 분 등이 계셨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떠올린 학교 구성원들을 부르는 말이나 지칭하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기사님, 여사님? 언어에 담긴 사고

 

‘성평등국어교사 모임’에서는 학교 구성원들의 호칭과 관련한 여러 학교의 사례를 공유했다. 여러 학교에서 시설을 담당하는 분은 주로 남성이며 그분들은 주로 ‘기사님’이라고 불리고 있고, 급식이나 청소 노동을 하는 분은 여성이 많으며 이분들은 주로 ‘여사님’, ‘아줌마’ 등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사(技士)’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기술직 6급 공무원의 직급. 지금의 주사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특정 기술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 ‘여사’는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며, 아줌마 역시 결혼한 여자를 이르는 ‘아주머니’의 낮춤말이다. 왜 누군가는 자신이 하는 직무와는 전혀 관련 없는 호칭으로 불려 왔을까.

 

현대 사회학의 주요 개념을 제시한 프랑스의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언어와 상징권력』(Language and Symbolic Power)에서, 언어는 우리가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권력 관계를 만들고 행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지, 그 안에 어떤 위계 관계가 존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 학교급식 노동자를 여사님이나 아줌마, 그것도 아니면 밥하는 사람(분)으로 지칭하고 불러온 배경에는 혹시 ‘밥’을 하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 오자마자 급식 메뉴를 확인하면서도, SNS에 #급식 관련 게시물이 넘쳐남에도, 정작 그 급식을 만들어 주는 분들과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맛있게 먹은 오늘 급식, 누가 만들어줬나요?’ (필자 제공 사진)

 

학교에서 ‘밥을 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그림자 노동이다. 매일 수백, 수천 명이 먹을 엄청난 무게의 밥과 반찬을 퍼 담고 나르고 뒷정리하는 노동의 과정은 급식소 밖 학교 구성원들에게는 그저 맛있는 한 끼로 치환되고 만다. 그러는 동안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환기 시설이 없는 조리실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폐암 판정을 받고 있으며,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역 교육청들은 급식실 시설 개선을 위한 모델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효성 없는 정책과 예산 편성으로 실제 급식소 노동 현실개선과는 여전히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노동과 돌봄을 존중하는 교육을 꿈꾸며

 

내가 담당하고 있는 국어 교과목에서는 대인 관계에서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바람직한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치고 배운다. 고등학교 선택 과목 중 하나인 실용국어 성취 기준을 살펴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로 언어 예절을 갖추어 대화한다’가 있다. 학습 요소로서, 사회생활을 하게 될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상대를 배려하며 대화하는 원리를 익히고 상황에 맞는 호칭어와 지칭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적절한 지칭어와 호칭어가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과서 속 지식만을 우선시하고 가르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학교 안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의 건강을 돌보는 존재들을 등한시해 온 것은 아닌지, 나 자신과 내 수업을 돌아보게 된다.

 

모 학교의 국어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학교의 여러 그림자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을 떠올려 보고, 그분들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은 글을 써 게시하는 활동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국어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우리 주위의 돌봄과 노동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 것 같다.

 

단순히 교과서 속의 적절한 호칭어와 지칭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 마주치는, 학교의 여러 그림자 노동을 담당하는 분들에 대해 수업에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적절한 호칭이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채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학교 구성원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적어도 내가 오늘 먹은 맛있는 급식이 여러 사람의 힘겨운 노동 속에서 탄생했음을, 따스한 한 끼의 돌봄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누군가를 부르고 지칭하는 일은 매우 일상적이며 특별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니며 사회적 관계 및 권력 구조가 얽혀 있는 일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 주변의 함께하는 사람들을 좀 더 주의 깊게,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러한 일을 학교 안에서, 우리의 국어 수업 안에서 해 나가야 한다고 믿으며 오늘도 수업을 준비한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기사입력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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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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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 23/02/10 [20:43]
국어교사로서 살아있는 수업, 학생들의 삶과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수업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참 멋지고 고맙습니다.
shaba 23/02/10 [23:43]
한국은 확실히 아직도 직업에 귀천이 있어서 호칭에서 반영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네요.
가사노동자분에게도 '여사님' 이런 호칭 많이 쓰는데..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마치 높임말로 불러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참 불편하더라고요.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도 있고.. 노조 같은 데서도 호칭을 제대로 쓰도록 캠페인 같은 것도 하는 것 같아요. 
관리사님, 매니저님...
아직 사회로 나오기 전 단계인 학생들이 호칭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교육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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