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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콜센터 상담원이 노조 활동하는 이유
[르포] 유베이스 수원 콜센터 상담원들의 이야기④ 변지현
정소은   |   2023-02-14

※ 유베이스 수원 콜센터에서 일하던 상담원 12명이 사업장 폐쇄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징계 해고됐다. 그리고 10개월째 복직 싸움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 경험과 복직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시야, 정소은, 정윤영, 희정 네 명의 기록자가 듣고 쓴다.

 

해피콜과 인바운드콜 사이 ‘블렌딩’되는 노동

 

2022년 3월과 4월에 걸쳐, 유베이스 수원 콜센터 상담원 12명이 징계해고됐다. 모두 여성. 그 중 변지현 씨는 유일한 싱글이고, MZ세대이고, 막내다.

 

지현 씨의 주된 업무는 ‘해피콜’, 고객에게 전화해서 자세한 불만 사항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고객과 1시간 가까이 통화한 적도 있어요. 나름 재미있게 얘기 나눴어요. ‘세탁기를 샀는데 솔직히 디자인은 삼성이 나은 것 같고, 성능은 엘지가 좋은 것 같더라, 어쨌든 이번에 삼성 제품이 예뻐서 샀는데 그다지 좋지도 않고…’ 이런 식으로 얘기가 길어지다 보면 고객이 심한 만성 비염이 있다는 것 등등 별별 TMI(Too Much Information)를 다 알게 되죠.”

 

특히 월요일에는 전국적으로 인바운드-콜(inbound/고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이 폭주한다. 주말 동안 누적된 고객들의 A/S 접수와 불만 사항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상담원들은 본업인 해피콜이 아닌, 원청사(삼성전자서비스CS)가 요구하는 업무에 마구잡이로 동원된다. 한여름 에어컨 고장 접수가 많은 시기에는 ‘A/S 접수 지원 해달라’고 했다가, ‘본 업무(해피콜)도 빨리 진행하라’는 등 두서없는 업무 지시가 당연하다는 듯 내려온다. 상담원을 ‘사용’하는 사측 입장에선 전국적으로 넘쳐나는 콜을 그저 ‘양적으로’ 배분해 소화하면 그만인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블렌딩(blending)’이라고 부르는데, 달리 말하면 상담원의 소모품화. 노동자에게 전문성이 누적될 수 없는 구조다.

 

상담원들은 불만이 쌓인 고객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예민하게 해석해내려 애쓴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 케이스는 나중에 VOC(고객의 소리)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등. 콜을 소화하는 동안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한다. 고객의 화가 사그라질 때까지 들어주고 기다려야 한다.

 

“목소리만으로 많은 걸 눈치채야 하고, 상대방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서 성향이나 감정을 파악해야 하다 보니, 모두들 작은 요소들에 과하게 의미 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콜센터의 직업병이라 표현해도 될까. 전화기 바깥세상에서도 누군가의 숨소리, 말투, 눈빛까지도 어떤 메시지가 되어 찌르는 것만 같았다.

 

▲ 유베이스 부천드림센터 앞에서 점심시간 선전전(피켓 시위) 하는 변지현 금속노조 유베이스수원지회 사무장.

 

노동조합 사무장은 무슨 일을 할까

 

지현 씨는 서른둘에 유베이스 수원 콜센터에 입사해서 2022년 6월을 기점으로 5년 차가 되었다. 그중 4년여를 노동조합 활동으로 보냈다. 그러나 입사 당시에는 ‘노조’에도, 회사 동료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굳이 친해져서 서로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약점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현 씨가 입사한 2018년 말부터 유베이스 수원 사업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니들 말로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유베이스로 고용 승계된 이후부터 10년 가까이 돌고 있는 소문이라고 했다. 이듬해 3월, 소문은 현실이 되었다. ‘수원 사업장의 업무를 본사로 이관하면서 곧 폐쇄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일방적으로 통보되었다.

 

사측은 ‘그만두고 나가면 실업급여 받게 해주겠다, 그게 싫으면 부천으로 출근하던가’ 하는 식이었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에겐 사실상 해고 통보였다. 직원들이 “해고하는 거냐?” 항의하자, 팀장은 “사실상 그렇죠.”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생계에 위협이 닥치자, 언니들은 다급하게 ‘일단 노조부터 만들기로’ 했다. 상담원들이 노조 조직도를 짜던 당시, 막내인 지현 씨는 얼떨결에 사무장이 되었다. “언니들한테 사무장은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자료 수집’을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언니들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다.

 

상담원들은 노조를 결성하며 일자리를 지켜냈지만, 투쟁이 뭔지 잘 몰랐던 그들 사이엔 부침이 많았다. 이후 노조 지회장이 세 번이나 바뀐 4년 동안, 지현 씨는 줄곧 사무장 자리를 지켰고, 그의 머릿속에 노동조합의 투쟁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출근 시간은 9시. 주로 8시 20분경 회사에 도착한다. 월요일에는 운영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사업장 보고를 지부 메일로 보낸다. 둘째 넷째 화요일에는 확대간부 회의, 월 1회 사무장단 회의, 그리고 매월 말에 회계 마감을 한다. 연초마다 예산을 짜고, 때마다 요구안 보낼 것 챙기고, 총회 준비, 각종 공문, 소식지 등 문서작업을 거의 혼자서 해냈다. 매일 화이트보드에 1번부터 순서대로 할 일을 적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집에 가서 야근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사실 콜센터라는 곳에서 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취약한 상태를 매일매일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현 씨는 공문 한 장, 요구안 한 줄 쓸 때마다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약점이 되어 ‘우리 지회(노조)가 확 밀려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지현 씨는 그런 자신을 지독한 ‘소심쟁이’라고, ‘피곤한 타입’이라고 표현한다.

 

코로나19 고위험 사업장 된 콜센터…KF94마스크 요구하다

 

2020년 초반에는 구로와 부천 지역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만일의 위험을 상상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일상이었던 지현 씨에겐 ‘촉’이 있었던 것인지, 금속노조에서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마스크 확보에 필요한 공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것처럼, 위기에도 빨리빨리 대응해야죠.”

 

당시는 마스크 수급이 어려워 시민들이 마스크 하나로 일주일 이상 버텨야 했던 시기였다. 콜센터가 ‘고위험군 사업장’으로 분류되었고 감염병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본사에서는 질 낮은 천 마스크 3장을 단 1회 지급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마스크는 소모품이니 각자 구입해서 쓰라’는 뜻이었다. 지현 씨는 ‘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용자의 법적 의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공문 대응을 해나갔다.

 

긴 시간 공방이 오간 끝에 KF94마스크를 간신히 지급받을 수 있었다. 개개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용자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력과 행운마저 필요로 한다. 반면, 노동조합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는 훨씬 크고 힘이 셌다. 지현 씨처럼 겁 없이 일하는 ‘기질’과 ‘노동조합 사무장’이라는 역할이 결합하면 이처럼 시너지를 냈다.

 

▲ 2020년 3월 부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시기에, 변지현 사무장이 유베이스에 보낸 ‘코로나19 현장대응 요구안’ 일부. 콜센터가 ‘고위험 사업장’으로 분류되었음에도 사측이 법적 의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사측을 계속 압박했다. (출처: 2020년 3월 12일자, 금속노조 유베이스수원지회 발신, 유베이스 대표이사 수신 공문 캡처)

 

내가 뭘 원하는지 헷갈린 적 없어요

 

2021년 11월 말, 삼성과의 계약해지로 업무가 없어졌다며 수원 사업장을 폐쇄하겠다는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그 이후, 노조 사무장인 변지현 씨의 일상은 하루도 예측 가능한 날이 없었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4년간의 과도한 노조 업무에 더해, 사업장 폐쇄에 반대하다가 징계해고를 당한 여파가 공황 증세와 무기력, 우울증을 불러왔다. 지현 씨는 작년에 참여했던 해고자 심리상담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감자전을 만들려고 감자를 강판에 막 갈다 보면, 어느 순간 더 갈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조각만 남게 되잖아요. 4년 동안 스스로를 너무 갈아 넣어서 그런가, 지금의 제 상태가 딱 그 감자 조각 같아요.”

 

지현 씨는 현재 ‘언니들이 준 까방권(까임방지권) 덕분에’ 예전보다는 쉬엄쉬엄 활동하고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콜센터에서 일해온 언니들은 자녀와 남편을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참아왔을 것이다. 지현 씨는 ‘몇십 년간 부당한 걸 참으며 일해온 언니들의 세월이 짠하다’고 했다. 몇 년 후 정년퇴임할 언니들에게 금 돼지 한 마리씩은 주지 못할망정, 회사가 너무 ‘못됐다’며 열을 올린다.

 

언니들과 세대도, 성향도 다른 지현 씨에겐 ‘투쟁’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을 텐데, 빠르고 힘있게 대응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뭔가 드라마틱한 대답을 기대하며 두어 번 같은 질문을 했는데, 지현 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가 뭘 원하는지를 헷갈린 적은 없어요. 그동안 모든 걸 쏟아부어서 우리 지회(노조)를 지켜낸 걸 아무것도 아닌 거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2019년에 지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 누가 봐도 내년에 없어질 거라고 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냈잖아요.”

 

변지현 씨에게는 12명의 징계해고자와 10명의 근무자(B2B)로 이루어진 노조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 해고자와 근무자가 함께하는 투-트랙 투쟁이 조합원 모두에겐 결코 쉽지 않았지만, 조합원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양쪽 모두가 잘 버텨주는 게 중요해요. 근무 중인 분들(B2B)이 건재해야 해고자들이 복직했을 때 돌아올 일터가 있는 것이고, 우리(해고자)가 잘 싸워줘야 근무자들도 계약해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유베이스 수원지회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은 남달랐다. 거리 선전전에서는 비장하고 거창한 구호 대신 부드러운 나레이션이, ‘동지’라는 호칭 대신 ‘언니’ 혹은 서로의 이름이, 민중가요가 아닌 아이유의 노래가 들렸다. 도시에서 온갖 ‘소리’에 지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보태고 싶지 않아서 음량도 크지 않게 틀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콜센타 그언니’ 선전물에 적힌 글귀는 누가 보아도 술술 읽힌다. 우아하고 당당하게 투쟁하고 싶고, 무엇보다도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

 

▲ 거리에서 선전전(피켓시위)를 하다 보면, 투쟁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을 종종 마주친다. 조합원들과 점심 메뉴를 상의하고 있을 때, ‘투쟁 지지 서명’을 받는 중인 줄 알고 이름을 적어주려 다가왔던 한 시민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린 것. (출처: 유베이스수원지회 인스타그램 콜센타그언니)

 

“대한민국에서 노조 가입율이 10%대에 불과하잖아요. 50대 언니들도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는데, 할 말 다 한다는 MZ세대를 비롯한 젊은이들도 당당하게 자기 권리 찾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노조가 뭔지도 모른 채 다급히 조직도를 만들던 날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지금은 기댈만한 선례가 없는 투쟁을, ‘콜센타 그언니’들이 하고 있다. 농담처럼 ‘어쩌다 최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모든 걸 쏟아부은 만큼 결국은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지현 씨와 언니들의 의지는 ‘어쩌다 최초’를 ‘기어이 최초’로 만들 것만 같다.

 

[필자 소개] 정소은. 독립기획자. 최근 〈버라이어티 퀴즈쇼_노란봉투를 열어라!〉 프로젝트그룹 참여 중.

기사입력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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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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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23/03/05 [12:47]
조합원 언니 동지들 부럽네요 든든한 사무장님이 계셔서
유베이스쓰레기 23/05/22 [18:57]
이후 소식이 궁금해요
유베삼장 24/02/22 [23:26]
지금은 민사소송 중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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