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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선생님이 들려준 한국 여성노동운동사
[인터뷰] 한국콘트롤데이타사 노동조합원 출신 이정화(상)
변정정희   |   2023-04-04

반세기 전, 당시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 한국콘트롤데이타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95%에 달했다. 1970년대 컴퓨터부품 제조기업이었던 회사는 “예민한 손”을 가진 한국 여성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음에도, 극소수였던 남성노동자와의 임금격차는 심각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남성노동자는 동일 학력, 경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부로 승진되고, 임금도 올랐고, 남성만 받는 수당도 따로 있었다.”

 

임금차별에 저항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인상, 결혼퇴직 반대, 임신퇴직 반대” 투쟁을 했다. 또, 직업병을 조사해서 유해 작업장 근무환경을 바꾸는 등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후 사측의 해고와 폐업, 거기다 사측 사주를 받은 남성노동자들(구사대)에 의한 집단폭력 사태 등으로 노조는 와해됐다. 그런 여성노동자들의 살아있는 운동사를 우연히 접한 필자가 당시 노동조합에서 활약했던 활동가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 나의 요가 선생님 이정화.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변정정희

 

한 사람의 삶은 오롯이 하나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흔히 평범하다고 말하는 당신과 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화 님은 저의 요가 선생님입니다. 구립문화체육센터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여타 요가 강사와 다른 점은, 바로 60대라는 것입니다. 젊음과 건강함으로 대표되는 운동의 세계에서, 머리칼이 희끗희끗하고 군살이 있으며 목소리도 작은 노년 여성은 경쟁 논리로 봤을 때 밀리기 마련이죠. 고백하자면, 저도 딱 한 달만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하지 못했던 자세를 자연스럽게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똑같은 자세를 지겨울 정도로 꾸준히 반복하기만 한 것 같은데, 무슨 비결일까요?

 

그러던 어느 날, 쉼 없이 수업을 인도한 선생님이 딱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사유는 출판기념회. 그런데, 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노동조합사를 담은 책이라고요?(콘트롤데이타 코리아 노동조합 운동사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 말이냐?』) 운동의 비결이 혹시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선생님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산 자세 - 학생에서 노동자로, 당당하게 서는

 

“발을 모으고 서서 팔을 몸통 옆에 둡니다. 웅장한 산을 닮은 ‘산 자세’는 단순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근육을 사용해 흐트러짐 없이 당당히 서는 요가 자세의 기본입니다.”

 

▲ 산 자세. 요가 자세의 기본이라고 이정화 선생님은 설명한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운동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여자들, 월급을 타면 명동에서 옷과 화장품 사기를 즐겨하는 여자들, 하지만 남자들보다 돈을 적게 받는다는 것을 알고 단체로 노란 리본을 단 여자들, 돈보다 생리휴가를 선택하며 주 42시간만 일한 여자들, 남자 화장실에만 있던 담배 재떨이를 똑같이 놔달라고 요구한 여자들, 결혼과 출산 후에도 계속 회사에 다니겠다고 선언한 여자들. 바로 1970년대 컴퓨터 부품 제조기업 한국콘트롤데이타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여성노동운동을 한 여자들이다. 여성 노동자로 당당하게 ‘산 자세’ 취한 이 여자들 중 한 명이 바로 정화였다.

 

1957년생 정화는 과천에 땅을 가진 꽤 유복한 집의 5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근처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좋은 값에 땅을 팔아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실패했고 다시 과천 본가로 돌아왔을 때 형편은 어려워졌다. 매일 새벽 4시, 정화는 부족한 차비 탓에 십 리 길을 걸어 서울 용산의 성심여자고등학교로 등하교했다. 물려받은 헌 교복을 입고 구멍 난 구두를 신은 채 남태령 고개를 넘어 걷고 또 걸었다.

 

▲ 요가를 하는 이정화 선생님의 모습. (인터뷰이 제공)  

 

“우리 오빠는 서울대 농대 다녔어요. 엄마는 아들이 서울대 나와서 취직하면 집이 망해도 희망이 있겠다 싶었죠. 근데 오빠가 ‘엄마, 나한테 대학교 나왔다고 기대하지 마. 난 농민운동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한 거죠. 결국 제가 일하러 가게 됐어요. 진짜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정화는 학교 추천으로 한국콘트롤데이타사에 입사했다. 콘트롤데이타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컴퓨터 관련 다국적기업으로, 한국에서 하청 생산을 하다 1963년 한국콘트롤데이타사를 설립했다. 주로 컴퓨터 기억장치를 제조했는데, 설립 당시 40명이었던 직원은 정화가 입사하기 직전인 1976년 1,300명으로 급증했다.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 바탕에는 값싸고 풍부한 젊은 한국 여성의 노동력이 있었다. 마치 요즘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두고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처럼.

 

“컴퓨터의 시초였어요. 그때는 컴퓨터가 완전히 집채만 했어요. 그거를 부분적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와이어 파트, 땜질 파트 나눠서 작업했어요. 전 와이어 파트에 있었는데, 현미경을 보면서 낚싯줄보다 가는 줄을 아주 조그만 코에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메모리칩을 만들었어요. 한국 사람들 손이 예민하니까 그런 걸 이용한 거 같아요.”

 

▷아래를 향한 개 자세 - 일하는 여자 혹은 공순이, 바닥을 바라보며

 

“‘아래를 향한 개 자세’는 손과 발을 바닥에 대고 몸을 삼각형으로 만듭니다. 개가 주로 하는 동작을 닮은 이 자세는, 머리를 아래로 두고 시선은 발을 바라봐야 합니다.”

 

▲ 아래를 향한 개 자세

 

한국콘트롤데이터사에 다니는 건 꽤 괜찮은 명함이었다. 명색이 외국계 회사로, 다른 생산직 여성 노동자보다 월급이 많았다. 회사 근처 반찬가게에서 ‘콘트롤에 다닌다’고 하면 외상도 쉬웠다. 최신 냉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1970년대에 보기 힘든 생리휴가도 있었다. 게다가 서울 전역을 도는 ‘삐까뻔쩍’한 20대의 통근버스는 얼마나 화려했던지 공단에서 다른 공장에 위화감을 줄 수 있으니 돌아가라고 할 정도였다. 고졸 출신 노동자들은 스스로 ‘다른 공순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월급날이면 유명 메이커 옷과 화장품을 사고 대학생이 많은 명동에서 놀았다. 노래도 팝송만 들었다.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온 다른 노동자들과 실제로 좀 달라 ‘보였’다. 하지만 공장은 공장, 공순이는 공순이였다. 일하느라 내려간 고개를 쉽게 한 번 올리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분홍 까운을 입고 생산 현장에서 일하잖아요. 줄 끼우고 밥 먹고 또 줄 끼우고.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공장이니까. 몇 명은 거기서 한 일 년 정도 있다가 공부해서 이직했어요. 친구들은 거기를 넘어서 다른 데 가는데, 전 그냥 있었던 거죠.”

 

나름 명문고등학교 출신에 교사가 꿈이었던 정화는 공장에서 엎드린 개 자세 마냥 자꾸만 바닥을 향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노조 사무실이 현장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어요. 화장실 가는 길에 들락날락했죠. 집에 가서 오빠한테 이야기하니 ‘거기 한번 친해 봐’ 했던 거 같아요. 오빠가 농민운동을 하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의식화가 돼 있었나 봐요. 직접 노조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긍이 되더라고요. 거기서도 사람이 필요하니 대의원(노조 중간 간부) 하라 그랬죠. 그래서 교육을 가보니까 이 생활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위를 향한 개 자세 - 노동조합원이 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엎드린 상태에서 손으로 바닥을 밀며 가슴을 위로 듭니다. 시선은 위를 바라봅니다. 기지개 켜는 개를 닮은 ‘위를 향한 개 자세’는 가슴을 열고 기운을 불어넣는 자세입니다.”

 

▲ 위를 향한 개 자세

 

한국콘트롤데이타사 노동조합은 민주적이고 활기찼다. 1973년 남녀 차별 임금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진 노조는 3일 만에 조합원 600명이 가입하며 성공적으로 설립되었다. 단시간에 대다수 노동자가 참여하자 경영진도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잡음 없이 시작된 노조는 사무실도 생산라인 입구에 위치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당시로서 드물게 누구나 가입과 탈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오픈샵 방식을 택했고, 대의원 선거가 아닌 전 조합원이 투표하는 직접선거로 운영했다. 정화는 노조에 가입한 다음 해부터 대의원을 맡아 조합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설득력 있게 설명 잘했던 거 같아요. 임금 인상할 때 노조에서 이번에 몇 프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 바로 행동 개시했어요. 대의원이니까 라인에 와서 그런 얘기 설명하면 이제 다 같이 하는 거예요.”

 

사내 여성 노동자가 95%였던 만큼 노조는 여성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당시 ‘용돈이나 벌어 쓰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미혼여성 1인의 자취 생계비와 부양가족을 직접 조사해 임금인상의 근거를 마련하고, 생리휴가 없는 주 40시간 노동 대신 생리휴가가 있는 주 42시간 노동을 선택해 여성의 건강권을 확보했다. 결혼 퇴직 반대, 임신 퇴직 반대 투쟁을 하며 평생직장 운동도 펼쳤다.

 

▲ 1977년도 임금, 근무시간, 기타 근로조건에 대해 체결한 단체협약서, (콘트롤데이타 코리아 노동조합 운동사 편찬위원회 제공)

 

“원래 결혼하면 그만두는 분위기였죠. 근데 거기 제일 큰 언니가 임신했거든요. 그래서 임신 투쟁했어요. 회사에서 ‘너 나가’라 그랬는데 ‘우리는 일할 수 있다’ 해서 육아휴직까지 만든 거예요. 그 언니 보고 임신한 사람이 더 생겼죠. 심한 유해 작업이 아닌 이상 와이어 끼는 건 임신해도 별로 지장이 없을 거 아니에요?“

 

겉으로 깨끗해 보이는 전자 회사지만 실제로 유해 물질을 다루는 작업이 많았다. 1981년 한 노동자가 일하다 본드에 과다 노출되어 정신과 3개월, 내과 1개월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노조는 곧바로 직업병 조사를 실시했다. 환기시설을 설치하고, 독성물질을 덜 유해한 종류로 바꾸고, 유해 작업장 근무는 1일 6시간이라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서 일하는 여성에게 의자 제공하기를 요즘 대형마트보다 먼저 실시했다.

 

투쟁 때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임금인상률을 적은 노란 리본을 다 같이 가슴에 달고 쉬는 시간이면 현장 밖으로 나갔다 업무 종이 울리면 한 줄로 최대한 천천히 들어왔다. 근무 시간만 딱 철저히 지키거나, 연장근무를 거부하는 방법도 있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 사표 대신 해고당하지 않을 정도로 정해진 일만 하는 소극적 업무관)과 비슷한 집단 태업(노동자들이 뭉쳐 작업능률을 떨어뜨리는 노동쟁의행위)을 주로 이용한 것이다.

 

이 외에도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이불이나 혼수품을 공동 구매했고, 퇴근 후 꽃꽂이반, 탈춤반, 여성 교양강좌를 수시로 개최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정화는 노조 생활이 즐거웠다.

 

▲ 노동조합 탈춤반 활동을 하던 시절, 공연 모습. (콘트롤데이타 코리아 노동조합 운동사 편찬위원회 제공)

 

“새로운 세상을 아는 거니까. 교수들이나 외부 사람이 와서 강의하면 눈이 반짝 뜨이고, 또 반짝 뜨이고 이랬어요. 되게 좋았죠. 전 탈춤반 반장이었어요. 대학가에서 탈춤반이 많이 활성화되고, 그 여파가 노동 현장에 들어왔거든요. 그때 노동조합을 통해 모집했는데 60명 정도 엄청 많이 모였어요. 전 영감 역할을 주로 했고, 북 치고, 징 치고, 꽹과리 치는 일도 많이 했어요. 끝나면 식당 가서 라면 끓여 먹고 이런 것도 되게 즐거웠어요. 고등학교 때 가난 속에서 절 너무 잡고 있었거든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었죠. 근데 탈춤반에 들어가서 많이 분출했던 것 같아요. 제 모습을 찾은 거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탈춤은 예로부터 민중들의 놀이였다. 맨얼굴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탈을 쓰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정화도 탈춤을 만나 착한 딸로서, 성실한 여학생으로서 주어진 탈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노동자의 탈을 잡아 썼다. 힘차게 목소리를 내며 더 높은 곳을 향해 기지개를 쭉 켜고 일어서는 개 자세처럼 말이다.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변정정희. 익천문화재단 르포문학교실 수료. 주로 TV 다큐멘터리,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에서 글을 썼으며, 요즘 새로운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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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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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23/04/04 [19:27]
그 시절의 정화가 생생하게 와 닿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
Ariel 23/04/05 [11:27]
요가 선생님이 너무 멋있습니다.
레오 23/04/05 [16:21]
이런 어른들의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실 23/04/06 [09:44]
그때는그랬었지~
대견스런 우리의 자화상~^^
와산티 23/04/24 [17:22]
너무 멋진 삶을 살아오셨어요! 요가자세와 정화샘의 삶이 너무나 멋지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쑥이 23/05/26 [23:41]
찬란하게 빛나던 그시절 선생님의 열정이 너무 멋있습니다
항상 좋은수업 감사합니다.
스위트콘 23/06/07 [14:27]
멋진 요가선생님 이야기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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