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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려는 국가, 남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이민자 국가’ 독일 사회의 경험④ 터키계 손님 노동자
김인건   |   2023-11-01

1973년 서독의 이주민 정책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독일 정부는 유럽공동체 외 국가에서는 더 이상 손님노동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 한국의 경우는 노동자 모집이 아닌 노동자의 기술 습득이 주 목적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당 결정에서 제외되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서독 사회는 공식적으로 이주노동자를 환영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원했고, 장기 체류하는 이주노동자가 늘어났다. 이들은 점차 가족과 함께 기숙사가 아닌 일반 주택에서 살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삶이 선주민의 삶과 가까워지자, 이들을 혐오하는 극우의 목소리가 사회에서 점점 힘을 얻었다. 거기에 1966년 경기침체가 발생하면서 서독인들은 이주노동자를 취업 시장의 경쟁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네오나치 정당 NPD는 서독 7개 주의 주의회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얻었다.

 

▲ 1975년 독일 쾰른 번호판이 달린 자동차를 타고 고향인 터키에서 휴가를 즐기는, 터키 출신 ‘손님 노동자’ 부부. 이미지 출처: DOMiD-Archiv


외국인 혐오의 주요 타깃은 터키계 이주민이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 집단 중에서 외형과 문화가 가장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원래 독일 기업과 사회로부터 크게 환영 받는 존재였다. 기업은 터키인들이 성실하고 깨끗하며 믿을 수 있는 노동력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터키인들은 지중해 국가 출신의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임금이 더 낮고 힘든 분야에서 일했다. 그리고 기업이 요구하는 업무를 불만 없이 수행했다.

 

필요해서 불러들일 땐 장기적인 이민자 계획이 없던 독일사회

이주민 숫자 늘어나자 환대가 아닌 차별과 혐오…

 

1961년 서독과 터키가 노동자 모집 협약을 맺을 당시, 다른 손님노동자와 다르게 터키인들은 독일에서 최대 2년까지만 머물 수 있었으며,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노동자들이 터키로 다시 돌아와 사회에 기여하길 바랐던 터키 정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 기업은 터키인들이 계속해서 머물기를 원했고, 새로운 노동자를 모집하는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그 결과 1964년 협정의 내용이 수정되었다. 터키계 이주노동자들도 독일에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터키계 이주민의 숫자가 늘어나자, 독일 사회는 태도를 바꿨다.

 

1972년 서독에는 약 210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1968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숫자다. 그리고 이들이 가족을 구성하게 되면서, 노동하지 않는 이민자의 숫자도 계속해서 증가했다. 1967년 약 81만 명이었던 비노동 이주민의 숫자는 1973년 137만 명이 되었다. 서독 정부는 이주노동자와 그들의 가족 숫자가 점점 증가하자, 이들을 사회적 부담으로 인식했다.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일 때 장기적인 이민자 사회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독 정부는 손님노동자 모집 중단 결정 이후 많은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다. 유럽공동체의 회원국이 아니었던 그리스와 스페인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해당 국가의 경제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약 42%가 돌아갔다. 하지만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던 터키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달랐다. 당시 터키의 경제상황은 좋지 않았고 실업률이 높았다. 터키인들은 귀향보다는 정착을 택했다.

 

그들은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독일에 올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평소에는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던 사람 중 상당수가 1974년에는 휴가를 포기했다. 제도적으로 휴가를 끝내고 독일로 돌아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추방을 두려워했다. 본격적으로 장기 정착을 고민하게 된 터키인들은 고향에서 가족을 데리고 왔다.

 

▲ 독일에 가서 일하는 아버지 없이, 터키에서 가족들이 생일 파티를 하는 모습, 출처: DOMiD-Archiv


서독의 터키계 이주민의 숫자는 1974년 100만 명에서 1980년 140만 명으로 늘어났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여성의 비율도 약 21%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15세 미만 터키계 이주민의 숫자는 두 배로 늘어나 42만명이 되었다.

 

귀향보다 ‘정착’을 선택한 이주자들

욕설과 무시, 방화, 혐오범죄 등 트라우마 겪은 이민 2세대

 

터키계 이민 2세대는 터키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가장 깊이 경험한 세대다. 터키계 이주민은 차별로 인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이 사는 지역과 독일인이 사는 주거 지역은 분리되었다. 이민 2세대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기회를 잡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터키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온 사람들의 학력은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잘 인정되지 않았으며, 독일 학교의 교사들은 손님노동자의 자식들에게 인문계열 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2세는 독일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성장했다.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부모 대신 청소년 시절부터 관공서와 병원 등을 다니며 통역 역할을 했던 그들은 부모의 독일어를 비웃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다. 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술에 취한 거친 독일인에게 욕설을 들어야 했고, 친절한 사람에게조차 자신이 독일인이 아니라 터키인이라는 것을 확인 받았다.

 

1992년 묄른과 1993년 졸링겐에서 발생한 네오나치에 의한 터키 가정 방화 사건은 이들 세대에 트라우마가 되었다. 방화로 인해 묄른과 졸링겐에서 각각 3명과 5명의 터키계 이주민이 죽었다. 특히 희생자 중 5명이 14세 미만의 아이들이라 충격이 더 컸다.

 

▲ 1993년 방화 테러를 당한 졸링겐 터키 가족의 집, 방화 전(좌), 방화 후(우)  이미지 출처: DOMiD-Archiv


이주는 주체적으로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결정하고, 그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지 결정한 사람에게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가족도 이민자가 된다. 1992년과 1993년 테러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2세들은 이제 모두 성인이 되었고, 부모 세대가 독일 사회에 기여한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적어도 이제 독일 사회는 터키계 이주민 집단이 독일 사회에 기여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며, 그들이 겪은 어려움이 그들 자신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정부와 주요 언론은 터키계 이민자들 또한 독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독일 연방 이민 난민청이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터키계 이민자 2세대는 1세대에 비해 좋은 주거 조건에서 살고 있으며 교육 수준도 높아졌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경험한다는 응답도 7.7%로, 높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거둔 터키계 이민자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터키계 이민자에 대한 테러는 최근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20%가 넘는 사람들이 직업을 찾거나 집을 구할 때 차별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제야 이주민들이 독일 사회에 기여한 바를 인정

“고향으로 돌아가라”…차별과 혐오는 여전한 사회 문제

 

지난 2019년 여름, 아이가 태어났다. 하루는 한 남자가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유아차를 밀고 있는 나를 향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지르고 사라졌다. 처음 경험하는 일도 아니지만, 이제는 독일에서 살아가려면 감내해야 할 사소한 소음으로 무시할 수 없다. 아주 작은 아이가 잠자고 있는 유아차를 향해서도 자신의 혐오를 발산하는 그들의 공격성에 대해 생각한다. 작은 아이가, 조금씩 커가며 겪을 수도 있는 혐오와 차별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한다.

 

이민자들의 삶은 자신이 도착한 나라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개인이 이룩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민자를 수용하는 사회의 태도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가 경험한 독일 사회는 터키계 이민자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에 비하면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독일의 터키계 이민자들은 독일 사회가 이주민에게 가졌던 이중적 태도 때문에 발생한 모든 문제를 경험하면서, 독일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많은 이주집단이 그렇게 독일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독일에서의 삶을 시작한 아이를 보며, 약 50년의 경험을 통해 독일 사회가 배운 것들이 후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1982년 5월,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항의하며 25살 생일날 분신자살한 터키인 이주노동자의 자녀 셈라 에르탄(Semra Ertan)이 남긴 시 「나의 이름은 외국인」의 한 구절로 손님노동자에 대한 글을 마무리한다.

 

“나의 이름은 외국인 /나는 이곳에서 일한다 

/나는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알고 있다 

/독일인도 알고 있을까? 

/나의 노동은 무겁고 /나의 노동은 더럽다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너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필자소개] 김인건. 대학 졸업 후 잠시 철학 교사 생활을 하다 독일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적 평등’ 개념을 주제로 석사를 마쳤다. 지금은 ‘움벨트’라는 연구 모임에서 독일의 환경,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대한 프로젝트 글쓰기와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언론사 해외통신원, 여행 가이드 일을 하며, 독일의 역사적 발달과 그에 따른 사회 모습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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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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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IE 23/11/02 [11:20]
독일 이민자 역사에 대한 글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교가 되네요. 노동력만 빼먹고 그 존재들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는 건 현재의 한국이 옛날의 독일보다도 더 심하니까 독일이 선진국은 맞구나 싶기도 하고.. 한국 사회는 이제라도 배워야하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들을 고려하면서요. 한국도 이주노동력 없이 굴러가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데도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당나귀 23/11/10 [23:52]
기사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이주민은 이주한 사회의 이민자 정책이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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