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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경력을 이력서에 써도 되는 사회에 살고 싶어요”
[페미워커가 만난 사람]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을 위해 일하는 박혜리
난정   |   2024-01-16

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월요일이 다가오면, 일요일 저녁부터 우울해진다. “주말은 토요일 하루”라는 말이 밈처럼 사용되는 현대사회에서 ‘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하기 싫은 것’으로 여겨지는 노동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든, 생계를 위해서든, 우리와 언제나 함께한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고민할 때, ‘타인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 활동가들이다. 아래는 그 활동가의 노동에 대해 필자가 질문하고,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혜리” 씨가 답했다. 

 

▲ 2023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공동투쟁결의대회에서 박혜리 조직국장의 모습. 현재 방송스태프지부와 함께살자HCN비정규직지부 일을 맡고 있다. (박혜리 제공 사진)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별로 없는 방송업계에서

타인의 노동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노동조합 조직국장은 무슨 일을 하나요?

 

노동조합마다 체계가 다른데요. 제가 일하는 곳을 예로 들면, 한 회사에서 (혹은 같은 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덩어리가 노동조합이라면. 조직국장은 그 덩어리를 맡아서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해요. 저는 현재 ‘방송스태프지부’와 HCN 케이블방송 설치수리노동자들이 속해있는 ‘함께살자HCN비정규직지부’ 이렇게 두 곳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라서 궁금한 것들이 많은데요. 혜리님이 맡고 있는 지부는 각각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방송스태프지부’의 경우에는, 프리랜서 고용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다르게 특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기본적인 노동조합 사이클을 따라가는 ‘HCN 비정규직 지부’를 예로 설명하면,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돼요. 거기에는 지부장도 있고 집행부도 있어요. 보통 지부장은 (지부에) 가입해 있는 조합원들이 선출해서 뽑고, 집행부는 각 지부에서 조합원들을 뽑아요. 학교의 학생회를 예로 들면, 총학생회장이랑 부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선거를 해서 뽑지만, 그들과 같이 일하는 집행부는 학생투표 없이 학생회장이 데려오거나 면접을 봐서 뽑거든요. 그런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회사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합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 임금을 받으면서 전임으로 노동조합 일을 할 수 있어요. 노조의 규모가 크면, 회사에서 노동조합에서 전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몇 명을 (일터에서) 빼 주는데, HCN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현재 한 명만 (전임으로) 노동조합 일을 하고, 나머지는 (조합원들이) 나눠서 하고 있어요. 그렇게 모여 아직 노조에 가입 안 한 노동자들을 위해 같이 선전전을 가거나, 처우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회사와의 교섭을 준비하거나, 임금협상/단체협약/기자회견 준비 등을 합니다.

 

‘방송스태프지부’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노동조합 사이클과는 조금 달라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약 준비보다는 보통 부당해고나 임금체불, 방송 갑질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신고/상담 요청이 들어오면, (노동조합이) 같이 공론화를 하거나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으면 법적 자문을 구하여 함께 대응하는 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해당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고 상황별로 조건과 환경이 다 달라서, 문의를 받거나 도움 요청을 받을 때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방송업계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별로 없고, 써도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5인 미만인 영세사업장도 많고요. 그래서 노조로 상담이 들어오면 절반은 어떻게라도 할 수 있는데, 절반은 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5인 미만 분장팀에서 일하다가 해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법적으로는 5인 미만이면 해고를 해도 되거든요. 이러면 뭘 해볼 수가 없는 거예요. 폭언이나 폭행 등 괴롭힘을 당했는데 증거가 하나도 없어. 그러면 신고하는 게 어려워지고. 신고한다고 해서 100% 이기는 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과정이 어렵고 처벌은 약하고. 법적으로 해결이 어렵다 보니까, 당사자들이 겪는 부당함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길 기대해야만 하는 거죠.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가장 답답하고 어려워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노동부에 가고, 열심히 대응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지 않게 나올 때도 힘들어요. 내가 해결할 수 없어서 느끼는 개인적인 좌절감도 있지만, 당사자한테는 엄청 큰일이잖아요. 좌절되는 걸 볼 때,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잘못한 것 같고 미안하고 그래요.

 

폭언이든, 괴롭힘이든, 부당해고든, 임금체불이든. 방송계뿐만 아니라 모든 직군에서 영세한 사업장들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으니까. 결국에는 개별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크게 묶어서 사회 자체에 변화가 필요한데. 그걸 생각하면 막막하고 커서, 그런 게 좀 힘들고 어렵죠.

 

▲ 2022년 7월 20일 KBS 본관 앞에서 열린 “불법제작된 KBS 드라마 ‘미남당’ 규탄! 시민 촛불문화제”.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도 공동 주최했다. 이 사건에서도 제작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스태프들이 근로시간 등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자 재계약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해고를 당했다. (박혜리 제공 사진)


-프리랜서 계약을 한 경우에도 권리를 보장받기가 많이 힘든가요?

 

프리랜서는 해고가 아니라 ‘계약 해지’가 돼요. 그런데 계약서에 이러한 사유 때문에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고, 그럴 때에는 미리 통보해야 한다는 사항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어요. 이때는 회사와 개인이 아니라, 마치 회사와 회사인 것처럼 되어서 민사소송으로 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더 복잡해지죠.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어도 부당해고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어요. 드라마 제작팀, 연출팀, 촬영팀 같이 제작사랑 직접적으로 용역계약을 맺는 경우인데요. 보통 현장으로 출근하는 팀들은 출퇴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작품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부분이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고요. 회사와 회사와의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고, 회사가(제작사) 요구하는 것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죠. 이 경우에는 (법원이랑 노동부에서) 용역 계약서지만 내용이 근로계약이라고 ‘근로자성’을 인정했어요. 하지만 방송작가와 외주 PD, 턴키 계약을 하는 팀의 경우에는 아직 이런 판례가 많이 쌓이지 않아서, 근로자성부터 다시 다 따져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턴키 계약’이 무엇인가요?

 

턴키(Turn-key) 계약은 각 팀의 팀장과 회사가(외주 제작사) 계약을 하고, 팀장이 팀원들을 꾸리는 형태의 계약을 의미하는데요. 주로 드라마 현장의 조명팀, 그립팀, 동시녹음팀, 미술팀 같이 팀별로 움직이는 경우에 턴키 계약으로 많이 진행해요. 이 경우에는 팀장만 회사와 직접 용역 계약을 맺어서, 그 아래 팀원들은 그 어떤 계약서도 쓰지 않고 팀장과 구두 계약을 맺은 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근로한 사실부터 따져야 해요.

 

법에 정해진 퇴직금 “제대로 적립해달라” 요구해도

사측에선 “우리는 그렇게 줄 생각 없다” 배 째라는 식

 

-해당 업계 노동자들의 계약 형태가 다양한 만큼 상황도 다양해서, 제보를 받으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혜리님이 일하면서 가장 어렵거나 분노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최근 사례인 ‘퇴직금 정산’ 문제를 예로 들어 볼게요. 우선 설치/수리 기사들이 급여를 어떻게 받는지 알려드리면, 고정급으로 기본금을 받고 식대, 자격증 수당, 업무비 이런 것들을 추가로 붙여서 총 월급을 받아요. 거기에는 실적 급여라고 해서 AS를 한 번 하면 1000원, 설치를 하면 2000원, 장비 철거하면 3000원. 이런 식으로 일의 강도에 따라 주는 돈이 있어요. 늘 해야 하는 일이지만, 세 가지 일 중 ‘어떤 것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금액으로 월급에 누적할 수 있는 거죠. 콜센터에서 어떤 콜이냐에 따라 다른 인센티브를 주는 것처럼.

 

퇴직금은 법상으로 임금 총액 기준으로 적립해야 돼요. 기본급이 200만원, 식비가 10만원. 실적 급여가 50만원이면. 200만+10만+50만 원을 합친 260만원을 적립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HCN에선 기본급 200만원만 적립해온 거예요. 그래서 (노조가) “퇴직금을 제대로 적립해달라” 요구했는데, 회사 관계자 중 한 명이 “우리는 그렇게 퇴직금 줄 생각이 없다”, “그렇게 퇴직금 받아야 하면 이제부터 실적 급여를 안 주겠다”고 배 째라 하는 거예요.

 

우리가 퇴직금을 그렇게 달라고 하는 건 더 얹혀 달라는 것도 아니고. 법에서 정해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지급”하라는 거거든요. 실적 급여도 회사가 착해서 더 주는 돈이 아니라, 원래 기사들이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어 일해서 설치, 철거, AS 등 일하는 것을 단가별로 나눠서 줬던 건데요. 기사들이 개인사업자에서 직원이 되고, 해야 하는 일이 더 늘어나니까 임금도 올라야 하잖아요? 근데 (회사에서) 그러기 싫으니 임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에 실적 급여를 계속 주는 걸로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인데, 회사가 그걸 마음대로 안 주겠다고 하고있는 거죠.

 

-최근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누군가 “한국 영상작품의 꽃말은 가성비다.”라고 했다던데요.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6개월, 1년 이렇게 걸리는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는 1개월, 3개월이면 똑같이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구요. 노동 착취가 밈으로 통할 정도로 만연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맞아요. 구조가 바뀌려면 인식이 변해야죠. 미국에서는 딱 8시간 (노동)하고나면 더 할 수 없는데. 더 하려면 전 직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잖아요. 될 때까지. 찍을 때까지. 만들 때까지 작업하죠.

 

-미국에서는 노동시간이 지켜지는데, 왜 한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을까요?

 

미국의 스태프 노동조합이 매우 크고 오래됐어요. 긴 시간 싸우면서 바꿔온 역사가 있기에 한국보다 환경이 나은 것 같아요. 특히 미국 스태프들은 노동조합이나 협회에 기본적으로 가입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호받기도 쉽고,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도 가능한 것 같아요. 한국에 방송스태프 노동조합이 생긴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우리도 계속해서 싸워나가면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현재 방송지부의 노조 가입률이 많이 낮은 편인가요?

 

한 번도 전체 실태조사가 된 적이 없어요. 환경 특성상 드라마 했다가 광고했다가 영화 했다가. 이렇게 유동적으로 일하는 분들도 많아서 제대로 집계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대략적으로 1~2% 정도 가입했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 2023년 초, CBS 아나운서 부당해고 사태에 반발하며 경남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상적인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경남CBS와 서울CBS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도 대책위에 함께했다. (김혜리 제공)


노동조합, 사회문제에 모두들 관심 갖고 행동하는 사회라면

 

-혜리님은 해외 사례도 찾아보며 늘 공부하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이전에 스스로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죠. 왜 그렇게 느꼈나요?

 

사실 활동이라는 게,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판매를 한다! 이러면 목표와 방법이 정해져 있고, 그거에 맞춰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노동조합이든 노동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이런 활동들은 장기적인 경우가 많아요.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뀌고, 이런 일들이 계속 있다 보니까. 그런 면에서 다른 영역에서의 전문성보다 운동의 전문성이라는 게 저에게는 더 막막하게 느껴지는 게 있어요.

 

그리고 특수한 방송 스태프 지부를 맡아서 특히나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른 지부는 매년 하는 임금협상, 단체협약이 있어요. 올해 임금교섭을 어떻게 했는지, 투쟁을 어떻게 했는지, 혹은 올해 산업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에 어떻게 대응해서 처리했는지. 이게 한눈에 딱 나오는데, 방송 스태프 지부는 그게 없어요.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거에 대응하는 경우가 많고. 잘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우리 지부의 목표라고 하면 ‘방송계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게 하는 게 목표인데. 그걸 하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영화 노조 쪽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사들이) 지원을 많이 받으니까, 노사정(노동조합-회사-정부) 대화가 가능했는데, 방송 쪽은 국가 지원의 영향이 적은 편이라 영화 노조의 선례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방송스태프 지부도 비슷한 협의체를 만들어서 산별교섭을 시도했다가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어요.

 

-어쨌든 고민하고 원한다는 건, 이미 그걸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만큼 쌓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대로 혜리님이 생각하기에 본인이 갖추고 있는 전문성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너무 어려워요! (웃음) 내가 잘한다 생각하는 것들은 나열할 수 있거든요? 실무적인 것은 잘해요. 집회 사회도 잘 보고, 회의할 때 의중을 잘 파악하고, 남들보다 수월하게 정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내 전문성인가?’ 하면 잘 모르겠어요. 이런 실무는 익숙해서 ‘이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럼 혜리님은 어떤 전문적인 모습을 갖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전문성은 ‘정책적인 전문성’인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 보는 관점, 정책적으로나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 저는 그건 많이 부족하거든요. 정책이나 구조를 보고 거기에 대한 것을 제시하는 것은 엄청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서 보니, 그 전문성을 내가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것 말고도 이미 정해진 정책을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한다거나, 교육을 한다거나, 이거를 기자회견에다 녹여낸다거나, 투쟁에서 배치를 할 때, 어떤 전술을 쓸지를 결정한다거나, 이거를 회의 시간에 이야기하고 어떻게 정리한다든가. 각 과정에 있는 모든 단계들이 사실 노동조합 활동의 대부분이고 중요한 것들인데 ‘왜, 나는 전문성을 이렇게 크게 생각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드네요. 아직 멋있어 보이는 거에 현혹되어서 그런가 봐요.

 

-질문을 바꾸어, 궁극적으로 혜리 님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살고 싶어요?

 

특별히 원하는 건 없는데… 이런 건 있어요. 저는 노동조합 말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거든요. 기업에서도 일해보고 싶고. 출판사나 영화사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에서 일을 했다’ 하면 경력으로 적을 수가 없잖아요. 물론 적는 건 자유지만, 적었을 때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노동조합에서 일한 거를 이력서에 넣어도 다른 곳에서 사기업에 취업할 때 큰 무리가 없는 사회면 좋을 것 같아요. 노동조합에서 일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그걸 하고, 다시 활동하고 싶으면 하고. 활동이나 운동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면 좋겠어요. 분명 내가 노동조합에서 쌓은 전문성이 있을 거고, 그걸로 나를 보여줄 수도 있는 건데.

 

사실 활동에 대한 편견이 없고 운동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규정짓는 편견이 없으면,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거고, 어느 정도는 그런 활동을 하나씩 하고 있거나 걸쳐져 있을 거거든요. 그러면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운동하는 것도 수월할 거고,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혜리님과 대화하며, 새삼 노동은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출근길에 매일 타는 지하철도, 금요일마다 하는 분리수거도, 쉬는 날마다 보는 드라마도. 전부 누군가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매일같이 피부를 맞대고 지내는 만큼 우리는 종종 익숙함으로 노동의 부당함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혜리 님은 그 가려진 부당함을 앞으로 꺼내고 해소하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것 또한 ‘일’이기에. 우리가 일터에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못 얻어내는 때가 있는 것처럼, 그 또한 늘 완벽할 수 없다.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승산이 없어 일을 해소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바위에 계란의 흔적이라도 남기기 위해 매일같이 계란을 든다. 이렇게 함께 연대하고, 또 연대한다면 끝내 바위도, 부당함도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동하는 활동가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많아 지기를,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당연함’으로 자리 잡아서 혜리 님과 같은 활동가들이 자신이 노동조합에서 일한 시간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며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난정: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유쾌하게 살고 싶은 사람.

기사입력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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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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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24/01/16 [19:56]
비정규 스태프들의 노동을 노동이라고 인식하게 해준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Dooley 24/01/16 [21:23]
멋지다. 동감이에요!!
영양갱 24/01/23 [10:01]
되게 말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주어서란 걸 깨달았어요. 좋은 인터뷰 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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