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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휴학 사유’를 기대하는 사회잖아요
[인터뷰] 청년 암 환자에서 ‘암 경험자’가 된 서현의 이야기
지아   |   2024-02-07

2018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여름방학 기간동안 계절학기 수업을 수강하던 서현은 몸에 이상을 느껴서 병원에 갔다가,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별 생각없이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 서현은 덜컥 암 환자가 되었다. 이후 5년 동안, 서현은 암 환자로서 참 애쓰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잘 이겨낸 것 같아요. 좀 땡깡을 부려도 되지 않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잘 이겨냈다기보다는 어떻게든 이겨낼 생각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해야하나요? 이 나이 때 죽으면 좀 많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20대 초반이었던 서현에게 암은 낯선 질병이었고, 그래서 처음 진단 받았을 때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많았다. 그래도 환자가 된 순간부터는 어떻게든 치료를 빨리 끝내는게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술과 치료과정을 견뎌냈다.

 

▲ 20대 초반 암 진단을 받은 이후 5년간, 서현은 항암치료 과정을 밟았고 이번 겨울 완치 판정과 산정 특례 종료를 앞두고 인터뷰에 참여했다. 암을 경험한 청년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를,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터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미지-pixabay)

 

2023년 겨울, 이 인터뷰를 진행하던 즈음의 서현은 항암, 수술, 방사선의 과정을 모두 마치고 완치 판정과 산정 특례 종료를 코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병원에 계속 다녀야 하는 상황보다 훨씬 나은, 진단을 받은 시점부터 서현이 간절히 바라던 순간이다. 하지만 환자로서 병원에 의지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서현의 발걸음은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다.

 

혼자 달려야 하는 기분

 

“병원에서는 아프다 그러면 약도 주고, 속 안좋으면 구토방지제도 주고, 일단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저를 챙겨주지 않을 거니까, 그게 좀 힘든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는데 처음에는 네발 자전거로 시작했다가,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고 있잖아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뒤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이제 진짜 혼자 달려야 하는 기분. 그런 기분이에요.”

 

더 이상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는 병원에 대한 야속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서현은 병원 밖으로 나와 사회로 돌아가는 과정을 “자신이 헤쳐나가야 할 몫”이라고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어진 서현의 이야기에서, 혼자서 헤쳐 온 시간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 항암하고 수술 받고 이럴 때보다도 ‘본인이 알아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두렵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 치료 받고나서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병원에 오라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6개월 이후에 봅시다, 1년 후에 봅시다 하시잖아요. 그렇게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는 치료 과정을 겪고 나서 이제 혼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던 때, 덜컥 겁이 났어요.”

 

▲ 이십 대 초반에 암 진단을 받고 지난한 치료과정을 거친 서현을 특히 힘들게 한 건, 혼자라는 감각이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달려가야 하는 막막한 시간을 통과했다. (이미지-pixabay)


지난한 치료과정에서 서현을 특히나 힘들게 했던 건, 언제나 혼자라는 감각이었다. 진단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많은 청년 암 환자들이 이야기하듯 부모님의 돌봄을 받는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치료과정이 몇 년씩 되다 보니까 ‘언제까지 애를 먹일 거냐’ 이런 소리도 좀 들었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속 썩이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엄마랑 병원에 가면, 저 정도 나이면 엄마가 아프고 딸이 보호자여야 하는데 우리 집은 반대니까 좀 미안했죠. 병원에서도 이상한 사람까지는 아닌데, 젊은 애가 왜 여기 있지? 그런 눈총은 종종 있었어요. 지금 암 병동에 가도 아직 어린 편인데, 그 때는 5년 전이었고, 이십 대 초반이었으니까요.”

 

친구들한테 암 투병 사실을 털어놓아 봤지만, 서현의 말대로 “20대에 암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자신의 상황에 공감해주는 친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말을 잘못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저한테 어떤 말을 하는 걸 머뭇거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 때 ‘넌 할 수 있을 거야’, ‘난 널 믿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 시기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암을 이겨내는 건 환자 본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대의 ‘멈춤’…나는 이미 뒤쳐진 걸까

 

“입시나 취직, 결혼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이벤트들이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 다 해결해야 되는 과제인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이 시기에 암 진단과 투병으로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거니까 정신적으로 충격이 심하긴 하죠. 복학을 하고 나니까 아, 내가 인생의 과제들을 뒤쳐지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뒤쳐진 걸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몰려왔어요.”

 

이제 막 대학 졸업 이후의 진로를 생각해보려던 시기에 마주한 암 진단으로 인해, 서현은 휴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휴학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흔한 선택이 되었다고 하지만 서현의 말대로 휴학을 하고 “쉬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특정한 시험을 준비하거나,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스펙을 만들거나. 혹은 아르바이트와 같은 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같은 휴학이었지만 암 투병으로 휴학의 시기를 보낸 서현의 ‘멈춤’은 이 사회가 바라는 생산적인 휴학이 아니었다.

 

▲ 암 투병으로 휴학의 시기를 보낸 서현의 ‘멈춤’은 이 사회가 바라는 생산적인 휴학-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스펙을 만들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등-이 아니었다. (이미지-pixabay)

 

암을 경험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일상 복귀의 어려움을 토로한다면, 이는 개인의 몫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해결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암 치료가 끝난 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과 일상복귀를 돕고자 정부 주도의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가 생겨나는 등 여러 사회적 지원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서현을 비롯한 많은 암 생존자들은 일상복귀의 과정에서 여전히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 정서적 불안 등을 마주한다. 집중치료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서현를 가장 힘들게 한 것 역시 정신적 부담감이었다.

 

“암 낫고 나면요, 바빠요. 저처럼 대학을 휴학했다면 다시 돌아가서 졸업도 해야하고, 취직을 위해서 구직 활동도 해야하고. 사실 암에 걸렸다는 걸 생각하고 말고 할 여력이 없어요. 사회는 직접 말을 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암환자들한테 먹고 살려면 실력 키워서 나와라, 이런 거를 뉘앙스로 다 내뿜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방법은 공백을 상쇄시킬 정도로 본인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거였어요. 암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하면 비록 완치가 되더라도, 선입견들로 인해서 여러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을텐데, 그걸 상쇄시킬 정도로 제 실력을 끌어올리는 거죠. 그런데 실력을 끌어올리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엄청 고생을 해야겠다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거죠. 애를 써야 어떻게든 발전이 있으니까 애를 쓰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긴 한데, 저도 좀 힘들어요. 애쓰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서현은 암 환자였다는 사실보다 한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가 힘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암에 걸리고 안 걸리고를 떠나서, 요즘 청년들이 다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잖아요. 지금 머리카락도 이렇게 많이 자랐는데, 암 환자라고 이야기하는 건 핑계 같은 거죠. 안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암까지 걸렸으니 더 힘든게 아닐까, 하다가도 또 이걸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너만 힘드냐,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너만 힘든게 아니라 다 힘들다, 이런 소리가 돌아올게 뻔하니까. 힘들 때면 그냥 집에 있는 강아지랑 [놀면서] 삭히는 편이에요.”

 

암 환자들에게 특히나 불리한 사회구조를 탓하는 대신, 어떻게든 혼자서 애를 써보는 서현이었지만 구직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지원서를 제출한 끝에 면접에 갔는데, 면접관들은 자꾸만 휴학의 이유를 물었다. 서현의 휴학 사유는 암 치료였지만, 암에 결렸다는 걸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현은 면접관들이 좋아할만한, 아니 적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만한 다른 사유를 생각해내야 했다.

 

“그래도 이제는 받아치는 힘이 생겼어요. 왜 휴학을 했냐고 하면, 휴학동안 이런 이런 것들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배웠다라고 이야기할 저만의 전략을 만들었어요. 면접용 휴학 사유가 생긴 거죠.”

 

‘평온함’과 ‘혼돈’ 사이

 

서현의 구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서현의 마음은 “평온함”과 “혼돈”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서현은 요즘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청년 도전 지원사업(만 18세~34세 청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취업 관련 프로그램, 종합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여 청년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는 사업)에 참가하고 있다. 요즘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서현의 목소리는 조금은 평온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라 소득, 학력, 질병유무와 같은 조건과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거에요. 만약에 정부 사업마저도 질병력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면, 저는 사회를 정말 많이 원망했을 것 같아요. 한 달에 40 시간 정도 강의 듣고 체험학습 하고 원데이 클래스 같은 것도 참여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통해서 꼭 전하고 싶은 말 중에 하나도, 이렇게 여러 가지 사회 참여 기회가 있으니까 암을 경험한 청년들이라도 사회에서 고립될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 속마음은 사실 굉장히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암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내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절대 세상은 본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를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앞으로의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삶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근데 암을 완치했는데 삶을 계속 회의적으로 보게 되면 제 인생이 너무 좀 힘들 것 같으니까, 애써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거죠. 현재에 집중하면은 좀 더 밝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뻔한 기대라도 가져보려고 생각하는 거에요.”

 

뻔한 기대. 서현과의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도 내내 마음 속에 맴도는 단어였다.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는 자연스레 서현의 뻔한 기대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 여전히 애쓰는 삶을 살고 있는 서현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글귀. (서현 제공)

 

서현은 “암환자”에서 “암 경험자”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중인 다른 청년 암 생존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이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고 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고 살면 좋겠어요. 저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속에서도 밝게, 아니면 적어도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암 생존자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면 좋을 것 같아요.”

 

[필자 소개] 지아. 개인의 몸과 건강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건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고 건강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 날카롭지만 다정한 글을 쓰고 싶다는 실현하기 어려운 꿈을 꾼다. 길동무 문학학교 르포교실을 수강했다.

 

※더 많은 청년 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이가 되어주실 이삼십 대 청년 암 생존자 분들은 메일로 연락주세요. youngadultcancersurvivors@gmail.com

기사입력 :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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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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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봄이 24/02/07 [14:25]
어린 시절 많이 아팠습니다. 조퇴, 결석을 밥먹듯이 했지만 그래도 6-3-3을 쫓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는 걸 다 커서는 깨달았죠. 나이에 대한 압박이 큰 사회라서, 질병으로 치료하고 쉬고 회복해야 하는 사람들을 더 힘겹게 만든다는 걸 기사 보면서 다시금 느낍니다. 
아팠던 때 생각하면 지금도 감정적이 되는데, 암 투병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에 존경스런 맘이 듭니다. 
Aisha 24/02/07 [19:07]
값지고 소중한 삶의 길을 응원할게요~
닐슨 24/02/20 [20:21]
힘든 시간 잘 거쳐내셨네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인 중에는 암 경험자도 물론 있는데, 처음 알게되었을 때 내가 뭐라고 했던가 기억해보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위로의 말, 격려의 말이 필요했다는 얘기 보면서.. 나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어떤 친구가 되면 좋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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