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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쓰고 있어, 나 지금 살아 있어!
『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⑤ 고야마씨의 손글씨
후지모토 나호코   |   2024-02-09

[기획의 말] 고야마씨는 도쿄의 한 공원 깊숙이, 비밀처럼 펼쳐진 텐트 마을에 살았다. 그녀가 써 왔던 노트에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끼니가 걱정되고 추위나 더위로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야마씨의 세계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양의 노트를 컴퓨터로 문자화하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을 시작해 8년이 흘렀다. 올해 10월 30일, 워크숍 멤버들이 문자화된 노트를 편집하여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etc. books)가 출판되었다. 『고야마씨 노트』중 고야마씨 노트 일부와 멤버들의 에세이를 번역하여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은 5회째로 1~4회는 하단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전쟁/학살이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가 『전쟁일기』(이야기장수, 2022)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그 폭력 속에서도 아이들과 '하루'를 살아 남기 위해 그 '하루'를 쓰는 '여성'들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살아남는 것과 같아지는 것은, 비단 전쟁 속 처절한 순간만이 아니다. 하루를 살기 위해 하루를 썼던 고야마씨의 손글씨는 그 순간들을 전달해 준다. 격렬하고 나약하며, 고통스럽지만 위로를 담고 있고, 혼란스럽지만 계속되는 그 '하루' 속으로 초대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고야마씨를 만난 것은 2014년 12월 28일, 공원 텐트촌에서 열린 ‘고야마씨 1주기 추모 전람회’ 이틀째 오후였다.

그날은 몇 가지 광경만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골판지 보드 같은 것이 세워져 있고, [거기에] 고야마씨의 노트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말들이 적혀져 있다. 그 아래에 소책자와 은색 ‘키라키라’(반짝반짝이란 의미, 고야마씨가 만든 소품)가 쌓여 있다.  잠바를 입은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몸을 맞대고 앉아 있다. 어쩐지 회색 빛이고, 비스듬히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시야. 그런 광경이 정말 보였던 것일까. 나중에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거의 없다.

 

추모 전람회를 다녀온 지 삼일 후, 그 날에 대해 SNS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며칠 전, 어느 공원에, 그 공원에 살았던 한 여성의 ‘추모 전람회’를 보러 갔다.

나는 그 여성(이하 ‘A씨’로 하겠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A씨와 친분이 있고, 그 공원에 살고 있기도 한 아티스트 친구로부터 소식을 듣고, 볼일도 볼 겸 들려 보았던 것이다.

 

공원 나무들 사이로 늘 그랬듯이 둥근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몇 명의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는, 오늘은 작은 받침대가 놓여 있고, 은색 보온가방과 시트를 깔고 그 위에 은색 테이프와 알록달록한 끈으로 만든 작은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다. A6정도 사이즈의 노트들도 잔뜩 묶여 쌓여 있다. 옆에 한 남자가 망을 보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다. 은색의 작은 물건들 사이에, 글자가 인쇄된 종이 몇 장이 붙어 있는 작은 골판지 보드가 놓여 있다.

 

▲ 고야마씨 1주기 추도 전람회: 고야마씨의 노트, ‘키라키라’, 고야마씨가 손으로 만든 물건들. 촬영: 이치무라 미사코


그 종이조각은 A씨의 일기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한다. 

“17년 전 교토에서 자른 머리카락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을 은색이나 보라색 끈, 천으로 싸려고 한다”, “성스러운 작업(聖作業)을 3시간 했다” 등의 내용이 쓰여 있다.

거기에 있는 은색 테이프(아마도 알루미늄 단열재를 가늘게 잘라 만든 것 같다)로 묶여진 조각 뭉치나 보따리, 그런 것들을 만드는 것을 ‘성스러운 작업(聖作業)’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고, 어렴풋이 이해했다.

“이거 꼭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듣고, 일기를 발췌한 책자와 은색의 작은 물건(사람들은 ‘키라키라’라고 불렀다고 하는)을 하나 골라서 가방에 넣었다. 

이 키라키라, 정말 가져가도 돼요? 응 괜찮아, 잔뜩 있으니까.

 

그 아티스트 친구, 그리고 A씨와 관계가 있었던 또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단연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A씨의 몸이 약해져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 비로소 교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따뜻한 것을 마실 수 있도록 매일 끓인 물을 가져가자, A씨는 그 횟수를 세다가 어느 날 “벌써 백 수십 번 째야, 이제 그만해도 돼”라고 했다는 이야기.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 정말 ‘유기적’이어서 마치 A씨 몸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는 텐트의 모습. 텐트 안에는 작은 노트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물론 그 안은 보지 않았다. 돌아가신 후에 그 노트(일기)를 읽고, A씨가 예술과 철학을 지망했고, 매일 ‘글쓰기’로 자기자신을 지켜가며 매우 밀도 높은 정신생활과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놀랐다는 이야기. 함께 살던 남자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는 사실도.

 

끓여준 차를 마시며, 일기 소책자를 조금 읽는다. 바로 지금, 이것을 써야 한다는 절박함(혹은 편안함) 속에서 적혀진 한 줄 한 줄의 문장들. 한 단어 한 단어에 A씨의 마음 상태가 선명하게 새겨져 간다. 그때 그곳에 있는 것을 쓰는 것. 또한 반대로, 글을 쓰면서 윤곽이 잡히고 형성되어 간다는 것. 그 상호적 운동.

A씨는 자신의 마음 속 충동이나 사람에게 받은 폭력으로 괴로워졌을 때, ‘찻집’에 가서 잠시 앉아 글을 쓰면서 자신을 지켰다고 한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A씨는 그것을 “프랑스에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환상 속에서 18시간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가는 것을 시도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지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며칠 후 ‘룰라’라는 이름을 가진 환상 속 인물과 만나게 되고, 룰라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그 후의 나날들을 구원받아 간다.

그런 자신의 마음 속 격렬한 흔들림을 ‘글을 쓰는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해 나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홀로, 그곳에 존재해 가기 위해 계속되어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매번 그때 그때마다 나타난다. 마치 그림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로 인해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생각이나 감정, 불안정이나 모순, 환상, 희망과 기쁨, 나아가 그런 감정들을 바라보는 자의식까지 선명하게 윤곽이 잡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잔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

-2014년 12월 31일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발췌

 

▲ 추도 전람회에서 받은 고야마씨 노트를 발췌한 작은 책자와 키라키라. (촬영: 후지모토 나호코) 참고로, SNS에는 다른 사진과 같이 글을 올렸으며, 이 두 사진은 본 연재를 위해 새로 선정했다.


추모 전람회가 끝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전람회에 초대해준 이치무라 씨로부터 “고야마씨의 노트를 데이터화하는 워크숍을 시작합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두 달 후 봄이 올 무렵, 도쿄의 주택가에 위치한 고양이가 있는 큰 셰어 하우스(share house)의 거실에서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이 시작되었고, 나는 첫 회부터 참가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워크숍은 그 거실에서 계속되었다. 셰어 하우스가 없어진 뒤에는 멤버 중 한 명이 소속된 NPO 단체의 공간을 빌려서 계속했다. 대략 오후 1시쯤부터 삼삼오오 모여 원하는 자리에 앉아 각자 가져온 노트북에 고야마씨의 노트 내용을 입력해 나갔다. 멤버는 반 고정적이었고, 느슨하게 교체되기도 했다.

 

고야마씨는 가로 괘선이 있는 A6노트를 괘선이 세로 방향이 되도록 90도 돌려 놓고, 세로쓰기로 글을 썼다. 글자 하나 하나가 앞 글자에서 태어나 다음 글자를 [다시] 태어나게 하듯이, 강한 필치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넣는다. 커다란 글자가 비처럼 수직으로 쏟아지며 노트의 공간을 가득 채워 간다. 그것은 숲이기도 하고, 고야마씨가 쓰는 한 줄 한 줄은 위에서 아래로 솟아오르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나무들에서 ‘말’을 읽어내려고 필사적이거나 혹은 몰두하고 있어서, 수년에 걸쳐 데이터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지금 숲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이 숲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거의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노트는 수십 권이나 된다. 한 사람이 한 권씩 맡고 몇 번의 워크숍을 통해 (때로는 집에서도 데이터화를 하면서) 한 권의 노트에 적힌 모든 ‘의미’를 컴퓨터로 옮기고, 한 권이 끝나면 데이터화 하지 않은 다른 노트를 무작위로 맡는다. 노트의 표지에는 그 노트에 기록된 날들의 기간이 적혀 있지만, 일본 연호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언제를 가리키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없었고, 내가 지금 고야마씨가 살았던 삶의 어느 시기를 입력하고 있는지도 거의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늘어선 커다란 손글씨에 그저 삼켜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고야마씨의 노트의 손글씨. (촬영: 고야마상WS)


그렇게 알 수 없는 상태로도 나는 왜 워크숍에 계속 참여했고, 노트 입력 작업을 모두와 함께 계속해 온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앞서 SNS 글에도 썼듯이, ‘찻집’에 앉아 노트를 펼치는 것으로 자신을 지켜가고, ‘글쓰기’에 계속 집착하는 고야마씨로부터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놀랐고, 강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은 “지금 생각하면”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노트에 새겨진 고야마씨의 손글씨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데이터화하는 것에 마음 어딘가에서 모순과 단절과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모순과 단절에 매혹되어 그 작업에 참여하고 싶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모순과 단절은 일상생활의 끝없는 구체성을, 또한 그 속에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 타인과의 관계를 ‘언어’로 그려내고, 이해할 수 있는 ‘의미’로 바꾸는 것이 지닌, 원래의 불균형이나 불가능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누군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치무라 씨 등이 보관해 주었던 고야마씨의 노트 중, 상태가 좋지 않아 글자를 해독할 수 없는 노트를 제외한 모든 노트의 데이터화 작업이 끝난 것은 워크숍이 시작된 지 8년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요시다 씨가 순서도, 파일 이름도 제각각인 채로 보존된 수십 개의 파일 순서를 고생해서 정리해 주었고, 출판사  etc. books의 마츠오 씨와 다케하나 씨가 그것을 두 권의 두꺼운 책자로 인쇄 제본해 주었다.

나는 그 형태가 된 후에야 비로소 노트 전체를 읽었다. 그러자 데이터화 작업을 할 때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고야마씨 일상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손글씨에서 간신히 읽어냈던 하루하루의 세세한 부분들이 10여년의 연속을 구성해 나간다.

 

고야마씨 노트 (2022), 후지모토 나호코 작. 고야마씨 노트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휴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대마 소재에, 노트에 적힌 말들을 거울에 비춰 좌우가 바뀐 아주 작은 글자로 옮겨 적었다. 2022년 9월 개인전에서 전시했다. 촬영: 후지모토 나호코


고야마씨가 움직이고, 걷고, 물건을 줍고, 누군가와 물건과 말을 교환하고, 먹을 것을 만들고, 느긋하게 마시고, 먹고 있다. 그리고 찻집에 가서, 앉고, 읽고, 쓰고 있다. 그런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리듬과 그것을 그려가는 고야마씨의 말의 리듬이 딱 맞아 떨어진다.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마치 살아서 그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고야마씨가 그 자리에서 같이 소리 내어, 혹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써서 말로 표현한 것을 (혹은 말이 되어버린 고야마씨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이것은 고야마씨가 찻집에 앉아 지나간 하루의 일들을 순서대로 떠올리며 쓴 글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

 

데이터화 작업을 했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눈앞에 보이는 고야마씨의 손글씨는 “나, 지금 쓰고 있다! 쓰고 있어!”라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자 하나하나에 고야마씨의 서명이 찍혀 있는 듯했다. 쓰여진 내용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고, 그저 “고야마씨가 살면서 이것을 썼다”는 것이 오로지 전해져 왔다.

 

텍스트를 데이터화함으로써 고야마씨가 써서 남긴 ‘내용’, 즉 고야마씨가 공원에서 했던 텐트 생활을 둘러싼 방대한 세부 정보와 고야마씨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며, 우리처럼 고야마씨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고야마씨는 그저 ‘쓰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쓰여진 내용에서 누가 어떤 의미나 가치를 발견하든 발견하지 못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살고 있었다는 것. 즉, 고야마씨의 필적이 노트 위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이 전해 주는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야마씨 노트 (2022) 전시 풍경. 투명 케이스 안에는 케이스 위에 올려놓은 작품을 쓸 때 아래에 덧대 두었던 부드러운 판지가 놓여 있다. 언뜻 보면 새하얗지만 잘 보면 울퉁불퉁한 필적이 찍혀져 있음을 그 희미한 음영을 통해 알 수 있다. (촬영: 후지모토 나호코)


2003년 11월 17일 밤, 100일 전에 사망한 긴마(일하는 곳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된 남성으로, ‘토모노 히토(함께 있는 사람)’라고 부르다가 그가 죽은 뒤에는 ‘긴마’라고 부름)의 텐트를 방문한 고야마 씨는 “갑자기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공포에 휩싸여” 어떻게든 해서 자신의 텐트로 돌아와 “말을 쏟아내는 일은 두 시간 이상 계속되어, 안 좋은 기억이나 보스(‘토모노히토’와 친했던 또 다른 홈리스 남성의 호칭. ‘토모노히토’가 죽은 뒤 혼자가 된 고야마씨를 강하게 지배 간섭하려고 했고, 이를 거절하는 고야마씨에게 자주 폭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의 광기어린 이상한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어 버린다". 이럴 때 “쏟아내는” 말들의 내용은, 노트에 분명하게 그대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울부짖는” 목소리는 [그때그때의 감정상태에 따라 모양이나 필치가 변화하는] 노트에 새겨진 고야마씨의 손글씨와 확실히 이어져 있다.

 

[필자] 후지모토 나호코(藤本なほ子) 편집 일을 하면서 ‘말’을 둘러싼 작품을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제작하고 있다. 2008년부터 다른 사람의 필체를 사용한 작품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편집자로서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 멤버인 이치무라 미사코 씨의 저서 『홈리스로 있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創元社)를 제작 중이다. (2024년 7월 출판 예정). 웹사이트: https://nafokof.net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발췌

 

2001년 5월 7~8일

6시가 지나, 혼자 나섰다. 도저히 도시락을 받으러 갈 수 없어. 이 어둠 속에도 있고 싶지 않아. 찻집에 가고 싶어. 무언가 글 쓰고 싶어. 의자에 앉아 기력을 회복하고 싶어. 라며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이미 1200엔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본능만이 달린다. 나의 오랜 습관은 돈과 시간이 있는 한 고쳐지지 않는다. [돈이] 끊길 때를 생각하면 침착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역 근처에 바로 백엔이 떨어져 있었다. 기뻐, 내면에서 소리친다. 80엔의 커피로 두 세시간의 밤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고마워. 의자에 앉아 있자 통증이 없다. 노트, 음악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잊는다.

소중한 5월, 어린 잎 돋고, 인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2001년 6월 14일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용기와 기력을 회복해, 오래되고 엄격한 감각의 생활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지금보다 더욱 죄수처럼 갇혀 버리면 어쩌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불안이 몰려온다.

대체 50살이나 된 사람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책을 갖고 다니고, 팔리지도 않는 글을 쓰고, 찻집에 다니고 있냐…… 라는, 분노한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을 때, 내 경험에 따라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고,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분노한다. 

 

[기획 및 번역] 신지영 연세대학교 교수. 1945년 전후 동아시아 코뮌의 형성과 기록/문학을, 현재의 마이너리티 및 비/인간 존재들의 공통성과 기록/문학과의 접점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

 

[번역] 다카하시 아즈사(高橋梓) 니가타현립대학교(新潟県立大学) 조교수. 한국근대문학. 매체와 언어라는 조건에 유의하며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쓴 조선어/일본어 작품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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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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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24/02/09 [23:39]
작은 기적을 보는 것 같습니다.
흥미 24/02/10 [10:52]
고야마씨의 손글씨를 데이터화 하는 것에서 모순과 단절을 느꼈는데 그것에 매료되어 몇년 간의 작업을 했다는 것이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합니다. 전시 사진을 보니까 직접 본다면 더 좋겠지만 예술가의 영감이나 사명이 뭔지 생각하게 되고, 말과 글의 힘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C 24/02/11 [15:34]
맞아요. 누군가가 읽고 가치를 만들어준다면 그건 그 누군가들을 위한 선물인 것이겠죠.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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