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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성차별, 여성들이 함께 목소리내야 할 때에요
승격 성차별에 제동…금속노조 KEC지회 김진아 지회장 인터뷰
너기   |   2024-02-14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는 한국에서 ‘여성파업’이 예고되었다. 30여개 여성/노동/사회단체들이 2024년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를 결성해 유급/무급 여성노동 실태와 ‘구조적 성차별’을 알리며 여성파업을 준비 중이다. 여성파업을 반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편집자 주

 

아픈 날도 출근하라는 회사…“노예처럼 산 것 같아요”

 

“미술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저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2년만 일할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 지난 2월 3일,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농성장에서 열린 ‘여성파업 오픈마이크’에서 발언 중인 금속노조 KEC지회 김진아 지회장의 모습. 옥상 위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두 여성노동자 박정혜, 소현숙 씨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제공-여성파업조직위원회)

 

김진아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반도체 제조업체 KEC에 입사했다. 잠깐을 기약했는데 어느덧 28년 차다. 그렇게 ‘꿈도 포기하고’ 일했다. 현재는 노동조합(금속노조 KEC지회)에서 지회장을 맡아 상근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품질관리를 맡아왔다.

 

“출근해서 주로 하는 일은 품질 체크하는 거였죠. 정상적인 양품이 생산되는지, 불량이 발생되고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작업이어서 거의 온종일 생산 현장에 들어가 있었어요.”

 

KEC는 비메모리(저장하지 않는) 반도체를 생산한다. 전자기기의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반도체 분야에 없어선 안 될 부품 중 하나다. 생산된 비메모리의 품질을 확인하는 일은 현미경을 사용할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었다. 종일 제품을 만지고 눈의 신경을 집중하는 업무를 오랜 기간 반복하던 어느 날, 몸에 이상 반응이 왔다.

 

“일을 계속하다 보니 손목이 아프고. 또 현미경으로 검사를 자주 했거든요. 그래서 시력도 나빠졌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통증이었고, 산재 신청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그냥 참고 일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쉬어야 할 정도로 아픈 날조차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쉽게 휴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회사 때문이었다. 2010년, 노조가 파업 투쟁을 펼치며 활동을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쭉 그랬다.

 

“휴가 하나 쓰는 거에도 관리자 눈치를 받았죠. 이유를 꼬치꼬치 물으면서 내가 쓸 수 있는 휴가를 제대로 못 쓰게 압박을 주는 역할을 관리자가 했어요. 아파서 출근을 못 하겠다고 하면 ‘출근해서 얼굴 보고, 너무 아프면 가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죠. 아파 죽겠는데,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병원을 가라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왔다가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겠죠. 관리자들도 자기들은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우리가 노예처럼 산 것 같아요. 아파도 일해야 되고, 눈치 봐야 되고. 제 앞의 언니는 울기도 했어요. 너무 아파서 울기까지 하는데도 집에 안 보내주는 거예요. 그럴 땐 정말 너무하다 싶었어요. 우리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하라는 만큼 일을 해내고 있는데도 그렇게 하더라고요.”

 

▲ 2월 3일 열린 2차 ‘여성파업 오픈마이크’에서 발언하는 김진아 씨. 회사의 오랜 ‘승격 성차별’에 맞서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진 제공-전병철 씨)


일터를 벗어나 집에 오면 할 일이 또 쌓여있었다. 혼자 딸, 아들 돌보며 가장이자 엄마로서 짊어진 짐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6시 이후. 밥 챙겨주고, 청소하고 나면 2-3시간 지난다. ‘내 시간’이 없는 거다. 몸이 힘든 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지만, 가장 감당하기 힘든 건 빠듯한 생활비였다.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가입국 중 1위인 한국의 현실에서 혼자 가계를 꾸려가야 했던 김진아 씨는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일하고 집에 가서 또 살림해야 하고. 그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죠. 어깨가 너무 무거웠고요. 뭐니 뭐니 해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어쨌든 이 나라는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나라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것이 너무 가슴 아프죠. 투쟁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애들을 잘 돌보지 못해서. 물론 잘 커 줬지만, 잘 돌보지 못했던 게··· 평상시 (다른) 가족들처럼 해주지 못해서 그게 마음이 아파요.”

 

남성용역들 손에 여성기숙사에서 맨발로 끌려나온 순간

 

김진아 씨가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억울해서”다.

“회사를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점심에 밥도 안 먹고 일하고, 연장 수당 없이 연장 노동도 하고. 그렇게 일했는데, 2010년 파업 투쟁 때 (사측이) 여성기숙사에 남성 용역을 투입한 이후에 너무 배신감을 느꼈죠. 어떻게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할 수 있나 싶었어요.”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의 일이다. 그해 6월, 회사와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결렬된 후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이 채 한 달도 안 됐을 때, 회사는 600여 명의 남성 용역을 고용해 여성기숙사에 침입시켰다. 새벽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맨발로 끌려 나왔다. 참담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떠올리면 여성 동지들이 울면서 이야기해요. 너무 억울해서. 그 일을 계기로 저도 ‘아, 변화해야 하는 구나’ 생각했죠.”

 

이후 회사는 직장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하며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냈다. 노조를 파괴하려는 전략이었다. KEC지회는 공장 점거 농성으로 맞선다.

 

“천막농성 했을 때, 임신한 여성이 천막에 있었는데도 경찰 헬기를 띄워서 천막을 무너뜨렸어요. 헬기를 띄운 후에 낮추면 천막이 흔들려서 넘어지잖아요. 그런 행동까지 했죠.”

 

여성기숙사에 남성 용역이 쳐들어왔을 때 112에 몇 번이나 전화해도 와주지 않던 경찰이었다. 그런데 천막을 무너뜨리려 헬기까지 떴다.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이런 일을 당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다. 억울해서라도 파업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는 늘 동지들이 함께였다.

“힘든 일 겪으면 같이 아파하고 도와주고 믿어주고 그게 최고로 큰 힘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요.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포기할 수 없었고, 서로서로 힘든 상황을 아니까 이기자고 더 힘을 모았어요. 그 힘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파업이 끝난 후에도 싸움은 이어졌다. 회사는 30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노조를 압박했고, 6년의 재판 끝에 30억 원으로 조정됐다. 노조원들이 직접 그 돈을 갚아야만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최소 생활비 150만 원을 제외한 모든 임금이 압류당했다.

 

“대출금에, 생활고에 너무 시달리고 있는데도 손배까지 당했을 때 정말 힘들었죠. 생활비 150만 원만 빼고 나머지는 다 압류됐는데, 대출금이 지출의 대부분이었어요. 근데 가장으로서 애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죠. 보통 30, 4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니까 그때는 애들 학원도 못 보냈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나죠. 아이가 학원 가고 싶다 하는데 못 보냈던 그 심정은 지금도 마음이 많이 아파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든 상황이었지만 결국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건,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다독이며 서로를 돌보던 동지들 덕분이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나보다 더 힘든 동지들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안타까웠죠. 서로 힘든데 ‘더 참아보자, 참아보자’ 했던 그 기억이 제일 아픈 기억이에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뿌듯한 기억도 있죠. 손배 안 당한 동지들이 돈을 얼마씩 모아서 명절 때 생활비 하라고 줬을 때,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죠. 돈을 떠나서 그 마음 자체가 고마운 거죠. 한편으론 힘든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론 뿌듯하고 고마운 기억이에요. 그런 시기가 우리 지회가 이만큼 버텨오고 싸울 수 있도록 힘이 됐다고 생각해요.”

 

▲ KEC는 ‘승격 성차별’ 사업장으로 악명 높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뜨거운 투쟁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사진 제공-금속노조 KEC지회)


왜 여성은 저임금을 받아야 합니까?

 

KEC는 ‘승격 성차별’로도 악명 높다. 입사 때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직급에서 시작했다. 20년 넘게 일한 여성이 제자리걸음일 때, 자신에게 일을 배우던 남성 후배는 관리직을 달았다.

 

“KEC는 생산직 직급이 J1, J2, J3, S4, S5로 나뉘는데 여성들은 거의 J1부터 J3까지만 머물러요. 남성은 S4, S5, 그다음엔 관리자로 승급됩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S4로 갈 수가 없어요. S4로 가려면 높은 고과를 받아야 하는데, 일을 아무리 잘 해도, 그래서 고과에서 A를 받다가도 S4로 올라갈 시점이 되면 이유 없이 C를 주는 거예요. S4를 못 올라가게끔 그렇게 했죠.”

 

뚜렷한 이유가 없다. 있다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뿐. 분명한 성차별이다. 직급에 따른 임금 차이는 상당하다. J3의 기본급은 80여만 원인 반면, S4의 기본급은 90여만 원, S5는 110만 원이 넘는다.(2018년 기준) 각종 수당의 경우 격차는 더 크다. 일례로 고정연장수당의 경우 J3와 S5의 차이는 4배 이상이다.

 

“입사 때부터 차별이 있었으니까, ‘우리 회사는 남성이 중심이구나’ 생각했어요. 여성은 그냥 최저시급에 어쩔 수 없이 맞춰지는 임금이고, 남성들과 그 차이가 배로 나기도 해요. 임금체계만 보아도 남성 중심 회사라는 걸 바로 알 수가 있죠. 그리고 지금은 육아휴직도 있지만, 예전엔 임신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보지’ 이런 말을 들었거든요.”

 

도대체 왜 여성은 최저임금에 머물러야 할까? 왜 여성의 노동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노조는 소리쳐 물어보기로 했다.

 

“2018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이건 문제다, 성차별이다’ 진정을 넣었어요. 2019년에 차별로 판결 나서 시정조치 결과가 나왔는데, 그래서 겨우 조금씩 변화가 있었죠.”

 

KEC는 시정조치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시정에 나서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를 한두 명씩 S4로 승격시킨 정도다. 아직도 많은 여성이 J3에 멈추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노조가 계속해서 이런 상황을 알리고, 바꿔나가기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이유다.

 

‘여성파업’이 열린다니 저는 진짜 솔깃했어요

 

“사실 우리가 인권위에 성차별로 제소하기 전에는, ‘3.8 여성의 날’이 와닿지도 않았고 잘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성차별 문제를 드러내자고 생각했을 때부터 여성의 날을 더 알게 됐죠.”

 

▲ 금속노조 KEC지회는 2019년부터 세계여성의날이 오면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빵과 장미’(빵은 생존권, 장미는 참정권을 상징)를 받아 들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올해는 ‘3.8 여성파업’에 함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금속노조 KEC지회)


직급 성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은 또 다른 결실로 이어졌다. KEC지회 안에서 ‘여성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더 커지게 된 것. 그러한 흐름 속, 2019년부터는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이 오면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동료들, 여성 노동자에게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빵은 노동환경 개선·임금 인상 등 생존권을, 장미는 노동조합 결성권·선거권 등 참정권을 의미)를 선물하고, 여성의 날을 알리는 소식지를 나눠주거나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그 의미를 같이 공유하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조합원들도 이제는 ‘아, 그래서 빵과 장미를 주는 구나’ 의미도 알게 되고요, ‘이제 여성의 목소리도 내야겠구나’ 이런 반응도 있어요.”

 

KEC지회는 계속 여성의 날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진아 씨는 어떻게 하면 기념행사를 더 의미 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권리가 있음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할 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실 큰 꿈을 바라지는 않아요. 조금씩 변화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해서 변화됐으면 좋겠어요. 여성들도 목소리 내고, 참고 있지만 않고 일어나서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김진아 씨에게 올해 여성의 날은 의미가 더 깊다. ‘2024 3.8 여성파업’이 열리기 때문. 30여개 단체가 함께하는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에 KEC지회 역시 함께다. 노조 파괴, 저임금, 성별 임금 격차, 승급 차별, 그리고 독박 돌봄의 현실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 여성파업으로 맞선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는 것을 보이려 한다.

 

“‘여성파업’이라고 했을 때 저는 진짜 솔깃했거든요. 우리가 너무 억울하게 차별당하고 있으니까요. 묵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일어나서 한목소리로 외쳤으면 좋겠어요.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똘똘 뭉치지 않으면 힘이 돌아가지 않더라고요. 같이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만 들어주지, 혼자 외친다고 들어주지 않잖아요. 변화하지도 않고요. 이번 여성파업에도 같이 동참해서 조금이나마 변화하는 시대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너기.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와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에서 활동하는 너기입니다. 우리 삶의 조건을 함께 바꿔내고 싶습니다.

기사입력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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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10:51]
남성이 멈춰도 세상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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