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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푸바오, 사육농장 반달곰, 그리고 인간의 자리
[그림책 펼치는 마음] 빠삐용, 오삼으로부터
안지혜   |   2024-02-17

“엄마 돼지가 먼저 밭을 구르면 옥수수들이 좌르르 넘어져. 그럼 그 뒤에 새끼 돼지들이 와서 먹는 거야. 방 선배가 새벽에 봤대. 정말 대단하지!”

 

고생해서 농사지은 옥수수 밭을 돼지 가족에게 넘겨준 농부 친구가 신나게 말한다. 나는 엄마 돼지에게 감탄하는 한편 친구의 살림에도 신경이 쓰였다. 괜찮은 걸까.

 

“안 괜찮지. 내년에는 좀 다르게 심어야 하나. 고라니가 좋아하는 걸 앞쪽에 심어두면 괜찮으려나.”

 

친구네 밭 앞에서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었다.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유해 종’으로 지정된 고라니, 멧돼지를 사냥하는 소리다. 친구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책에서 본 바를 몇 마디 거들었다. 고라니나 산돼지, 오소리가 산 밑으로 내려오는 건 사람들이 자꾸만 산 위에 길을 내고 집을 짓고 골프장을 만들어서라고. 먹을 것이 없어서 아래로 내려오면, 관청에서 농작물을 지킨다며 고용한 사냥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그래서 다른 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관청 사냥꾼이 지키고 있어서 산에 사는 동물들은 점점 갈 곳이 없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고.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조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내가 농사짓는 친구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거지.

 

사육 농장을 탈출한 곰, 추격하는 인간

 

“현재 경찰은 포수와 수색견을 동원해 달아난 곰들을 쫓고 있습니다.”

다급하게 뉴스를 전하는 목소리가 있다. 다음 장에는 총소리가 울리고 만다. 탕!

 

▲ 김선배 글·그림 『빠삐용』 (호랑이꿈, 2024)


『빠삐용』 (김선배 글·그림, 호랑이꿈, 2024)은 천둥번개가 몰아친 어느 밤, 사육 농장의 무너진 철창 사이로 빠져나온 곰에게 벌어진 일을 담은 그림책이다. 긴박감이 가득한 이 책은 극적인 연출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마지막까지 보는 이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탈출한 곰은 세 살로 추정되며 온몸이 검은색이고 앞가슴에 반달 모양의 하트 무늬가 있습니다. 튀어나온 입과 넓은 이마, 큰 귀,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이 특징입니다. 이 곰을 목격하신 분은 즉시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글은 짧은 뉴스 멘트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은 곰이 농장을 나온 뒤 겪는 현실을 박진감 넘치는 구도와 강렬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글과 곰의 입장에서 겪는 그림의 대조적 구성은 그림책 안에 비어있는 부분을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채우도록 이끌고, 이는 곧 보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빨려들게 한다.

 

나는 이 평면 그림책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의 빗소리와 속도, 그 비의 온도와 촉감, 달리는 곰의 헐떡거림, 순간 멈추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먼 곳을 혼자 응시할 때 삼키는 곰의 침묵과 눈물 같은 것이 다 전해져서 놀라웠다.

 

또한 이 구성은 보는 이를 새로운 인상과 질문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곰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생겼는지 묘사하는 글에 따라오는 그림은 친구마저 잃고 지쳐 혼자 먼 산을 바라보는 곰의 뒷모습이다. 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고 글이 따라온다. 이 어긋남에서 독자는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세계에서 진짜 공포에 떨고 있는 건 누구일까!

 

▲ 그림책 『빠삐용』(김선배 글·그림)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글과 곰의 입장에서 겪는 그림의 대조적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은 2021년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 사육농장에서 벗어난 뒤 5개월 동안 잡히지 않았던 실제 곰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탈출한 반달가슴곰 뉴스를 보고 외국 영화 〈빠삐용〉(1973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탈옥 영화)의 주인공을 떠올렸고, 그 곰도 자유를 찾아 탈출한 건 아닐까 상상하며 이 책을 쓰고 그렸다고 한다.

 

작가는 결말을 수십 번 고쳐 그렸다고 하는데, 헬기와 드론까지 동원한 사람들의 대대적인 수색에서 우리의 빠삐용 곰은 빠져나갈 수 있을까? 다시 잡히게 될까? 혹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건 아닐까…. 독자인 당신은 이 이야기를 누구의 시선으로 이해하게 될까?

 

인기 많은 판다곰 푸바오는 행복할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은 아마 푸바오일 것이다. 푸바오는 한 놀이동산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곰인데, 중국에서 한국에 ‘임대’해 준 두 판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모습까지 언론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오는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푸바오 인형이나 굿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온 사진집은 지난해 온라인 서점 연말 결산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힐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푸바오는 올해 4월,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놀이동산을 떠나 중국으로 영영 떠난다고 하니 더 애틋해질 수밖에.

 

전시동물을 홍보하는 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중국이 동물을 외교 수단으로 삼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 역시 푸바오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내 손보다 작은 몸짓으로 태어나 움찔거리던 모습부터 꼬물꼬물 엄마 젖을 찾아 먹고, 물고 깨물고 장난치다가 벌러덩 누워 낮잠 자는 영상은 아주 여러 번 보았다. 그 작은 곰이 몇 달 만에 내 몸보다 커지는 신비함에 놀라고, 처음으로 일어나서 네 발로 걷던 날, 나무에 오르던 날 사육사와 나눈 교감도 뭉클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사랑받는 곰이라니, 푸바오는 행복할까? 우리는 푸바오의 몸짓과 표정, 생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비인간동물과 교감하고 더 사랑하는 감각을 키워가고 있는 걸까?

 

이름을 찾아서 떠났던 ‘반달가슴곰-KM53’

 

『오삼으로부터』(윤주옥x결 지음, 니은기역, 2023)는 ‘오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반달가슴곰-KM53’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삼이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으로 2015년에 지리산에 방사되었던 반달가슴곰 중 한 명이다.

 

“나는 더 먼 길을 떠나게 되었어. 내 이름을 찾아서. 내가 부를 이름들을 찾아서.”

 

▲ 그림책 『오삼으로부터』 (윤주옥x결 지음, 니은기역, 2023) 앞뒤 표지 이미지.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묶여있다.


이 책은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에 묶여있다. 이 책의 앞뒤는 양쪽 다 표지 기능을 하는데, 앞쪽은 반달가슴곰이 제 습성대로 살기를 응원하는 사람이 반달가슴곰에게 쓴 편지글이 담겨 있다. 사이사이 반달가슴곰에 대한 정보글도 실려 있는데 무척 알차고 생생하다. 뒤쪽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주인공 반달가슴곰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그림책이다.

 

“이름이 뭔데?”

“보고 싶을 때 서로를 부를 수 있는 거.”

“우리 엄마는 나를 부를 때 수-익이라고도 하시고, 그르르라고도 하시고, 나무를 발톱으로 긁기도 하시는데.”

 

오삼이의 이름 ‘KM-53’은 이름이라기보다 관리번호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53번째 수컷 반달가슴곰이라는 뜻이다. 오삼이는 지리산에 방사되었지만 수도산, 덕유산, 가야산, 속리산을 옮겨 다녔다. 그 사이사이 양봉 농장의 벌집을 헤집어 꿀을 먹기도 하고, 등산객들의 초코파이를 먹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사람들의 집요한 추적관리로 다시 포획되어 슬퍼하기도 했고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등 적잖은 고생을 했지만, 오삼이는 유랑과 모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초여름, 사람들이 다시 오삼이를 ‘관리’하겠다는 명목으로 포획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마취총을 맞았고 계곡 쪽으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계속해서 나아갔어. 슬금슬금 걷기도 하고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나무 위에서 쉬어 가기도 했지. 가끔 무섭기도 했지만 낯선 것들이 나를 불러 주는 순간 그 모든 곳들은 내 집이 되었어.”

 

따스한 수채화와 연필로 그린 이 책에서 특히 마음을 끄는 건 오삼이의 몸과 자연이 우주 속에서 어떻게 세상과 이어져 있는지 암시하는 장면들이다.

 

“우린 모두 같은 밤하늘에서 왔으니까. 달의 눈썹에서, 별의 휘파람을 타고 이곳으로 왔으니까.”

 

사람의 마음과 오삼이의 마음이 만나기를 바라듯, 두 권을 앞뒤로 맞물려 만나도록 편집한 이 책은 담담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독자를 어루만지지만 또렷하게 질문한다. 이 지구에서 비인간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예의를 인간동물들은 지키고 있느냐고.

 

‘이 땅에 네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지난달에 나는 열세 살 된 반려고양이 순이와 함께 부모님 댁에 가서 사흘을 머물렀다. 아빠는 고양이가 귀신을 본다는 둥, 요물이라는 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종종 했고, 엄마는 고양이 때문에 내가 시집을 안 간다는 정말 기괴한 말들을 하곤 했기에, 나는 순이와 부모님이 만날 일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순이는 당뇨가 생겨서 하루 세 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엄마와 아빠 역시 이제는 나의 돌봄이 필요했기에 우리 넷은 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다행히 넷이 만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모두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고 드디어 지난달에는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이상해. 집에 고양이가 없으니까 허전하고 이상해. 삼일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허전하니?”

 

푸바오와 반달가슴곰과 유해 종으로 지정되어 자꾸만 총에 맞는 고라니와 내 반려고양이 순이 사이에서 도시에 사는 나는 어떤 연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실제적으로, 비인간동물들과 나 사이에 어떻게 공존이 가능한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엄마가 새롭게 알게 된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네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말이다. 나만 이 지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구역에 동거하는 생명체로서 너도 나도 침범자로 여기지 않는 감각. 네가 이 산과 땅에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내가 너의 세계를 파괴한다면 나 역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수용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필자 소개] 안지혜. 날마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을 썼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편집했습니다.

기사입력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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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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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4/02/18 [10:02]
오삼이 너무 안타깝다
파랑 24/02/19 [16:53]
빠삐용 그림체 진짜 손애 땀을 쥐게 하는 역동이느껴져서 놀라워요.
windy 24/02/20 [20:17]
이 글만 읽는데도 가슴이 철렁하네요. 지구생명체가 인간만이 아닌데 서식지 다 점령하고 오존층 파괴하고 쓰레기행성으로 만들어놓고 ㅠㅠ
구름 24/02/21 [19:24]
너무너무 잘읽었어요 같이 사는 반려견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유자님 글 많이 써주세요
삐삐의친구들 24/02/28 [18:02]
푸바오가 전시동물이고, 국가간 외교로 오가는 생명이라는 걸 많은 팬(?)들이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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