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나의 새해 소망은

휘인 2005-12-13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노는 애’에 속했다. 날라리 중에서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생긴 것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아서 인기도 있었다(고 자부한다). 학창 시절에 왜 ‘치기’라고 하나, 그런 게 있어서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하고 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허탈한 곳들에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미팅은 중학교 때 일일 찻집에 가서 처음 해봤다. 고등학교 땐 남자고등학교 애들과 짝을 지어서 ‘춤짱’을 가리는 게 있었는데, 거기서 ‘짱’을 먹는 여자애와 남자애가 커플이 되는 거였다. 그 때 나는 인기 짱 많은 남자애와 커플이 됐다. 걔가 나한테 “너 어디까지 가봤냐?”고 물었는데, 나는 자존심에 “갈 데까지 다 가봤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남자애랑 키스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남자애는 굉장히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우린 주위 애들 눈 때문에 가짜 애인 행세를 잠시 동안 하다가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면서도 크리스마스 땐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남들 눈에 환상적인 커플 행세를 하느라고 말이다.

나는 그 남자애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그 애가 실망스런 표정을 짓거나 다른 여자애와 보란 듯이 다녔을 땐 기분이 나빠서 그게 질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잘 생긴 남자애고 킹카니까 당연히 나도 그 애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르는 여자후배들이 나에게 선물을 갖다 주기도 했지만 그 땐 이성애자, 동성애자, 이런 건 몰랐다.

2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갑자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애가 자기 친구들에게 얘기한 게 학교에 번지기 시작해서 선생님들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거였는데, 편지 쓰고 선물 주고 받고, 서로 스킨십 하고 그런 얘기들이 ‘이상한 관계’라는 식으로 번졌다. 후배들이 나를 좋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좋아하는 마음보다 남들 시선이 더 중요해서 그 애를 멀리하고 마치 그 애가 혼자서 나를 짝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같이 노는 친구들 통해서 남자애를 소개 받았다.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었으니까 애가 아니라 어른이었다.

이렇게 ‘피하기’ 시작한 나의 연애는 미팅에 소개팅에 맞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이 됐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본의 아니게 힘들게 하거나 속이는 일들이 생겼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 됐지만, 지금은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동성애에 대해서 예전하고는 달리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기 때문이다.

예전에 싸이월드에서 친구 찾기 검색을 처음 해봤을 때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때 내가 따돌렸던 친구 이름을 찾고 있었다. 그 애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했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지금이라도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잘못을 한 죄로 지금까지 내 인생이 계속 꼬였다는 생각으로 미안한 마음을 덜기도 했다.

과거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겠지만, 내년부터는 달라지고 싶다. 남의 눈에 튀고 싶어서,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계속 스스로 속이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는 데도 놓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한다. 그게 나의 새해 소망이다.

기사입력 : 200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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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05/12/13 [06:51]
...
voice 05/12/13 [16:30]
친구분이 상처를 많이 받았겠네요.
인기가 많은 분이셨나봐요. ((부럽다))
그 친구는 지금 동성애자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성애자?
사과하는 마음이 전달되면 좋을텐데요..
꼭 님의 새해 소망이 이뤄지시길.

이유 05/12/14 [15:56]
남들 눈에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진짜 소중한 걸 버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속이는 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은진 05/12/15 [13:00]
새해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해드릴게요.^^
야르 05/12/24 [02:06]
많이 공감되는 글..
이반감성 글들 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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