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NHK방송 개찬, 대법원 ‘기각’ 부당해

정치가의 개입사실 인정하지 않은 권력옹호적 판결

니시노 루미코 2008-07-31

지난 6월 12일, 7년여 간 법정공방이 되어온 일본군 ‘위안부’문제 관련 NHK의 방송내용 개찬(改撰: 내용을 바꾸거나 삭제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방송에 대한 정치적 개입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고, 피고 등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던 원심(고등법원)을 기각한다는 내용의 부당한 결정을 내렸다.
 
이와 과련한 내용을 ‘VAWW-NET 재팬’(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일본네트워크)의 공동대표인 니시노 루미코씨가 보고한다.
 
7년간 논란의 중심이 된 NHK 재판
 
▲ 2000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   © 페민 제공
2000년 12월, VAWW-NET 재팬을 포함한 국제실행위원회는 ‘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심판하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민중법정으로 개최했다. 이듬해 1월 30일 NHK-ETV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제2부에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룬 “전시 성폭력의 문제”가 방송되었다.
 
그런데 방송 내용은 당초 VAWW-NET이 NHN측으로부터 전달받았던 내용과는 한참 다른 내용이었다. 민중법정에서는 쇼와 “천황”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었음에도,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고 시간도 다른 세 시리즈보다 몇 분 짧았다.
 
VAWW-NET는 2001년 7월 24일, 방송내용 개찬의 진실과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제작을 맡았던 NHK와 NHK엔터프라이즈(NEP), 다큐멘터리 재팬(DJ)을 법원에 기소했다.
 
도쿄지방법원은 DJ에게만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에서 NHK 프로듀서인 나가이 아키라씨가 용기 있게 내부고발을 한 내용을 다루고, 진상을 파헤친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에 정치가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2007년 1월 도쿄고등법원은 정치가의 개입과 NHK측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정치가와의 면회를 통해 방송내용 변경된 사실 ‘무시’
 
NHN 다큐멘터리의 취재에 협력했던 VAWW-NET는, 법정에서 제작진이 신뢰이익을 침해하고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은 방송제작과정에서 VAWW-NET가 갖고 있는 신뢰는 ‘특별한 경우’에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라는 조건을 붙여, VAWW-NET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는 “취재를 당하지 않아도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열렸을 것이므로 VAWW-NET에게 ‘큰 부담’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특별한 경우’를 인정하는 기준을 바꾸고, 설명의무에 대해서도 “방송내용을 설명하기로 약속한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법적 설명의무는 없다”고 했다. 즉 원심이 인정했던 신뢰이익의 침해와 설명의무 위반을 모두 기각한 것이다.
 
고등법원이 ‘특별한 경우’라고 인정했던 배경에는, 정치가와의 면회에 의해 방송내용에 이상한 변경사항이 있었다는 경과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정치가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의견교환과 이상한 내용변경과의 인과관계를 무시했다. 또한 ‘특별한 경우’에 대한 기준을 높여 ‘큰 부담’이 없는 ‘특별한 경우’는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면서 ‘기각’ 결론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보며, 우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권력옹호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누구인가
 
▲ VAWW-NET이 권력옹호적 판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페민
요코오 마사코 재판장은 “방송된 내용이 취재 대상의 기대, 신뢰와 다르다고 하여 위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취재활동의 위축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보도 자유의 제약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심지어 “(취재대상자의) 기대, 신뢰를 보호하는 것은 기대, 신뢰 내용에 따라 방송을 제작하고 내보내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취재대상의) 방송 프로그램 편집에 개입을 허용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취재원이 취재를 의뢰 받을 때 제작진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내용과 실제 프로그램이 다르다는 차원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실제 제작현장에서는 VAWW-NET에게 설명했던 내용과 방침 하에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기 약 나흘 전부터 NHK 상층부에서 편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또한 외주제작사인 다큐멘터리 재팬이 ‘이상한 업무 명령에 책임질 수 없다’며 편집에서 하차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다.
 
게다가 방송 이틀 전에는 NHK 상층부가 아베 신조 당시 내각 관방장관 등과 만난 직후부터, 노지마 나오키 국회 대책담당국장과 마츠오 다케시 방송총국장 등에 의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삭제명령이 떨어졌고 주요 장면이 삭제되어 나갔다. 결국 방송 4시간 전에는 전 일본병의 증언과 중국, 동티모르 피해여성의 증언장면이 삭제됐다.
 
이러한 경위에 입각하여 고등법원은 “마츠오와 노지마가 서로의 발언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 의도를 헤아려 가급적 지장이 없는 방송으로 만들고자 시사에 임하고, 그 결과 그런 형태로 모든 본 방송에 대해 직접 지시, 수정을 반복하여 편집수정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
 
나아가 정치가의 뜻을 미루어 짐작하여 이루어진 편집은 “편집권을 방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헌법에 보장된 편집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일탈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을 방송사업자에게 보장된 방송 프로그램 편집의 자유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대법원의 요코오 재판장은 취재대상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보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자 “방송 프로그램 편집에 대한 개입을 허용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보도의 자유에 대한 제약’과 ‘방송 프로그램 편집에 대한 개입’을 불러온 것은 취재에 협력한 VAWW-NET이 아닌 정치가이고, 그에 의연하지 못했던 NHK가 아닌가.
 
이런 말 바꾸기는 정치개입을 옹호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위안부’문제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역사수정주의와의 싸움
 
▲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 페민 제공
우리들이 재판을 통해 싸워온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없던 일로 덮어두려는 역사수정주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폭력에 의한 언론탄압과 권력에 영합하는 보도기관의 자율규제 역시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NHK가 시민이 아닌, 당대 권력의 편을 드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재판을 통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보도의 자유’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지만, 대법원은 헌법 논쟁을 포기하고 국민의 권리를 위협한 최대 관심사인 정치개입에 대한 추궁 역할을 외면했다.
 
하지만 7년이라는 긴 재판을 통해 명백해진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그 사실은 어떠한 재판도 지우지 못한다. 재판을 통해 권력과 불의에 목소리를 높였던 사카우에 가오리씨와 나가이 아키라씨, 나가타 고조씨 등 방송제작관계자, 그리고 아사히신문의 혼다 마사카즈 기자 등 많은 저널리스트들의 용기가 불러일으킨 희망은 어떤 판결로도 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한편 6월 13일, 니혼케이자이 신문사 내부에서 사용하는 도메인의 메일로 “취재원의 ‘기대’에 보도가 따를 이유는 없지, 멍청아” 등의 내용을 담은 메일이 VAWW-NET에 송신되었다. 니혼케이자이 신문사는 메일의 송신자가 편집부 소속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공표하지 않았다. VAWW-NET은 신문사 측에 사실을 밝힐 것과 송신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7월 4일 제출한 상태다.
 

※ 이 기사는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 실린 7월 15일자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기사입력 :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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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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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31 [15:58]

연구자는 아니지만, 이 사건은 연구감이다 싶네요.
언론과 정치적 외압,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법원의 판단, 이런 문제들이 다 얽혀있으니까요.

방송내용 편집과정은 그 누구보다 NHK 기자와 직원들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면서 저항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방송사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일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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