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

박주연 2019-06-13

2018년은 미투(#MeToo) 운동이 한국 사회를 거세게 흔든 해였다. 대학 내에서도 교수 성폭력 사건들이 밝혀졌고, 연이어 남학생들이 여학생과 여성 강사 또는 교수를 두고 성희롱 및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고발됐다.

 

대학 내 성폭력 고발 “피해자를 위한 학생회는 없다”

 

성균관대학교에선 남OO 전 교수에 대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학교와의 면담 자리에서 ‘선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입이 가로막히는 일이 발생했다. 선출직으로 구성된 총학생회는 마지못해 ‘총학생회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냈지만, 결국 “피해 교수와 학교 측의 입장이 너무 상충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모임의 윤김진서 활동가는 “그때, 피해자를 위한 학생회는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하며, “대안으로 떠올린 것이 총여학생회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여학생회 활동을 통해 대학 내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는 거센 백래시(backlash, 사회 변화나 정치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와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 주로 성적,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제로 작용한다)에 부딪혔다.

 

대학 구성원 중 일부는 총여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거나, 총여 재건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총투표라는 형식의 ‘대학 민주주의’ 이름 아래, 결과적으로 여러 대학의 총여가 문을 닫아야 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교 중 총여학생회가 있는 곳은 없는 상황.

 

▲ 5월 28일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2019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포럼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 현장.     ©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 활동가 기획단

 

연이은 총여학생회 폐지는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에게 내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페미니스트들은 아니다.

 

지난 5월 28일, 서울시립대학교와 한국여성학회가 공동 주최한 포럼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에서는 대학 총여학생회 활동과 탄생과 폐지의 역사를 되짚으며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장이 열렸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가 주관하고 서울시 성평등기금 후원으로 진행된 이번 포럼은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기획단’이 준비한 자리다.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기획단’은 한국여성학회가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모임으로 현재 허주영, 송유진 기획단장 등 총 13인으로 구성, 다섯 차례에 걸쳐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 포럼은 “대학 페미니즘의 역사를 되짚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 외에도 “신촌 중심”의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네트워크를 “주변으로 더 확산”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80년대 ‘여학생운동’ 일찌감치 반성폭력 운동 벌였다

 

포럼에서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20년간의 부산대학교 여성운동을 정리하는 <부산의 대학여성운동 역사복원 프로젝트 BRIDGE> 활동이 소개됐다. 임봉 활동가는 “언니들의 역사가 전달되도록 그 시절 언니들이 응답해 달라는 요청, 과거 대단했다던 학생운동 역사 가운데 여성운동은 없었냐는 오늘의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의 궁금증에 응답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대학 여성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뗄 수 없다. “당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이 ‘골간운동’으로 지칭되고, 여학생운동은 그에 ‘복무’해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존재하고, 그걸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하며, 그 뒤에 순차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질서”였다.

 

‘여학생운동’으로 불리는 당시 대학 여성운동에 대해 ‘학생운동의 일부’라 생각하여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고, 구성원들마다 활동 계기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여학생부 활동과 여성 문제에 대한 공부를 통해 여성해방의 목표에 더 다가가게 되었고, 점차 민주화운동에서 여성운동이 분리되어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부산대 여성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BRIDGE 프로젝트의 결과, 눈에 띄는 것은 “여학생운동이 일찌감치 ‘반성폭력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6년과 1987년에 학과 차원에서 교수 성폭력 사건을 공개하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여학생들이) 단과대학 학생회와 함께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사실이 부산대 신문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부산대에선 1989년 3월 8일, 1대 총여학생회가 총학생회와 함께 출범했다. 하지만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은 1991년, 총학생회 대의원대회에 ‘총여 폐지’안이 상정됐다. 임봉 활동가는 “왜 폐지 안건을 상정했는지 당시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민족민주운동’이라 불리던 대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이들에게 총여학생회는 무가치하고 존재 이유도 알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총여학생회는 학내 성폭력 규제 학칙을 제정하는 등 반성폭력 운동을 꾸준히 이끌었다. “2000년엔 부산대 총여에 10건의 성폭력 사건이 신고되고 공개되었으며, 폭발적인 반성폭력 담론을 형성하여 새로운 여성운동의 기류가 생성되기도 했다.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마녀들의 카니발’ 행사를 통해 등장한 그룹이 생겨났고, 다음 해 이들의 활동은 여성주의 웹진 <월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생사회의 피드백은 험했다. “기존의 ‘학생운동’이라는 위치성에서 이탈한 총여/여성운동은 까칠하고 예민한 여자들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위계화된 질서를 찢으며 새롭게 탄생한 여성공동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남성 기득권을 공격하는 활동을 하면 어김없이 협박과 위협이 따라오는 상황’ 등으로 인해 여성운동 주체들이 갖게 되는 피로도가 쌓인”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체적으로 총여학생회라는 학생회 시스템이 아닌, 다른 틀로서 대학 여성운동이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02년에 학생잡지 <herstory>를 창간하고 학내 여성주의 언론으로 설 수 있도록 정식 기구화하고자 하였으나, 대의원대회에서 좌절”되면서 “부산대 총여는 활동을 자체 종결”하게 되었다.

 

▲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 포럼엔 강의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참여해,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 활동가 기획단

 

2000년대 총여 활동이 쇠락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1990년대 서울시립대에서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던 서울시립대학교 황주영 강사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총여 활동이 쇠약해진 원인을 몇 가지 꼽았다.

 

황주영 씨는 먼저 “일명 ‘신촌페미’와 ‘관악페미’ 중심의 영페미니스트’에 대한 다소 과장된 기억과, 보편주의적 평가에 깔려있는 서울중심주의, 학벌주의, 계급 차이에 대한 맹목”으로 인해 “은폐된 차이가 어떤 이들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각 대학의 상황과 대학 구성원들의 차이가 드러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제화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실은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였던 어떤 여학생들을 총여가 대변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시립대 총여는 고유 의제를 발굴하고자 했으나, ‘영페미’의 문화운동 흐름을 따라가기 바빴다. 시립대 여학생들의 주된 문제인 빈곤, 노동, 경제에 대한 고민을 중심에 놓고 전체 (활동의) 그림을 짜는 데 실패했다”고 회상했다.

 

“성폭력에 관한 논의도,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느라 더 위험하지만 그래서 더 저렴한 자취방에 거주하는 여학생들이 일터와 집에서 마주하는 성폭력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성폭력 근절’이라는 의제를 공유하면서도, ‘저소득층 여학생’이기 때문에 겪는 성폭력에 더 집중했었어야 했다.”

 

총여 활동이 쇠락해진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변화다. “냉전 종식과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이미 대학에서는 ‘학생운동’이라는 구심력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198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 속에서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대학 내 민중문화운동은 사그라들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탈정치화도 가속화되었다. IMF 경제위기는 그런 변화에 결정타가 되었다.” 학생들이 학생운동이 아니라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총여학생회와 페미니즘 커뮤니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중후반, 대학이 학문과 생활운동의 공동체가 아니라 ‘취업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으로 완전히 재정의되자, 정치 활동은 대학의 아주 작은 일부가 되었고 학생들이 원하는 학생회는 주민센터나 고객센터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은 총여학생회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학생 휴게실은 단순한 휴게실이 아니라 외모 평가와 성희롱으로 이어지는 남학생들의 음담패설, 맨스플레인으로부터의 피난처임에도, 학생회를 ‘고객센터’로 보면 여학생 휴게실은 (남학생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 휴게실이 대학 내 누구에게나 제공되어야 하는 휴게공간으로 정의되는 순간, 총여의 특수성과 필요성이 소거된다.

 

또한 “총여학생회는 (총학생회와 달리) 단과대학과 각 과의 여학생회 등 하부조직이 없는 점”, 그렇기에 “활동가를 재생산하기 취약했던 점”도 활동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였다. 황주영 강사는 “시립대에 총여가 오랫동안 세워지지 않는 주원인은 내적 동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19년 대학, 공동체는 파괴되고 민주주의 형식만 남아

 

역동적으로 진행되어 온 각 대학의 총여학생회와 여성운동 역사는 이제 다시 한번 격동의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 총여를 둘러싼 대학 커뮤니티의 논의는 과거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2009년 이후 후보자가 없어 빈 상태였던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를 다시 세우고자 재건 투쟁을 이끌었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윤김진서 활동가는 대학 내 미투 고발 이후 해결책이 부재한 것이나 ‘총여 폐지’ 흐름들이 “대학 공동체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총여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많은 질문이 더이상 대학 공간을 공동체로 사유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냈다. 공동체가 유효하다면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고 안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금 대학생들에게 대학 공간은 공동체로 사유되기보다는 각자도생을 위한 물리적 공간 정도의 의미이기 때문에,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어떤 고민도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윤김진서 활동가는 또한 “1990년대 이후 학생회 투표율이 저조한 현상이나 정치적 무관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 탈정치와 달리, 지금 대학 내 탈정치는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며 순수한 개인만이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총여 폐지와 관련하여 각 대학에서 진행된 ‘총투표’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과정을 보다 비판적으로 읽어낼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총투표’는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동등하게 물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이지만, “탈정치화에 따른 다수결의 신화화는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시대적 맥락과 연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총여를, 그 너머를 꿈꾸는 페미니스트들

 

2016년 성공회대학교에서 만들어진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한 안도희 씨의 발언은 ‘여학생만을 위한 총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인권위’가 생긴다 해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었다. 대학 내 인권위가 마주했던 ‘전문성과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나, ‘해결사 조직으로 간주되는 위치’ 등이 그것이다. 안도희 활동가는 “지금의 학생사회는 ‘공동의 합의’가 아닌 ‘의지가 있는 개인’들에게 기대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도희 활동가는 “총여를 비롯한 여성주의 조직이 사라지고 흩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운동 안의 개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나의 영역과 그 ‘곁’에서 조금씩 뻗어 나가고 발전해 나가는 연대와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늘날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을 기록한 <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 프로젝트를 진행한 재정 활동가는 “총여는 학내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유일한 선출직 대의기구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하면서도, 꼭 총여가 아니더라도 “대학을 성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크고작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학 교원 임용 및 젠더 수업 개설 요구, 반성폭력 학칙 개정 및 인권센터 설립/개편 요구, 페미니즘 소모임과 세미나 프로그램 지속, 학내 성차별과 성폭력 공론화 및 대응 활동 등이 그 예이다.

 

▲ 범 대학 페미니스트 그룹 ‘유니브페미’에서 진행한 세미나 홍보물.     © 출처: 유니브페미 준비모임 페이스북

 

대학을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해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윤김진서 활동가는 “대학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호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정치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제안하며 “20대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범 대학 구성원들을 회원으로 하는 <유니브페미>” 준비모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2019 차세대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포럼 “대학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총여학생회 폐지, 그 너머를 상상하라”에선 총여학생회 및 여학생운동의 시작부터, 그간 총여가 겪은 풍파와 다양한 활동과 노력, 지금 현재를 진단하는 한편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포럼은 ‘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은 사라진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기사입력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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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킨 19/06/14 [07:19]
대학 미투에 대해 학생회가 제역할 못하는 거 속터졌는데.. 고객센터같다는 얘기에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유니브페미라는 곳 궁금하네요.
세탁소 19/06/18 [05:57]
그랬죠 총여에 성폭력 사건 접수가 많이 들어왔고 총여활동은 반성폭력 운동이 빠질 수 없었죠. 지금도 여학생회라는 이름의 조직만이 성폭력에 대응을 절실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총여도 거의 없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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