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자의 질문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청주여성의전화와 함께한 셀프 디펜스 교육

최하란 2019-10-11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가정폭력을 피해, 보호시설을 찾아온 사람들

 

셀프 디펜스(self-defense) 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탔다. 가정폭력을 피해 가족보호시설을 찾아온 여성들과 그 자녀들에게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을 교육하기로 했다. 참가자 중에는 현재 보호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가족들도 있고 이미 자립한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이 풍광 좋은 곳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경험을 나누고 우애를 다지는 자리였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소개를 하는데, 청주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저곳으로 자립하여 나간 가족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서로를 기억하며 박수를 쳐주고, 자기 소개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더 활짝 웃어주고, 어느새 훌쩍 큰 아이들에게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면서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십대 초반부터 오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남녀가 섞여 있는 사오십 명의 그룹을 혼자 어떻게 교육하나?’ 했던 걱정은 싹 다 사라졌다.

 

초대해 주신 청주여성의전화, 그리고 함께 땀 흘리며 열심히 참여해준 모든 참가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은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준 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며,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 가족 모임에 초대받다.    ©최하란

 

A. 무술을 배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라데라는 무술을 배우고 있었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어요. 버스를 내려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가 따라오더니 저를 확 잡아서 끌고 가는 겁니다. 분명히 도장에서 주먹질하고 발 차는 것을 배웠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습니다. 예전처럼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가 오늘 배운 것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그 상황을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 남자가 끌고 가려고 했을 때, 때리고 차는 것은 못 했다고 하셨는데요. 그것 말고 뭔가 다른 것을 하신 게 있나요?

 

“근처에 사람이 있어서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를 잡고 끌고 가는 남자가 제가 자기 아내라면서… 지금 아내가 문제가 있어서 자기가 데려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혹시 또 다른 게 있을까요? 그때 어떻게 그 상황이 끝났나요?”

 

“제가 이렇게 보니, 저기 길 맞은편에 경찰이 보였어요. 그래서 그 남자에게서 도망쳐 경찰에게 달려갔습니다. 저 좀 도와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이 남자가 또 경찰들에게도 자기가 남편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경찰도 가정문제라고 생각하면서 그 남자를 믿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제가 이 사람, 모르는 사람이다, 남편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러다 학생증을 꺼내서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저를 돕더군요. 그래서 큰일을 피할 수 있었어요.”

 

―이십 년도 넘은 일인데 똑똑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동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우선, 제 답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문제를 슬기롭게 매우 잘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너무 놀라서, 혹은 평상시 평화로운 성향 때문에 공격자를 바로 때리거나 차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모두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A님은 아무것도 못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많은 것을 하셨고, 정말 잘 해결하셨습니다. 셀프 디펜스는 방어하고 공격하는 기술만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모든 것입니다.

 

사건의 순서대로 보면, 우선 주변을 살피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공격자는 거짓말을 해서 첫 번째 도움 요청을 실패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A님은 또다시 주변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죠. 그리고 경찰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때도 이 공격자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아내고, 가정문제니 끼어들지 말라는 식으로요. 그러자 A님은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더는 기회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고, 자신이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학생증을 찾아 보여주면서, 이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임을 알려 경찰의 도움을 받고 비로소 안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양성평등교육원 가정폭력예방 영상자료 중 캡처

 

A님의 질문과 상황 설명을 통해 우리는 여기서 가정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가족이라면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끌고 가도 되는 걸까요? 진짜 부부였어도, 한쪽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험한 사람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경찰의 태도는 국가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이상 가정폭력을 가정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B. 딸이 남편으로부터 저를 지켜주려다 맞았습니다

 

“남편이 또 집에서 저를 때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딸이 저를 때리고 있는 아빠를 말리더라고요. 저를 지켜주려고요. 그러다 얘도 맞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제 딸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험하니까 멀리 있으라고, 저에게 오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따님이 했던 행동을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VIP 보호, 제삼자 방어입니다. 이런 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호원, 특수요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특수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경호원, 특수요원 같은 전문가들이 아닌 우리 일반인들도 이런 일을 합니다. 자신의 VIP를 위해서요. VIP는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자인데, 우리말로 하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대통령, 유명 스타들만 중요한 사람일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 이 사람들이 정말 내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내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 제삼자 방어, VIP 보호    ©스쿨오브무브먼트

 

사실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위험한 사람을 피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있다면 아빠한테 다가가 엄마 때리지 말라고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문을 잠그고 자기 방에 있거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얼른 피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리고 숨거나 혼자 도망간다고 해서, 겨우 열 살을 갓 넘긴 딸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아이는 엄마를 때리는 아빠 앞으로 달려가 엄마 때리지 말라고 막아섰을까요? 아빠가 무섭지 않았을까요? 맞으면서도 왜 엄마를 지켰을까요?

 

저는 이 아이에게 그건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그때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원해서 엄마를 지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아이의 결정, 위험해도 엄마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더 아플 수 있습니다. 몸의 상처는 금방 낫는데 마음의 상처는 오래갈 수 있죠. 셀프 디펜스, 나를 보호하는 것은 단지 몸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것입니다.

 

B님은 옆에 있는 따님과 함께 위험한 사람과 떨어져 자립하고 계시니, 두 분 모두 셀프 디펜스를 잘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정말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A와 B 사례에 덧붙이는 얘기

 

무술이나 격투기를 배웠어도, 폭력 상황이나 위험 상황에 빠졌을 때 바로 때리거나 차거나 꺾거나 넘기는 공격 기술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누구나 갑작스럽고 낯선 폭력 앞에서 생각이 멈추고 몸이 굳는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폭력 상황은 우리에게 강한 스트레스를 주고,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뇌가 있는) 동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는 순간이 발생한다.

 

이 얼어붙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문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해결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의 연습(시뮬레이션)을 한다면, 무술이나 격투기를 훈련한 경험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엄마가 질문하고 내가 답변하는 동안, 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이 대화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앉아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대화의 어느 부분에서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고, 살짝살짝 엄마를 쳐다보는 눈길도 느낄 수 있었다. 또 약간 부끄러울 때 나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쯤 자연스레 따뜻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 “여러분은 충분히 강합니다!”     ©최하란

 

나는 폭력을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셀프 디펜스 교육을 하다 보면, 이날처럼 폭력을 ‘경험’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내게 좋은 교육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함께 할 기회를 준 그들에게 내가 더 고맙다. 선생님 진짜 (강하고) 멋있어요! 라고 엄지 척을 해주시지만,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더 강하고 멋있어요! 하면서 두 엄지를 높이 들고 싶다.

기사입력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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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19/10/16 [15:09]
기사와는 포인트가 조금 다르지만... 보호시설까지 가는 분들, 정말로 용기있는 분들입니다. 흔히, 왜 맞고만 있어? 도망가서 살아야지, 하고 피해자를 나무라지만 가정과 집은 폭력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장소죠. 내 살림, 내 가구, 익숙한 동네, 학교, ... 보호시설에 가려면 이 모든 것을 일순간 버리고 최소한의 짐만 싸서 완전히 낯선 곳 낯선 생활로 들어가는 거예요. 거의 난민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보호시설까지 간 분들은 정말 용기있는 분들이고, 그러지 못한 분들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역량 강화를 해야 합니다. 여성학 공부를 한 저도 결정 내리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가기로 결심하고도 너무 두려웠어요. 내가 어디로 가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되는지 모르니까요.
뽀빠누나 19/11/06 [00:43]
저는 가정학대를 일삼는 어머니밑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저희 어머니는 단순히 자신이 화난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이 어머니를 화나게 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동생을 때렸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제가 또 다시 동생에게 폭행을 가하려는 어머니에게 맞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내뱉은 이후 어머니는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화살의 방향은 저에게로 향해졌고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어머니의 외가집을 포함) "얘가 세상에 나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니까? 정말 어이가 없지" 라며 사람들 앞에서 저를 놀림거리로 삼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저는 정말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전 성인이 되었고 어머니와는 따로 살고있습니다. 정말 동생을 어머니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부터 지켜주고싶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던 저는 이상한 사람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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