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주류화에서 혼인 평등으로…대만 ‘동성결혼법’

아시아 첫 동성혼 인정, 그 의미와 한계를 짚다

후쿠나가 겐야 2019-12-03

올해 5월 24일,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대만에서 동성 커플의 혼인 관계를 인정하는 획기적인 법률이 통과됐다. 대만의 사회상황과 해당 법의 의미, 그리고 남은 문제점에 대해 동아시아에 정통한 후쿠나가 겐야(福永玄弥) 씨의 기고를 싣는다. 후쿠나가 겐야 씨는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으로 사회학, 퀴어연구, 동아시아 지역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편집자 주]

 

아시아에서 가장 LGBT 친화적인 사회

 

동성 간의 혼인 관계를 보장한 이번 법률은 ‘사법원석자 제748호 해석법 시행’이다. 최근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LGBT 프렌들리한 사회’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4년에는 젠더평등 교육법이 제정되어 학교에서 성별이나 성적지향, 성적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적인 대우를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젠더평등 교육’이 의무화되었다. 또한 2002년에 통과되고 2007년에 개정된 젠더노동 평등법은 직장에서 성적지향이나 성적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 대우를 금지하는 법이다.

 

당사자 운동도 활발하여, 매년 10월에 타이베이에서 개최되는 대만 LGBT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사회운동으로서 아시아에서 최대 인원이 참여하는 퍼레이드로 기록되고 있다.

 

여성운동의 성장, 동성애 혐오를 넘어

 

하지만, 1980년대까지 대만은 여성에 대해 차별적이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엄혹한 사회였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오래 정권을 잡고 있던 ‘국민당’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억압받아온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등의 사회운동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뤘다.

 

민주화를 당의 기본방침으로 내건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여성운동 리더 등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면서 사회의 지지를 모아, 2000년 선거에서 국민당을 누르고 집권한 후 젠더 주류화를 추진했다. 그러한 정치적 흐름에서 젠더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이 차례차례 통과되는 등 여성운동은 착실히 정치적 성과 달성을 축적해왔다.

 

동성혼 추진의 주역으로 알려진 민진당의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 유메이뉘(尤美女)도 1990년대에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페미니스트다. 동성혼도 여성운동 진영과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강력한 지지가 있어서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광의에서의 ‘성평등’을 지향한 대만판 젠더 주류화의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본 ‘진보사관’에 가깝다. 대만에서 동성혼을 요구하는 운동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것은 차별과 탄압의 역사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동성 커플에게 이성혼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다양한 접근이 축적되어왔지만, 입법원과 여론이 동성혼을 ‘논의할 만한 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부터다.

 

또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는 항상 여성운동 속에도 존재했지만, 성소수자의 문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여성운동계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운동 속의 동성애 혐오도 심각한 문제였다. 동성혼 추진의 주역으로서 성소수자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유메이뉘 역시 1990년대 후반에는 “동성애나 섹스워커 이슈는 여성운동에서 중요하지 않다”라며 레즈비언 활동가들을 여성단체에서 배제한 과거를 갖고 있을 정도다.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운동 사이의 알력은 ‘LGBT프렌들리’한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여겨지게 된 2000년대 이후, 서서히 융해되었다.

 

▲ 2017년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에서 함께 행진하는 ‘대만파트너권익추진연맹’ 활동가들. 오른쪽 두 번째가 1980년대부터 동성혼 인정을 요구해 온 치쟈웨이.     ©촬영: 후쿠나가 겐야

 

이성 간의 혼인과 동등한 권리 보장하지 않아

 

이제 대만에서의 동성혼 법제화가 실현된 정치적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2016년에 ‘혼인평등’(동성혼) 실현을 공약으로 내건 차이잉원(蔡英文)이 이끄는 민진당 정권이 들어서고 국회 과반수를 점한 사실이 중요하다.

 

또한 1986년부터 동성혼 권리를 주장해온 활동가 치쟈웨이(祁家威)가 혼인신고서 수리를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해, 2015년에 사법원에 대해 헌법 해석 청구를 요청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헌법 해석을 맡은 사법원 대법관은 2017년 5월, 동성 간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민법을 ‘헌법 위반’이라고 판결했고, 정부에게 2년 내에 관련 제도를 준비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사법원 대법관의 판단에 대해 기독교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백래시(backlash,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른 기등권 층의 반발) 운동 측은 국민투표를 청구했다. 이에 따라 2018년 11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그 결과, 보수파가 승리를 거둬 민법개정이 아니라 특별입법으로 동성 간 파트너십 제도 수립이 확정되었다. 결국 행정원이 [사법원석자 제748호 해석시행법] 초안을 작성, 민법개정을 동반하지 않는 특별입법에 의한 동성커플 혼인이 보장된 것이다.

 

[사법원석자 제748호 해석시행법]은 동성 커플에 대해 이성 간의 혼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성 국제커플의 경우, 양 국가에서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으면 대만에서의 혼인 관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동성커플에게 적출(혼인한 배우자가 낳은 자녀) 추정이 준용되지 않아, 한쪽의 친자를 다른 쪽이 양자로 들이는 것은 인정되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공동으로 입양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성소수자 운동은 동성혼 실현만 요구한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대만의 성소수자 운동이 반드시 동성혼 실현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동성혼 추진에 공헌한 ‘대만파트너권익추진연맹’은 2013년에는 두 명 이상의 공동생활자에게 가족으로서 권리를 보장하는 ‘가속제도’(생활동반자법에 해당) 초안을 작성한 바 있다.

 

이 ‘가속제도’ 초안은 종래의 가족제도를 비판하고, 이성애 가정에서 배제되어온 성소수자 뿐 아니라 싱글맘이나 장애인, 독거노인, 이민자 등 다양한 경제적 약자 포용을 시도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대안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혼인제도에 의한 성소수자 포용이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해답으로 여겨져 동성혼이 실현된 것이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기사입력 :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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