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비전화제작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마지막 이야기

이민영 2020-02-12

※ 필자 이민영 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은 원래 일본에 있는 비전화공방 대표인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과 1년 동안 함께하는 제자인증과정이다. 일본 나스에의 비전화공방에서 후지무라 야스유키 대표가 자신의 뜻을 같이하는 제자를 양성하는 1년 과정을 본보기로 삼아, 서울의 사정에 맞게 유치해 2017년부터 운영해온 것이 비전화공방서울 수행과정이다.

 

삶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손을 쓰고 몸을 움직이면서 기술을 익히는 즐거움을 느끼고, 서로에게 곁이 있는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풍요로운 일상과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구성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이 과정의 목적이다.

 

▲ 비전화제작자 2기들의 졸업의례 현장     ©비전화공방서울

 

건축, 제작, 농사 등 다양한 자립과 공생의 기술을 1년간 맛본 뒤의 일상은 어떠할까?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정말 네 삶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답변은 사실이긴 하지만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례로 답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응대가 아닐까 싶다.

 

2020년 3월 비전화제작자 3기의 졸업을 앞둔 지금, 제작자들의 상태는 각기 다르다. 각자 살아온 방식과 참가한 동기와 기대했던 마음의 모양이 다르기에 현재 위치한 자리가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료 후 비전화제작자들은 지금…

 

농사에 뜻을 두었지만 농업에 매인 농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던 Z는 인천 인근의 작은 섬에 뜻이 맞는 주거공동체 구성원들과 땅을 빌렸다. 유기농 고구마를 중심으로 쌀, 버섯 등 작물을 심고 거두되 도시를 선뜻 벗어나기 어려운 동료들과 함께할 ‘비밀의 정원’을 꾸리는 작당모의도 벌였다. ‘반농반X’의 삶을 꿈꾸며 부지런히 도시에 나와서는 각종 강의나 워크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해 진하게 어촌에서의 일상을 꾸리다 돌이켜보니 도시와 다를 것 없이 과제를 해내듯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다시 숨 고르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 하고 싶은 것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해나가며 느릿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들과 만나려는 친구들의 커뮤니티형 카페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 제작자들은 자립을 도모함과 동시에 자신의 자립 현황을 알리는데 열심이다.  

 

적게 벌어도 행복하게 사는 ‘3만 엔 비즈니스’에 매혹된 Y는 졸업 이후 온전히 이 실험에 매진해보기로 했다.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에서 배운 탄두르 화덕, 햇빛식품건조기 등을 제작하는 워크숍을 열고,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장터에 나가 이 제작품을 활용해 만든 식재료로 식사를 만들어 팔았다.

 

동료들과 자립생활 실험공간을 꿈꾸며 그곳에서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친구들을 초대하고, 제작자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해온 현대무용극을 올리는 데 참여했다. 한편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먹고 살기 위한 살림을 자처하며, 이런 일상을 소개하는 이야기마당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혹자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로 사는 이들도 있다. 다니던 학교와 직장으로 복귀하거나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해 일하기도 하고 가사에 전념하고 있는 이도 있다. 귀촌으로의 포부를 가졌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비빌 언덕을 찾아 회귀한 이도 있다. 그 와중에 함께하겠다는 다짐만은 잊지 말자며 비영리 임의단체를 설립하기도 하고, 공동의 이름으로 크고 작은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나, 이민영의 ‘비전화’는

 

그럼, 더 뒤로 빼지 말고 나의 이야기를 마주해볼까. 수료 이후 비전화(非電化, 전기와 화학물질에의 의존도를 낮추는) 일상을 체화해보고 싶어서 한창 건축 중이던 비전화카페의 콘텐츠를 구성하고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운영방안을 꾸리는 일에 가담했다. 그 과정에서 내 생활의 자립과 작은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일환으로 ‘비전화제작자’라는 새로운 명함을 달고 시민들을 만나기도 하고, 수행과정 중엔 짬을 내기 어려워 하지 못했던 살림살이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제작해보기도 했다.

 

▲ 졸업 후 동료들과 함께 ‘쓰레기 없는 부엌’을 위해 밀랍을 녹인 천으로 밀폐하는 비즈왁스랩(위)과 비닐봉지를 대체하는 장바구니(아래)를 제작해 사용하고 판매했다.     ©촬영: 홍정현

 

그러다 우연찮게 내가 과정을 이수한 비전화공방서울 사업을 총괄 운영하는 역할을 제안받았고, 단장이라는 직함을 단지 어느덧 1년을 채워가고 있다. 돌고 돌아 다시 사무실의 노트북 앞에 앉아 정책 사업을 협의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의 기분이란.

 

비전화제작자 입학의례 때 봉긋하게 봉우리를 연 목련을 감개무량하게 바라보던 2017년의 나는 어쩌다 노력하지 않아도 매년 그 목련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올해의 목련이 필 것을 안다.

 

사각사각 빗자루 쓰는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며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인 먼지도 쓸어내는 일상을 상상했던 나는 비전화카페의 마룻바닥을 빗자루로 매일같이 쓸며 틈새로 음식 잔여물이 빠지지 않게 하는데 골몰하고 가끔은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흙모래를 눈감았으며, 쌓여가는 서류와 씨름하고 돌아온 날이면 방구석마다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녀도 진공청소기 전원조차 누를 기운 없이 잠들기 일쑤였다.

 

▲ 겨울에는 유리를 통해 태양빛이 들어오고 온기가 2층으로 올라가 따뜻해지는 양계장을 지어 운영했다.  ©비전화공방서울

 

그동안 비전화공방서울은 양계장을 만들어 서울 한복판에서 암탉을 키우고, 독립기초 구조로 비전화작업장을 지었으며, 돌 가마에서 구운 수제 피자와 직접 빚은 맥주를 파는 야간행사를 비전화카페의 얼굴마담으로 정착시켰다. 비전화정수기와 햇빛식품건조기는 용도와 형태에 따라 기능이 개선돼 좀 더 다양한 제품과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실험하는 우수사례로 비전화공방서울이 국내외 언론에 소개되고 주요한 행사의 초대를 받게 되기도 하는 동시에, 제작자들의 자립에의 시행착오와 경험 역시 여전히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발, 우리의 실험은 계속된다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 나는 그 힘을 얼마나 키울 수 있었을까? 비전화제작자로 1년, 비전화카페 매니저로 1년, 그리고 비전화공방서울 사업단장으로 1년. 밀도 높았지만 3년이란 시간으로 전기와 화학물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아름답고 풍요롭게 사는 삶의 방식을 깨쳤다거나 확신을 가졌다고도 말하기 조심스럽다.

 

▲ 3기 비전화제작자 입학의례 날, 중정의 목련나무 아래서     ©비전화공방서울

 

다만 지난 3년간 내가 깨달은 건, 자립은 홀로서기가 아닌 나의 힘을 기르되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몸으로 만들어내는 자급자족의 모습은 자립을 구현하는 주요한 단면 중 하나이지만 그 정도와 방식 또한 처지와 여건에 맞게 언제든 시도해볼 수 있다는 배짱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안타깝지도 우쭐하지도 않다. 내가 살고 싶고, 아끼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삶의 방식을 말하고 보여줄 수 있는 현재와 그 역할에 만족한다. 그것이 과거로부터 찾아온 나이고 현재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서두르지 않고 한 발, 이제 시작이다.

기사입력 :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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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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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리 20/02/13 [17:18]
앗 마지막 칼럼인가요? 그동안 연재 글들 보느라 즐거웠어요~ 작가님 앞으로도 계속될 실험에 응원을 보내요. ^^
독자 20/02/14 [19:31]
그동안 연재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3만엔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참 재미있는 주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 20/02/16 [12:11]
날이 풀리면 비전화카페에 가보려고 합니다. 솔솔한 재미를 주는 연재가 끝나서 아쉽네요. 
트리오 20/02/16 [20:55]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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