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와 함께, 집을 이고 메고 다니는 중

<주거의 재구성> 비혼여성과 반려동물의 동거

황주희 2020-06-15

“안녕하세요. 저는 집을 이고, 메고 다니는 황주희입니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정착이 싫은 건 아니에요. 캄보디아에서 4년 정도 살았고, 그 외에도 유럽, 인도, 베트남에서도 살았어요. 지금은 제주에 있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소개를 마친다. 참 잘 꾸며진 소개다.

 

소개가 끝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정말 멋진 삶을 산다고, 책을 한 권 써보라고, 부럽다고들 한다. 갖가지 좋은 수식어가 내게 붙는다. 그 말을 들은 아주 인간적인 나는 속으로 매우 우쭐해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된 듯 신나서 수다를 떤다.

 

▲ 지금 살고 있는 제주, 소리소문서점에서  ©황주희


하지만 정작 내가 집을 이고, 메고 다니게 된 시작은 가출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가출 중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은 나에게 불편한 공간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이었을까.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만 가면 가면을 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렇게 10대부터 소심한 가출이 시작되었다. 늦게까지 영화관을 찾거나 일부러 학원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20대 초부터는 집에 있는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가고 싶었던 곳을 다니는 것에 열중했다. 처음에는 짧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여행으로 나의 불안은 충족되지 않았다. 집은 여전히 다시 돌아가야 할 공간이었고, 사춘기가 끝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있어야만 했다.

 

그 이후 짧은 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기고 오랫동안 한 곳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용감하고 긴 타지생활이 이어졌다. 유럽 곳곳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인도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고, 베트남에서 6개월간 자원봉사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동체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매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룰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은 꽤 큰 스트레스였다. 가족 간의 공동체 생활도 힘들어했던 나를 돌이켜보며 스스로 공동체 생활에 아주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 규정짓기까지 했다.

 

▲  2011년에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때 모습  ©황주희


스물아홉, 캄보디아에서의 첫 독립 

 

완전히 독립하게 된 것은 캄보디아에서부터였다. 혼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바깥에서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내가 될 수 있는 편한 공간을 원했다. 인도에서 짧은 봉사활동을 계기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 1년 정도 한국 본부에서 일한 후, 현장에서 일하고 싶던 꿈을 이루고 싶었다. 스물아홉이었던 나는 결혼 등 사회에서 규정지은 일들은 뒤로 미룬 채 오로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으로 캄보디아 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당장 언어도 통하지 않고, 살 집도 구해지지 않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동안의 해외 경험을 떠올리며 애써 담담한 척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득해왔고,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 문화가 다를 뿐 별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함께 길을 택했던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1년 차의 생활은 꽤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옆집에 살며 서로를 다독이고, 타지에서 힘든 일은 서로 도와가며 캄보디아 생활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다.

 

첫 독립은 자유로움, 나를 온전히 찾아가는 것과 별개로 해야 할 집안일과의 싸움이었다. 독립 1년 차에는 그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가족과 생활할 때나 공동체 생활에서나 집안일을 내가 완전히 도맡아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엄마는 결혼해서 집안일을 계속해야 할 텐데, 지금부터 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혼자 살고 보니 나는 집안일을 아주 싫어하는 인간이란 걸 알게 됐다. 공기와 같이 나의 일상을 지탱해주던 일들이 그때 처음으로 대단하게 여겨졌다.

 

            ▲ 독립 생활은 집안일과의 싸움이었다.  <이미지 출처> 진아의 조울증감지기-3 http://www.ildaro.com/5181

 

캄보디아 생활에 적응할 무렵 주말에 시간이 될 때마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유일한 동물보호소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다. 한국의 동물보호소 환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현지인들에게 동물보호소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찾는 사람은 외국인들뿐이었고, 현지인들에게 가축 외에 개나 고양이를 기른다는 개념이 없다 보니 동물을 구조한다는 개념이 없다는 것.

 

동물보호소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한 녀석이 계속 눈에 밟혔다. 다른 녀석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떠나는 동안 녀석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그 녀석의 사연을 물었다. 누군가 고양이를 학대한 것 같다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매일 들린다며 구조해 달라는 요청이 있는데, 텅 빈 집의 작은 창고에서 녀석은 꼬리가 잘리고, 온몸에 피부병을 뒤집어쓴 채 발견되었다. 긴급히 수술은 했지만 임시 보호처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 녀석이 계속 눈에 밟혀 한 달쯤을 지켜보다가 내가 결국 임시 보호를 하기로 했다. 한껏 상처를 품은 고양이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예전부터 고양이를 좋아해서 꽤 지식이 있는 편이었지만 그런데도 아픈 아이를 내가 잘 보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녀석의 이름은 봉이로 정했다. 짧은 기약을 한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봉이는 냉장고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매일 냉장고 뒤에 달라붙어 봉이의 손길을 갈구했다.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봉이와 나는 전쟁 같은 상황들을 겪어야 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지쳐갈  때쯤, 봉이가 집에 온 지 한달 반쯤이 지난 어느 날 별일 있었냐는 듯 봉이는 냉장고를  벗어났다. 임시 보호를 기약한 지 두 달이 흘렀고, 나는 서슴없이 평생 봉이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같이 이곳 저곳 떠돌며 다닐 사람이 과연 봉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여전히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큰 봉이를 다시 보호소로 돌려보낼 자신이 없었다.

 

▲ 캄보디아 동물보호소에서 만난 아기고양이 봉이와 함께  ©황주희

 

외국인으로, 여자로,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캄보디아에서 1년만 살겠다고 한 결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 출산 같은 보편적인 삶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그런 삶에 어울리지 않겠다는 확신을 더욱 가져다 줄 뿐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세계관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틀을 조금씩 깨트리며 성장해갈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보편적인 삶을 꿈꿀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그저 자유롭게, 차분히 내 길을 걸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건히 할 뿐이었다.

 

특히 봉이를 키우며 동물보호, 환경보호를 하는 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캄보디아를 자신의 나라라 여기며 환경보호를 하는 이들을 보며 나 역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의 삶이 그저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캄보디아에서도 프놈펜, 바탐방, 시엠립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그때마다 외국인, 비혼 여성,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때론 모진 일까지 감내해야 했다.

 

타지에서 산다는 것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외로움을 넘어서, 어려움 혹은 억울함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토바이를 탈 때도 법규를 지키며 운전해도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벌금을 걷어가는 상황들부터 아주 작은 시시비비들까지. 결국은 나에게 손해인 생활들이었기에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또 캄보디아는 여전히 고양이, 개를 함께 사는 반려동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길에 다니는 아이들이 집을 서성이면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은 종종 있지만 한 공간에서, 특히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산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집을 구할 때 고양이와 살아도 괜찮겠냐고 하면 집주인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그게 무슨 대수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종종 문제가 생겼다. 프놈펜에서 지낼 때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면 집주인 댁에서 일하는 분에게 소량의 돈을 지급하고, 봉이 밥을 챙겨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하루는 봉이가 그 친구를 물었던 모양이다. 출장에서 돌아올 수 없었던 나는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말이 안 되는 치료금액과 고양이를 내다 버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한 차례 일을 겪은 후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에게 맡기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게다가 집 계약을 끝내고 다른 곳으로 옮길 때면 내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봉이가 집안 물건을 망가뜨려 놓는 일이 종종 있어 최선을 다해 배상해주었지만, 그 후에 돌아온 것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들뿐이었다.

 

▲ 반려동물이 생기자 살 곳을 찾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봉이와 함께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이 지쳐갈 즈음,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캄보디아 행을 고민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단해지지 않은 채로 다시 캄보디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쉼을 위해 제주 한달살이를 택했다. 당연히 봉이와 함께. 제주에 오기 위해서 캄보디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반려묘와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 중요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려묘와 오래 지낼 만한 곳은 없었고, 그때 가끔 소식을 물으며 지내던 분이 떠올랐다. 제주에 한달살이를 할 계획과 함께 혹시 반려묘도 같이 지낼 수 있느냐 물으니 아주 반겨주셨다.

 

그것이 연이 되어 지금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거인은 길고양이들을 구조하고,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런 모습을 게스트들에게 보여주며 자연스레 고양이를 책임질만한 사람들에게 입양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주에서 6개월 차의 삶을 살고 있다. 한달살이를 위해 왔지만, 제주 책방여행을 하다 생각지도 않게 제주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는 곳곳이 바다, 산인지라 매일같이 변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또 채식 모임, 글쓰기 모임, 해녀 학교 등을 다니며 내 방식대로 제주를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특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채식을 할 용기를 얻었고, 그동안 미진했던 글쓰기도 한껏 탄력을 받아 속도를 내는 중이다.

 

고양이 집사로서의 삶도 여전히 행복하다. 지금은 동거인의 고양이인 봉봉이와 나의 반려묘 봉이가 함께 산다. 봉이는 묘생 처음으로 다른 친구와 함께 사는 셈이다. 꽤 많이 투덕거리지만, 꽤 잘 지낸다. 인간의 착각이겠지만 봉봉이가 없는 날이면 슬퍼 보이기까지 하다.

 

▲ 지금 제주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반려묘 봉이와 봉봉이  ©황주희


물론 제주의 삶도 쉽지만은 않다. 여자 혼자, 혹은 여자들끼리 산다는 이유로 집주인의 차별을 받는다. 부부가 살거나 남자가 사는 집은 그런 경험이 현저히 적다는데, 이주 온 여자들이라면 집주인의 갑질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란다. 얼마 전 나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오며 이미 한차례 경험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함께 사는 동거인은 고소를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공동체는 불가능할까?

 

내가 바라는 집은 누구와 함께이든 상관없이 그저 편안한 곳이면 좋겠다. 일상을 끝내고 나를 보듬어주는 곳. 가식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은 곳 말이다.

 

때때로 친구들, 제주에 이주 온 여성들과 종종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처럼 이곳 저곳 옮기며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상처 하나쯤을 안고 산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국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라 진짜 공동체로서의 삶이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고, 삶은 혼자임에도 조금은 힘들고 지칠 때 서로 위로가 되어주는 공동체. 다툼이 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꾸는 꿈이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 일일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여자,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환경이 안전하고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혜택들도 다분히 한계가 있다. 단순히 청년,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은 혼자 사는 여성,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반려동물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와 공간이 필요하다. 가령,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던가, 계약기간이 버젓이 남아있음에도 계약 중지를 종용한다던가 하는 것들을 막아줄 수 있는 법의 보호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허황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이 존중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길고양이들에 대해 하나의 생명체로, 이웃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의 평온함에 속아 제주 분들은 유기견, 유기묘에게 마냥 친절한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곳곳에서 불편함을 넘어서 지나친 비난이 오갈 때가 더 많다. 게다가 제주는 유기견, 유기묘 안락사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주 온 사람들, 여행객들이 반려동물을 두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제주에서 자연과 자유로움을 즐기는 만큼 부디 책임을 다해주면 좋겠다. 또 제주뿐 아니라 길고양이들과 캣맘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길고양이 역시 소중한 생명체다. 나는 그들이 길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로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아마도 봉이와 함께 계속해서 집을 이고, 메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살 예정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지금과 같은 한계에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다. 주변에서 고양이랑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키우는 게 뭐 하는 짓이냐 손가락질 받기도 하고, 이방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불이익을 겪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봉이의 세상이 되어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이며, 천천히 세상이 변화하는 데 작은 손을 보태며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편집자 주: 다양한 여성들의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기사입력 : 2020-06-1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밴드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자비 20/06/15 [16:16]
진심된 마음으로 날 돌아보면 내겐 이와 같은 사랑과 자비가 없습니다. 자라난 환경 탓일까요,  타고난 심성 때문일까요.
Idaho 20/06/15 [17:51]
고양이 키우면서 이사 다니는 거 정말 힘들어요 ㅠㅠ 같이 돌봐줄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터라 공감이 갑니다.
ㅇㅇ 20/06/16 [16:04]
집주인들은 실제로는 아이 없이 여자(들)만 사는 걸 좋아하면서도 또 만만하게 보구 갑질하는 거 참 씁쓸합니다.
프라푸치노 20/06/16 [17:14]
피가 안섞여도 마음 맞고 서로 의지가 된다면 가족이죠.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어서 빨리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강호언니 20/06/25 [18:50]
제주에 다시 갈 이유가 생긴 듯, 괜히 초대받은 기분도 드는. 가까운 날 조용히 찾아가겠습니다~~ 두 해 전쯤인가 제 동생(고양이) 강호랑 제주 한달살기를 했었는데 이래저래 많이 공감되고 어떤 면에서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네요.
희수 20/06/25 [19:03]
외국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고 이사 다니고 하는 그 마음에 감탄해요. 아이를 데려올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또 감내할 게 많은 결정이잖아요. 봉이 너무 귀여워요ㅠㅠ
주희 20/06/28 [20:11]
답글을 남기고픈데 그럴수가 없어 남깁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음 다해 댓글로 공감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제주에 머물지 모르겠지만, 봉이와 평화로운 생활하고 흔적 남기지 않고, 또 열심히 유랑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ildar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