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여성, 에디가 사는 동네

<주거의 재구성>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의 요건

에디 2020-07-02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집’의 의미를 묻는 글의 제안을 받고서 나는 ‘집’에서 나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내게 있어서 집은 한 마디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고, 개인적인 물건들, 필요한 물품들을 마음 편하게 둘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집이 집이라니,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 에어비엔비처럼 푹 쉴 수 있는, 내가 직접 꾸민 방  ©에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결심한 건 25살 즈음이었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트랜지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지금 집은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속옷, 치마, 화장품 등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내가 원하는 젠더 표현을 하기 위해 꼭 필요했지만, 이것들은 또한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아들’이 갖고 있으면 안될 물건들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큰 결심을 했지만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모를 무언가를 살 때도 이걸 집에 놔둘 수 있는지 없는지, 부모님에게 안 들키기 위해 몰래 숨겨두어야 하고 들키지는 않았는지 늘 확인해야 했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집이었다. 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고, 옷장에 어떤 옷이 들어있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2013년 겨울쯤이었다. 아직 구하지도 못한 직장을 무기 삼아 서울에서 일을 다녀야 하니 부모님께 당장 얼마 정도만 빌려줄 수 있을지, 앞으로 돈을 벌어 보태겠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집을 구한 곳은 이태원이었다.

 

왜 이태원이어야 했냐고 물으면, 사실 다른 생각을 해볼 여지가 없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찾아갈 때도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모임은 항상 이태원에서 열렸다. 게이 친구들을 따라간 클럽도 항상 이태원에 있었다. 이태원은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 내가 안심할 수 있는 동네였다. 나의 정체성인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나를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곳.

 

▲ 외로움이 찾아올 때, 괜찮다 말해주는 내 동반자들. 반려동물 열이, 반려화분, 나의 활동사진.  ©에디


내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지역에서 편하게 이웃과 만날 수 있을까?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을까? 이태원에서는 가능했다.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동네 이태원에서 5백만 원을 가지고 집을 구했다. 보증금뿐만 아니라 이사 비용, 복비, 가구 등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한참 발품을 팔았다. 당시 나는 직장이 없었고, 사실 정체성 때문에 정규직이나 서비스직은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내 사정을 이해하는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단기 알바처럼 문턱이 낮은 일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생활은 유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월세는 반드시 낮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건물이 굉장히 낡은 집이었다. 반지하였는데 신발 신고 나가야 화장실이 있고, 한쪽 방은 벽에 물이 세서 온통 시커맸다. 집주인과 거래를 했다. 여길 내가 자비로 고쳐서 쓸 테니, 원래 400/40이 아니라 200/20으로 해달라고. 이렇게 매트릭스 하나 들고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집을 만드는 건 집을 둘러싼 동네

 

그렇게 살게 된 집의 아래층은 무속인이 살았고, 집 바로 옆에는 100년 된 교회가 있었다. 조금 걸어가면 이슬람 사원, 그 근처에는 또 100년 된 성당과 초등학교가 있었다. 피부색이 다양한 외국인, 외국어로 된 간판, 타투이스트들, 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 나와 같은 성소수자도 많고. 오히려 유모차를 끄는 신혼부부나 4인 가족은 이태원에서 찾기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왠지 마음의 안도를 얻었다.

 

트랜지션을 시작하고 독립도 했지만 많은 것들에 용기와 연습이 필요한데, 여기는 너무 특이하고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니까 나도 한번 해봐야지 했고, 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립스틱을 칠하고 대문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용기 내서 한 번 아이라인을 정말 살짝 그렸는데도 집 밖에 두 시간을 채 못 나가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괴물로 볼까 봐. 그런데 여기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수 있었다. 집에서 이태원역까지 한 십 분 거리였는데 거기를 묵묵히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망설임은 있었어도 전에 느꼈던 무서움과 두려움보다는 ‘가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태원은 그런 첫걸음들을 디뎌볼 수 있는 곳이었다.

 

▲ 주중과 주말이 확연히 다른 이태원 퀴어 언덕을 바라보며 심신안정을 취하곤 한다.  ©에디


집을 집으로 만드는 건 하나의 건물에서 끝이 아니다. 그 집을 둘러싼 동네가 집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다들 많이 아는 이야기부터 하자면 우선 이태원에는 퀴어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비단 술집만 아니라 퀴어들이 많이 모이는 카페. ‘저 왔어요!’하고 수다 떨 수 있는 밥집. 퀴어 전용 가게는 아닐지라도 많은 퀴어들이 가다 보니 사장님이 놀라지 않는 곳들. 그래도 여기서는 ‘성소수자 아웃!’ 같은 소리는 안 듣겠지 싶은 안심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사는 이웃들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이태원에 사는 동안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월세를 아끼려고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언니와 둘이서 같이 살았는데, 한 번은 언니랑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놀았다. 좀 시끄러웠는지 다음 날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윗집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아유 아가씨, 어저께 남자친구랑 재밌는 밤 보냈나 봐?” 여자밖에 없었는데. 언니랑 서로 네가 남자친구였다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웃 부부 사이에서 1층에는 여자 둘이 사는 거다, 아니다, 커플이 사는 거다, 라고 의견이 갈렸던 적도 있었다. 물어보길래 어떻게 이야기할까 하다가 보통은 둘이 살고요, 제 남자친구는 어쩌다 한 번씩 와요, 해서 넘어가기도 했다.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주는 편안함

 

몇 년이 지나 한번은 게이 룸메이트와 함께 우이동에서 산 적이 있다. 집을 구할 때 복덕방과 집주인들에게 ‘둘이 신혼부부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아니라고 하면 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이 들었고, 둘 다 서른이 넘은 나이인데 신혼부부도 아니면서 같이 사는 게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살게 된 날부터도 이웃에게 ‘새댁’, ‘남편은 회사 갔어요?’ 같은 질문을 많이 들었다.

 

이태원에서 살 때도 성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어떤 관계인지 추측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우이동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이 사람들이 봤을까? 아니, 본 적이 없을 거란 100%의 확신이 나를 압박했다. 집 문을 한 발짝 나서는 순간부터 목소리를 다듬게 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일부러 머리를 축 내리고, 신체가 드러내지 않게 큰 옷을 입고, 걸음거리도 신경 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혹시나 윗집, 아랫집, 옆집 사람이 나를 보고 저 사람 뭐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이태원과 달리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정말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 스트레스를 풀 땐 동네를 걷는다. 이태원이라 한강이 가깝다.  ©에디

 

이태원에서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상들에서 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덜했다.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주인이 내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여기에는 그런 분들 많이 산다”며 알아서 집주인에게 잘 말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태원이 아니었으면 나도 쉽게 말할 수 없었을 텐데. 사실 살면서 ‘본인 증명’을 요구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집을 계약할 때도, 군대와 관련해서 서류를 처리할 때도, 하물며 핸드폰을 개통하거나 인터넷을 설치할 때도. 정신과 진단서, 의료기록서, 호르몬진단서 등 나는 언제나 나를 증명할 서류들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순간들에는 늘 묵묵히 견디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게 된다.

 

여기 OOO씨 안 계시냐고, 본인이 아니면 사인을 받을 수 없다고 굉장히 난감해한 분도 있었지만, “아유 네, 여기(이태원에는) 많아요.”라며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대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 트랜스젠더 친구들도 은행 업무는 꼭 이태원까지 와서 본다고 했다. 삶에 필요한 서비스들을 받을 때조차도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 증명이라는 게 참, 증명하면 되는 건데 그것만으로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서는 증명 자체가 도전이 된다.

 

나 자신을 지키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집에 혼자 오는 길에 어떤 사람이 집 문을 계속 두드리는 위협적인 상황이 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서 진술서를 쓰는데 성별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란이 있었다.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경찰관이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 동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을 텐데…. 경찰관도 내가 원하는 성별에 맞춰 대해주어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마음이 100% 편하지는 않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어쩔 거야. 나 같은 애들이 저기 옆에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나를 조금 더 안심시킨다. 다른 동네에서는 좀 더 좋은 집에 저렴한 월세를 구할 수 있겠지 싶지만 그런 데서는 뭔가 흥선대원군 시절에 외국인이 배 타고 떨어진 기분이라고 해야 될까. 다시 한번 나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 설명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겠지, 아니 어쩌면 설명할 기회 자체가 박탈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정말 이태원 아니면 못 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

 

집이 낡고 언덕이 불편한 점도 있고, 잠깐 다른 동네에서 살았던 적도 있지만, 이런 이유들이 다시 이 동네를 오게끔 만든다. 내가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안 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저런 애들이 여기에 있어’라는 느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가서 들어올 수 있는’ 집이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는, 이상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공존해있는 동네. 스물다섯 이후의 내 삶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 대단한?!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들을 위해 나름 까페 같이 꾸며 놓은 거실  ©에디


내가 살고 싶은 집?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상상해봤다.

 

우선 방은 세 개. 한 방에는 침대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서 근심, 걱정 없이 잠을 푹 잘 수 있다. 두 번째 방에는 내가 원하는 옷과 액세서리를 포함한 물품들, 읽고 싶은 책들을 놓을 거다. 나머지 하나는 언제든지 친구들이 놀러와서 머물 수 있는 방이다. 동네가 모두 보이는 넓은 창문, 전용 옥상, 키우는 반려견 열이 집도 있었으면 좋겠다. 큰 거실에는 큰 테이블이 있어서 주말에는 같이 친구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눌 것이다. 지금껏 나는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방 하나에 모든 걸 다 집어넣고 사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 내가 원하는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모습을 꿈꿀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내 정체성에 대한 낙인들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공감하고 이해해주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상대방을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파트너에 대한 확신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꿈으로는 이웃사촌이 있었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인사하고, 맛있는 반찬 남으면 나눠주고, 혹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울 수 있는 사람들. 예전에 살았던 경기도 남양주시와 비교하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굳이 퀴어가 아니더라도 동네 사람으로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체성은 그 사람의 일부분일 뿐 같은 동네라는 이유만으로 소속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곳. 정체성으로 인해 누구 하나 어떤 서비스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건 당연한 전제다.

 

꿈을 하나 더하자면 집 앞에 꽃을 심을 수 있는 정원이 있어서, 거기에 책상 하나 깔고 앉아 이웃사촌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수다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퀴어, 장애인, 이주민,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공존하며 이웃사촌이 되는 동네가 많아지길 바란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글에서 쭉 내가 이태원에서 살아 좋은 점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태원 같은 곳이 아니면 퀴어로서 안전하게 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동네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니, 모든 동네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퀴어, 장애인, 이주민,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그래서 이렇게 색색깔의 사람들이 우리들 삶에 공존하고 있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동네 말이다.

기사입력 : 2020-07-0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밴드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곰돌이 20/07/02 [11:31]
에디님 집 너무 예뻐요! 퀴서비스 늘 잘 보고 있어요 시즌 2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고 방 세 개 있는 예쁜 집과 좋은 이웃들도 곧 만날 수 있길 바래요 :) 
unmade 20/07/02 [12:14]
이태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가 문화다양성 때문이었구나!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글 너무 좋네요. 
ㅇㅇ 20/07/02 [13:12]
나 좀 울었다 ㅠㅠ 나도 에디님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레몬 20/07/02 [17:27]
와, 방구경도 시켜주시고~ 글이 참으로 유익하다 ㅎㅎ
20/07/03 [18:43]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획일화된 어떤 분위기 때문에 질릴 때가 있어요. 건물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습도 그랬구나 싶네요. 다른 공간으로,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liza 20/07/04 [00:24]
사랑해요. 에디 씨 이웃으로 살고 싶어라.
하히 20/07/04 [10:02]
에디님 퀴서비스 잘 보고 있어요 :) 집 예쁘게 꾸미셨네요. 
홀홀 20/07/09 [09:46]
이태원이 누군가에게 비빌 기지이자 기댈 언덕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글이네요.
명이 20/07/09 [14:03]
정말 잘 읽었습니다.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것이 아떤 경험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아요.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차별없이 편견없이 터부없이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옹이 20/07/12 [13:44]
이제서야 읽었네요,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집, 나의 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에디님의 삶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탄회 20/08/03 [18:42]
좋은 글입니다 꼭 소중한 꿈을 이루셨으면 합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ildar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