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세상이 바뀔거야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① 몸에 ‘관한’ 게 아니라 몸을 ‘통한’ 이야기

조한진희(반다) 2020-07-05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준비하며, 배우들이 즉흥극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다리아


아픈 몸은 건강 중심 세계의 난민과 같은 존재다. 여전히 질병은 삶의 바깥으로 쫓겨나 있기 때문이다. 의료권력이라는 절대왕정 아래서, 질병이 ‘완치’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이분법에 아직 갇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병을 삶의 일부로 다시 들여올 수 있을까. 의료권력의 언어만으로 질병을 재단하지 않고, 온전하게 아플 수 있는 ‘질병권’(疾病權)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권력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려면, 질병을 둘러싼 이야기를 복원하는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실패, 절망, 고통의 말로만 납작하게 포장해 놓은 그 이면을 더 많이 들추는 것이다.

 

의료사회학자 아서 플랭크가 말했듯, 아픈 몸들이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wounded storyteller)이며 우리 이야기가 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발화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좀 더 잘 발화하는 몸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아픈 몸들과 함께.

 

질병 서사, 글쓰기에서 몸 쓰기로

 

내가 처음 질병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질병 세계에 혼자 떨어진 듯한 혼돈 때문이었다. 그 지독했던 혼돈을 조금 지나자, 나 말고 곳곳에 흩어져 있을 ‘동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2015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반다의 질병관통기>(http://ildaro.com/7243) 연재를 시작했다. 나의 질병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 질병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다의 시민교실에서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긴 이름의 강의도 열었다. 2017년까지 계속된 이 강의는 한 학기가 4회기였는데, 강의가 끝난 이후에도 곳곳에서 모인 아픈 몸들은 끝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 가서 아픈 몸에 대해 마음 놓고 말을 하겠냐며 후속 모임을 진행하자고 했다.

 

후속 모임에서, 오랫동안 동료들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고민해왔던 ‘질병 서사’를 글로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온 동료들의 글은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꼭지명으로 올해 초 일다에 연재되었다.(http://ildaro.com/8625) 짧지 않은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 글을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만들어지는 연극(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으로 썼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을 또 다른 아픈 ‘동료’들을 찾고 싶었다.

 

▲ 2015년 ‘질병과 함께 춤을’ 참가자 모집 웹자보와 2020년 낭독극 참가자 모집 웹자보


이번에는 강의나 글쓰기가 아니라 연극(낭독극) 형식으로 준비하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다. 가장 핵심은 앞서 말했듯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질병 경험을 좀 더 잘 ‘발화하는 몸’으로 만들어 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동료들과 함께 글을 오래 쓰다 보니, 우리의 감정과 경험이 너무 빠르게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자신의 감정에 깊게 접촉하고, 좌절하고 있음을 드러내도 될 것 같은데, 글을 쓸수록 생생함보다 가지런함이 늘어갔다. 아마 더 깊은 상처나 두려움에 접촉하는 게 두려워서 적당 선에서 협상을 하게 되는 듯 보였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준 방어 기제일 지도 모른다.

 

모임에서 전체적으로 호흡을 고르기 위해 단기적으로 연극 기법을 활용해 각자의 질병 서사를 다시 다뤘다. 글쓰기를 할 때와 달리, 날것의 감정이 비죽하게 올라오기도 하고, 질병에 대한 어떤 책에서도 다루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서사를 설명하는 순간이 잠시나마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글쓰기가 고요하게 감정의 역동을 만나게 한다면, 연극은 보다 적극적으로 몸 자체를 흔들었다.

 

연기 대신 자기 자신이 되는 연습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꾸려지는 연극(낭독극) 공개모집을 통해, 질병 이야기가 마음에 충분히 고여있는 여섯 명의 몸이 아픈 동료들을 초대했다.

 

연극 워크숍을 이내 시작했다. 진행자(연출자)와 참여자(시민배우)들이 만나고 워크숍을 시작한 지 3회기가 지나도록 서로에 대해 말한 게 너무 많았고, 또 너무 없었다. 진행자는 서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지에 대한 일체의 소개 없이, 그 순간의 감정이나 미래의 모습 같은 것을 계속 표현하게 했다. 뒹굴고 노래하고 춤추고 말하고 웃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어떤 순간’을 표현하던 날.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허공을 향해 힘껏 주먹질을 한 참여자가 있었다. 그가 표현하는 게 무엇일지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상대에게 강한 펀치를 날리고 KO시킨 위너가 아닐까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강제 입원당한 정신병동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두드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묵직한 고통이 모든 참여자의 몸을 관통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함께 앓았다.

 

또 다른 참여자의 순서가 되었을 때는 무언가를 꾹꾹 참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화가 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호하다고 느꼈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의 질병 회복을 바랐던 것은 시댁의 ‘건강한 자궁’이 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동시에 한숨을 쉬며 허탈감을 씹었다.

 

▲ ‘질병과 함께 춤을’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사진: 혜영


연극 워크숍에서 계속해서 주어지는 표현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이나 욕구들이 자극됐다. 즉흥극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흔들었고, 흔들리는 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 소화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툭툭 떨어졌다. 즉흥극이나 다양한 역할극 속에서 그 묵은 감정들이 털려 나가거나 새롭게 이름 붙여지면서, 감정은 각자의 자리를 향해 조금씩 떠나거나 여전히 머물렀다.

 

그렇게 3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동료들은 각자의 질병과 함께 살아왔던 고단함과 기쁨에 대해 느리게 말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밀도 높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공연은 연극이라고 하지만 대본을 외워서 연기하는 게 아니다. 연출자는 배우들 자신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편안히 흘러나오도록, 몸에 붙어 있는 걸림돌을 조금씩 덜어냈다. 공연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까지, 개인 대본과 전체 스토리를 일정에 맞추느라 무리하게 완성시키지 않았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면에서 무르익고 세상에 꺼낼 준비가 될 때까지, 조바심 없이 기다렸다. 배우들도 연출자도 무대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무대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자기 자신일 수 있도록, 발을 단단히 바닥에 붙이려고 한다. 무대 위든 세상 어디든, 그저 온전히 자신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회복은 ‘고립되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2015년 칼럼 <반다의 질병관통기>부터 2020년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까지 서서히 계속해서 확장되었던 시간들. 이 과정에서 최소한 두 가지를 중요하게 염두에 뒀다.

 

첫 번째는 아픈 몸들의 연결이다.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작업은 기본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다양한 아픈 몸들을 모으고 천천히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지금과 같은 건강중심 세계에서 아픈 몸이 회복된다는 것은 생의학적으로 질병을 제거하는 것이라기보다, 고립되지 않는다는 것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 세계 시민권을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회복된다는 것은 다른 아픈 몸들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세계의 시민권을 욕망하며 좌절하기 보다는 건강을 재단 당하지 않으며, 질병 세계에서 동료 시민들과 어울려 살길 바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픈 몸들의 마이크를 확장하는 것이다. 즉 발화권력이 있는 한 명이 마이크를 쥐고 다수의 아픈 몸들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보다는, 더 많은 마이크를 만들어내고, 그 마이크를 나누며 아픈 몸들의 다양한 릴레이 행렬을 만들고자 했다. 강의에 참여한 아픈 몸들이 후속 모임을 통해 1년 넘게 나눈 자신의 질병경험을 글로 써서 언론에 연재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다시 공개모집을 통해 모은 아픈 몸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질병경험을 발화하도록 연극 공연를 준비하는 식이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물결이 점점 더 많은 동심원을 만들고, 그 물결들이 점차 파도가 되어가는 시간이길 바랬다.

 

▲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웹자보


우리는 질병 경험을 글과 연극 그리고 이후 또 다른 형식을 통해 발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질병 서사를 확장하고, 우리 사회에 너무나 남루한 수준인 질병을 둘러싼 정치와 인권 현실에 개입하고자 한다. 아울러 소수자 개인의 치유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서 이 모순적 구조에 먼지만큼의 균열도 내지 못하는 방식이 아니길 바라고, 구조의 변혁 속에서 개인들이 도구화되거나 마모되는 방식도 아니길 바란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어쨌든 2020년 여름 현재, 몸이 아픈 동료들은 의료인과 정책전문가들에 의해 호명, 관리, 대리되는 식민지화 된 몸에서 스스로 발화하는 몸이 되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아픈 몸들의 질병서사로 만들어진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열등감과 패배감을 요구받는 몸에서, 수치심 없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저항하는 몸으로 변이하는 중이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예매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기사입력 :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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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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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20/07/05 [23:30]
아웅 나 이 연극 볼 생각하면 벌써부터 두근두근거려!! 저도 아픈몸들 중 하나지만 배우는 못하고 관객으로 참여하겠습니다~
ghana 20/07/06 [09:50]
아픈몸들이 모여 공연을 준비했다니 너무 반갑네요. 예전에 질병관통기 읽으면서 힘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쉽지는 않네요. 질병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건강중심 사회에서 질병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글을 읽으며 전보다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토깽이 20/07/06 [20:00]
응원합니다!!
아픈몸k 20/07/07 [13:11]
와 멋진 분들!! 새로운 길을 내주고 계신 것 정말 고마워요.
홀홀 20/07/08 [11:14]
"우리에게 회복은 ‘고립되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는 중간제목이 인상적이고 와닿습니다.
강수정(연두) 20/07/15 [16:48]
축하합니다. 그리고 늘 응원합니다. 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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