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렀던 슬픔이 처음 몸 바깥으로 흘러나올 때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③ 더는 내 감정을 짓누르지 않겠다

안희제 2020-07-15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질병을 안고 살다

 

2014년 7월, 수험생활 중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크론병을 가진 연예인들이 있어서 그 이름 자체는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크론병이 실제로 어떤 병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크론병은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로, 주로 소화기에서 염증을 발생시킨다. 자가면역질환이 대체로 그렇듯 크론병도 원인 불명의 난치 질환이다. 왜 걸렸는지, 아픈 게 정말 내 책임인지, 어떻게 나을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나처럼 운 좋게 병을 초기에 발견해서 관해기(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에 빠르게 진입한 20대 ‘청년’이라면, 겉보기에 건강한 모습 때문에 아픈 사람으로 인식조차 안 되곤 한다. 아플 때 내가 꾹 참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질병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어느 정도 노력하면 질병을 감출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일그러지려는 얼굴 근육과 씨름하면서 열심히 통증을 참았다.

 

▲ 책들이 놓인 나무 책상 위에 알약이 늘어져 있다. ‘아자비오’라고 적힌 흰색 알약들, 이름 모를 약통 둘과 그 앞에 떨어진 흰색, 하늘색, 노란색의 알약들. 노란색 알약이 담긴 포장지와 약통에는 약이 거의 남지 않았다.   ©안희제

 

나부터 나의 질병을 부정하며 지내다 보니, 주변에서는 나의 질병을 외면했다. 더이상 참기 힘들어졌을 때에도,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질병을 계속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러다가 질병이 단지 나의 어려움이 아닌, 내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동녘, 2019)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나는 <낭독극: 아파도미안하지않습니다>라는 연극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읽었다. 내가 ‘질병 세계의 언어’와 ‘질병권’을 고민하게 해 준 책이었기에, 나는 바로 신청서와 함께 에세이를 제출했다. 그리고 낭독극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춤을 추다,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사실 내가 이 낭독극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것이 ‘연극’이라는 말 대신 ‘낭독극’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가 크다. 정말 무대에 나가서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연습을 이끌어 주는 연출자 ‘빠빠’가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연극임을 분명히 밝혀주신 덕분에, 이 기회에 몸을 다루는 법을 배워 보자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했다.

 

아파서 빠진 첫째 주 이후, 둘째 주에는 아직 어색함이 많아서 연습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고, 셋째 주에는 감기 기운과 서울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인해 빠졌다. 아쉽기도 하고, 내가 사람들과 충분히 편해지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넷째 주에 그런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종일 우리는 춤을 췄다. 정교한 형식을 갖춘 무용이 아니라, 틀어져 있는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그저 몸을 맡겼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초등학교 학예회 이후로 연극이나 춤 같은 건 처음이었고, 평소에도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일상의 거의 전부이니 당연한 일이다. 처음에는 그냥 머뭇거리며 걷는 척만 했다. 그 이상으로 움직이는 것이 너무 어색했는데, 나의 몸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되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곡, 두 곡, 세 곡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사람들도 점점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쪼그리기도 했다. 나는 주로 어딘가에 기대거나 앉아서 몸을 움직였는데, 그러다가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진 순간이 있었다. 함께 연습하던 한 분이 연습공간을 가로질러 빠르게 걷다가 점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편안함이나 안도감을 느꼈다. 그 사람의 점프가 너무나도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몸의 아픈 부분을 인식했다. 연출자 선생님은 지금 가장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몸의 부분을 짚어 보라고 했다. 어깨, 허리, 목 뒤… 내 경우는 목 뒤와 어깨 사이였는데, 목 뒤와 조금 더 가까웠다. 선생님은 바로 그 아픈 부분이 몸을 이끌게 하라고, 그 부분이 가고 싶은 곳으로 온몸이 가게 하라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습 초반에 연출자 선생님은 춤을 추지 않고 몸의 뻐근한 부분을 풀어줘도 된다고 했는데, 몸을 풀어주는 것과 아픈 부분이 내 몸을 이끌게 하는 것은 내 몸의 힘들 안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나의 몸은 특정한 방식으로 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연습실에서.  © 다른몸들

 

몸의 아픈 부분을 풀어주는 일은 몸의 부분들 사이의 긴장을 안 아픈 부분의 입장에서 해소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픈 부분에 온몸을 맡기는 일은 그 긴장을 아픈 부분의 입장에서 해소하는 일이었다. 나는 왼쪽 어깨와 목 뒤 사이의 어느 근육에 이끌려 가듯, 때로 그 근육을 풀어주듯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아마 그것은 모두가 각자의 몸에 집중하고 있기에 타인의 시선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소리가 터져나오다

 

연출자 선생님은 음악을 끄고, 이번에는 타인의 소리에 맞추어 움직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를 있는 대로 내면, 나머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움직인다. 연출자 선생님이 가장 먼저 의자에 앉았고, 나는 눈을 감고 청각만을 열려고 노력했다. 눈을 감는 일은 내가 오로지 청각과 촉각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연출자 선생님이 내는 소리는 아픈 소리 같기도 했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자주 음색이 바뀌고 음의 높이가 달라져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처음에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는 내가 우는 소리라고 느낀 그 소리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팔을 굽힌 채 바닥에 대고, 땅을 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의 부고를 전하던 몇 년 전 나의 몸이 갑자기 내 안에서 튀어나왔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도록 애써 참았다.

 

이번에는 방식을 바꾸었다. 모두 각자 편한 위치에 편한 자세로, 모두가 동시에 각자 나오는 대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소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자유로워지겠다’라는 생각만큼, ‘신경 쓰지 않겠다’라는 다짐만큼 부자유한 것도 없다고 연출자 선생님은 말했다. 너무나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러나 첫 소리가 터져 나온 뒤, 나는 내 몸을 온전히 내 감정에 내어주었다.

 

답답한 가슴을 풀려고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속이 끓는 소리를 냈다. 매 순간 끊기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점점 화와 체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붙잡기 어려운 소리가 몸에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소리에 감정을 실으려 노력했는데, 점점 감정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울고 있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함께 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울지 않았지만, 마치 모두가 나와 함께 울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 연습실 바닥에 누운 나. 배가 아픈 듯 양손을 배 위에 올리고, 입을 꾹 다문 채로 인상을 쓰고 있다. 의자에 앉아 이를 바라보는 파란 옷의 쟤와 회색 옷의 목우.   ©다른몸들


직면할 수 없었던 감정, 친구의 입관

 

나에게 함께 우는 일은 좋은 기억이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우는 상황을 떠올릴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고 헤어나올 수 없는 이미지는 친구의 입관이다.

 

재작년, 나는 14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은 부고를 듣는 순간이 아닌 부고를 전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무릎을 꿇고 울었다. 마치 몇 년 전 빈 건물에서 모두가 내 곁을 조용히 피하고 경비노동자분조차 가까이 오지 못할 만큼 처절하게 통곡하던 그때처럼.

 

장례식장에 갔다. 입관. 얼굴이 있었다. 얼굴을 뺀 모든 몸에는 하얀 천이 감겨 있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울고 있었다. 분노, 슬픔, 억울함, 답답함과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부정과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직면한 현실이 뒤섞인 비명이 모두의 목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게 함께 우는 일에 관한 나의 가장 가까운 기억이다.

 

나에게 함께 우는 일은 죽음 앞의 마지막 절망이었으며, 나한테 무엇이든 베풀기만 하고 받은 건 하나도 없이 떠난 친구에 대한 이기적인 야속함이었으며, 힘 빠지게 그 순진한 얼굴에서 나오는 실없는 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다는 황망함이었다.

 

49재가 끝나고, 나는 혼자 글을 쓰고 절과 숲과 강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면서 친구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어떤 기억도 극복하지 못했고, 직면할 수 없었고, 가슴 속 깊은 곳에 억눌러 외면했다.

 

그렇게 거부하고 외면하던 내 안의 감정이 통제를 벗어나서 몸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속에서 나오는 아무 소리나 내라고 했을 때, 그 소리에 따라 내 몸이 움직이며 응어리를 쏟아내기 위한 가장 적절한 힘들을 배치할 때, 이 모든 기억은 내가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말들과 함께 다시 쏟아져 나왔다.

 

보고 싶다, 나쁜 새끼야, 왜 그렇게 갔어? 나는 어쩌라고. 잘못도 없잖아, 한 번이라도 연락하지. 미안해, 미안해, 밝은 네가 힘들 줄 몰랐어. 왜 그렇게 나한테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았어? 왜 그렇게 갔어, 왜! 미안해, 나쁜 놈아, 돌아와, 아직 안 늦었으니까 돌아와, 나쁜 새끼야…

 

목과 가슴 사이 어딘가가 둥글게 부풀어 터지는 듯한 몸에서 나오는 울음은 그 모든 말이었다. 친구의 뼛가루가 묻힌 곳에 한 번도 다시 찾아가지 않고, 일상을 되찾겠다고 노력했으면서 일상도 제대로 되찾지 못한,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한 나의 절망과 후회였다.

 

▲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연습실에서 눈가를 찌푸린 채 마룻바닥에 누운 내 모습.  ©다른몸들

 

‘자유로워지겠다’는 말은 감정을 더 억누를 뿐이다

 

몇 년을 외면하며 살았던 이 모든 감정이 갑자기 터져 나와서 내 몸을 제멋대로 조작할 때, 내 몸이 감정에 휘말려 나의 통제 바깥으로 나갈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다. 억누른 감정을 직시하겠다고 결심할 때가 아니라, 억눌린 감정이 내 몸을 붙들고 흔들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다. 몸이 단지 감정을 싣는 도구가 될 때, 내가 나의 몸을 놓을 때, 감정이 내 몸을 장악하고 자신을 세상에 내던질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웠다. 사람들과 함께, 그러나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으며 울 때, 비로소 함께 우는 일은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니게 되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외면들을 생각한다. 감정을 억누르며 자유로워지겠다던 나의 몸을 생각한다. 가장 비참했던 순간에 온몸에 우글거리던 감각을 생각한다. 죽을 듯이 울고 나서, 어쩌면 내가 정말로 다시는 이렇게 비참하게 울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믿게 해 준 최초의 후련함을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연극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서로 묻고 들으며 세상에 충분히 말하지 못한 감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글자로 적고 외우는 대신, 서로의 삶으로 들어갔다. 직접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나와 다른 이의 기억을 내 몸으로 표현했다. 기억에 겹겹이 쌓여 있던 감정들이 하나씩 풀려 나왔다.

 

몸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생각한다. 이제야 용기를 내어 직시할 수 있게 되었을지 모를, 더는 목구멍과 혀뿌리로 짓누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생각한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글쓴이: 안희제. 크론병 진단 후 6년, 극복을 포기하고 비로소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중이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지만,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일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나도 아프다고 외치지만, 아프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과 모이면 건강한 사람 중 가장 아프고, 아픈 사람 중엔 가장 건강한 편이다.

기사입력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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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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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드 20/07/15 [12:09]
눈물나는 글이네요 
mjw 20/07/15 [12:50]
공연 온라인으로 보았습니다. 잊지 못할 올해의 공연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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