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그가 받은 편견을 재현하며 함께 겪기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⑤ 배우들의 팀워크

홍수영 2020-07-30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나드, 다리아, 목우, 쟤, 희제 그리고 수영. 첫 워크숍에서 우리가 나눈 것은 그 이름들뿐이었다.(희제는 아파서 오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했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진들 중에서 현재 자신의 상태와 앞으로 변화되고 싶은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각각 두 장씩 골랐다. 그 사진들을 고른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고, 설명을 토대로 즉흥적인 극을 만들었다.

 

까만 하늘 위 색색의 폭죽이 터지는 사진을 고른 다리아는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마음껏 꿈꾸는 삶으로 변화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리아의 열망을 내 손에 쥐고 일어나 다리아가 되어 말했다.

 

“나, 더이상 어떤 시선도 의식하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이 하는 말을 쫓아갈래. 이제 자유로워질 거야.”

 

즉흥연주를 하듯, 소통하며 조금씩 움직이는 몸

 

처음부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러다 누군가 불완전한 몸짓으로 극을 시작했고, 대답을 하듯 다른 사람이 불쑥 일어나 새로운 움직임과 언어로 나아갔다.

 

아직도 선명히 떠오른다. 머뭇거리다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온 목우가 주먹 쥔 손을 치켜올렸다. 내가 ‘지금의 상태’를 대변하기 위해 고른 사진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사진 속에는 마구 자라난 억센 덩굴에 덮인 창문이 담겨 있었다. 안에서는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창이었다.

 

▲ 첫 워크숍에서 고른 카드다. 닫힌 창, 그 안에 소리 없이 쌓인 시간.   ©사진: 솔라리움 카드

 

“답답해.”

그녀의 첫 마디에 가슴이 자근자근 밟힌 것처럼 아파왔다.

 

보이지 않는 창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두드리며 허공을 내리치는 손짓에 속도가 붙었다.

“나가고 싶어. 열어줘! 거기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녀가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하자 곧 나드가 합류했다. 목우의 조용하고 구슬픈 목소리가 나드의 쩌렁쩌렁한 고함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소리들이 융화됐다. 그에 대비되어 두 팔과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신의 몸을 벽으로 만들어 끈질기게 두 사람을 가로막는 쟤. 우리는 즉흥적인 재즈 연주를 하듯 악사가 되었다. 

 

아무런 논의나 계획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고, 창조적으로 기능하며, 서로의 몸짓들을 뒷받침하고 엮어나갔다. 다른 사람이 어떤 움직임으로 나의 경험을 묘사하는지, 지금 내 마음이 그런 묘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충실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완결되는 기묘한 안정감과 함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타인의 체온처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소통을 위해 움직이는 몸이 우리의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 미끄러지는 대화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어느 날부턴가 수업이 시작되고 대략 20분 정도가 흐르면 고개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등이 구부정해졌고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무게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정자세로 똑바르게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목이 흔들렸다. 거기에 갑작스러운 가정의 불화, 학우들의 집단 따돌림. 마음과 몸은 함께 휘청거렸다.

 

말을 하려고 하면 안면이 찌그러졌으며 연하장애로 인해 음식물을 잘 삼킬 수 없어 죽만 먹었다. 약을 복용하면서부터는 낮부터 저녁까지 어지럼증과 구토감에 시달렸다. 누워 있어도 통증으로 잠들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암기능력이 떨어져 아무리 열심히 무언가를 외워도 다음 날이 되면 희미해졌다. 학업을 이어갈 도리가 없었다.

 

가장 두려운 점은 바로 그것, 기억력이 쇠미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떠올릴 수 없는 장소와 얼굴이 눈앞을 부유스름히 스쳐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메모장에 하루의 일과를 눌러 적는 것뿐이었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최종 리허설. 몸에 고여 있던 말들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 김덕중


소통을 잃은 삶은 열리지 않는 창과 같았다. 밖은 환해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으나 나의 시간은 오래도록 문 안에 갇혀있었다. 연관성 없는 생각의 편린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나의 모든 말을 의심했다.

“네가 그걸 아는 게 확실해? 진짜야?”

 

나는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뒤돌아볼 수 없게. 갈 길을 잃고 투둑 끊어진 문장들. 망각은 시가 되리라, 지워짐 뒤에 시가 오리라 위안하며 나는 스스로를 안아줬던가. 언제 그었는지도 모를 낯선 밑줄들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책과, 고요한 색종이처럼 접힌 혼잣말. 과거는 나의 경험이 아닌 내가 들었던 다른 누군가의 경험으로 점철된 시간 같았다.

 

가끔은 궁금하다. 대체 언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인지. 기억을 잃는 그 찰나의 순간을 돌아보고 싶다. 어제 빵집에서 나올 때였나. 아니면 판데목(통영 해저터널) 바람을 맞을 때였나. 다시 학교에 갈 자신이 없다고 주저앉던 내 등을 벗의 그림자가 덮어줬던 그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때를 안다면, 아니 짐작이라도 해서 그때 거기에 두고 온 것 같다고 말해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어뜨린 것 같다거나 그래서 다시 가봐야 없을 자리에 돌아가 ‘어, 여기도 없네?’ 하며 한숨 쉴 수 있다면. 김광석의 음악을 듣다가 네가 건넨 위로의 말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거기 선유도 공원 벤치 어딘가에 놓고 왔다고. 밥을 짓다가 네가 매일 밤 읽어주던 시를 잃었다고.

 

연극 연습을 하는 동안 창밖은 늦은 봄꽃이 피고 졌다. 열리지 않는 여섯 개의 창들. 우리는 바깥 세상에 대해 말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둔 가장 내밀한 경계에 대해 말했다. 창을 휘감고 있는 무성한 덩굴의 정체에 대해서도. 같은 듯 다른 그들을 만나 거의 15년 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은 연남동의 좁은 몇 칸짜리 방이 아니라 불 꺼진 그들의 창가인 것만 같았다. 창가에 서서 그 아픈 몸들 근처를 오래 서성이고, 지켜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희제와 나는 닮은 아픔들이 많았다. 무대 조명 아래 호흡을 맞추고 있는 모습.   ©사진: 김덕중

 

▲ 맞은편에 앉아 서로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마주 보고 있는 목우와 나드. 상처를 머금은 두 얼굴.   ©다른몸들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되어보기’

 

세 번의 워크숍이 지나도록 우리는 병명이나 질병 경험에 대한 세부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극의 연출을 맡은 빠빠의 세심한 배려였다. 빠빠는 우리에게서 늘 계산되지 않은 무언가를 끌어냈다. 설정된 틀 안에서가 아닌, 우리의 몸을 관통했던 가장 진실한 경험으로부터 우리의 표현이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얼마나 편안했던가. 우리는 그저 우리가 느낀 감정 그 자체에 몰입했고, 우리를 가로막았던 장벽과 편견의 얼굴들이 되어보았다. 상처만 남긴 채 떠나간 사람들이 던진 몰이해의 말들에 다시 정면으로 부딪쳤다. 우리 각각의 절망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당사자가 내뱉지 못했던 멍든 언어들을 추출해내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연습은 ‘되어보기’의 연속이었다. 인간은 끝내 자기 자신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 뿐이지만, 발길을 멈추고 나무 사이사이를 가르는 미풍을 들이마시듯 맞은편에 놓인 이의 상함과 고통을 호흡해보는 시간은 귀중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받은 편견을 재현하며 함께 겪는 것만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진정으로 함께 울 수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의 친구였다. 질병 서사를 나누는 일에 모든 감각을 동원했던 멤버들. 이들의 용기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서 나는 연습을 하다가도 자주 눈물이 맺혔다.

 

돌아보면 서툴고 부족하기만 했다. 잘 해내야지 하는 포부를 던지며 연습에 열심히 임하다가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길을 잃었다. 과거의 상처들을 풀어내는 게 겁이 나서 창문 안으로 더 깊게 숨어들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멤버들이 내 곁에 있었다. 나를 다독여주고 따뜻한 위로의 시간을 건네주며 ‘힘들지 않은지’ 물어줬다. 그 질문에 감사하다. 그 질문들로 인해 연습실까지 가는 길이 벅찰 만큼 행복했다.

 

나의 첫 관객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이름들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 아픈 몸들이 만든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은 8월 말까지 진행된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필자 소개: 홍수영.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기사입력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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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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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 20/07/31 [15:18]
참 용감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부럽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재현을 하게 되면 자기연민에 빠져버리게 될까봐 그게 무서웠거든요... 배우분들의 글도 정말 좋네요.
July 20/08/02 [16:52]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단 한번만이라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도 귀중한 계기겠죠. 이런 연극이 만들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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